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기환 '순진한 난경(蘭卿)이'
2주일 전에 읽었지만 바쁜 일 때문에 미쳐 독후감을 쓰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정리가 되었기
에 올려드립니다.
제목에서 보듯 순진한의 의미는 아마도 '세상에 물들지 않은' 혹은 '이상적인 사랑'을 의미하
지만 난경이의 결코 평범하지 못한 삶을 다루고 있다. 어찌보면 이미 예고된 슬픔이랄 수도
있다.
난경, 민자, 추자, 경자 넷은 친구사이다. 난경이 집에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난경이에게
일어난 일 때문에 걱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난경이는 유부남인 미스터 한의 부인에게 얼굴을 할퀴고, 여기 저기 상처투성이였지만 얼굴
은 미소를 띠고 있어 친구들은 의아해한다. 과연 난경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웃는 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친구들은 미치지 않았는 지 의심한다. 그러나 난경인 태연자약하다.
그러나 그날밤 난경은 음독자살을 한다. 그리고 한 통의 편지가 추자에게로 배달된다. 편지
는 대강 다음과 같은 얘기를 담고 있다.
난경이가 태연자약하고 오히려 웃음을 지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구구절절한 해명아닌 해
명이었다.
난경이는 그동안 거쳐간 남자가 많다. 순진했지만 남성 편력은 꽤 있었다. 오사장, 김박사,
미스터 정, 미스터 유, 민노인, 강소년, 그리고 미스터 한 까지...
이들과의 사귀는 과정을 보면 주로 특이성을 가지고 있었다. 보편적인 사랑이기 보다는 치
우친 사랑 혹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일방적인 면이 느껴진다. 예를 들면 오사장의
경우 지독한 매조키스트였다. 자기학대를 통한 대리만족을 추구한 사랑이었다.
이처럼 난경이와 사귄 사람들은 친구들이 볼 땐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며, 가
면 갈수록 정도는 심해져만 갔다. 일반인이 상상하는 그런 사랑이 아닌 가학적인 혹은 자학
적인 사랑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난경이의 사랑은 바로 친구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랑이 아닌 특이한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열악하면 할수록 동정심으로 출발한 사랑은 더욱 강건해지고....
예를 들면 미스터 한의 경우, 병신만 겨우 면할 정도로 초라하고 지저분한 외모, 천하고 무
신경한 언동, 그러면서도 이로우면 얌체같이 알랑거리는 간사한 태도, 남의 약점만 잡으려고
노리는 꼴, 체신없이 까부는 꼴, 격에도 맞지않게 허세를 부리는 꼴, 돈이나 물질에는 극도
로 치사한 꼴....다시 말해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요소는 모두 갖춘 인간이다.
바로 이런 요소들이 평소 감정은 구역질이 날 정도지만 또 한편의 난경이의 감정은 벅찬 기
대에 부풀어오른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극도의 혐오는 극도의 자극을 동반했고 지
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쾌감을 안겨주었다.
이와 같이 미스터 한 과의 관계는 그가 일반인과 다른 면이 오히려 봉사를 통한 절정의 사
랑을 느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랑이 벽에 부딪힌 것이다. 간통 현장을 부인에게 들켜 얼굴을 할퀴고 머리를
잡아당기킨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때까지도 기쁨은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인이 좌절하며 울음을 터트리자 난경이는 갑자기 충격에 휩싸였다. 남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자신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믿기에 부인이 불행해 하는 모습을 보
자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결국 부인을 행복하게 하고, 미스터 한을 기쁘게 해주기 위한 마지막 봉사가 죽음이었던 것
이다. 난경이만 죽는다면 부인은 쾌재를 부를 것이요, 미스터 한 역시 더 이상 쫓아다닐 대
상이 없어졌기에 금방 잊어버리고 말 것이고 나름대로 오히려 잘되었다는 표정으로 안식을
되찾을 수가 있을 꺼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처럼 난경은 미스터 한을 위해, 그리고 부인을 위해 마지막 봉사로써 자살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친구들은 난경이의 유서를 읽고서는 그제서야 긍정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떱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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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작품 관련 자료를 정리한 것이오니 참조바랍니다.
方基煥
소설가·아동문학가.
1923. 1. 16 서울~1993. 1. 9 서울.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중등교원양성소를 수료했다. 1947년 어린이잡지 〈소년〉을 창간
했고, 1954년 학생잡지 〈학생계〉 편집장을 지냈다.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위원, 한국
문학가협회 사무국장, 한국문인협회 간사 등을 역임했다. 1944년 극단 청춘좌 현상모집에 희
곡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46년에 아동잡지 〈소년〉에 소년소설 〈꽃필 때까지〉를 발표했고 아동극집 〈손목 잡고〉(1949)를 낸 뒤 단편 〈뱀딸기〉(문예, 1950. 3)·〈파괴〉(문예, 1954. 3) 등의 소설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사소설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영웅·역사 소설에 관심을 갖고 〈왕손 王孫〉(문학예술, 1956. 9)·〈단종역란 端宗逆亂〉(대구매일신문, 1966. 1~1968. 12)을 발표했다. 냉담한 현실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애를 잃지 않는 문학세계를 보여주었다.
소설집으로 〈동첩 童妾〉(1952)·〈옥루몽 玉樓夢〉(1961)·〈초한전기 楚漢戰記〉(1962)·〈어우동 於于同〉(1979)·〈이벽 李蘗〉(1983) 등과 동화집으로 〈나의 집〉(1963) 등이 있다.
* 동극(童劇)
아동연극·동극·어린이극이라고도 한다. 아동극은 ① 어린이를 관객으로 하여 어린이 스스
로가 연기하는 극, ② 어린이를 관객으로 하여 어른이 연기하는 극, ③ 어린이나 어른을 가
리지 않고 다만 어린이를 희곡의 주인공 또는 주제로 하는 극 등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
다.
아동극에는 대체로 예술적인 성과도 물론 중요하나, 연극을 통한 인간형성의 교육적인 목적
을 지니는 것이 많아 학교극과 공통점을 가진다. 근대적인 아동극운동은 19세기부터 유럽에
서 시작되어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매우 활발해졌
다. 즉, 1903년 미국에서 시작된 A.하츠 여사의 아동교육극장과 뒤이어 계속된 교육적인 아
동극단의 전국에 걸친 활동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 전문적인 아동 극단이 잇달아
탄생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와 같은 운동이 더욱 고조되면서
1964년에는 처음으로 제1회 국제아동연극회의가 영국 런던에서 개최되었으며, 상설 국제기
구로서 국제청소년연극협회(ASSITEJ)가 런던에 설치되었다.
한국의 아동극은 19세기 말 개화의 물결이 밀려오기까지는 아동문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불
모지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어린이를 어른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접하려는 기운이 차차 움트기 시작하면서, 1908년에는 청소년의 계몽·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잡지 《소년(少年)》이 최남선(崔南善)에 의해 창간되었고, 1918년에는 부계 중심의 봉
건적인 관습을 타파하고 어린이가 내일의 희망임을 계몽한 이광수(李光洙)의 《자녀중심론
(子女中心論)》이 발표되었다. 이윽고 3·1운동이 일어난 뒤 방정환(方定煥)이 중심이 되어
색동회가 조직되고 그의 주재로 아동잡지 《어린이》가 창간되자 동요·동화·동극 등이 그
지면을 통해 발표되었다. 이때 처음 나타난 아동극이 방정환의 《노래 주머니》(혹부리영감
이야기:1막 3장), 마해송(馬海松)의 《장님과 코끼리》 등이다.
1923년 《어린이》 창간을 기념하는 '어린이 가극대회'가 열렸고 동요·동화·동극대회도
잇달아 개최되었다. 또 아동극이 무대에서 실제로 상연된 것은 1925년으로 윤석중(尹石重)의
《올빼미 눈》이 그 레퍼토리였다. 그해에는 윤극영(尹克榮) 등이 중심이 된 아동극단 '다리
아회'가 창립되어 동요극 《여름파랑새를 찾아서》를 상연하였다. 이후 창작극과 외국작품
의 번안극 및 방송동극이 정인섭(鄭寅燮)·연성흠(延星欽)·김송(金松)·김진수(金鎭壽)·모
기윤(毛麒允) 등에 의해 발표되었으나 방송극을 제외한 창작극의 경우, 실제로 무대에 올려
지는 수는 미미한 채 작품(희곡) 발표 단계에 머물기가 일쑤였다.
그리고 1930년대 말기부터는 일제의 한국 어문(語文) 말살정책으로 이와 같은 활동마저 휴
면상태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1945년 8·15광복과 더불어 아동극도 다른 분야와 마찬
가지로 일시에 회생할 수 있었다. 아동극단 '호동(好童)'이 연성흠·최병화(崔秉和)·김영일
(金英一) 등에 의해 창립되고, 1946년에는 방송극 《똘똘이의 모험》이 큰 인기를 모았는데
그 극본은 김내성(金來成)·김영수(金永壽)·유호(兪湖) 등이 번갈아가며 집필하였다. 1949
년에는 한국 최초의 아동극집인 《손목 잡고》(方基煥)가 발간되었고, 1951년에는 아동극이
처음으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채택되어 최태호(崔台鎬)·강소천(姜小泉)·방기환 등의 작품
이 수록되었으며 금수현·주평(朱萍) 등의 아동극도 실렸다.
1950년대 후반 이후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새벗》 《학원》 등의 여러 잡지와 방송을 통
해 많은 작품이 발표되면서 아동극집의 출판도 활발하였으나 무대에 올려지는 작품은 여전
히 드물었다. 그것은 언제나 아동극 공연이 가능한 상설 아동극장 시설이 없다는 점과 아동
극에 대한 일반의 몰이해 및 관객 동원의 어려움 따위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탓이었다. 이
와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1962년에 발족한 아동극단 '새들'(대표 주평)을 비롯, 1963년에는
'동연(童演)' '신동(神童)' '때때' 등이 창설되고, 각 지방의 아동극단 발족도 잦은 듯하였지
만, 실질적인 공연 활동은 한두 단체를 빼놓고 별로 볼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기성극단의 아동극 공연이 성황을 이루면서, 아동극이나 인형극을 전문으로 하는 극단
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계몽문화센터·샘터파랑새극장 등 아동극 전문 공연장도 세워지는
등 활동을 보이고 있다.
내용출처 : 야후백과
첫댓글 현대 단편소설(1930~1970) 60여편을 전부 정리해 드렸습니다. 시간이 나실 때마다 한 편씩 음미하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어느덧 60여편이라니..얼떨결에 난도 출력해서 읽은몇편의 소설들을 포함하면 독후감을 읽은것만으로 꽤 단편소설을 접한 편이네..ㅎㅎ
이런 기회를 제공해준 카페짱에서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수고하셨습니다..^^*
헉~~이런 속사정이,,,난경이야말로 진정한 봉사의 사도라고 해야하는것이 옳은것이겠쥐..........
난경이의 봉사정신은 높이 사야 겠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별종이라고 봐야겠지...일종의 매조키스트(자기 학대, 자학)이니까...다만 차이점이라면 남이 고통스러우면 결코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는 거지...
그래서 최종결정을 내린거겠쥐...실은 쉽지않은 결정이었을텐데..그래도 초연하게 웃었다는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