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군말』 / 한용운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薇花의 님이 봄비 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伊太利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너냐.
너에게도 님이 있너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어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詩를 쓴다.
著者
『군말』은 백담사에서 《님의 침묵》을 집필하면서 쓴 스님의 서문이다.
1926년 국권피탈 당시 출간한 이 시집을 가장 의미 있게 발행하였을 것이다.
스님의 폭넓은 깨달음의 詩心을 '군말' 이 한마디로 함축하였다는 점에서
시집의 서문에 해당하는 한용운의 서시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서문으로 군말에 대한 독자의 이해는 《님의 침묵》에 수록한 전체 작품의
당시 시대적 의미와 가치를 해석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서문을 살펴보면 '군말'이란 이런저런 군더더기 언어를 지칭하는 것인데
시집을 출간하면서 서두에 시인의 말을 특별히 ‘군말’이라 표현하였으니
서시 '군말'은 한용운의 심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
해당화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워합니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 그려.
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고
"너는 언제 피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독자에게
독자여, 나는 시인으로 여러분의 앞에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여러분이 나의 시를 읽을 때에 나를 슬퍼하고 스스로 슬퍼할 줄을 압니다.
나는 나의 시를 독자의 자손에게까지 읽히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때에는 나의 시를 읽는 것이 늦은 봄의 꽃수풀에 앉아서
마른 국화를 비벼서 코에 대이는 것과 같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밤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설악산의 무거운 그림자는 엷어갑니다.
새벽종을 기다리면서 붓을 던집니다.
1925년 8월 29일 밤 끝
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님의 침묵 ─沈默
한용운(韓龍雲)의 시집.
저작자 한용운(韓龍雲)
창작/발표시기 1925년(저술), 1926년(간행), 1934년(재판)
님의 침묵 / 한용운 한용운의 시집. 1925년 내설악 백담사에서 쓰여져서 1926년 회동서관에서 간행하였고, 1934년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재판하였다.
ⓒ 한국학중앙연구원,김형수 | 한국학중앙연구원
구성 및 형식
1925년 내설악 백담사에서 쓰여져서 1926년 회동서관(匯東書館)에서 간행하였고, 1934년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에서 재판하였다. 광복 후 1950년에 다시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재간되었으나, 초판 및 재판과는 크게 달라졌다. 광복 후의 한성도서판은 초판과 재판을 기저로 했지만, 현대 맞춤법으로 고치는 과정에서 많은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그 뒤 이 책을 기본으로 하여 유통본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유통본들에서 오류가 답습되고 있다. 이러한 오류는 『한용운전집』(1973)과 송욱(宋稶)의 『님의 침묵 전편해설』(1974)에 와서 많이 시정되었으나 여기에서도 간혹 오류가 발견된다.
시집 『님의 침묵』의 구성은 앞에 ‘군말’과 뒤에 ‘독자에게’가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군말’에는 창작동기가 제시되어 있다.
본문은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알 수 없어요」·「자유정조(自由貞操)」·「복종」 등 모두 88편의 시가 기승전결의 극적 구성을 취한 연작시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 이것은 첫 시 「님의 침묵」이 기(이별의 제시), 승(이별 후의 고통과 슬픔), 전(슬픔의 희망으로의 전이), 결(만남의 성취)이라는 전개 과정을 지닌 것과 대응된다.
즉, 시집 『님의 침묵』은 88편의 시가 대체로 기(이별의 시편), 승(슬픔과 고통의 시편), 전(희망으로의 전환시편), 결(만남을 향한 시편)이라는 연작시와 같은 구성방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첫 시 「님의 침묵」에서의 첫 구절은 “님은 갓슴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갓슴니다.”라는 이별의 시로 시작되어, 끝 시 「사랑의 끗판」에서의 마지막 행이 “녜 녜 가요 이제 곳 가요.”라는 만남의 시로 귀결되는 특징을 지닌다.
시의 본문 뒤에 붙어 있는 ‘독자에게’는 탈고 소감을 적어놓은 일종의 후기인데, 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러한 시집의 구성방식은 ‘원저자 서언-목차-시 본문(84편)-독자여 이로부터’로 짜여진 타고르(Tagore, R.)의 시집 『원정(園丁)』을 참고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시집 『님의 침묵』이 간행되기 전인 1924년에 번역시집 『원정』이 출판되었으며, 한용운 자신이 이미 『유심(惟心)』 등에서 타고르의 글을 적극 소개한 점, 그리고 시집 속에 「타고르의 시 Gardenisto를 읽고」라는 시가 실려 있는 점 등이 그 방증이 된다.
내용
창작 동기는 민족항일기인 1920년대의 혹심한 언론 탄압 내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에 문학적으로 저항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시라는 비유 내지 상징양식을 통해서 보다 높은 정신적 차원에서 문학적 저항을 시도한 것이라 하겠다. 이 점은 “해저믄 벌판에서 도러가는 길을 일코 헤매는 어린양이 긔루어서 이 시를 쓴다.”라는 ‘군말’에 극명(克明)히 제시되어 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라는 구절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연인만이 임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연인일 수도 있지만 ‘길을 잃은 어린양’, 즉 당대 식민지하에서 방황하는 민족의 모습일 수도 있으며, 또한 빼앗긴 조국의 모습이기도 하고, 아울러 실현되지 않고 있는 이념이거나 진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님’은 연인이라는 개인적 의미일 수도 있고, 조국·민족 등의 규범적 의미일 수도 있으며, 정의·진리 등의 이념적·지향적 의미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시집의 형상적 우수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전체적인 내용은 이별이나 사랑의 고통 그 자체를 노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별과 그 고통 속에서 참다운 삶의 의미를 깨닫고, 마침내 임과 사랑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함으로써 크고 빛나는 만남을 성취한 생성과 극복의 시로서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님의 침묵’이라는 표제에서 침묵의 의미는 단순한 명상의 침묵이 아니라 생생한 삶의 몸부림과 깨달음이 용솟음치는 생성의 적극적 침묵인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남녀간의 아기자기한 사랑의 애환을 노래하면서, 그 심층에 당대의 빼앗긴 현실과 민족을 되찾으려는 끈질긴 극복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예술성과 사상성의 조화를 성공적으로 성취하고 있다. 임을 상실한 아픔과 비극적 현실의 쓰라림을 기다림과 희망의 철학, 사랑과 평화의 사상으로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방법론적인 면에서의 특징은 은유와 역설을 탁월하게 구사함으로써 현대시적인 면모를 확보한 데서 드러난다. 시단의 형성 단계인 1920년대 중반에 독창적인 은유와 역설을 시의 중심 방법으로 삼아 적극 계발함으로써 우리 현대시의 한 기점이 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또한, 시어에서 충청도 방언을 활용하고 개인 시어를 구사한 것도 민중적 정감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며, 특히 독창적인 시 형태를 개척한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지금까지 한용운의 시는 산문시라고 막연히 불려져왔다. 그러나 그의 시는 행과 연의 구성이 독자적인 법칙과 체계를 지닌다는 점에서 산문시가 아닌 자유시의 전형에 해당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미지면에 있어서도 식물적 이미지, 광물적 이미지, 천체적 이미지 등을 섬세하게 조형하여 시적인 심미감을 고양시켜주는 특징을 지닌다. 시사적인 면에서도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시정신과 방법·문체·구조 등에서 전통시와 깊이 접맥되어 있기 때문이다.
향가·고려가요·시조·가사는 물론, 한시·불경에 흐르는 정신사적 형질과 시적 방법이 『님의 침묵』에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육당시(六堂詩)·소월시(素月詩) 등 당대의 시와도 폭넓은 상관관계가 인정되며, 이육사(李陸史)·조지훈(趙芝薰)·서정주(徐廷柱) 등 후대의 시와도 영향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의와 평가
전통적인 정신과 방법을 현대적인 것으로 확대, 심화시킴으로써 현대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님의 침묵』이 성취한 사랑·자유·평등·평화의 깊이 있는 사상성과 방법론적인 예술성의 조화야말로 이 땅 현대시의 바람직한 지평이 된다 하겠다.
참고문헌
『님의 침묵연구』(윤재근, 민족문화사, 1985)
『한용운문학연구』(김재홍, 일지사, 1982)
『궁핍한 시대의 시인』(김우창, 민음사, 1977)
『님의 침묵 전편해설』(송욱, 과학사, 1974)
『한용운전집』(신구문화사, 1973)
『한용운연구』(박노준·인권환, 통문관, 1960)
님의 침묵
1926년 회동서관에서 초판을 펴냈다. 대표 시 〈님의 침묵〉을 비롯해 〈독자에게〉·〈최초의 임〉·〈당신을 보았습니다〉 등 90편의 시가 실려 있다. 대부분 불교적 비유와 상징적 수법으로 쓴 서정시들로,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민족에 대한 애정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님의 침묵〉은 빼앗긴 땅과 민족을 되찾으려는 의지를 담고 있으며, 은유와 역설을 뛰어나게 구사하여 사상성과 예술성을 조화시킨 시이다. 이 시에서 ‘님’은 연인·조국·부처 등 다의적인 의미를 지니며, 그에 따라 ‘님의 침묵’이라는 표현은 당시의 민족적 상황을 가장 압축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정형적인 틀을 벗어난 산문적 개방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내재율을 드러냄으로써 근대 자유시의 완성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위키백과
정보제공 사이트로 이동님의 침묵
《님의 침묵(沈黙)》은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1879∼1944)이 1926년에 출간한 시집이다. 1926년 회동서관 간행. 4 ·6판 양장, 168면. 표제시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알 수 없어요》 《비밀》 《첫 키스》 《님의 얼굴》 등 초기 시작품이 모두 수록되었다. 그의 시는 불교적인 비유와 고도의 상징적 수법으로 이루어진 서정시인데, 그 사상적 깊이와 예술적 차원의 높이로 그는 한국 현대시 사상 가장 빛나는 시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8 ·15광복 이후 동명의 시집이 여러 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로 시작되는 표제시 《님의 침묵》의 주제는 이별한 님에 대한 영원한 사랑의 다짐이다. 독립정신으로 일관한 그의 생애에 비추어 그것은 잃어버린 ‘조국’이라고 보아야 적합할 것이다. 그러한 추측의 타당성은 이 시의 마지막 부분, 즉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님은 갔다’고 객관적인 현실을 긍정하면서도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다’라고 하여 주관적인 의지로서 ‘님은 자기와 함께 있음’을 강조하고 그 ‘님’을 붙들고 사랑의 노래를 읊는 시인의 애국심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님의 침묵≫은 한국 근대시사에 있어서 기념비적 시집의 하나다. 이 시집이 한국의 근대시사에서 기념비적 의의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 기인한다. 우선, 시집 ≪님의 침묵≫은 한국에서 근대적인 자유시가 창작되기 시작한 이래 형이상학적 사유를 자유시라는 형식 속에 녹여낸 최초의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집은 심오한 불교적 사유에 시적 인식이 닿아 있어, 한국의 근대 자유시에 철학적이며 명상적인 깊이를 불어넣어 주었다. 시인 한용운은 관념적인 철학과 사상을 예술적 형상으로 미학화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사상의 정서화라는 근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시집은 핵심적인 시어인 ‘님’의 상징적 의미가 단순히 연인, 조국, 절대자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생명의 역동적인 존재 양상들로 확대되면서 밀도 높은 상징성을 갖는 상징 시집의 한 지평을 열어젖혔다. 시인은 소멸과 생성, 부재와 현존, 이별과 만남, 현실과 초월의 변증법적 극복 과정을 시어 ‘님’으로 상징화함으로써, ‘지금 여기’가 아닌 초월적 세계를 향한 절절한 시적 염원을 노래한다. 이를 통해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자의 모습을 시적으로 감지함으로써, 이 시집은 인간의 종교적 심성을 드러내는 상징시의 한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시집은 서구로부터 상징주의가 한국에 유입되어 자유시 창작을 고무한 이래, 상징시편으로 일정한 미학적 완성도를 획득한 최초의 시집이라는 시사적 의의를 갖는다. 마지막으로, 시집 ≪님의 침묵≫에 수록되어 있는 개별 시편들은 상호 유기적 연관성을 보이는 구조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당대 여타의 다른 서정 시집과 구별된다. 이 시집에는 총 88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서시에 해당하는 <님의 침묵>에서 종시에 해당하는 <사랑의 판>에 이르는 전편의 시에 ‘님’과의 이별과 만남이 극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각기 독자적인 의미영역을 갖는 개별 시편들은 내적으로 상호 연관성을 가지며 시집 전체가 한 편의 사랑의 드라마를 구성해 낸다. 이처럼 우리의 근대시사에서 시집 ≪님의 침묵≫은 연작시 형식을 개별 시편이 내면화해 예술적 형상화에 성공한 최초의 시집이라는 독특한 시사적 의의를 갖는다. 시집 ≪님의 침묵≫ 이전에 발간된 근대적인 개인 시집으로는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1923), 주요한의 ≪아름다운 새벽≫(1924), 변영로의 ≪조선의 마음≫(1924), 노자영의 ≪처녀의 화환≫(1924), 박영희의 ≪흑방비곡≫(1924),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 정도가 전부다. 이들 시집이 주로 단편적인 주관적 정서를 자유로운 운율에 담아낸 것에 비해, 시집 ≪님의 침묵≫은 하나의 주제를 반복적으로 변주하는 연작시적 성격을 보임으로써 주관적인 서정시가 가지는 정서적 울림의 폭과 깊이를 한층 넓고 깊게 만든 대표적인 시집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해 한용운은 이 문제적인 시편들을 왜 창작하게 되었을까? 시인은 시집의 자서(自序)에 해당하는 <군말>에서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도러가는 길을 일코 헤매는 어린 양이 긔루어서 이 시를 쓴다’고 창작 동기를 밝히고 있다. 이 진술로 볼 때, 시집의 창작 동기는 다분히 문학의 계몽적 기능에 기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길을 잃은 어린 양에 대한 연민이란 어린 양을 바르게 인도하고자 하는 목자(牧者), 즉 지도자 내지는 선각자가 갖는 소명의식의 발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용운이 시집 창작을 통해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욕망한 것은 아니었다. 후기인 <독자(讀者)에게>에서 그는, ‘독자여 나는 시인으로 여러분의 압헤 보이는 것을 부러함니다/여러분이 나의 시를 읽을 에 나를 슯어하고 스스로 슯어할 줄을 암니다.’라고 말한다. 시인이 말하는 슬픔의 구체적인 의미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이 시집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 시인 자신을 포함한 민족 전체가 직면한 부끄러운 현실과 연관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시집의 자서와 후기(後記)로 추측해 보면, 이러한 부끄러운 현실에 대한 직시가 시집 창작의 내적 동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는 문단 활동을 한 바도 없으며, 당시 다양한 사회 활동으로 분주했던 그가 자유시 창작에 열정을 갖게 된 직접적인 이유를 짚어내기는 어렵다. 다만, 이 무렵 한용운의 내면 풍경을 들여다보면 시집 ≪님의 침묵≫을 창작하게 된 까닭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만해 한용운은 열아홉의 나이에 구한말의 어수선한 국내외 정세를 몸소 체험하고자 가출을 감행했다. 여기저기를 떠돌던 그는 다시 귀향해 아들 하나를 얻었으나 25세가 된 1905년 불교에 귀의해 정식 승려가 된다. 승려가 된 그는 삼십대의 대부분을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산중에 유폐된 조선 불교를 근대화하고 대중화하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한다. 이 과정에서 점차 한용운은 식민통치하에서 고통 받는 민족의 현실에 눈뜨게 되고 따라서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한다. 사십대 초반의 한용운은 각계의 민족대표들과 함께 3·1운동을 주도하고 이로 인해 영어(囹圄)의 몸이 되기도 했다. 감옥에서 그는 변호사를 대지 말 것, 사식(私食)을 넣지 말 것, 보석을 요구하지 말 것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워두고 시종일관 이 원칙을 지켜나갔으며, 투옥 중에 전향서를 제출하면 사면해 주겠다는 일제의 회유를 끝까지 거부하며 만기 출옥까지 정신의 훼절(毁折)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다. 이처럼 강경한 자세로 어둠의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던 그에게도 숨 가쁘게 달려온 삶을 되돌아볼 내성의 시간은 필요했을 것이다. 사십대 중반을 훌쩍 넘긴 시인이 삶과 역사, 종교와 사상을 진지하게 다시금 성찰해 보는 바로 그 순간에 시집 ≪님의 침묵≫이 놓여 있다고 하겠다. 이 시집이 보여주는 일종의 정신적 원숙미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실상 이 시기 대부분의 자유시는 이십대 초중반의 젊은 청년 문사들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자유로운 시형 속에 청춘의 내적 방황과 슬픔을 담아내는 것이 시단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그러나 시집 ≪님의 침묵≫은 마흔일곱이라는 원숙한 중년의 나이에 씌어졌으며, 선승인 시인이 험난한 시대고(時代苦) 속에서 체득하게 된 삶의 깨달음들을 시적 자양분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 사유의 깊이는 동시대 청년시인들의 시와는 상당한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사십대 중반에 이르러 한용운은 경성에서의 활동을 잠시 접고 홀연히 강원도 내설악의 오세암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그는 선적 직관력을 보다 명징하게 하고 정신적 정진을 위해 중국 당나라 상찰선사(常察禪師)의 선화(禪話)인 ≪십현담(十玄談)≫에 주를 붙이고 이를 나름대로 해석한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를 집필한다. 이러한 내적인 자기정련이 있은 이후에 한용운은 백담사로 내려와 여름 한철을 보내며 시집 창작에 몰두한다. 시집 ≪님의 침묵≫은 1925년 8월 29일 밤에 최종 탈고된 것으로 시집 말미에 밝혀져 있다. 그렇다면 시인이 이 시집에서 드러내고자 한 시적 주제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 이 시집의 주제는 ‘님’의 상징적 의미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표면적으로 이 시의 시적 화자는 ‘님’과의 이별 상황에 처해 있다. 이별은 ‘님’의 침묵을 강요하는 시대에 대한 비유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침묵하는 ‘님’을 통해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시적 화자는 부재를 통해 사랑의 진정성을 발견해 나간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조아하야요.’(<복종(服從)>)라는 시적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언제나 표면적인 의미 너머에 있다. 따라서 한용운에게 있어서 이별은 곧 만남이고 님은 곧 나다. 그에게 진정한 자유가 복종이듯이 침묵은 곧 노래다. 따라서 ‘님의 침묵’은 ‘나의 노래’이고 ‘나의 침묵’은 ‘님의 노래’가 된다. 이 역설(paradox)의 논리가 이 시집 전체를 이끄는 시적 논리이자 시인이 삶을 인식하는 방식이다. 역설은 표면적으로는 모순되어 보이지만 그 이면으로는 삶의 본질적인 이치를 포착해 내는 가장 중요한 시의 표현기법이다. ‘님은 갓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얏슴니다.’(<님의 침묵>)라는 역설적 표현에는 이별에 처한 화자가 느끼는 슬픔의 깊이와 함께, 이 슬픔에만 머물지 않고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극복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이처럼 시적 화자에게 역설로서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매개가 바로 ‘님’이다. 또한 동시에 ‘님’은 나와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일깨우는 절대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시집의 주제 의식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진실한 사랑의 존재 방식에 대한 시적 추구에서 찾을 수 있다. 한용운의 시세계에 대해 존재론적 해석이 가능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시적 무의식이 되고 있는 도저한 부재의식이 식민지 시대라는 시대 상황과 결부된다는 점에서 이 시집은 민족의 운명과 해석의 지평을 공유하게 된다. 그러나 시집 ≪님의 침묵≫이 단지 식민지 시대에 대한 시적 응전으로만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시집은 인류사의 보편적 주제인 사랑의 문제로 역사와 철학과 사상의 시적 승화를 이루어냄으로써 시간의 마모를 견디는 예술적 영원성을 획득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만해 한용운은 당시 있었던 조혼 풍습에 따라 열네 살의 나이로 결혼하고 아들 하나를 낳았지만 속가를 버리고 떠나 승려가 되었으며, 오십대에는 다시 재혼해 딸 하나를 얻었다. 이처럼 그의 삶에는 속세를 등지는 비정함과 환속해 세속적 삶과 함께하는 다정함이 공존한다. 가출과 방랑, 출가와 투옥 등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도 만해 한용운은 선승으로서의 깨달음을 향한 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한용운의 삶은 뭇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또한 아프다는 재가승려 유마힐의 삶을 닮아 있다. 실제로 만년에 접어들어 그는 ≪유마힐소설경강의≫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그의 대승적인 삶의 자세는 시인, 선승, 독립운동가라는 어느 한 면에 그를 가두어 두려고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위대한 삶이 그러하듯, 그는 언제나 전체이자 온몸인 삶으로 어두운 식민지 시대의 ‘약한 등불’이 되고자 했다. 그 꺼지지 않는 희망의 빛이 시집 ≪님의 침묵≫ 속에서 환하고 아름다운 시적 불꽃이 되어 타오르고 있다. 님의 침묵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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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문학 고전운문 고등
동짓달 기나긴 밤을(황진이)
[이 작품은]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을 소재로 하여 임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마음을 형상화한 시조로, 기녀가 작가인 까닭에 여성의 섬세한 정감이 두드러진다. *갈래 : 평시조, 서정시 *성격 : 감상적, 낭만적, 연정가 *제재 : 연모의 정, 동짓달 기나긴 밤 *주제 : 임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 *특징 ①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사물로 표현하였고, 우리말의 우수성을 잘 살려 냄. ② 음성 상징어를 사용하여 표현 효과를 높임. *연대 : 조선 중종 ~ 선조 *출전 : “청구영언”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간절한 마음을 참신한 비유로 호소력 있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추상적 개념인 시간을 구체적 사물로 형상화한 표현 기법이 매우 참신하고 생생한 인상을 주어 작품 전체에 신선한 느낌을 불어넣고 있다. 초장에는 동짓달 기나긴 밤의 외로운 여심이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속에 깊이 간직되어 있으며, 중장과 종장의 ‘서리서리 너헛다가’와 ‘구뷔구뷔 펴리라’와 같은 음성 상징어의 활용과 대조적 표현은
해법문학 현대시 고등
서시(윤동주)
[이 작품은] 적절한 상징과 시각적 심상을 활용하여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도덕적 순결성에 대한 고뇌와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성찰적, 고백적, 의지적, 상징적 *제재 : 별 *주제 : 순수한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의지 *특징 ① 시간의 이동에 따라 시상을 전개함. ② 이미지를 대립시켜 시적 상황을 제시함. *출전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1 ~ 4행] 부끄러움 없는 삶에 대한 소망(과거) [5 ~ 8행] 미래의 삶에 대한 결의(미래) [9행] 어두운 현실에 대한 자각(현재) 이 시는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두에 붙여진 작품으로, ‘서시(序詩)’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집 전체의 내용을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한다. 2연 9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시간의 이동(과거 - 미래 - 현재)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1~4행)은 순결한 도덕적 삶을
서시 / 윤동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시
윤동주(尹東柱)가 지은 시. | 윤동주(尹東柱)가 지은 시. 1941년 11월 20일에 창작되었고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1948)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윤동주의 생애와 시의 전모를 단적으로 암시해주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왜냐하면, 이 시는 윤동주의 좌우명격 시인 동시에 절명시에 해당하며, 또한 ‘하늘’과 ‘바람’과 ‘별’의 세 가지 천체적 심상(心像)이 서로 조응되어 윤동주 서정의 한 극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서시>는 내용적인 면에서 세 연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연은 ‘하늘-부끄럼’, > 둘째 연은 ‘바람-괴로움'을, 셋째 연은 ‘별-사랑'을 중심으로 각각 짜여져 있다. 첫째 연에서는 하늘의 이미지가 표상하듯이 천상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순결 의지가 드러난다. 바라는 것, 이념적인 것과 실존적인 것, 한계적인 것 사이의 갈등과 부조화 속에서 오는 부끄러움의 정조가 두드러진다. 둘째 연에는 대지적 질서 속에서의 삶의 고뇌와 함께 섬세한 감수성의 울림이 드러난다. 셋째 연에는
나태주
해법문학 현대시 고등
풀꽃(나태주)
[이 작품은] 작고 수수하지만 볼수록 예쁘고 사랑스러운 풀꽃을 제재로, 세상 모든 존재가 자기 나름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일상적, 성찰적 *제재 : 풀꽃 *주제 : 관심과 애정을 통해 발견하는 세상 모든 존재의 가치와 아름다움 *특징 ① 일상적이고 소박한 소재와 간결한 시어를 통해 주제를 형상화함. ② 유사한 시구의 반복으로 운율감을 형성함. *출전 : “쪼끔은 보랏빛으로 물들 때”(2005) [1~2연] 풀꽃에 대한 애정 [3연] 모든 존재에 대한 애정 이 시의 제목이자 제재인 ‘풀꽃’은 작고 사소해서 사람들이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일상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화자는 이러한 ‘풀꽃’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세심하고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대상의 진정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애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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