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11-18
찬송가 320장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우리가 새벽마다 묵상 중인 역대기는 길었던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의 삶을 재건해야 했던 유다 백성들에게 큰 위로를 제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대기 기자를 통해 유다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자신의 신실한 사랑과 섭리를 증거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역대기는 유다 백성들의 기원을 보여주는 족보를 넘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바르게 실천했던 성군 다윗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그 일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다윗은 죽기 전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 데 필요한 물자를 충분히 준비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솔로몬이 해야 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재위 시절 궁궐을 짓도록 도와준 후람에게 성전 건축 준비를 위한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역대하 1장에서 우리는 솔로몬의 부귀영화를 통해 솔로몬이 통치하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지역의 강대국으로서 주변 나라에 영향력을 끼쳤을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두로 왕 후람에게 강압적인 외교적 자세를 취하지 않고 비교적 정중한 자세를 취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장이 도착합니다.
두로 왕 후람의 회신(11-16절)
(11-12) 두로 왕 후람이 솔로몬에게 답장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그들의 왕을 삼으셨도다 후람이 또 이르되 천지를 지으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송축을 받으실지로다 다윗 왕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시고 명철과 총명을 주시사 능히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자기 왕위를 위하여 궁궐을 건축하게 하시도다
두로 왕 후람은 솔로몬의 정중한 사절단에 감명을 받은 듯합니다. 가나안 지역의 강대국으로 자리한 이스라엘의 눈치를 봐야 했던 두로 왕 후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었음에도 기쁜 마음으로 성전 건축에 동참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두로 왕의 편지에서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흘러나옵니다. 먼저는 솔로몬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고 마땅히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다윗에게 명철과 총명을 받은 지혜로운 아들 솔로몬을 주셔서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누구의 고백입니까?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과 은혜를 덧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백이라고 해야 어울릴만한 고백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러한 고백은 여러 나라들과 교역함으로 우상이 많고 음란했던 두로의 왕이 고백한 하나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우상을 섬겼던 이방 나라의 군주 후람은 비록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예배하는 사람은 아니었겠지만, 하나님의 다스림과 섭리에 대해서는 이해가 깊은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신실하게 거하며, 그분을 목적 삼는 삶을 살아가십시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통해 후람과 같이 아직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에 대해 고백하며 찬송하고 열방이 돌아오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어서 후람은 답장을 통해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맡길만한 적임자를 소개합니다.
(13-14) 내가 이제 재주 있고 총명한 사람을 보내오니 전에 내 아버지 후람에게 속하였던 자라 이 사람은 단의 여자들 중 한 여인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라 능히 금, 은, 동, 철과 돌과 나무와 자색 청색 홍색 실과 가는 베로 일을 잘하며 또 모든 아로새기는 일에 익숙하고 모든 기묘한 양식에 능한 자이니 그에게 당신의 재주 있는 사람들과 당신의 아버지 내 주 다윗의 재주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하소서
후람이 보내는 재주 있고 총명한 사람은 ‘내 아버지 후람에게 속하였던 자’입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후람아비’인데, 직역하면 ‘후람 나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한글 번역 성경은 이 사람의 이름에 대해 각기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은 이름을 고유명사로 보지 않고 ‘내 아버지 후람에게 속하였던 자’라고 번역했고, 새번역 성경은 ‘전문가 후람’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평행 본문인 열왕기는 이 사람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열왕기상 7장 13절에서 14절입니다.
‘솔로몬 왕이 사람을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그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 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사를 하니라’
여기서 열왕기와 역대기의 본문 상 차이가 발생하는데, 열왕기 기자는 이 사람의 이름을 히람이라고 소개하면서 어떻게 성전 공사의 적임자로 오게 되었는지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대기는 솔로몬의 요청으로 후람 왕이 추천해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열왕기는 이 사람의 어머니가 납달리 지파에 속했다고 소개하지만, 역대기는 어머니가 단 지파에 속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아마도 역대기는 과거 성막과 기구들을 만들었던 단 지파의 오홀리압과 연결하고자 이 사람을 단 지파라고 밝힌듯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전 건축을 총괄하기 위해 두로에서 온 이 사람은 혼혈아로서 이스라엘 문화와 이방의 문화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성전 건축에는 온갖 목재와 광물, 천을 짜는 일과 조각에 대해서도 깊은 내공이 있어야 했습니다. 후람아비는 이런 점에서 과거 성막에 관련된 공사를 담당했던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떠오르게 하는 모든 재능을 두루 갖춘 적임자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해본 일과 더불어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일에도 능한 사람이었고 이스라엘 기술자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자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이렇습니다. 주님을 위한 일을 시작하려 할 때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을 적절할 때 보내주십니다. 오늘날 내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려고 하는데, 어려움과 막막함에 있으십니까?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필요한 사람을 보내주시는 신실한 섭리에 잠잠히 기다리며 반응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어서 두로 왕 후람은 솔로몬이 앞서 제안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겠다고 합니다.
(15-16) 내 주께서 말씀하신 밀과 보리와 기름과 포도주는 주의 종들에게 보내소서 우리가 레바논에서 당신이 쓰실 만큼 벌목하여 떼를 엮어 바다에 띄워 욥바로 보내리니 당신은 재목들을 예루살렘으로 올리소서 하였더라
역대기는 두로 왕 후람과 솔로몬의 계약이 순탄한 것으로 서술합니다. 건축에 필요한 목재는 얼마든지 보내 줄 수 있으며, 레바논에서 벌목한 나무들을 뗏목으로 묶어 바다를 통해 욥바까지 보낼 테니 욥바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의 운반은 솔로몬에게 담당하라고 합니다. 레바논에서 욥바까지는 약 150킬로미터 험난한 뱃길이었으며, 욥바에서 예루살렘은 약 55킬로미터의 구불구불한 산길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대규모로 시작될 성전 건축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신분(17-18절)
(17-18) 전에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 땅에 사는 이방 사람들을 조사하였더니 이제 솔로몬이 다시 조사하매 모두 십오만 삼천육백 명이라 그 중에서 칠만 명은 짐꾼이 되게 하였고 팔만 명은 산에서 벌목하게 하였고 삼천육백 명은 감독으로 삼아 백성들에게 일을 시키게 하였더라
역대기 기자는 이미 역대하 2장 2절에서 성전 건축을 위한 짐꾼 칠만 명과 돌을 옮길 자 팔만 명과 감독할 자 삼천육백 명, 총 십오만 명 이상의 인력을 확보했다고 서술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땅에 사는 이방 사람들이라고 밝힙니다.
역대기는 성전 건축에 동원된 이방 사람들에게 합당한 삯을 지불했는지 밝히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해 엄청난 재물을 쌓아놓았던 것을 살펴보면 굳이 그들의 삯을 제외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이방인이라고 콕 집어 서술한 점을 보아 그들의 노동력의 삯이 제공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하지만 성전 건축에 필요한 노동력이 이방인으로만 충당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될 때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는 북쪽 지파들의 호소와 여로보암이 요셉 지파의 강제 노역을 관리했다는 점을 보아 성전 건축은 이방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큰 노동력까지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성전 건축이 본격적으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에 대해 이해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성전이라는 건물에만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처가 아니라는 겁니다. 성전이라는 장소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과 영광, 임재를 드러내실 수는 있지만, 그 장소만이 하나님이 거하신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성전이라는 건물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 현현이었고, 은혜의 처소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는 장소, 즉 예배의 장소였습니다 .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한 장소인 성전을 건축하는데 당시 최고의 재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이방 사람인 두로 왕 후람의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동뿐 아니라 이방인의 노동도 필요했습니다. 다시 말해 성전 건축은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예시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가치를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택하신 민족과 더불어 열방이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이 가득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남녀노소, 신분의 귀천, 인종과 문화의 차별 없이 모든 이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예배의 처소는 어떻습니까? 최고의 가치를 드리고 계십니까? 혹은 우리가 지닌 잣대로 예배하는 자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이 만든 제도와 규칙이 말씀보다 위에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내시고 순종하시어 화목 제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케 하신 예수님만 의지하는 예배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만 의지하여 오늘도 우리와 동행하길 원하시는 하나님께만 예배드리십시다. 바른 예배가 생활화가 되고, 생활이 바른 예배가 되는 아름다운 우리 교회가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새벽을 깨워주시고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를 통해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지 돌아봅니다. 위에서 오는 능력으로 창문을 열고 최고의 가치를 주님께 돌려 드리며, 우리의 시선과 제도 따위로 차별하거나 제한하지 않는 참된 예배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두로 왕 후람은 솔로몬의 사절단에 대한 답장의 시작을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시작했습니다. 후람이 이방 나라의 군주임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삶과 관련하여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역대하 2:11-12)?
2. 후람은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의 적임자로 후람아비를 소개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일을 시작하려 할 때 적임자를 보내주신 하나님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3. 성전 건축에는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노동자들의 신분은 무엇이었습니까(역대하 2:17)? 이것을 생각할 때 성전은 누구를 위한 예배의 처소입니까?
4. 성전 건축에 필요했던 요소(과정, 재료, 노동자 등)를 생각하며 오늘날 우리의 예배를 돌아보며 개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 있습니까?
(작성: 김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