4. 네 이름은 목비린(木飛鱗)
이경(二更)!
네 개의 눈이 지금 심하게 동요하고 있다.
린 친왕을 그림자처럼 따르는 두 명의 밀사(密使).
옥룡 위천강, 무적위진공.
두 사람은 꽤나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어이해… 오늘은 다른 곳으로 갈까?'
'이상한 노릇이군. 매일같이 똑같은 생활을 했는데… 어이해… 오늘은 다른 쪽으
로 갈까?'
두 명의 밀사, 이들 중 하나는 측천전에서 파견 나왔다.
그리고 또 하나는 금부에서 나왔다.
이들은 린 친왕이 반정을 꾀하고 있다는 증거를 잡기 위해, 한 달 며칠 전에 여기
잠복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들은 린 친왕 근처에서 절대 떠나지 않았다.
밤에도, 새벽에도, 낮에도…….
이들 두 사람은 갖가지 모습으로 화신해 가며 린 친왕을 추적했다.
그림자가 되고, 숨결이 된 듯이…….
그리고 두 사람은 그 사이 린 친왕의 이상한 매력에 감화되어 린 친왕에게 꽤나
끌려든 상태였다.
사실 그러한 면이 없었다면 진작에 친왕부는 초토화되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반정에 대한 의혹이 강하다고 알리기만 했다면, 황제 경락제는 하는 수
없이 어명을 내려 린 친왕을 척살케 했으리라!
'모를 일이다.'
'아아… 말도 버리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두 사람은 소리 없이 린 친왕을 따르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달빛에 젖은 풀잎에는 이슬이 흥건하다.
밟기만 하면 가죽신의 위쪽까지 이슬에 축축이 젖게 된다.
그는 큰 걸음으로 검천애를 내려왔다.
오 장 뒤에는 명마 백룡풍이 느릿느릿 따르고 있다.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 백룡풍의 안장 위는 텅 비어 있다.
친왕 린!
그가 지금 말에 오르지 않고 그냥 걸어가는 것이다.
'이제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해하시지 못하신다 해도 이제는 하는 수 없습니
다. 이제는…….'
그는 쉬지 않고 걸음을 내딛었다.
꽤나 느린 걸음으로 걸은 탓에 십여 리 길을 가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월하(月下).
거울보다 맑고 하늘보다 깊은 호수 하나가 있다.
벽월지호(碧月支湖).
아무도 깊이를 모른다는 고적한 호수이다.
호숫가에는 늘 갈대의 숲이 춤사위를 벌이고 있고, 수면 위로는 은어(銀魚)의 입질
이 동그란 파문으로 고요하게 떠돌고 있다.
벽월지호까지가 구룡친왕부의 영토이다.
구룡친왕 린.
그는 느릿느릿 걸어 벽월지호에 도달하며 다시 하늘을 본다.
'결국… 여기 오고 말았습니다. 결국… 어머니보다는 상황의 뜻에 따라… 영원히
친왕으로 머물 작정이었는데… 아아, 소자는 결국 여기 오고 말았습니다. 이것 또
한 운명인 듯이……!'
린의 양 볼에는 홍조가 떠올랐다.
벽월지호!
이곳은 그에게 문(門)과 같다.
- 네가 견디기 진정으로 어려울 때 벽월지호에서 태공(太公)을 찾아라!
온향후는 나이 어린 친왕 린의 손을 잡으며 유언으로 그런 말을 남겼었다.
-진정으로 견디기 힘들 때가 온다면…….
린은 온향후의 육신이 타고 난 재를 검천애에 뿌리면서 그 말을 가슴 깊숙이 묻어
두었다.
그는 그 날 이후 단 한 번도 벽월지호를 찾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그런데 지금 친왕 린이 유언에 따라 여기 온 것이다.
쏴아아… 쏴아아…….
호수 가까이 다다르자 물소리가 꽤나 커졌다.
멀리서 보면 영원히 멈춰져 있을 듯한 벽월지호이나 가까이 가서 보면 물결이 상
당히 심함을 알 것이다.
달의 기운이 강해졌기 때문일까?
호수물은 갈대의 언덕을 사납게 할퀴기 시작했다.
"……!"
그는 아무 말 없이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기 시작했다.
동서남북(東西南北), 그는 흔들림이 거의 없는 눈빛으로 호수의 전경을 한 번 쓸어
본다.
일순, 그는 호숫가 언덕을 눈빛으로나마 일주하며 입술선을 일그러뜨렸다.
'없다. 아무도… 아무도 없다!'
호숫가에는 단 한 사람도 머물지 않았다.
태공이란 사람은 유명무실한 존재였단 말인가?
일각마저 지금은 영원과 같다.
친왕 린이 초조감을 느끼는데 돌연, 그의 뇌리 속으로 낯익은 목소리가 천둥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고집스러운 소왕야시여. 결국… 결국… 운명대로… 속하를 찾아오시었군요!
"검천애 위에서 충고했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벽력처럼 크게 뇌리를 후려쳤다.
'아아… 저 목소리가… 지금 나의 뇌리를 뒤흔드는 저 목소리가 바로… 바로 어머
니가 찾으라고 했던 태공의 목소리인가?'
친왕 린은 흠칫하여 몸을 돌린다.
대체 어디에서 말을 하는 것일까?
그가 상반신을 반 정도 틀 때였다.
"급한 것은 두 개의 꼬리(尾)를 잠시 떼어내는 것이겠지요! "
파-파-팟-!
신비한 목소리가 은은히 이어지더니, 돌연 린 친왕의 사방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
려 퍼졌다.
우레 소리가 들리며 검은 장막 같은 흙보라가 피어 올랐다.
회오리바람과 더불어 일어난 네 개의 흙기둥이 무수한 갈대잎과 함께 그의 몸을
휘감는 것이 아닌가!
네 개의 석탑(石塔)처럼, 네 마리 미친 용의 춤처럼…….
휘리리리- 링- 휘리리리리- 링- 콰아- 콰아- 쾅!
흙바람은 십 장 높이로 일어났고, 그 덕에 근처 오십 장 안의 갈대가 모조리 뽑혀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친왕 린의 모습이 완전히 감춰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근처 풍광이 돌변했다.
벽월지호의 드넓은 호수물이 자욱히 흐르는 검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조화(造化)가……?
일순, 거친 파공성이 나면서 북쪽과 남쪽에서 두 개의 괴영이 홀연히 나타났다.
"이게 어인 일이오?"
"대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마치 강호기인이 진학을 시전할 때 벌어지는 진풍
(陣風) 같은 일이 벌어지다니……?"
다급한 표정의 황포노인과 백의청년.
두 사람은 연기가 흐르듯이 사방을 스쳐 치닫기 시작했다.
휘휙- 휙-!
두 사람은 육안으로는 보지 못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근처 백 장 안을 뒤지고 다
니기 시작했다.
한데, 이상하게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돌연 일어났던 바람도 이미 사라진 상태였으며 안개도 흐려진 상태다.
여릿한 물안개를 피워 올리는 벽월지호 위로 나른하게 월광이 떨어지고 있다.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구룡친왕 린, 그만이 사라진 것이다.
대체 이러한 일이 있을 수가……!
그는 대체 어디로 가 버렸단 말인가?
"귀무둔진(鬼霧遁陣)이라는 것이지요. 저들에게는 저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답
니다. 낮이라면 펼치기 힘드나, 오늘처럼 월광(月光)이 흐린 밤에는 간단하게 펼칠
수 있는 환문(幻門)의 비전(秘傳)이지요. 저들의 무공이 강하다고는 하나, 귀무둔진
을 뚫어볼 수는 없답니다! 이 절기는 속하가 지니고 있는 칠십이 종(種) 녹림절기
(綠林絶技) 중 세 번째로 뛰어난 것이랍니다!"
그는 주름진 손에 청죽간(靑竹竿)을 쥐고 있었다.
죽립을 쓰고 도롱이를 걸친 전형적인 어부(漁夫) 차림의 그는 친왕의 전면에 정중
하게 오체투지를 했다.
이상한 것은 지금 눈에 불을 켜고 친왕을 찾아다니는 두 사람과의 사이가 칠 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귀무둔진!
중원환술(中原幻術) 중 다섯 번째 자리에 올라 있는 수법이다.
환술에는 오술(五術)이 있다.
장신술(藏身術), 분신술(分身術), 은신술(隱身術), 변신술(變身術) 둔신술(遁身術)!
귀무둔진은 오술 중 최고의 경지라는 둔신술에서 파생된 기환의 진술 중 하나이
다.
절전이 된 기환교(奇幻敎)의 둔형술이 아니라면 가히 강호일절이 될 수 있는 중원
천하의 사술 중 하나!
그것이 지금 기이한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나는 일 보(步)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저들 두 사람이 나를 찾지 못하다니… 나
는 저들을 뻔히 볼 수 있건만……!'
친왕 린의 얼굴은 또다시 시뻘개졌다.
악취가 나는 도롱이를 걸친 노인은 오체투지를 한 상태에서 지극히 정중하게 말을
시작한다.
"왕야는 모르실 것이나… 비복(卑僕)들은 왕야가 벽월지호에 오시어 진짜 운명을
시작하시기를 벌써 십육 년이나 기다렸습니다!"
"십육 년이라니……?"
그 햇수는 친왕 린이 세상을 산 햇수와 같았다.
고집스럽기만 하던 친왕 린의 얼굴이 대춧빛으로 붉어졌다.
"그럼… 내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나를 기다렸단 말인가?"
그는 하대하여 말했다.
황제 이외의 사람에게라면 무조건 하대하는 이유는 그렇게 습관이 들었기 때문이
지, 오만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귀무둔진.
신비로운 안개는 시야를 가렸고, 동시에 음파(音波)가 흘러나가는 것마저 방해했
다.
옥룡(玉龍), 무적위진공(無敵威振公).
이들 두 사람은 벽월지호 일대를 샅샅이 찾아다니고 있다.
호숫가 언덕을 뒤덮은 갈대밭 사이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두 사람.
이들의 옷자락은 벌써 땀에 흥건히 젖었다.
힘이 딸려 땀을 흘리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땀을 흘리는 것이다.
스으으… 스으…….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하며 벽월지호의 수면에 주름이 깊이 잡힌다.
"태어나던 순간부터… 나를 기다렸단 말이오?"
친왕 린이 다시 물었다.
"예. 비복들은… 친왕야의 탄생과 더불어 왕야의 평생 비복으로 안배가 되었습니
다!"
"평… 평생 비복?"
"예. 그분의 뜻에 따라!"
"누… 누가 그런 안배를? 선모(先母)께서 안배하신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안
배란 말이오?"
"왕야… 속하 같은 자를 왕야의 비복으로 안배를 해 두실 정도로 신위(神威)로우
신 분이 어느 분이신지 모르십니까?"
도롱이를 걸친 노인은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는 계피학발의 늙은이였다.
하지만 얼굴 한가운데에 박힌 두 개의 눈에서는 정말로 강한 빛이 섬전처럼 폭사
되어 나왔다.
그의 눈빛은 실로 막강했다.
그는 대체 누구일까?
그는 이미 사 갑자(甲子) 수위의 내공(內功)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사 갑자의 내공이라면 소림사방장(少林寺方丈)의 내공보다도 높다고 할 수 있다.
당금 강호계를 좌지우지하는 십천무맹(十天武盟)이나, 마도의 천년마궁(千年魔宮)
에도 그러한 고수는 흔치 않다.
"노인같이 신비한 사람을 안배한 사람? 서… 설마……! "
친왕 린의 입술에서 핏빛이 흐려졌다.
밀랍처럼 파리해지기 시작하는 그의 입술.
그 입술에 모든 아름다움을 조롱할 수 있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떠올랐다.
"설마… 상황(上皇)이란 말이오?"
친왕 린이 급박히 토해 내자…….
"역시 현명하신 분이십니다. 왕야는……!"
괴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립(方笠)을 벗었다.
흰 머리가 흘러내려 어깨를 뒤덮었다.
츠으으… 츠으으…….
그리고 한순간, 괴노인의 모공(毛孔)에서 누런 안개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전신의 근골(筋骨)이 삐그덕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누런 안개가 점점 짙어지는 가운데 노인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했
다.
키가 구 척(九尺), 백발 대신 흑발(黑髮)이…
주름살 대신 홍안(紅顔)의 얼굴이…….
관운장(關雲章)과 같이 수염이 아름다운 중년대한(中年大漢)!
괴노인은 찰나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대체 그는 누구란 말인가?
"신(臣)은… 나후지존(羅侯至尊) 철무극(鐵無極)이란 자입니다. 왕야가 태어나는 그
순간… 왕야의 평생 시위로 내정이 된 백팔나후위(百八羅侯衛)의 우두머리이기도
합니다!"
나후지존!
대체 이럴 수가……!
나후지존이란 이름은 팔십일만 전금군(禁軍)에서는 신과 같이 군림하는 이름이다.
그는 전전대(前前代)의 금부통령이고, 어전시위대장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그는 철혈위진공의 사부인 무적위진공의 사백(師伯)이 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그는 근처를 뒤지고 다니는 두 사람 중 하나인 무적위진공의 사백조(師
伯祖)가 되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오래 전에 죽었다고 소문난 사람이다.
한데, 그는 죽지 않고 친왕 린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속하는… 일백칠 인의 특급고수(特級高手)를 이끌고 관복(官服)을 벗고 왕야의 평
생 시종장이 되었습니다. 상황 승명제께서 속하에게 그렇게 하라 안배하신 이유는
… 불행인지 다행인지… 왕야의 천기(天機)가… 황기(皇機)를 능가한다는 일대역운
(一代逆運) 때문이었습니다."
나후지존!
그는 무려 십육 년이나 친왕 린이 찾기를 기다렸다.
린이 친왕으로서의 운명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운명을 제 스스로 선택할 때를 일
백칠 명의 시종과 더불어 십육 년 내내 기다렸던 것이다.
구룡친왕 린!
그의 신비로운 눈빛은 두 손 가운데로 모아지고 있었다.
그의 무릎은…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오만한 무릎은 갈대잎을 깔고 땅에 대어졌
다.
무릎을 꿇는 이유는 승명제의 친서(親書)가 수 년 만에 처음으로 그에게 전달되었
기 때문이다.
<이것은 네게 전하는 마지막 유산(遺産)이기도 하다!>
패왕(覇王)이라 불렸던 승명제가 죽기 전날 작성했던 유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황법(皇法)이 하찮은 것이었다면, 린!
네녀석을 황세자로 삼았을 것이다.
그러나 황법은 존귀한 것이라 도저히 깰 수 없기에 너를 친왕의 구차한 숙명으로
남게 했다.
아니, 황제라는 지위는 그리 좋은 지위가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짐이 네 어미 온향(溫香)을 취하며 측천(則天)을 멀리한 것이… 사실은 정
의 배반이기에, 제위를 측천의 아들에게 남겨 그 빚을 갚아야 했다.
짐이 죽기 전, 네가 성년(成年)이 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나 불행히도 네녀석은
코흘리개에 불과하고, 더 불행한 것은 질투심 많은 측천과 노중신들이 너의 총명
함을 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짐이 죽고 나면 필시 네게 위험이 닥칠 것이다.
네가 이 글을 보게 된다는 것은, 이미 너의 뜻이 자금성에서 멀어졌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이제 네게 마지막 유산을 전한다.
그것은 하나의 전설(傳說)이다.
그것은 무도(無道)의 전설이라는 것으로, 홍무제(洪武帝)도 일생을 통해 그것을 찾
고자 하셨으며… 짐 또한 청년 시절을 그렇게 보냈었다.
그것을 찾는다면 네가 바로 하늘(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린!
이제 네게 주씨(朱氏)가 아닌 또 하나의 성을 주겠다.
그 성은 목(木)!
그것은 바로 네 어미 온향의 속성에서 딴 것이다.
그리고 이름 가운데 비자(飛子)를 넣기 바란다.
그 뜻은 자금성의 황제 자리보다 완전하고 원대한 위치를 향해 날아가라는 아버지
의 뜻이다!
목비린(木飛鱗)!
너는 이제 목비린이다, 아들아!
제위(帝位)에 올라 천하신민을 다스린 지 수십 년이나, 짐은 천하의 겉 부분만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강호(江湖)라는 곳이 있고, 그곳에는 오백만 황군(皇軍)을 조족지혈로 여
기는 세력이 있다.
특히 전설로 내려오는 사대사마(四大邪魔)의 세력이 최근 들어 창궐해 억조창생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북(北)의 사해존마부(四海尊魔府),
동(東)의 장한성(長恨城),
서(西)의 폭풍성(暴風城),
남(南)의 천년마궁(千年魔宮)!
사마세력 이외에도 무궁무진한 강호난적들이 있다.
그들 사마세력을 괴멸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짐의 통치력이 유한하다는 것을 뜻하
는 것과 같다.
나의 아들 비린!
네게 부탁할 것이라고는 하나!
너의 천품을 다 발휘해 억조창생을 위해 강호대업(江湖大業)을 이룩하라는 것이다!
그런 기대는 너무도 엄청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로서 네게 바라고 있다!
혈통으로 얻은 것에 만족해 신민들을 벌레처럼 여기고 사는 사람이 되기보다, 뜻
을 품고 구만 리를 나는 한 마리 용이 되기를…….
이제 너는 친왕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강호인 목비린이다.
그리고 네가 가는 길은 짐이 황제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대장부(大丈夫)로서 정
녕 가려 했던 길이기도 하다.
풍요의 여정이 아니라 시련의 여정이고, 보장된 길이 아니라 모험의 길이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웃는 순간보다는 피눈물을 흘릴 순간이 많은 강호의 길이 그
길이다!
부디 강호제일인이 되라!
자금성은 너를 가두기에는 너무도 작은 장소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아들 비린(飛鱗)아!
너를 미워하는 측천후를 미워하지는 마라.
미워할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훌쩍 사라지지는 마라!
자금성의 안전은 매우 중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너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전설(傳說)의 장소는 십만서고(十萬書庫)이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나 그것이 하늘로 이르는 등룡문(登龍門)이고, 그곳이
전설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후백팔위(羅侯百八衛)는 너의 분신이 되어 움직일 것이나, 전적으로 그들에게 의
지하지는 마라!
이제부터는 야인(野人)으로 처신하라!
큰 물은 높은 데 고이지 않고 낮은 데에 고인다.
바다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어야만 한다.
돌이 되거라!
가장 강(强)해지기 위해 가장 약(弱)해지고… 다 얻기 위해 약간을 버려라.
날아오르기 위해… 일단은 굽혀라!>
구구절절 사랑이 담긴 글씨이다.
이 글은 친왕에게 주는 글이 아니라, 아들에게 주는 글이었다.
친왕 린, 아니 그는 이제부터 목비린이다.
그는 글을 읽고 또 읽으며 결국은 뺨을 뜨거운 눈물로 적셨다.
지금은 마음대로 울어도 된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의 눈물은 절대 보지 못할 것이다.
푸드득… 푸득…….
비둘기 한 마리가 구룡친왕부에서 날아올라, 자금성 쪽으로 힘차게 날개짓하며 날
기 시작했다.
비둘기 다리에는 철통(鐵筒)이 하나, 그리고 철통 안에는 네 번 접은 쪽지가 하나
들어 있었다.
푸득… 푸득…….
비둘기는 시린 밤공기를 깨며 자금성 쪽으로 힘차게 날아가기 시작한다.
철통과 쪽지를 지닌 채.
<친왕 실종(親王失踪)!
필경, 반정(反正)의 시작인 듯!
밤새 찾다가 못 찾고 급히 알립니다!>
쪽지에는 그런 글이 적혀 있다.
묘시(卯時).
전서구(傳書鳩)는 자금성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가장 음침하고 고풍스러운 전
각으로 날아든다.
측천전(則天殿).
바로 측천태후의 거처였는 바, 그곳에는 측천시위들이 모여 살고 있다.
측천시위들은 금부시위와는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황상의 명보다는 측천태후의 명에 복종한다.
그리고 이들의 우두머리는 놀랍게도 옥봉군주(玉鳳君主) 단옥봉(丹玉鳳)이라고 하
는 여인이었다.
흰 손이 지금 환희에 떨리고 있다.
"황실의 문제아가… 호호! 정녕 문제를 일으키는군. 이렇게 빨리 사건을 일으켜
제 명을 자초할 자는 아니라고 여겼는데… 호호…!"
교소를 터뜨리는 여인, 그녀의 흰 이가 야광주 빛에 아름답게 빛난다.
측천태후의 두 양딸 중 하나인 옥봉군주.
측천전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나가지 않는 여인이었는 바, 그 진실된 모습은 아직
단 한 사람도 알지 못한다.
그녀는 온갖 재주를 갖고 있고, 또한 측천태후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기에 아무도
그녀를 거역하지 못한다.
"호호, 어리석은 자!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체하더니…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
에 불과하구나!"
옥봉군주는 까르르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탐스럽게 흘러내리는 흑발(黑髮)이 등판을 뒤덮는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풍만한 육체.
그녀의 뒷모습은 하나의 조각을 보는 듯 완벽하다.
능선에서 굴곡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고,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선의 연속이다.
"구룡친왕! 이제… 척살(擲殺)되는 일만 남았다. 고집쟁이 황제도 친왕의 도주 사
건에 대해서는 고집을 꺾고 말 것이다!"
진시(辰時), 경락제는 초조한 표정이 되었다.
'그럴 리가… 그 녀석이… 그 녀석이 정녕 반정(反正)을 꾀하고 있단 말인가?
녀석이 소문과 같이 정말 역모를 꾀하기 위해 도망쳤단 말인가?'
경락제의 미간에는 검은 그늘이 있다.
어전(御前).
지금 다섯 명이 서 있는데, 하나같이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구문제독(九門提督) 석고량(石高亮),
사마대승상(司馬大丞相) 관추웅(關秋雄),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 장풍(長風),
육부판령(六府判領) 금철운(金鐵雲),
그리고 금부통령(禁府統領) 능굉도(凌宏道).
이들 다섯은 바로 경락제를 떠받드는 다섯 기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섯 사람 중 단 한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가 분기탱천한 표정들이다.
"즉시 팔십일만(八十一萬) 전금군(全禁軍)에게 명해 친왕부를 피로 씻어야 합니
다!"
"촌각이 급한 대사건입니다. 구룡친왕은 필경 반정을 일으킬 자들을 찾아 돌아다
니고 있을 것입니다!"
"주상이시여! 어서 척살령(擲殺令)을 내리십시오. 전군(全軍)은 어명에 따라 출동
할 차비가 되어 있습니다!"
"신들에게 하명해 주십시오."
창노한 목소리들.
이들은 경락제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관부(官府)를 움직여 왔던 사람들이다.
고집스럽게 늙은 사람들.
이들에게는 경락제마저 철부지로 보일지 모르는 일이다.
기실 이들을 움직이는 사람은 경락제가 아니라, 측천태후였다.
측천태후는 온향후에 대한 앙갚음을 구룡친왕에게 해대고 있는 것이다.
반정(反正)!
감히 입에도 올리지 못할 엄청난 단어이다.
구족(九族)이 죽을 일대죄악.
천하가 피로 씻을 그런 엄청난 역모가 구룡친왕에 의해 결국 현실로 벌어지게 되
었단 말인가?
"이미 친왕부를 샅샅이 수색했습니다만… 친왕의 종적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대공자란 자들은 친왕을 찾는다는 구실로 밤 사이 왕부를 떠났다고 하고, 많은
사람들이 왕부의 영토 밖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안으로 마무리짓지 못한다면
정녕 대란(大亂)이 벌어질 것입니다!"
"통촉해 주십시오!"
"폐하! 역적 구룡친왕을 한시빨리 잡아 처단해야 합니다! "
대전은 꽤나 시끄러워졌다.
말을 하지 않은 사람은 경락제와 금부통령 철혈위진공뿐이다.
이들은 구룡친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지금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이다.
"폐하- 신들의 간언을 무시하시면 아니 되십니다. 이 일은 사사로운 정에 끌려
결정하실 일이 아니십니다!"
"태후는 이미 곡기를 끊으셨습니다. 폐하가 척살을 명할 때까지는 물 한 모금 입
에 대지 않으실 작정이라 하십니다!"
"주상이시여… 어서 황군의 출군을 명해 주십시오."
"구룡친왕을 잡아 죽여야만 합니다. 이 일은 조정대사가 걸린 일입니다. 한시빨리
단언을 내리시어야 합니다!"
사 대신의 목소리가 고조될 때 경락제는 허공을 봤다.
어딘지 모르게 슬픈 눈빛이다.
형제상잔이라니…….
린!
그는 경락제가 한 배로 태어난 친아우처럼 귀여워해 주었던 소년이다.
본 지 벌써 반 년이나, 그의 신비한 용모며 낭랑한 목소리는 한시도 뇌리를 떠나
지 않았지 않는가.
'너무도 뛰어나기에… 너무도 불쌍해진 녀석! 아아, 네가 반정을 주도한다고는 믿
어지지 않으나… 조정대신들의 너에 대한 살의(殺意)는… 이제 나도 어찌할 수 없
는 상태가 되었구나.'
그는 탄식을 억지로 참는다.
'내가 제왕의 학문을 심오하게 배우지 못한 탓에 천하만사를 꿰뚫어보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경락제는 의자 모서리를 힘있게 거머쥐었다.
'구룡… 네가 귀하나, 너로 인해… 나를 떠받들어 주는 다섯 개의 기둥을 모두 잃
을 수는 없다. 너와는 달리… 나는 모험을 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정도 마음을 결심한 듯했다.
침묵(沈默).
사 대신과 금부통령은 모두 침묵한다.
그들은 표정만 봐도 경락제가 입을 열 것인지 일어설 것인지 알 수 있다.
경락제는 지금 말을 시작하려 한다.
그의 왼쪽 눈썹이 치켜뜨여진다는 것이 그것을 단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반정을 한다면……."
경락제는 느릿느릿 말을 시작했다.
천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바로 생사의 기준이다.
"죽여야지! 반정을 한다면!"
"아아, 폐하!"
"폐하- 결국!"
다섯 사람의 눈빛이 강하게 번쩍일 때, 경락제가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곤룡
포 자락을 슬쩍흔든다.
순간, 다섯 사람은 또다시 함구했고 경락제는 하던 말을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하나…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오. 왜냐하면… 친왕부에서
반정사건이 벌어졌다는 소문만으로도 천하가 어지러워질 테니까! "
"으음!"
"아!"
"……."
"반정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소, 짐은!"
경락제는 팔짱을 낀다.
이제는 더 할 말도 없는 것인가?
그의 눈길은 또다시 아주 높은 천장 쪽으로 향해졌다.
"……."
답답하고 지루한 침묵이다.
그리고 조금은 차가워진 투의 목소리가 모든 침묵을 매듭지었다.
"적어도 일 일(日)은 기다리기로 합시다. 그래야 척살을 내려도 명분이 설 테니까.
쓰디쓴 결정이기는 하나 황통(皇統)을 위해서라면… 하는 수 없는 일이니까!"
그는 결국 눈을 감고 만다.
그의 눈 아래는 붉게 물들었다.
곤룡포를 입지 않았더라면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녀석에게 그것을 전할 때다. 어찌 녀석을 처형하겠는가! 으음, 그 녀석과
나를 맺어 주신 상황이 이런 날을 위해 안배해 둔 서고(書庫)를…….'
황군(皇軍)들이 갑자기 착검하고 이동을 하기 시작한다.
북경 일대에는 천라지망이 펼쳐졌다.
어두워질 때에는 인근 삼천 리 안이 기마병으로 까맣게 뒤덮이게 되었다.
길이란 모든 길, 중신들의 장원이란 장원 모두에 어떠한 제재가 가해진 듯했다.
그 일이 무엇인지는 양민이 모르는 바다.
대체 어떠한 일이 구중천에서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동전십문(銅錢十文)이면 거나하게 취할 정도로 마실 수 있는 주점(酒店)을 황도(皇
都)에서 찾기는 힘든 일이다.
사통팔달(四通八達)한 거리 어디를 봐도 고루대전(高樓大殿)이 아닌가?
화려하고 풍요한 거리.
그러나 싸게 술 마실 수 있는 곳이 전무한 것은 결코 아니다.
남대로(南大路) 후미진 곳에 있는 단층 모옥.
주기(酒旗)가 땟국물에 젖어 마치 걸레마냥 보이고, 기와지붕 위로 잡초가 무성한
고택(古宅)이 하나 있다.
북경야(北京夜)!
황도 북경에서 가장 격이 낮은 주루이다.
시중을 들어 줄 동기(童妓)도, 입맛을 당기게 하는 산해진미(山海珍味)도, 귀를 녹
일 음률도 없는 작은 주루이다.
때에 절은 검은 나무 탁자 네 개와 의자 십여 개.
북경에서는 가장 천한 일을 하는 천민들의 땀 내음과 입 속 구린내, 그리고 매캐
한 연초 내음이 머무는 곳.
안주래야 기껏 마른 두부 조각과 낙화생 부스러기.
혹, 선금(先金)을 준다면 씨암탉 한 마리를 잡아 안주로 삼아 달라고 주모에게 부
탁할 수도 있다.
북경의 밤!
이곳 구석진 자리에 주담자(酒坍子) 사십여 개가 수북히 쌓여 있다.
꼭두새벽부터 지금까지… 낙화생 한 조각도 없이 깡술을 들이키는 노소가 거기 있
다.
"결정을 끝내시어 다행이십니다!"
"훗훗, 내가 비록 오래 살지는 못했으나… 훗훗, 나의 평생을 통해 이렇듯 자유롭
기는 처음이오!"
신비하고도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술의 양은 정해져 있지 않다.
마시다가 죽을 때까지 마셔도 된다.
그만 마시라는 사람도 없고, 눈총을 주는 사람도 없다.
"나후백팔위가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떠나갔을 것이오!"
"헛헛, 능히 그러셨을 것입니다. 왕야!"
"쯧쯧, 왕야라고 하지 마시오."
"죄송합니다. 속하… 이제부터는 왕야라는 말을 삼가겠습니다."
"푸핫핫-!"
소년은 웃으며 다시 술을 따른다.
일 배(一杯), 그리고 또 일 배…….
이미 몸무게보다도 무거운 주담자 열 개가 비워졌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북경의 밤에서 마시는 술은 값싼 술이다.
그러나 취하기는 명주(銘酒)나 탁주나 매한가지인 것이다.
소년은 마시고 또 마셨고… 결국 코가 비틀어지고, 얼굴이 잘 익은 사과마냥 새빨
개지고 만다.
웃는 소년, 그의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표정이다.
그런 표정을 한 사람과 술을 나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어떠한 말을 해도… 어떠한 욕설을 해대고, 어떠한 주사를 해도 상대는 다 받아
줄 테니까!
"자, 일배(一杯)……!"
"예!"
또다시 술이 한 순배 오갔다.
날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다.
소년의 목소리는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았다.
정말 많은 말을 토한 것이다.
새벽부터 이제까지 거의 쉬지도 않고, 정말 많은 말을 한 것이다.
"탁주 맛이 이리 좋은지 내 미처 몰랐소!"
"소주인의 고귀하신 입에 이런 질박한 탁주가 어울릴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
지 못했습니다!"
"핫핫! 나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고 하지 않았소! 이름도, 지위도, 영토도, 새벽
에 다 버렸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흥건하게 마셔 보자
고 하지 않았소?"
"그… 그랬습죠."
"훗훗, 그렇소. 내가 그랬고… 그 말은 절대 뒤집어지지 않을 것이오!"
싱긋 웃는 소년.
그는 나이답지 않게 탈속한 데가 있었다.
옷자락에서는 술 냄새가 지독하게 배여 있다.
술을 마시다가 여러 사발째 옷자락에 엎질렀기 때문이다.
너무 커서 세 번 접어 입어야만 하는 마의(麻衣)며, 너덜너덜 떨어진 초혜(草鞋),
허리띠라고는 새끼줄이…….
"훗훗, 이렇게 편해 보기는 처음이오. 아아… 밑바닥에서 시작한다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 같소!"
"강호는 비릿한 곳입니다. 소주인!"
"훗훗, 얼마나 비리오?"
"피보다… 눈물보다… 땀보다 비립니다. 강호는……!"
"훗훗, 그렇다면 더 좋소. 싱거운 것보다야 맵고 짠 것이 나으니까. 높은 곳이라야
오를 마음이 나니까!"
다시 일 배, 그리고 일 배(一杯)…….
술잔 안에도 눈빛이… 눈동자 안에 달빛이 있고… 허공에는 이지러진 잔월이 떠오
르기 시작한다.
"나의 장도(壯道)를 위해 권배(勸盃)할 것은 없소. 다만 오늘 이 즐거운 자리를 위
해 잔을 비웁시다!"
소년은 말에서 노인을 압도했다.
대체 누구이기에 이런 광오함과 저력을 갖고 있단 말인가?
사경(四更)이다.
북경야는 셋의 장소가 되었다.
잠을 이기지 못해 꾸벅꾸벅 졸면서도 두 명의 끈질긴 주객에게 차마 나가란 말을
하지 못하는 인심 좋은 주모.
그녀는 아주 뚱뚱한 여인으로, 특히 가슴이 풍만했다.
그녀는 흐릿한 그림자를 볼 뿐이다.
잠이 지독히 쏟아지기에 이 장 앞에 있는 주객의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너무도 피곤해 목소리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천하(天下),
야망(野望),
강호(江湖)…….
어리석은 소리들!
두 사람은 왜 긴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 것인가?
주모는 간간이 들리는 말소리를 꿈결에서나마 비웃으며 결국 잠에 빠져들고 만다.
오경(五更).
머지않아 새벽이 밝아 오리라.
두 명의 지독하게 술 잘 먹는 주당들은 마지막 잔을 비웠다.
단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말끔하게…….
저기서 새벽이 다가선다.
끌어당기지 않아도 새벽은 느릿느릿 다가선다.
수십 개의 주담자, 빈 의자 두 개, 탁자 위 술값치고는 너무도 후하게 치른 명주
(明珠) 세 알, 버려진 청죽간(靑竹竿) 하나.
그것이 새벽의 빛에 비춰졌고 두 사람의 그림자도 이제는 없다.
어디로……?
그들은 어디로 떠나 버린 것일까?
정말 믿지 못할 일도 가끔 가다는 벌어진다.
"탱탱한 게 좋구나. 크하하하!"
그는 앙천대소를 터뜨리며 자신의 옷을 반 강제로 갈아입히는 궁아(宮娥)라는 궁
녀의 도발적인 젖가슴을 마구 매만졌다.
꿈결처럼 아름다운 손이 아니었다면 궁아는 진저리를 치며 그 손을 깨물어 버렸을
것이다.
육봉을 유린하는 그 손을 떼어내기 위해서!
그러나 그 손은 여인이 거절하지 못할 마력(魔力)으로 다가섰기에 궁아는 가슴이
만져져도 괜찮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다.
벌써 한 시진째다.
대취한 구룡친왕의 베옷을 벗기고,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갈아입히기 위해 애를
쓴 시간은…….
린…….
그는 자금성으로 직통하는 광로(曠路) 한가운데 벌렁 누워 잠든 모습으로 발견되
었다.
얼굴을 하늘 쪽으로 하고 잤기에 다행이지, 엎드려 잤다면 성급한 황군이 거칠게
모는 건마의 네 다리가 그의 몸을 육포로 짓이겼을 것이다.
황군은 그를 찾아다니던 중이었는지라, 즉시 그를 알아보고 그를 자금성 안으로
옮긴 것이다.
"정말 매끄러운데? 크크……. "
친왕 린이란 말인가?
궁녀의 육봉을 주무르고 있는 치한이…….
그토록 오만하고 고결하던 친왕 린이 지금 개망나니가 되어 있단 말인가?
아홉 개의 문을 열고 들어서야만 이를 수 있다고 하는 곳!
자금성(紫金城).
일천여 가지의 예법 규범이 걷는 모습, 말투, 사고방식, 먹는 음식, 기거 생활의 모
든 형태를 질긴 끈처럼 조이는 곳.
지금, 앙천대소(仰天大笑)가 궁궐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다.
"푸하하하! 저 하늘을 봐라. 어찌도 저리 붉으냐? 마치 베면 핏물이 뚝뚝 떨어져
버릴 것 같지 않느냐?"
표정이며 생각마저 격식에 따라 행해야만 하는 황궁 깊은 곳에서 그처럼 자유스러
운 웃음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으하하… 으하하하……!"
미친 웃음 소리.
그 웃음소리는 아홉 개의 문, 아홉 개의 담장 너머로 구석구석 퍼져 나갔다.
구룡친왕의 앙천대소!
황실의 문제아라는 구룡친왕의 웃음소리는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다.
자금성 일대 무사들의 안색은 밀랍처럼 창백해진다.
'어이해 도망치지 않고… 자금성 쪽으로 왔소이까! 어이해…….'
고개를 젓는 사람들, 한숨을 쉬는 사람들은 모두 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구룡친왕에 대해 그래도 연모와 흠모의 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 이외의 사람들.
예를 들어 대외(對外) 대내(對內)의 시종들, 언제고 자신이 황제의 밀실에 간택이
될지 몰라 늘 궁정(宮庭) 깊은 뜨락에서 한숨만 짓던 천여 명의 궁녀들, 아는 것이
라고는 황제의 수라상에 무엇이 놓여야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다는 것뿐인 주방의
상궁들이며, 무거운 예복을 걸친 채 두 손을 반대쪽 옷자락 안에 깊숙이 찔러 넣
고 허리를 숙인 채 조심스레 걸어다니는 중신들, 문반(文班), 무반(武班)의 여러 사
람들…….
지금 모든 사람은 뒤통수에 철퇴를 한 대 맞은 표정을 지었다.
-대체 그 깔끔하시던 분이 그럴 수가!
-꾀병이라면 혹 있을 수 있는 일일지 모르나… 미치다니!
-친왕부 사람들도 모르는 기루에 가서 술을 진탕 마시고, 비틀거리며 자금성 쪽
으로 와서 드러누워 버리다니!
놀라움에 가득 찬 눈동자.
자금성은 지금 흥분의 도가니로 끓어올랐다.
쉬쉬 하고 있기는 하나, 그런 소문이 아니 퍼지겠는가?
더욱이 측천전 시위들이 일부러 그 일을 크게 떠벌리고 다니는 바에야…….
-천기(天機)의 주인공은커녕 지귀(地鬼)의 조카도 되지 못하는 개망나니가 바로
구룡친왕이었다.
-그는 자신의 진면목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그는 한 마리 까마귀였을 뿐이다.
-반정을 일으키기는커녕 제 한 몸도 가누지 못할 자다.
수천 개의 눈은 지금 자금대전 쪽으로 집중된다.
경락제는 새벽부터 외부인을 만나지 않았다.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아침부터 밤까지 어의(御醫) 열두 명이 번갈아 가며 그의 맥(脈)을 짚었다.
"병이 아니오. 정녕……. "
병이 없다고 말해도 어의는 무작정 진맥을 했다.
그 중 하나는 경혈(經穴)이 기이하게 틀어져서 소병(笑病)이 났다 했고, 신의로 추
앙을 받는 곡의생(曲醫生)은 자신이 전혀 모를 심마지병(心魔之病)이라 했다.
하여간 사흘이 번잡스럽게 지나갔다.
두 눈은 가끔 빛을 발했다.
침상에 벌렁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눈을 껌벅이고 있는 미소년이 하나 있다.
'차라리 홀가분하다. 이렇게 자유롭기는 처음이다. 훗훗, 하여간 이 일로 인해 친왕
부 사람들은 편해질 것이다. 나로 인해 자칫 반역자들로 몰려 떼죽음당하는 위험
은 이제… 안개가 걷히듯이 말끔히 사라졌으니까……. '
친왕 린, 그는 아주 밝고 자유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도망치기 위해 미친 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도망을 치기 위함이었다면 벌써 나후지존(羅侯至尊)을 따라 만 리 밖을 달리고 있
을 것이다.
친왕 린은 거처를 바꾼 것이 아니다.
그는 뜻을 바꾼 것이다.
'나는 내 고집과 명예를 버렸다. 그 대가로… 나는 모든 것을 얻어야 한다. '
친왕 린은 뜬 눈으로 새벽을 맞이했다.
'하여간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나는 당당하게 떠나갈 것이다. 어디로든… 마음대
로…….'
파초선(芭蕉扇)을 든 두 명의 궁녀들이 좌우에 있고, 황금 의자에는 몸매가 풍만한
귀부인 하나가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다.
측천태후(則天太后).
그녀는 승리자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은 처음부터 싸움도 되지 않을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처음부터 끝까지 측천태후였으니까!
"죽일 필요까지야 없겠지. 그 애벌레를 죽인다면 세상이 본후를 욕할 수도 있으니
까! 친왕부의 세력과 단절시키고 황실계보에서 제명하는 것으로도… 놈을 낳은 온
향후가 본인에게 베푼 빚에 대한 모든 것을 갚았다고 할 수 있으니까! "
경락제는 구룡친왕과의 대면을 피했다.
다른 사람들은 구룡친왕이 황실의 명예를 어지럽힌 죄를 물어 국친을 해야 한다고
했으나 경락제는 그것을 사절했다.
그는 벌써 여러 밤째 고민을 거듭한다고 했다.
밤.
린은 지금도 밤을 좋아한다.
밤은 그에게 모든 것과 같다.
비록 이곳이 검천애(劍天崖)의 정상은 아니라고 하나, 밤만은 검천애의 그것과 같
이 신비하고 아늑하다.
그는 밤의 하늘을 보고 누워 있었다.
완전히 격리된 상태였다.
친왕부 쪽에서 고수를 보내 그를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정보가 있기 때문에 근처는
전 금부시위에 의해 폐쇄되었다.
친왕부는 지금 풍지박산 상태였다.
구룡친왕을 정신적인 지도자로 삼던 학림노현들이나 오대세가 사람들은 구룡친왕
이 미쳤다고 여기며 떠나 버린 후였다.
- 때(時)를 모르는 자를 영웅(英雄)으로 알고 주인으로 모시려 했으니, 우리가 진
짜 바보였다. !
자금성에서 금제를 가한다고 반 미쳐 버릴 정도로 나약한 자였단 말인가?
구룡친왕이라는 사람은?
오천 식객은 썰물이 빠지듯 빠져 나갔다고, 친왕을 가까이서 지키고 있는 시위 하
나가 이미 세 번이나 말했다.
비웃는 표정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은 시녀들뿐이라던가?
왕부의 땅은 곧 평민에게 팔리니, 이제는 당신이나 나나 피차일반 평민이 아니냐
하는 눈초리로 위아래 흘겨보며 꽤나 거만한 자세로 위사들은 친왕부의 급속한 몰
락에 대해 농담을 하듯 떠벌렸다.
구룡친왕부는 굉장히 거대한 세력이었다.
그런 세력을 다시 일으키기는 친왕 린에게 있어 힘든 일이다.
그러나 친왕 린은 그런 말을 듣고도 미소만 짓는다.
'천 개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 정도는 잃을 수 있다.'
그는 정말로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친왕 린이 아니라, 그냥 린인 것이다.
황족으로서의 운명이 아니라, 한 명의 강호인 목비린으로서의 운명을 이제 그의
손으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눈, 북경 일대에는 보기 드문 눈이 내렸다.
그것도 거위 털같이 크고 탐스러운 함박눈으로…….
늙은 대신들은 모피 옷을 관복 속에 껴입었다.
그리고 냉돌(冷突)에 기거하는 시위 무사들은 입을 벌릴 때마다 한숨을 한 자 넘
게 토하기 시작했다.
이천운(李天運)이란 사람, 그는 필력이 좋아 서기관이 되었다.
그는 지금 붓을 정성스레 쥐고 써내려 가고 있다.
슷… 슷…….
대체 무엇을 쓰기에 이리도 정성을 가하는 것일까?
흘려 쓰나, 또박또박 쓰나, 어차피 담기는 내용은 마찬가지 일 텐데…….
<반정의혹(反正疑惑)에 대한 것은 구룡친왕 린을 봉고제적(封庫制籍)함으로 마무
리지어졌음! 한 달에 걸친 반정 기반에 대한 금부(禁府)의 조사 결과, 반정은 완전
히 와해되었음이 밝혀졌음.
상건(上件)에 대한 삼대하명(三大下命)!
一. 구룡친왕부는 황제의 명에 따라 일단 봉부(封府)되고, 관리는 구문제독부(九門
提督府)에서 한다!
二. 구룡친왕부 식솔들은 일대에서 농업에 종사케 선처한다!
三. 구룡친왕의 파법(破法)에 대한 제재는 황실의 법에 따라 한다!>
구룡친왕에 대한 모든 기록이 지워졌다.
구룡친왕이란 이름은 절대 관가의 기록에 남지 않을 것이다.
구룡친왕이란 이름은 이제 과거 속의 이름일 뿐이다.
금부제칠실(禁府第七室)!
이곳 지붕 위에도 탐스러운 눈발이 한 자 넘게 쌓였다.
신명이 나게 퍼부어지는 황금빛 월파(月波)로 인해 눈은 찬연한 빛을 발했고, 일대
를 지키는 무사들의 호흡에 따라 흰 뱀 같은 숨이 만들어진다.
정적(靜寂)!
이 밤은 정적의 밤이다.
금부제칠실 일대 일천 장(丈)은 도산검림(刀山劍林)으로 메워졌다.
금부고수 중 칠 할이 출동한 상태이다.
나는 새라 하더라도 금부 가까이 갈 수 없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내가 너를 잘못 본 듯하구나! 돌같이 둔하기만 한 녀석! "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온화했다.
곤룡포(袞龍袍)를 벗었기 때문일까?
그는 문향(文香) 속에서 살아온 서생의 티를 냈다.
대명천자(大明天子) 경락제(景樂帝).
그는 최근 들어 몸이 많이 허약해졌다.
어의들이 보약을 매일 진상해도 그의 허혈(虛血)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는 꽤나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친왕부가 아니라… 짐 곁에 조용하게 상주하면… 복권(復權)될 수 있다는데에도
거절할 줄은 몰랐다! 정녕 매정한 놈이로구나. 너라면… 짐이 어떠한 상태인지 잘
알 텐데……."
경락제에게서 다섯 자 떨어진 곳, 백삼소년 하나가 단아한 자세로 앉아 있다.
화석(化石)이 되어 버린 구룡친왕!
친왕의 숙명에서 목비린이란 한 사람으로서의 운명을 시작한 그가 무릎 꿇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제가 마음 약하신 황상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이미 반정은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목비린은 속으로만 말했다.
경락제는 일 각 전, 친히 금부로 왔다.
측천태후가 알면 노발대발할 일이었으나 하여간 경락제는 결정을 내려 목비린을
직접 찾은 것이다.
"황적에서 제명된 것은 어찌할 수 없다고 하나, 짐 곁에 늘 머물며 짐을 도와 줄
수도 있지 않느냐?"
"저를 잡지 마십시오."
"잡지 말라고?"
"불만이 있어서 이러한 말씀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황상을 얼마나 흠모하는
지는 황상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안다… 그래서 여기 왔다. 짐이 친히……!"
경락제는 손을 내민다.
그의 손은 언제나 희고 깨끗했다.
사실 경락제와 목비린의 용모는 꽤나 흡사했다.
경락제와 목비린은 승명제가 세상에 남긴 유이(唯二)한 생명이다.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턱의 선(線)과 기도(氣度)일 것이다.
목비린의 턱은 아주 강한 턱이고, 그의 기도는 대단히 강했다.
반면 경락제는 수줍고도 온화한 모습이었다.
손과 손…….
나이가 든 후, 마주잡아 보기는 처음이다.
목비린은 울컥 형제의 정이 일어남을 느꼈다.
운명과 세월이 그들을 배반했다고는 하나, 정(情)만은 여전했다.
꽤 오랫동안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경락제는 오랫동안 목비린의 손을 놓아 주지 않다가 문득 말을 꺼냈다.
"네게는 두 길이 있을 뿐이다. 짐의 곁에 조용히 남는 길과… 멀리 유형(流刑)되는
길, 이 두 가지의 길이다!"
"알고 있습니다!"
"구태여 유형될 필요가 있느냐? 이미 황족에서 이름이 빠진 상태에서… 어렸을 때
부터 화려하게 생활한 네가…풀잎 끝 이슬처럼 살아나갈 수 있겠느냐?"
"……!"
"국법대로 한다면… 보름 전, 너를 유형의 길에 보내야 했으나… 차마 너를 보낼
수 없어 붙잡아 두는 것이다!"
"제 마음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쯧쯧, 그래도 다시 생각해 봐라. 네게 십오 일의 말미를 주겠다. 짐은 그 사이 태
후에게 네 이야기를 잘할 테니… 그 사이 마음을 고쳐먹기로 해라. 고집마저 버리
고 친왕의 지위를 포기한 네게… 또 무슨 골기(骨氣)가 있는지 정말 모르겠구나!"
경락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을 놓았다.
그는 아마 알지 못할 것이다.
목비린이 속으로 울고 있다는 것을…….
나후지존(羅侯至尊)은 지극히 현명한 사람이고, 자금성의 모든 기관에 대해 정통한
사람이었다.
그는 벌써 오십여 차례 목비린과 만났다.
그는 목비린에게 몰래 와서 자금성 일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소상히 이야
기해 주었다.
어디 그뿐이랴.
그는 목비린이 강호대업(江湖大業)을 시작하는데 필요한 몇 가지 내공법을 일러주
기도 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니, 일단 기(氣)를 기르셔야 합니다!
-천기(天機)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금성 속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강호의 거마
(巨魔)들, 변황의 효웅(梟雄)들도 해당이 됩니다. 자금성의 눈을 피하시는 것도 중
요하나, 그들의 눈을 피하시는 것도 중요합니다!
-잠기충허신법(潛氣庶虛身法)이라는 도가심법(道家心法)을 매일 암송하시면 천하
제일의 근골이 감춰질 것입니다!
나후지존은 목비린의 그릇이 얼마나 큰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목비린이 비록 일초무학(一招無學)이기는 하나, 절기를 두루 전수해
고수로 속성시키는 것보다 기초를 마련해 주는 것으로 자신의 교두(敎頭) 노릇을
마무리지었다.
-강호의 시시한 절기를 익히신다면 빛을 잃으실 수도 있으니, 권장지초(拳掌指招)
따위는 배우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친왕좌(親王座)는 명분(名分)이고, 천품(天品)은 천기(天機)이고 실리입니다.
지금은 명분을 버리고 천기를 취하실 때입니다!
-이미 다른 비위에게 연락을 마쳤습니다. 낙양(洛陽)에 강호무정궁(江湖無情宮)을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나후지존은 숙이고 사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어떤 때에는 천장 위에 숨어 전성술로, 어떤 때에는 목비린에게 전해지는 음식 속
에 쪽지를 넣어, 어떤 때에는 위사로 위장해서 뇌옥 안으로 들어와…….
그는 겨울이 깊어질 때까지 강호 이야기를 했다.
-하늘의 기운을 얻는 것만 취하셔야 합니다. 하늘의 기운에 역행하는 것은 장도
에 방해가 됩니다.
길…….
목비린이 가야 하는 길은 어디로 뻗어 나가는 길일까?
황제의 지위보다도 더 고매한 경지!
그 경지는 강호의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경락제와 약속한 십오 일은 유수(流水)로 지나갔다.
약속한 그 날, 경락제는 금부제칠실에 오지 않았다.
그는 벌써 열흘 전, 측천태후의 모성애를 빙자한 눈물 어린 간청에 굴복해 결정을
내리고 만 것이다.
드디어 황제의 명이 하달되었다.
만리유형(萬里流刑)!
목비린은 이제 완연한 야인(野人)이 된 것이다.
-십만대산(十萬大山)의 폐고(廢庫)로 영원히 유배한다!
십만대산은 자금성에서 사천 리 떨어진 곳에 있다.
목비린은 영원히 거기 유배될 것이다.
아니, 구룡친왕이란 존재가……!
-린아!
더 멀리 보기 위해서는 더 높이 날아야 하는 것이다.
자금성에 연연하지 마라!
진짜 군림(君臨)하기 위해서는… 버릴 것은 버려야 하는 것이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