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주(본명 백미숙) 첫 동시집 -달 도둑놈(소금북 동시집01)***
[백민주(본명 백미숙) 약력]
2015년 『시와소금』 에 동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2015 글벗문학상, 2016 한국 안데르센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시와 소금 시인회, 혜암 아동문학회, 한국 동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경북 구미여고에서 학생들과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메일 주소 : teacher7301@hanmail.net
[시인의 말]
내일 아침부터 해가 뜨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루 종일 캄캄해서 엄마 얼굴도 볼 수 없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놀 수도 없고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도 읽을 수 없겠지요?
사람들은 아마 우울증에 걸릴지도 몰라요.
내일부터 이 세상에서 아이들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엄마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없으니 엄마는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겠네요.
놀이터에 매어있는 그네는 타는 사람이 없어 낡아가고
책을 읽고 재미있다고 웃는 아이들의 소리도 들을 수 없겠지요?
정말 큰일 나겠네요.
그런데 아이들이 있어도 웃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도 정말 큰일일 거에요.
그래서 선생님은 이 시를 썼어요.
아이들이 웃으라고 이 시를 썼어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이 세상이 가득 찼으면 좋겠어요.
[작품해설]
세상의 뒤쪽 마을에
새로운 길을 내는 따듯한 동시집
―백민주 시집, 『달 도둑놈』
이화주(시인)
『가을 들판이 부친 프라이』는 백민주 시인의 첫 동시집이다. 이제 백민주 시인의 동시 숲으로 들어가는 어린이들의 안내자가 되어보기로 한다. 어떻게, 어떤 길로 안내하면 좋을까 먼저 들어가 보았다. 참 유쾌하고 행복한 동시 여행이었다.
어린이들뿐 아니라 어린이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도 함께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의 독자는 어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동시는 사실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부터 100세 어른까지 모두 읽으면 좋은 문학이다. 동시집은 시인의 마음속에서 키운 동시나무를 하나하나 옮겨다 심은 숲이다. 그 숲에서는 시인의 목소리, 시인의 생각, 시인의 향기, 시인의 마음의 색깔까지도 바람소리처럼 새소리나 샘물소리처럼 느끼고 듣고 마실 수도 있다.
먼저 백민주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 알아보자. 백미숙 시인은 2015년 《시와소금》이란 시 전문 문예지 신인상을 받고 시인이 되었다. 2016년에는 한국안데르센 동시부문 장려상도 받았다. 시인은 어려서부터 작가가 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글을 잘 썼기 때문에 시인 자신뿐 아니라 시인을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이 작가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꿈을 접고 선생님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난 뒤 접었던 꿈을 이루었다.
처음 백민주 시인의 시를 만났을 때 많이 놀랐다. 막 등단한 시인의 작품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랜 시간 동시를 사랑한 시인이란 걸 알았다. 고등학교 선생님인 그녀는 제자들을 가르치며 함께 글을 썼다. 어떤 날은 하루에 30편이 넘는 동시를 쓴 적도 있다는 말을 듣고 ‘그럼 그렇지 좋은 시가 그냥 써질 리가 있나’하며 감탄 했다. 물론 이런 글 사랑 뿐 아니라 부모님이 물려주신 풍부한 감성과 늘 깊이 생각하는 생활이 좋은 동시를 쓸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시인의 마음속에는 생각 깊은 목이 긴 아이가 살고 있나 보다. 세상의 뒤쪽 마을, 보이지 않는 곳까지 들여다보며 따뜻한 길을 낸다. 그 아이는 상상력이란 새 신발을 신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무도 모르는 마을에도 길을 낸다. 백민주 시인 만의 특별한 눈으로 숨어 있는 낯선 것, 이상한 것들을 찾아내어 마음속에서 키운 그 동시 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었다. 그럼, 눈도 눈을 크게 뜨고 내리고, 가을 들판이 프라이도 부치는 백미숙 시인의 동시 숲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
―햇볕 너머 어두운 마을까지 길을 내고 찾아온 생각 깊고 따뜻한 시
시인은 세상의 뒤쪽에 있는 아무도 모르는 마을을 찾아간다. 그곳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뒤, 춥고 어두운 마을을, 따스하고 환한 마을로 바꾸어 놓는 신비한 재주가 있다. 바로 마음이 따뜻한 시인이 노래한 동시의 힘이다.
시인의 신인상 당선작 중에는 「소금쟁이」(시와소금, 2015)라는 아래의 동시가 있다.
네 발로 물위를/ 마음대로 걷고// 장대도 없이/ 하늘 높이 뛰는 것 보고// 물고기들이 몰려와// “신 내림 받은 소금쟁이님/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슬픈 이야기/ 아픈 이야기/ 다 들어주다// 눈물에 흠뻑 젖어/ 짭쪼름한 소금쟁이.
시인은 아무도 모르는 물고기들의 뒤쪽 마을에 길을 내고 찾아간다.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이상한 것을 보고 듣는다. 소금쟁이는 짭쪼름한 이상한 소금쟁이다. 물고기들의 슬픈 이야기 아픈 이야기 다 들어주다 그만 눈물에 흠뻑 젖어 짭쪼름한 소금쟁이가 되었다. 어쩜 이 이상한 소금쟁이는 바로 시인 자신인지도 모른다. 다른 이의 슬픔도 자신의 슬픔으로 느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백민주 시인 말이다.
시인은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이상해 한다. ‘왜지?’ ‘뭐지?’ 하며 호기심을 갖는다. 상상의 나라로 가는 문을 연다. 상상의 나라로 들어간, 마음이 따뜻한 시인만이 짭쪼롬한 이상한 소금쟁이를 만날 수 있다.
시인은 이렇게 소금쟁이와 물고기의 언어만 알아듣지 않는다. 땅과 나무와 강과 바람의 말도 알아듣는다. 훌라후프와 국자와 가을 들판의 구절초와 돌멩이의 마음도 읽고 말도 알아듣는다.
수학 시험지에
동그라미를 받은 친구들은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가고
비가내린 시험지를 받아든 나는
교실 뒤편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나처럼 외롭게
덩그라니
벽에 걸린 훌라후프
가만히 돌려보니
훌라후프가 내 몸에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 그린다.
―「훌라후프 」 전문
독자인 어린이는 받아쓰기 시험을 망친 적이 있을까? 늘 좋은 점수를 받고 신나게 집으로 돌아간 아이는 이 동시 속 아이의 마음을 모른다. 비가 내린 시험지를 받아든 동시 속 나는 참 속상하다. 텅 빈 교실 뒤편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그런데 벽에 훌라후프가 덩그라니 걸려있다. 훌라후프도 나처럼 외롭겠다고 생각하며 가만히 돌려본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훌라후프가 내 몸에 동그라미 동그라미를 그려준다. 어둡던 아이의 마음이 환해졌다. 나는 덩그라니 벽에 걸린 훌라후프의 친구가 되어 주고, 훌라후프는 받아쓰기 시험을 못 본 나에게 동그라미 동그라미를 그려준다.
늘 백점만 받는 아이는 동시 속의 나처럼 훌라후프의 마음을 읽지 못 한다. 물론 몸에다 훌라후프가 동그라미도 그려주는 이상한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시험을 잘 보는 아이의 신나는 마음과 함께 못 보는 아이의 속상한 마음도 읽을 줄 아는 시인 선생님한테서 공부하는 아이만이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엄마 없는
민지 생일
아빠가 끓여 놓고 가신
미역국을 푸던 민지
아이 뜨거워
국자를 하늘 멀리 던져버리고
하늘로 올라간 국자에서는
민지 생일 축하하는
별꽃이
와르르
쏟아집니다.
―「하늘로 올라간 국자」 전문
생일은 이 세상에 온 것을 축하해주는 날이다. 선물도 받고 축하잔치도 해준다. 민지는 엄마가 없다. 아빠도 일찍 일하러 간다. 그래서 아빠가 끓여 놓고 간 미역국을 먹으려고 민지가 푼다. 뜨거운 미역국 국물을 손등에 쏟았다. “아이 뜨거워” 깜짝 놀라 국자를 던져버린다. 국자가 공중으로 높이 올라갔다 떨어진다. 국자 속 미역국물도 쏟아진다. 그런데 민지는 슬퍼하지도 속상해 하지도 않는다. 하늘로 올라간 국자에서 생일축하 별꽃이 와르르 쏟아진다고 상상한다. 혼자서 생일 미역국을 먹어야 하는 민지,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 시인 선생님은 민지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싶은 게 아닐까. ‘힘 내’ ‘힘내’ ‘이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 하면서. 시에는 이렇게 어두운 뒤쪽마을을 구석구석 찾아가 별꽃을 뿌려주고 싶은 시인의 따뜻하고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가난한 집 마당에
활짝 핀
접시꽃
귀한 손님 오셔도
빈 접시뿐이니
부끄럽습니다.
접시에 가득 담은
향기라도 배부르게
맡고 가세요.
―「접시꽃」 전문
이 시는 여러 시 중 특히 좋아하는 시다. 가난한 집 마당에 접시꽃이 활짝 피어있다. 귀한 손님이 오셨다. 손님에게 대접할 아무것도 없다. 접시꽃은 빈 접시뿐이어서 부끄러워한다. 접시꽃은 향기를 가득 담아 놓고 음식대신 배부르게 맡고 가라고 한다.
주인은 가난하지만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마당에 접시꽃을 활짝 피워놓은 것을 보면. 주인이 꽃을 좋아하는 것만큼 꽃도 주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주인 대신 부끄러워하며 손님에게 향기라도 대접하고 싶어 하는 걸보면. 시인은 음식을 담아놓는 접시와 접시꽃이라는 이름의 닮은 점을 연결해서 이런 따뜻하고 재미있는 동시로 노래했다.
시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아마 접시에 담겨진 음식보다 빈 접시에 담겨진 향기가 귀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우리 아빠 어렸을 때
꽁보리밥에
고추장 한 숟가락뿐인
도시락이 부끄러워
점심시간이면 혼자
뒷산으로
올라갔대요.
가난한 엄마가 싸주신
가난한 도시락은
입으로 먹고
온 가을들판이
부쳐놓은
계란 프라이는
눈으로 먹고
혼자 먹는 밥이지만
그 맛은 정말
꿀맛이었대요.
―「가을 들판이 부친 프라이」 전문
「접시꽃」, 「가을 들판이 부친 프라이」는 이 동시집의 많은 동시들처럼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읽으면 좋은 동시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들은 먼저 살고 간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간 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생활과 경험과 생각이 쌓여서 지금의 길들이 되었다. 아빠 엄마의 어렸을 때를 몰라서도 “그 때는 옛날이잖아” 하고 모른 체해도 안 된다고 시인은 가보지 못한 어른들의 어린 시절로 어린이를 데려다 준다.
시인의 아빠가 어렸을 때 도시락은 꽁보리밥에 고추장 한 숟가락이다. 부끄러워 혼자 먹으려고 뒷산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가을 들판이 온통 노오란 구절초 꽃이다. 친구들이 도시락에 싸오는 동그랗고 노오란 프라이. 그 프라이를 가을 들판이 부쳐놓았다. 아이는 가난한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은 입으로 먹고, 가을 들판이 부쳐준 프라이는 눈으로 냠냠 먹는다. 아마 입으로 먹는 꽁보리밥은 아이의 몸을 키워주고 눈으로 먹은 구절초프라이는 아이의 마음을 키워주었으리라 생각한다.
꽁보리밥과 고추장 한 숟가락인 가난한 도시락을 풍성한 도시락보다 더 꿀맛으로 바꾸어놓는 재주는 무엇일까. 자연을 사랑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따스하고 말랑말랑한 가슴에서 나오는 힘, 바로 긍정의 힘이다. 아마도 시인의 이런 따스한 긍정의 시선은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소중한 유산이 아닌가 한다.
―낯설게 보기와 다르게 생각하기는 새로운 세계로 길을 내는 일
우리는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똑같은 길을 걸어 학교에 간다.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은 책으로 똑같은 공부를 한다. 똑같은 학원에 갔다 와서 똑같은 숙제를 하고 잠을 잔다. 똑 같은 하루를 반복해서 살고 있는 우리 어린이들은 아마 생각도 똑같거나 비슷하지 않을 까? 특별한 생각, 이상한 생각, 엉뚱한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마을이나 깊고 넓은 새로운 세계, 그리고 누구도 가보지 않은 미래로 길을 내는 방법은 낯설게 보기와 다르게 생각하기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힘이 바로 우리 어린이들이 미래에 살아갈 재산이다. 어린이들이 시인이 되거나, 예술가가 되거나, 판사나 선생님이 되더라도 다르게 생각하는 힘은 가장 필요한 소중한 재산이다.
백민주 시인의 동시에는 이렇게 낯설게 보기와 다르게 생각하기 방법으로 태어난 시들이 많다.
시인의 마을에선 눈도 크게 뜨고 내린다는 걸 시인의 동시를 읽고 알았다. 눈은 눈을 크게 뜨고 내린다. 왜일까? 달동네 사람들 비닐하우스 위에 내리지 않으려고, 눈이 쌓여 무너지기라도 할까봐서다. 눈은 눈을 크게 뜨고 내린다. 놀이터도 없어 심심한 달동네 빈 밭에 내려 앉아 가난한 아이들 눈썰매장 되어주려 해서다. 그런가 하면, 시인은 돌멩이 물수제비를 뜨는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저 아이는 왜 가뭄으로 강물이 말라가는 강가에서 자꾸자꾸 돌멩이를 던지는 거지?’ ‘장난꾸러기 아이일까?’ ‘친구가 없어 심심한 아이일까?’ ‘아, 가뭄으로 강물이 말라가네. 그럼 물고기들은 어떡하지?’ 시인은 말라가는 강과 물고기, 돌멩이로 물수제비를 뜨고 있는 아이의 행동을 생각이라는 끈으로 묶어본다. 시인은 아이가 한참을 굶었을 물고기들을 위해 물수제비를 끓이고 있다는 상상을 해낸다. 따뜻하고 재미있는 「물수제비」란 시가 태어났다.
한 그릇이오/ 옛다 두 그릇이오// 가뭄으로 목마른 강/ 물고기들도 한참을 굶었을텐데. // 이거라도/ 잡숴보세요.// 돌멩이로 끓인/ 물수제비// 쏟지 않게 조심조심/ 세 그릇이오
이것과 저것을 끈으로 묶거나 서로 닮은 점을 찾아내 연결하는 것은 새로운 생각을 태어나게 하는 방법의 하나다. 그럼 더 넓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 열린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엄마와
꼭 껴안고 잠자는 사이
얼음 언 두 손이
다 녹아 따듯한데
아이들이 남기고 간
눈사람 가족
살을 에는
겨울 밤 지새는 동안
팔이 없어
서로 껴안지도 못하네.
몸이 다 녹아 사라질까봐
일부러 팔 없는 눈사람 만든
아이들 마음을
눈사람도 알까?
―「팔 없는 눈사람」 전문
그림책 『마지막 휴양지』를 쓴 존패트릭 루이스 아저씨는 상상력은 새 신발이라고 했다. 상상력이라는 자기 발에 딱 맞는 새 신발을 신어야 새로운 상상의 나라로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상상력이 도망가면 남다른 생각, 새로운 생각을 해낼 수 없다. 신발 없이 여행을 하는 것과 같으니까.
백민주 시인은 눈사람을 보며 어떤 남다른 생각을 해냈을까? 상상이란 새 신발을 신고 생각 여행을 떠났을까?
우리는 팔 없는 눈사람을 보며 아무 생각도하지 않는다. 눈사람이 팔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니까. 조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인은 눈사람을 남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엉뚱한 생각을 하는 아이가 되어 질문을 한다. ‘왜지?’ ‘아이들은 눈사람의 팔을 왜 만들지 않는 걸까?’ 시인의 마음 속 아이는 엄마를 꼭 껴안고 잠자는 동안에도 상상력이란 새 신을 신고서 자나보다. 꽁꽁 얼었던 손이 따스하게 녹는 바로 고 순간 질문의 답을 얻는다. ‘아이들이 남기고 간 눈사람 가족은 이 추운 밤 팔이 없어 서로 껴안지도 못하겠지?’ ‘아, 몸이 다 녹아 사라질까봐 일부러 팔 없는 눈사람 만들었구나.’하고.
시인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생각이 도망가지 않도록 시를 쓴다.
하늘 한가운데
조그만 창문 하나
빼꼼히 열렸다.
열린 창문 틈으로
가오리 한 마리
가만히 들여다본다.
창문 안에 뭐가 있을까?
가오리보다
내가 더 궁금하다.
―「방패연 가오리연」 전문
사람들은 꿈을 꾼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닌 곳에 가보고 싶은 꿈. 그래서 사람들은 머지않아 이웃 나라에 가듯 우주까지도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까지도 갈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상상력을 통해서다.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상상의 세계 사이에 있는 경계를 넘어가야한다. 그 통로가 창이나 문 또는 사다리가 된다. 동화 속에서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벽이 되기도 하고 동굴이나 옷장이 되기도 한다.
백민주 시인은 하늘에 창을 하나 냈다. 바람을 타고 까마득히 올라간 방패연을 보며 하늘 한가운데 조그만 창문 하나 빼꼼히 열렸다고 상상한다. 가오리로 변신한 가오리연은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창 너머 다른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창문 안에 어떤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을까? 가오리보다 더 궁금한 것은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연을 날리는 나, 바로 시인 자신이다. 이렇게 이 동시집에서는 상상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창이나 문이 있는 많은 동시들을 만날 수 있다. 다시 말해 시인은 “낯설게 보기와 다르게 생각하기”의 뛰어난 시각을 갖고 있다.
설날 아침
매 맞는 떡
뭘 잘못했나?
장난꾸러기 내동생도
웬만해선 오늘은 혼나지 않는데.
―「떡메치기」 전문
시인은 다르게 보기의 재주가 뛰어나다. 「떡메치기」는 짧고 귀여운 시지만, 남다른 시각으로 가져온 시인만의 목소리가 담겨있는 시다.
지금은 떡을 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는 설날 아침이면 떡을 치는 소리가 이 집 저 집에서 들렸다. 이젠 텔레비전이나 민속촌, 박물관에서 특별한 행사를 할 때 보았을 것이다. 설날 아침 ‘철석’ ‘철석’ 떡메로 떡을 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매 맞는 떡이라는 낯선 생각을 해 낸 시인은 아마 백미숙시인 뿐이 아닐까? 장난꾸러기 내 동생도 웬만해서는 오늘은 혼나지 않는데 설날 아침 매를 맞는 떡은 뭘 잘못했을까? 왜 시인의 마음 속 거울에는 떡 치는 모습이 매 맞는 떡으로 보였을까? 시인의 마음속에는 늘 ‘어린이는 꽃으로도 때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남다른 생각은 그냥 뚝 공중에서 떨어지듯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늘 생각하는 생활을 하고 많은 경험을 하고, 정보를 받아들일 때 이 모든 것이 함께 뒤섞여 어느 순간 새로운 생각으로 태어난다.
―생각을 날아오르게 하는 ?의 시
상상력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새 신발이라 했다. 그렇지만 지금 여기의 어린이들에게는 그냥 새신이 아니라 날개달린 새신이 필요하다. 자기 발에 딱 맞는 날개 달린 새신을 신었다 해도 날아오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내 안의 생각이 날아오르도록 새 신에 날개를 달아주고 시동을 거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이 날아오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호기심과 관찰이다. ‘뭐지?’ ‘왜지?’ 하는 ?가 바로 생각에 시동을 걸어 날아오르게 하는 열쇠다.
시 「누에」는 입에서 비단실을 풀어내는 누에를 보며 “뭐지?” “입에서 왜 실이 자꾸자꾸 풀려나오지?” 하는 의문을 품으면서 생각의 날개에 시동이 걸린다. 시인은 인내심을 갖고 누에를 관찰했나 보다. 풀어낸 실로 하이얀 집을 짓는다. 누에는 그 안에 꼭꼭 숨어버린다. 시인은 누에의 모습과 하는 짓을 집중해서 본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잊고 누에가 되어서 본다. 누에의 마음까지 보는 거다. 엄마한테 혼날까 숨었다는 상상을 해 낸다. 엄마가 짜주신 털옷을 먹었나? 하는 재미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하늘나라 가신
할머니들은
봄이면 다시
내려오는데
하늘나라 가신
할아버지들은
왜 돌아오시지 않을까?
―「할아버지 꽃」 전문
할머니 산소 앞에
할미꽃 한 무더기
할머니 친구들
따듯한 봄 맞아
놀러 오셨나 보다.
할머니 친구는
죽어서도 할머니들뿐인가 보다.
―「할미꽃」 전문
「할아버지 꽃」과 「할미꽃」 동시는 할미꽃을 보고 ?로 끌어낸 생각들이다. 할머니 무덤가에 한 무더기 할미꽃이 피었다. 할미꽃 전설을 생각하며 할미꽃을 보다가 시인은 “뭐지?” “왜지?”하는 질문을 한다. ‘할미꽃은 있는데 왜 할배꽃은 없는 거지?’ ‘하늘나라 가신 할머니들은 봄이면 할미꽃으로 변신해서 다시 내려오네.’ ‘그런데 왜 할아버지들은 돌아오지 않는 걸까?’ ‘봄볕 따스한 무덤가에 놀러온 할머니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네.’ 시인은 마음의 눈과 귀로 관찰을 한다. ‘할머니 친구는 죽어서도 할머니뿐인가?’ 관찰을 하는 동안 생각이 생각을 끌어내 질문의 시가 태어났다. 질문과 상상은 한 몸이거나 아주 친한 친구가 아닐까?
사과가 익어갈수록
나뭇가지가 땅으로
휘어지는 게
너는
중력 때문인 줄 알지?
사실은
할머니 키가
아래로아래로 자라기 때문이야
사과가 익어갈수록
자꾸만 자꾸만
빨개지는 게
너는
광합성 때문인 줄 알지?
사실은
할머니 눈이
아물아물 가물가물 변해가기 때문이야
할머니가 사과를
따기 쉽도록
나무가 사랑하는
방법인 거야.
―「중력과 광합성」 전문
시인의 영감이나 과학자의 직관은 어디서 오는 걸까? 가슴속에서 오는 건 아닐까? 물리학자인 아르망 트루소는 ‘제일 나쁜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제일 나쁜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 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위대한 발견과 명작의 영감이 오는 길이 같다는 말이기도 하다. 과학과 예술의 울타리를 넘나들며 직관을 함께할 때 더 새로운 생각이 태어난다는 말일 것이다.
백민주 시인은 과학의 울타리를 넘나들며 시인의 눈으로 시를 잡아온다. 「중력과 광합성」이 왠지 동시의 제목으로 안 어울린다고? 백민주 시인은 선생님이니까 아마 과학시간에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나 보다. 이런 시로 과학시간의 문을 연다면 참 재미있겠다. 중력과 광합성에 대한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겠지. 나무의 ‘중력’과 ‘광합성’의 현상에서 ‘나무가 사랑하는 법’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낸 시인이 놀랍다. 과학의 울타리도 넘나드는 시인선생님과 공부하는 아이들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도 더 쉽게 열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를 품고 있는 간결한 시
백민주 시인의 동시는 간결하고 귀여운 동시들이 많다. “이런 시가 바로 동시랍니다.”하고 소개하고 싶은 동시 말이다. 「떡메치기」, 「접시꽃」, 「감 하나」, 「호미」, 「방패연과 가오리연」, 「거미네 집들이」, 「쑥」, 「무료병원」, 「까치가 까부는 까닭」, 「누에」, 「젓가락과 숟가락」, 「사랑 저금통」, 「하늘로 올라간 국자」 등등…….
짧고 재미있는 동시들이다. 마치 단단히 뭉친 눈덩이나, 야구공 같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편의 동시 속에 아주 긴 이야기를 돌돌돌 감아 숨겨놓았다. 시인의 재주가 아닐까?
벌레도
부잣집 벌레가 있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우리 할머니
시집 오실 때도
못 입었다는
비단옷을
어떻게 벌레가
태어날 때부터
입을 수가 있겠어.
―「비단벌레」 전문
시인은 ‘비단벌레’라는 말이 품고 있는 의미에서 벌레들도 부자벌레 가난한 집 벌레가 있다는 생각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할머니한테 들었던 이야기의 기억을 함께 섞고 비벼서 10행의 시가 태어났다. 독자는 이 시를 읽으며 저 마다의 상상으로 동화책 한권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다. ‘아 우리 할머니 너무 가난해 무명치마 저고리 한 벌 보자기에 싸서 안고 시집 오셨다지.’ ‘시어머니 구박에 부엌에서 콩밭에서 울었다지.’ ‘할아버지가 장날에 비단치마 한감 사다 주셨다지.’…….
해거름이 다 되도록
할머니는 콩을 까불고
콩을 까부는 할머니 옆에서
나도 까분다.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우리 얘기 듣고 있던
까치 한 놈이
깰깰
꺌꺌
같이 까분다.
―「까치가 까부는 까닭」 전문
「까치가 까부는 까닭」은 이미지가 환하게 보이는 동시다. 그림과 함께 이야기가 풀려나온다. 백민주 시인은 ‘까분다’는 말로 말장난처럼 재미있는 동시를 썼다. ‘까분다’는 키위에서 날려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을 분리해 내는 일과 조심성 없이 가볍게 행동한다는 두 가지 다른 뜻을 갖고 있다. 백민주 시인은 그냥 재미있게 쓰기 위해 말장난처럼 ‘까분다’ 글자에 주목해 쓴 것은 아니다. 늦은 저녁 어둠이 저만치 오고 있는 마당에서 할머니가 콩을 까불고 있다. 할머니 키위에서 뛰어오르고 내리는 콩알들을 보며 ‘콩알들도 재미있어 깔깔대며 까부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이는 빨리 저녁 먹자고 징징대지 않는다. 아이는 배도 고프고 숙제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머니 옆을 맴돌며 까불어댈 수 있을까? 미루나무 꼭대기서 지켜보던 까치란 놈은 아이의 마음을 읽을 줄 아나보다. 까치란 놈도 ‘깰깰’‘꺌꺌’ 같이 까분다. 힘들게 콩을 까부는 할머니를 즐겁게 해드리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숨겨놓은 아름다운 그림 같은 시다.
노크만 해보면
안다는 우리 엄마
내 방문을
노크해보면서도
왜 내 마음을 몰라?
―「수박을 고를 때」 전문
부지런한 할머니 눈에
띄면 안 돼.
엉덩이가 싹둑 잘려
찹쌀가루에 버무려지거나
된장 물에 풍덩 빠져
쑥국이 될 거야.
할머니 지나가신다.
엎드려!
―「쑥」 전문
「수박을 고를 때」도 5행 밖에 안 되는 짧은 동시다. 콩콩콩 수박을 두드려 보고 잘 익은 수박을 가려내는 엄마가 내 방문을 노크해 보면서도 내 마음은 모르신다. 아이는 엄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너무 많겠지. 시인은 그 많은 이야기를 꽁꽁 단단히 뭉쳐 2연 5행의 동시로 담아놓았다. 어린이 독자들이 ‘맞아’ ‘맞아’하며 공감할 수 있는 동시다.
「쑥」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동시다. 시인은 이른 봄 들판에서 쑥을 뜯는 할머니를 관찰한다. 집중해서 오래 보며 꼬리를 무는 생각 속에서 쑥하고 한 편이 된다.
‘쑥들아, 부지런한 할머니 눈에 띄면 안 돼. 안 돼. 엉덩이가 싹둑 잘려. 잘려. 찹쌀가루에 버무려지거나 된장 물에 풍덩 빠져. 빠져. 쑥국이 될 거야. 될 거야. 할머니 지나가신다. 엎드려! 엎드려!’
입술에서 저절로 노래가 되는 동시다. 소리로 보는 그림이다. 음률과 속도감이 있어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랩 동요로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백민주 시인의 동시의 숲을 참 오랫동안 여행했다. 따듯하고 생각 깊은 동시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어린이들을 동시의 숲으로 안내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동시집에서 가슴을 따듯하게 덥혀주는 시, 생각을 날아오르게 하는 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간결하면서 야구공 같이 단단한 시, 생각의 길이 하나가 아니라 다른 수많은 길도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시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백민주 시인의 동시집을 만난 독자들이 상상력이라는 자기 발에 꼭 맞는 새 신을 신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으면 한다. 호기심과 엉뚱함이란 열쇠로 자신의 생각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시동을 걸어보았으면 한다.
이 세상의 뒤쪽 마을로도 생각의 길을 낸 시를 읽고 춥고 어두운 아이의 가슴이 환하고 따뜻해 졌으면 좋겠다.
백민주 시인의 동시들을 읽으면서 나는 “선생님은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늘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이 말은 선생님의 시선은 깊고 따스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시인은 고등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따뜻한 햇볕을 구석구석 비춰주는 선생님. 그 너머 어둠까지도 지각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까지 듣는 선생님이라는 걸 알았다. 이건 시인의 눈과 귀와 마음의 힘이다.
앞으로도 시인의 동시 사랑은 멈추지 않으리라 믿는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세상, 아무도 모르는 마을에 숨어있는 시들을 찾아내 더 많은 독자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
첫댓글 백민주(본명 백미숙) 시인의 동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백미숙 시인님 동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어느 사이 필명을 얻으셨네요^^
어제 잠시라도 얼굴을 볼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백민주 선생님 동시집 잘 읽었습니다
어느 누구의 동시집보다 너무나 감명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