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는 자신의 현악 4중주를 교향곡 제1번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지만, 그 후로는 더 이상 4중주곡을 쓰지 않았다. 원래 친구인 에르네스트 쇼송을 위해 곡을 쓸 생각이었는데, 쇼송은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사이가 틀어지게 되고 드뷔시는 현악 4중주곡을 포기해 버렸다. 이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람은 쇼송만이 아니었다. 어떤 평론가는 이 작품을 두고 ‘형식의 부재에 대한 새로운 선언’이라고 말했다.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내놓기 바로 직전에 쓴 이 곡은 앙상블의 의미를 재평가하게 만들었으며 드뷔시가 앙상블에서 도출해 낸 아름다움과 다채로운 사운드 덕분에 이 작품은 4중주곡 중에서 가장 즐거운 작품으로 손꼽힌다.
기존의 관습에 순응한 면을 들자면, 네 악장의 구성이다. ‘생기 있고 매우 당당하게’라고 되어 있는 1악장은 음악이 다양한 아이디어와 음색들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계속해서 되돌아오는(그리고 작품이 연주되는 내내) 대담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스케르초는 피치카토의 활용이 돋보이며 음의 수사가 계속 되돌아온다. 느린 악장은 단순하게 시작하지만 열정적인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 현란한 속도로 쉴 새 없이 분위기가 바뀌는 피날레도 앞부분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4중주단이라면 이 곡의 순수한 음색을 잘 살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줄리어드 4중주단이 필요한 자질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들의 연주에는 번득이는 재기, 선율의 감각적인 조화, 뛰어난 균형감이 잘 살아있다. 바로 어제 작곡한 곡을 연주하는 듯한 신선함이 느껴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현악 4중주 [String Quartet]
드뷔시에 대한 평가
그는 상투적인 19세기 화성 처리법을 믿지 않았다. 20세기 중엽 음악을 연구해보면 드뷔시의 초기 화성 처리법을 임의적이며 학구적으로 추종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비록 쇤베르크의 12음기법만큼 고집스런 방식은 아니었지만 드뷔시도 조성감을 없애기 위해 '21음계'를 고안했다. 탐구적 정신을 발휘하여 전통적 관현악법을 기피했으며 아울러 현악기는 주로 서정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전통적 관습을 거부했다.
현악4중주(1893)에 포함된 피치카토에 의한 스케르초 악장과 〈바다〉에서 바이올린의 상징적 서법으로 보여준 거대한 파도가 올라가는 모습은 현악기 음색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낳았다. 목관악기 역시 틀에 박힌 목적으로만 사용해서는 안 되며 인간의 목소리처럼 다양한 음색을 전달해준다고 보았고 아울러 금관악기도 원래의 음색을 변화시켜 사용했다. 드뷔시는 목관악기·금관악기·현악기를 엄격하게 나누는 관습적인 오케스트라 배치를 인상파 화가의 방식으로 해체시켰고, 궁극적으로 모든 악기를 거대한 실내악 합주와 같이 거의 독주악기로 사용했다(관현악법). 마지막으로 피아노에도 실험적 자세로 접근하여, 몽롱하고 아득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피아노가 갖는 특수성을 최대한 활용했다(피아노는 원래 온음표 등의 음길이를 그대로 내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길이의 음처럼 들리도록 환각을 만들어주는 것뿐임).
만년에 드뷔시는 자아의 변형 인물인 '크로슈 씨'라는 인물을 만들어, 예술과 음악의 본질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대화를 한다.
크로슈는 "너의 그 불가해한 예술은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가? ……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듣느니 차라리 떠오르는 해를 보는 것이 더 유익하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크로슈는 또한 다음과 같이 음악의 탐구적 자세를 지지한다. "나에게 관심있는 것은 내가 지금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말기 작품 중 피아노곡인 〈백과 흑 En blanc et noir〉(1915)·〈12개의 연습곡 Douze Études〉(1915)에서 드뷔시는 후배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와 헝가리의 벨라 바르토크 양식에서 발전될 작곡 양식의 씨앗을 뿌렸다.
삶을 그렇게 비극적으로 끝내지만 않았어도 확실히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작곡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드뷔시는 바그너야말로 황혼에 접어든 작곡가임에도 여명에 들어선 작곡가로 잘못 평가되었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드뷔시의 말은 19세기 음악을 돌아볼 때 그야말로 예민한 관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말은 바그너에게뿐만 아니라 정작 드뷔시 자신에게 더 잘 들어맞기도 한다.
다수의 비평가들이 음악에서의 혁명적 단계에 해당하는 작곡가로 바그너와 드뷔시 등을 꼽지만 또한 음악의 가치가 몰락하는 시점도 이때부터이다. 이러한 모순이야말로 드뷔시라는 인물이 지닌 모습이다. 그는 확실히 자신의 작품이 지닌 이러한 이원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탐색하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의 편지들에서 알 수 있다. 모든 면에서 예민했으며,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영향을 받은 그는 자신의 작품이 지닌 이러한 이원성을 인식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그러한 혁명적 변혁에 처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음악적 차원으로만 판정될 수 없다.
친구인 프랑스의 작곡가 폴 뒤카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작품에서는 시를 추구해야 한다네"라고 말했다. 그의 음악에는 시뿐만 아니라 회화로부터 받은 영감도 깃들어 있다. 프랑스계 미국 작곡가 에드가르 바레즈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음악 그 자체만큼이나 회화의 이미지(이 용어는 드뷔시 전작품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음)를 좋아합니다". 여러 예술들과 음악을 연관짓는 것은 19세기 내내 중요한 경향의 하나였고(이러한 면에서 효시가 되는 인물은 독일의 작곡가 겸 작가인 E.T.A. 호프만임), 그는 특히 포의 소설에서 가장 민감한 표현재료를 찾았다.
오랫동안 〈어셔가의 몰락〉을 오페라화하려는 계획을 지니고 있었으며, 실제로 이 작품을 가지고 뉴욕 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계약까지 체결했으나 완성하지는 못했다(〈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서도 이 이야기를 다루려 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음). 이 소설의 주인공 로드릭 어셔는 드뷔시처럼 민감한 인물로 시인 겸 화가이자 음악가였다.
드뷔시의 생전이나 사후에 포의 명성은 거의 프랑스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프랑스 시인들은 포의 작품을 번역했으며 화가들도 그의 천재성을 인정했다. 그러므로 드뷔시 같은 프랑스의 음악가가 그에게 매력을 느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록 오페라 대본밖에는 완성하지 못했지만 거기에는 드뷔시가 포에게서 찾았던 예술적 공감이 드러나 있다(인상주의).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 클로드 드뷔시
드뷔시의 음악은 19세기 전통에 대한 일련의 공격 가운데 선봉적인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바그너에 심취해 있었던 드뷔시는 1888년, 바이로이트로 가서 바그너의 오페라를 보았다. 하지만 관현악과 성악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몇 번이나 설명을 반복하는, 거의 강제적이라고 할 만큼 웅변적인 바그너의 극작술에 참을 수 없는 피로와 중압을 느꼈다. 이것을 계기로 그는 바그너 음악으로부터 멀어졌으며, 바그너를 '여명으로 잘못 이해된 아름다운 일몰'이라고 평가하게 되었다.
1889년, 파리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렸다. 여기서 인도네시아 연주단이 가믈란 음악을 선보였는데, 드뷔시는 그 형식의 자유로움과 리듬의 신선함, 타악기의 놀라운 효과, 유럽 음악과 코드가 다른 선율과 울림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1890년대 초에는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를 보고 역시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이런 경험이 그가 바그너와 결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1893년에 초연된 〈선택받은 소녀〉와 이어서 발표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으로 드뷔시는 작곡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02년에는 메테르링크의 희곡에 의한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eas et Melisande)〉를 발표했다. 바그너의 웅변에 싫증을 느낀 드뷔시는 이 작품을 통해 '모든 것을 다 얘기하지 않고, 작곡가의 꿈이 시인의 꿈에 접목되는 오페라'를 구현했다.
젊은 시절부터 드뷔시는 여성 편력이 화려했다. 유부녀인 성악가 블랑슈 부인과 염문을 뿌린 후 가브리엘 뒤퐁이라는 여인과 근 10년간 동거했지만, 정작 결혼은 그녀의 친구인 로잘리 텍시에와 했다. 결혼 후에는 엠마 바르닥이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졌는데, 이 일로 아내가 자살을 시도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이 사건은 소설까지 나올 정도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며 그의 곁을 떠났다.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에릭 사티 한 사람뿐이었다. 1905년, 드뷔시는 아내와 이혼하고 엠마 바르닥과 동거를 시작했다. 같은 해 둘 사이에 딸 클로드 엠마가 태어났는데, 드뷔시는 클로드 엠마를 슈슈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귀여워했다.
이 무렵 드뷔시는 피아노곡집 〈판화(Estampes)〉와 〈기쁨의 섬(L'Isle joyeuse)〉, 가곡집 《화려한 잔치》 등을 작곡했지만, 무게 있는 대작을 내놓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 '부자가 된 드뷔시는 이제 좋은 곡을 쓸 수 없다'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그 후 관현악의 걸작 〈바다(La Mer)〉를 발표함으로써 이런 비판에 종지부를 찍었다.
드뷔시는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작곡가가 아니었다. 하지만 유럽 음악계는 그를 매우 중요한 작곡가로 인정했다. 1909년 파리 음악원은 드뷔시를 상급평의회의 멤버로 받아들였고, 루이 랄루아는 드뷔시의 평전을 출판했다.
1915년, 드뷔시는 암 진단을 받았다. 암과 싸우며 창작열을 불태우던 그는 1918년 3월 25일에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드뷔시는 피아노곡과 가곡, 관현악곡에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피아노곡은 대개 모음곡의 형태로 작곡했는데, 유명한 〈달빛〉이 들어 있는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을 비롯해 〈어린이 세계〉, 〈작은 모음곡〉, 〈판화〉, 〈영상〉, 〈전주곡집〉 등이 있다.
〈어린이 세계〉는 1908년 드뷔시가 딸 엠마를 위해 작곡한 것이다. 제1곡은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 박사〉이다. 이탈리아 작곡가 클레멘티의 피아노 연습곡집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을 풍자하기 위해 원래의 제목 뒤에 '박사'라는 단어를 붙였다. 지루하고 어려운 클레멘티의 연습곡과는 달리 이 곡은 활기차고 재미있다. 제2곡 〈코끼리의 자장가〉는 느리고 여리게 연주하는 자장가이다. 낮은 음으로 같은 음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연주하다가 사라지듯 끝난다. 제3곡 〈인형의 세레나데〉는 아이가 속삭이듯 인형에게 불러 주는 사랑 노래이다. 제4곡 〈눈송이가 춤추고 있다〉는 창밖에서 눈송이가 휘날리는 광경을 현란한 피아노 선율로 그린 것이다. 제5곡 〈꼬마 양치기〉에서 꼬마 양치기는 진짜 양치기가 아니라 인형이며, 이 곡은 양치기가 연주하는 환상곡이다. 제6곡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에서 골리워그는 검은 얼굴과 둥근 눈을 가진 흑인 인형이고, 케이크워크는 미국 흑인들의 고유한 춤곡을 말한다. 절룩거리며 춤추는 흑인 인형의 모습을 그린 익살맞은 곡이다.
관현악 작품으로는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세 개의 야상곡(Trois Nocturnes)〉, 〈바다〉 등이 유명하다. 이 중 1894년 작인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상징파 시인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라는 시에서 받은 인상을 음악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시는 여름날 오후 해변의 그늘에서 목신이 아련한 꿈을 꾸는 모습을 그렸는데, 드뷔시는 이것을 환상적이고 관능적인 음악으로 표현했다. 곡은 부드럽고 낮은 음역의 플루트 독주로 시작한다. 플루트의 반음계적 멜로디가 아래로 권태롭게 미끄러져 내려가면 하프의 글리산도가 파문처럼 번지면서 몽롱한 음색의 혼이 등장한다. 현악기들은 마치 수채화의 바탕색처럼 유동적으로 흘러가고, 그 위를 관악기들이 몽환적인 빛깔로 채색한다. 마지막에 하프의 하강 음형을 수반한 혼이 텅 빈 공허감을 절묘하게 노래하는 가운데 음악은 다시 잠에 빠져드는 목신을 묘사하듯 침묵 속으로 용해된다.
〈세 개의 야상곡〉은 1897년부터 1899년에 걸쳐서 작곡한 것이다. 제1곡 〈구름〉은 조용한 곡이다.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혼, 잉글리시 혼 같은 관악기들이 미묘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특히 잉글리시 혼의 어두운 음색은 드뷔시가 얘기한 '고뇌의 잿빛'을 떠올리게 한다. 제2곡 〈축제〉는 말 그대로 축제의 역동적인 분위기를 그린 것이다. 한바탕 축제가 벌어진 후, 무대 밖에서 아련하게 트럼펫 소리가 들린다. 축제가 끝난 후에 찾아온 저녁의 적막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제3곡 〈인어〉에서는 여성 합창이 나온다. 가사 없이 그저 모음으로만 부르는, 이른바 보칼리즈를 노래하는데, 그 신비로운 멜로디가 달빛 비치는 바다에 물결을 타고 헤엄치는 인어들의 노랫소리를 연상시킨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는 피아노곡 〈피아노를 위하여〉, 〈기쁨의 섬〉, 〈꿈〉, 〈라모 예찬〉, 〈백과 흑으로〉, 실내악 〈현악 4중주〉, 〈첼로 소나타〉, 관현악곡 〈봄〉, 〈이베리아〉, 〈영상〉, 가곡 〈아름다운 저녁〉, 〈잊혀진 노래〉, 〈화려한 잔치〉, 〈빌리티스의 노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부수음악 〈리어 왕〉,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성 세바스티앙의 순교〉, 발레음악 〈유희〉 등이 있다.
글 진회숙
글 출처 드뷔시 현악 4중주 사단조 Op.10 L.91 : Quatuor Ébène|작성자 필유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