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통증 « Philosophie et douleur, 2004 »
- 카롤린 케로아스-파크로(Caroline Kerhoas-Pacreau, s.d.), in 「제2장 통증을 밝히다(Eclairer la douleur)」(85-125), 통증을 길들이다(Apprivoiser la douleur, 2004)(칼비노외 다수, 이효숙, 알마, 2010. P.158) pp 87-101(P.158).
“제2장 통증을 밝히다” 속에 3편의 소논문이 있는데, 프랑스 학문의 성격을 보여준다. 즉 통증에 대한 과학(관찰, 실험, 임상)이 다루는 방식을 설명하고 난 뒤에, 인문학이 바라보는 관점을 보여준다. 철학에서, 프랑스 역사전통(유대-기독교전통)에서, 그리고 문학(문화)에서 통증에 대한 시각을 제공한다. 이런 설명의 틀은, 바칼로레아를 위한 작은 책자의 내용을 좀 더 깊이 있게 그리고 근거(증명)있는 내용을 다룬다. 죽음을 다룰 때도, 성(性)을 다룰 때도, 언어를 다룰 때도 등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우리나라가 일반적으로 문사철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마치 의식주라는 표현에 문제가 있듯이.. 마찬가지로 예악사어서수 인데 어쩌다가 시서예악사어수로 전승되고 있는지 말이다. 식주의(食住依)가 타당할 것 같고, 특이성의 실증적 토대 위에 철사문(哲史文)이라 해야 할 것 같다. (50WLD)
논자 카롤린 케로아스 파크로(Caroline Kerhoas-Pacreau. s.d.)가 1999년에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했다고 하는데, 철학사 전반의 흐름에 대한 일정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짧은 글에서 적절한 인용이 다양하다. 통증 즉 고통을 주제로, 또는 질병을 주제로 한 철학자들의 관점을 주목하는 것도, 아마도 정신분석학이 철학자들 주목하는 것보다 더 흥미 있을 것 같다. 프랑스 사상 내부에 면면히 흐르는 스토아주의가 앵글로색슨의 에피쿠로스주의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은 각 나라의 문화적 풍토에 잠재해 있어서 삶의 방식이 다를 것이다. 프랑스가 카톨릭이지만 자유사상 안에는 스토아의 아파테이아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선승들의 일화를(선비의 안빈낙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선승이 사라지고 산중의 절이 도시의 교회처럼 변해가는 것은 불교가 대승불교에서 소승불교의 영향을 입고 있는 것과 같이 미국 상품자유주의의 영향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50WLG)
서양사상사에서 갑자기 자유란 영혼에 관한 문제거리이고 이에 발목을 잡는 것은 정념인 것 같다. 일반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것은 가난과 질병이다. 가난에 대한 해결의 노력은 헤라클레스와 같은 이이의 노력과 스토아적 금욕이 결합하는 방식인 것 같은데, 종교가 금욕을 가장하고 사회적 연관에서 구휼(동정)을 실행하는 척한다. 이에 종교적 가식을 버리고 과학적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사회주의 및 공산당운동일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 개인에게 타인과 관계에서 해결할 수 없고 자신이 고유하게 겪어야 할 고통(통증)은 근본적으로 신체적이다. 이 신체적 연민과 공명은 아픈 자와 장애자와 같이 살아가는 방식을 실행하는 공동체(공산사회)의 실현에서, 약자이며 소수자에게 배제와 배척이 없어야 이루어 질 것이다. (50W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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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서문: 통증이란 무엇인가?
제1장 통증을 식별하고 치료하기 43-83
제2장 통증을 밝히다 85-125 2. Eclairer la douleur
- 철학과 통증. 87-101 « Philosophie et douleur »
카롤린 케로아스 파크로(Caroline Kerhoas-Pacreau. s.d.)
-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본 통증. La douleur au regard de la tradition judéo-chrétienne.
올리비에 드 디느생(Olivier de Dinechin, 1936-) 제수이트(1960-), 도덕 신학 교사.
-문학과 통증. Littérature et douleur
알랭 몽탕통(Alain Montanton 1945-)
제3장 통증에 대한 환자의 권리
총제적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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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과 통증(Philosophie et douleur, 2004)」 87-101
카롤린 케로아스 파크로(Caroline Kerhoas-Pacreau. s.d.)
통증이란 환자가 금세 통증이라 규정지으며 겪는 증상이다. 통증은 순전히 주관적이어서 개념적으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지식이 아니라, 통증을 겪는 개인이 배타적으로[단독적으로 특이적으로] 겪는 경험이다. 말브랑쉬(Nicolas Malebranche)가 도덕론(Traité de morale, 1684)에서 “그 누구도 나 자신의 ”통증“을 느낄 수 없다. 반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가 관조하는 ‘진실’을 볼 수 있다. 바로 그래서 내 ‘통증’은 나 자신의 질료의 변화이며, ‘진실’은 모든 정신들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재산이다.”라고... (87)
우리는 왜 고통을 받을까[느낄까]? 통증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그런 증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의학의 발달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 분명한 이런 질문들은 철학의 역사에 광범위하게 활기를 주었고, 위대한 종교들을 탄원으로 점철시키기도 했다. 그런 성찰을 하지 않은 철학자는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88) [불교는 신체적 고통(통증)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들 한다. 또 다른 이는 인간의 삶에서 현자의 고뇌에서 출발하였다고도 한다. 둘 다 개인적으로 고통(고뇌)를 겪는데,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유태-예수교에는 속죄와 대속이 있다. 즉 대속이란 대신 죄를 갚아준다는 것인데, 얼마나 착각이고 허위이며, 과대망상이며 편집증적이다! (50WLD)]
•사상의 역사 속 그 어디에나 존재하는 통증의 문제
그래서 히포크라테스 전통 속에서 처방들뿐만 아니라 이집트 병리학과 병인 이론들도 보게 되는데, 심지어 때때로 글자 그대로 다시 취한 경우도 있다. 민간 지혜서(Livre de la sagesse démotique)에 소개되고 히포크라테스가 의술론(De l’art médical)에서 다시 언급하는 통증없는 삶의 조건들처럼 균현 잡힌 중용의 길에 대한 견해가 그러하다. “건강한 사람에게서든 병든 사람에게서든 간에 신체 기관에서 매우 다양하게 고통을 일으키는 여러 모습이 있다.”라든가, “절도를 지켜야만 한다. .. 그것은 오로지 신체의 느낌 속에만 있다.”는 문장이 그러하다. (89)
바로 이 중용에 대한 견해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용적 지혜의 기초를 끌어내는 데, 이 실용적 지혜란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 생기는 우발적인 사태들 사이에서 우리를 제대로 이끌어갈 일종의 시의 적절한 지식을 가리킨다. 신중하면서도 능력 있는 현자(phronimos)는 언제나 순전히 인간적인 활동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 “그래서 박식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나침과 부족함을 피하고, 중용을 구하고 선호한다...” (89-90) [시의 적절함은 고르기아스가 말했다고 전하고 소크라테스도 주목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히포크라테스도 주목했으리라.. 이 실용은 사물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생명(영혼)에 관한 것일 것이다. 그럼에도 히포크라테스는 (생명이 활동하는) 신체의 느낌과 연관을 주목하였을 것이다.]
반면 독당근[le poison létal, la cigüe]을 먹고 죽은 소크라테스에 관한 플라톤의 대화 속에서 통증에 대한 고찰이 전혀 없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신체적 고통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그가 마시는 것을 보았다. 그는 계속해서 왔다갔다하고 있었는데 그 때 그는 자기 다리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하고는 간수가 권하는 대로 자리에 누웠다. .. 그의 몸은 차가워지더니 뻣뻣해졌다. .. 그 후, 짧은 간격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자 간수가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의 시선은 움직이지 않았다.” (90-91) ㅡ
플라톤이 몸소 그 비극적인 죽음의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닌 게 확실하다. .. 어쩌면 그저,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소크라테스의 친구들 가운데 누구도 그 철학자의 죽음을 전하면서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상세하게 묘사할 정도로 무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그저 플라톤이 위대할 것 없는 한 신체의 허약함에 대한 무례한 폭로를 회피하면서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스승의 존엄성을 점잖게 보호해주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결국 소크라테스는 실제로 스토아적인[퀴니코스적인] 처신에 관한 모범적인 사례라서가 아닐까? (91) [소크라테스의 냉정함, 이는 어떤 열정이나 격정 또는 충동으로 마음이 불안해지고 방해받지 않는 냉담과 무관심의 경지, 아파테이아(Apatheia, απάθεια)에 이른 현자는 최고 선, 최고 경지가 아닐까? 금강반야경에 나온 “인욕(忍辱)”의 사례 또한 아파테이아의 경지일 것이다.(50WLF)]
예를 들어 청소년기를 굉장히 고통스럽게 보냈던 데카르트(그는 열세 살 때부터 사혈을 했다)는 그 자신이 ‘통증의 감정’이라고 명명한 것에 대해 굉장한 관심이 많았다. .. 그는 죽기 전날까지 의사의 도움 없이 지냈고, 엄격한 식이요법도 하지 않았으면서 자기가 만든 몇 가지 원칙을 실천했다. “맷돌에게 그러하듯이 위와 다른 내장들에 끊임없이 할 일을 주어야 한다.” 1639년[마흔셋], 그는 메르센에게 자기가 30년 전부터 “질병이라 불릴만한 그 어떤 병으로도” 고통 받은 적이 없다고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 (92-93)
데카르트가 자신의 철학을 인간에게, 살아있는 인간에게 바쳤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정신 속에 지혜의 의학을 통합시킨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 깊다. “그렇게 철학 전체는 나무와 같다. 그 나무의 뿌리는 형이상학이고, 줄기는 물리학이며, 그 줄기로부터 나온 가지들은 다른 모든 학문[과학]들인데, 이 과학들은 의학, 기계학[정역학], 도덕학이라는 세 가지 주요 학문들로 집약된다...” (94) [뿌리는 질료형이상이고, 안쪽 리좀들에서 덩이줄기들은 생물학, 심리학(무의식, 특이성), 의학이며, 지면 위의 바깥쪽 줄기로는 물리학(정역학 동역학), 미시 물리학(분자, 입자, 광자), 인간관계에서 사회학, 정치경제학, 문화학(촉각적, 미(味)각적, 후각적) 등이며 이들을 만들어 놓은 나뭇잎 전체가 언어, 예술(시각적, 회화, 조각, 건축), 예술(청각적, 도구 음악, 목소리) 등이 숲속에서 팔랑인다.]
유년기의 통증이 철학체계 전체의 매개체가 되었다. ... 칸트에 따르면 통증은 실제로 인생을 밝혀주는 일종의 자극 같은 것이어서 그것이 없으면 활동도 없을 것이다. “통증은 활동의 자극제이며, 우리가 우리의 삶에 대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은 가장 먼저 그 통증 속에서이고, 통증이 없다면 가사(假死) 상태가 자리 잡을 것이다.” .. “그리 유쾌한 지적은 아니지만 인간들의 경우 이웃의 통증과 비교하는 일은 그들의 기쁨을 드높이는 반면, 자신의 통증은 다른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유사한 고통이나 그보다 훨씬 큰 고통에 맞닥뜨릴 경우 줄어든다.”
예를 들어 1957년 사드 후작(Mqrquis de Sade)의 작품을 출간한 탓에 장자크 포베르(Jean-Jacques Pauvert 1926-2014, 프랑스 출판인) 출판사가 검찰로부터 풍기 문란죄로 기소 당했을 때 조르주 바타이유(George Bataille, 1897-1962),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1896-1966), 장 콕토(Jean Cocteau, 1889-1963)는 법정에 변론을 제시하면서... “나는 죽음과 통증에 대한 관조가 명백히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현실을 감안해보면 그런 관조가 아무리 처벌받아 마땅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언제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알게 된다. ... 한편으로 법의학 자료들, 또 한편으로는 민속학 자료 같은 역사적 자료들이 우리에게 증명해주는 바에 따르면, 인간은 죽음과 통증의 관조 속에서 언제나 만족감을 느껴왔다.”
•통증과 마주해 보일 수 있는 반응들: 경멸, 후퇴, 도전 96
[경멸의 예로, 스토아주의, 후퇴의 예로 헤겔, 도전의 예로 쇼펜하우어이다. 헤겔다음으로 고난(질곡)을 넘어서는 니체가 더 좋을 뻔했다.]
스토아적이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통용어 속에서, 자기가 느끼는 통증에 평온하고 확고한 영혼으로 맞서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완벽한 행복감을 맛불 수 있는 사람의 태도를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스토아 현자의 원형 그 자체다. (96) [퀴니코스학파가 먼저 따랐고, ... 나중에 스토아로 만든 것이지 .. ]
스토아 전통에 매우 충실했던 세네카는 이러한 영웅적 희생에 대해 훨씬 더 깊이 고찰해 스토아적 오만에다가 시련에서 비롯된 아주 심오한 기쁨의 형태를 덧붙이는데, ..“고통을 통해, 영혼은 자기가 겪는 질병들을 무시하게 된다. .. 그것은 노력이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최고의 것들이다” .. “훌륭한 병사처럼, 현자는 자신의 상처들을 견뎌낼 것이다” [프랑스 고교철학에서 왜 세네카는 없는데, 에핔테투스(Ἐπίκτητος, Epictetus, 55경-135경)는 필수일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리를 비튼 자에게 ‘다리 부러진다.. ’고 하고 ”봐라 다리 부러졌잖아‘라고 한 에핔테투스는 노예출신인데 해방노예였다.]
여러 면에서 세네카와 비교해 볼 수 있는 탈레랑(Talleyrand, 1754-1838)은 외과 수술하는 중에도 통증에 대한 무시를 드러내 보였다. ... 전기 작가들은 .. 그가 오래 지속된 그 가혹하고 자인한 무(無)마취 수술을 꾸준히 의연하게 견뎌냈는지를 즐겨 거론한다. .. ‘당신이 나를 매우 아프게 한다는 것을 알고[나] 계시오“(1938년 5월 14일) 그는 통증을 모르는 척하지 않으면서 그 통증을 완전히 무시했던 것이다. (98-99)
스토아주의자는 ‘사고의 단순한 본질 속에서 언제나 후퇴하는’ 사람도 아니다. 소크라테스도 세네카도, 그리고 탈레랑도 그들 못지않게 절대적 자유라는 환상 속에 틀어박히기 위해 자기 시대의 삶 밖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99) - [존엄사를 한 라파르그도 마찬가지이다. // 달마대사의 제자인 혜가 대사(慧可大師, 487-593)는 스승에게 팔을 끊어 믿음을 바쳤다. 고통이 없었을라나.. / 달마 대사는 인도 28조이면서 중국 초조(初祖)가 된다. 그로부터 2조 혜가(慧可) 대사, 3조 승찬(僧璨) 대사, 4조 도신(道信) 대사, 5조 홍인(弘忍) 대사에 이르렀고 홍인에게서 6조인 혜능(慧能) 대사가 나왔다. - ]
하지만 헤겔에게 노예 이데올로기의 표본이 되는 것은 기독교정신이지 스토이시즘이 아니다. 여기서 노예란 존재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완벽히 받아들이면서도 그 고통을 원죄에 대한 벌로 감내하여 ... ‘인생은 고통’이라는 생각을 완벽하게 받아들이는 그러한 종교. ... 사후 세계의 보상 쪽으로 몰아 봍인다.... (99-100) [독일에서 귀족과 농노의 잔존시대에서 농노는 노예나 다름없다. 혁명이 없이 인민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
통증을 경험적 존재의 유일한 감정적 인상으로 보는 생각은 쇼펜하우어에 의해 폭넓게 발전된다. 그에 따르면 삶에 내재한 질병들은[,] 고통 상태인 ‘욕구’와, 마찬가지로 고통 상태인 ‘권태[나태]’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망설이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로 설명된다. ... “.. 평범한 생각처럼 무의미하고 순진한 객설이 아닌 한, 낙관주의는 부조리한 사고방식보다 더 나쁘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설명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진정 파렴치한 의견이며, 가증스런 희롱이다.” (100) - [설명상으로 질병이 “삶의 의지”가 되는 비관주의이다. 그런데 구분이 필요하다. 욕구(욕망)은 생명성이고 나태(무기력)는 물체화이다. 욕망의 분출과 노력으로 향하는 니체가 나와야 할 것이다. / 무지한 낙관주의는 6살짜리가 산타클로스 할배를 존재한다고 믿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그 나이에는 의미 있으며 또한 나이가 먹으면 극복해 나가기에 낙관주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6살의 믿음을 성인이 되어도 가지고 있는 박령 같은 이는 파렴치가 된다. 그것도 박령은 그 주위에 법꾸라지들에 의해서 그녀를 파렴치녀이 되고, 게다가 몰염치로서 순실이라는 기생충도 만들게 된다. (50WLH)]
만약 실제로 통증으로부터 벗어나거나 통증을 극복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면, 통증의 효과적인 치료라는 현행의 순전히 의료적인 주도권을 넘어서서, 이제 인간의 노력은 어떤 철학적 시각을 취하든 간에 통증이란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 아니라는 생각이 집중되어야 한다. (101)
(6:10, 50WLH) (6:1650WMC)
### 인명 ****
민간 지혜서(Livre de la sagesse démotique), 이 책의 출전 기원을 구글에서도, 위키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상타... 그리스 원전인지 이집트 원전인지? le mot « sagesse » (en hébreu hokmah, en grec sophia) / Une anthologie de la littérature en égyptien démotique, Paris, Les Belles Lettres, coll. « La Roue à livres » / Damien Agut-Mabordère et Michel Chauveau, Héros, magiciens et sages oubliés de l'Égypte ancienne : Une anthologie de la littérature en égyptien démotique, Paris, Les Belles Lettres, coll. « La Roue à livres », 2011, 396 p. / Le Papyrus Prisse est un livre de sagesse sous forme de conseils d’un père à son fils, appelé à lui succéder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Aristotélēs, 384-322: 62살) 스타지르(Stagire)에서 탄생. (플라톤 나이 33세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367년(17살)에 플라톤의 나이 50살에 아카데미아 입학했다고 한다.
바이예(Adrien Baillet, 1649–1706) 프랑스 신학자 문인, 데카르트 최초 전기작자. La vie de monsieur Descartes, 1691)(Paris, Hortemels, 1691)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올리비에 드 딘생(Olivier de Dinechin, 1936-) 제수이트(1960-), 도덕 신학 교사.
카롤린 케로아스-파크로(Caroline Kerhoas-Pacreau. s.d.) “Avancees de la medecine et souci de la personne.”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1999년 프레르(Jean Frère) 교수 지도로
히포크라테스(Hippocrate, Ἱπποκράτης / Hippokrátēs, v. 460-v. 377) 그리스 의사이다. 그는 데모크리토스(Démocrite, gr. Dêmokritos, v. 460-v. 370)와 고르기아스(Gorgias, Γοργίας 487-380??)와 더불어 공부했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현재로는 폴란드보다 더 동쪽에 있는 쾨니히스베르그 출신의 프러시아 공화국의 철학자이다. 인간의 표상적 인식의 조건을 규정하고, 도덕적 이성의 신에게 종속을 요청하고, 미적으로 신의 작업의 숭고함에 경건하게 기도하는 듯이 긍정한 프로테스탄트 철학을 구성하였다.
말브랑쉬(Nicolas Malebranche, 1638-1715), 프랑스 철학자, 신부. 도덕론(Traité de morale, 1684)
메르센(Marin Mersenne, 1588-1648), 미님(l'ordre des Minimes) 수도원 신부, 프랑스 수학자, 철학자.
알랭 몽탕통(Alain Montanton 1945-) 문학일반, 클레르몽페랑 대학교수 역임. 명예교수.
페테르(Jean-Pierre Peter s.d.), De la douleur. Observations sur les attitudes de la médicine prémoderne envers la douleur, suivies des traités de A. Sassard, M.A. Petit, J. A. Salques. in Dynamis: Acta Hispanica ad Medicinae Scientiarumque Historiam Illustrandam, Vol. 15 (1995) / 푸꼬와 대담이 있다고 하는데, 프랑스사람이 아닌지도..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본명 아리스토클레스 Aristoclès 427-347; 80살) 플라톤이란 ‘어깨가 넓음’을 의미한다. 이데아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나이 42살이었고) [그리고 18년 후에 배울 수 있을 있었다면, 소크라테스 나이 60살이었으며 10여년을 따라다니며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 독일의 철학자.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Erster Band, 1819; Le Monde comme Volonté et comme Représentation)
세네카(Sénèque, lat. Lucius Annaeus Seneca, 전4-후65: 일흔) 스페인 출신, 로마 스토아 철학자. De la vie heureuse (De vita beata)(58), De la providence (De prouidentia)(entre 37 et 65) / 황제 네로(Néron, 37-68)의 가정교사를 지냈다.
소크라테스(Socrate, Σωκράτης, 469-399; 70살) 아리스토파네스(Ἀριστοφάνης, 450-386)가 소씨를 아테네의 “등에”라고 불렀다.
탈레랑(Charles-Maurice de Talleyrand-Périgord, 1754-1838) 프랑스 정치가, 외교관, 1779년 신부서품, 1788-1791년 주교로 지명 받았다. 대혁명 시기에 제3신분(tiers état)으로 세속인이 되었다. 그 후 국회의원, 외무부장관, 외교관으로 지냈다. 경제, 금융, 외교 전문가로 활동했다. 1806년 그는 베네방 공« prince de Bénévent »이라는 칭호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