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자불입(悟道者不入)
"오도자불입(悟道者不入)"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이 곳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불교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이 세상의 욕망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이 곳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은 또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이 세상의 욕망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불국선원 현판이 걸린 문을 지나려 하니 가장 먼저 ‘오도자불입(悟道者不入)’이란 글귀가 보인다.
불국선원을 세운 월산스님이 평소 좋아하던 글귀다.
선원장 종우스님은 “깨달았다고 자만하는 사람들은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라며
“함부로 깨달았다고 자랑하는 것이나 알음알이를 도로 삼는 것을 경계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1974년 건립된 불국선원은 1976년 하안거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50년 가까이 수행자들의 귀의처가 돼 왔다.
불국사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광사찰임에도 선원은 사찰과 독립된 공간에 있어 고요하다.
○호미 도인
자나 깨나 오로지 호미를 곁에 두고 있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였다.
이래서 ‘호미도인‘ 이라면 산중에서 알 만한 이는 모두 알게 되었다.
1. 용맹정진 방(榜)을 짜는 날 한 십 년 전쯤의 일이다.
해인사 선열당(禪悅當)에서 여름결제 용맹정진 방을 짜는 날 밤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해인사 선원에서는 연중행사로 칠일 용맹정진 기간을 여름과 겨울 두 차례로 정하여 후원, 강원, 율원을 가리지 않고 지원자가 동참하도록 해오고 있다.
그때 강원 서장(書狀)반에서 용맹정진에 동참하게 되었는데, 방을 짜기 전에는 산중 노덕 스님의 법문이 있게 마련이었다.
그때 법문을 하신 스님은 혜암스님이셨다.
스님은 대중에게 법문을 하다가 말고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아니, 저기, 학인 무릎 곁에 반짝반짝하는 물건은 무엇이요”?
하고 앞줄에 앉은 한 학인에게 물었다.
호미입니다. 하며 도인은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혜암스님 께서는 더욱 큰 소리로
“호미는 어디에다 쓸려고 선방에 가지고 들어왔소?”
“저는 호미를 봐야 화두가 잘 들립니다. 그래서 용맹정진할 때 호미가 필요합니다.”
혜암 스님께서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고 나서 조용하게 타일러 말하였다.
“이 가운데는 구자무불성 (狗子無佛性) 화두 가진 이가 있는데, 그럼 학인 스님 말 대로 할것 같으면, 모두 개를 한 마리씩 곁에 두고 용맹정진 해야 될 것이며, 또 도끼를 봐야 화두가 잘 들리는 이는 도끼 자루를 선방 용맹 정진하는 데 가까이 들여놔야 하질 않겠소?”
그에게 주위 시선이 모아지자 호미 도인도 고개를 잠시 떨구었다.
“선방에서 용맹 정진하는 데 호미는 필요치 않아요. 학언은 그리 알고 호미를 거두어요.”
하고 스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호미 도인은 합장을 하고 나서 곧 호미를 좌복 밑에 넣어 두었다.
그런데 그 호미는 예사 호미와는 그 사연부터 다른 것이었다.
그가 군에서 제대할 때에 탄피를 주워 모아 온 것으로 대장간에 가서 특별히 주문하여 만든 호미였다. 끝은 날이 져서 날카로웠으며 몹시 단단하였다. 샌디 페이퍼로 문질러서 곱게 보관해 왔기 때문에 늘 반짝반짝 빛을 내었다.
호미 도인은 시간나는 대로 호미를 들고 큰절은 물론 원당함, 홍제암, 용탑 등의 산내 암자에까지 가서 풀뽑기 작업을 열심히 하였다.
군에서 느낀 경험으로 풀뽑기 작업을 하는 시간이 그에게는 가장 공부가 잘 되었다.
망상이 불 같이 일어나다가도 호미자루를 드는 순간 머리가 말끔히 개인 하늘 같이 되는 느낌을 받곤 하였다.
자나 깨나 오로지 호미를 곁에 두고 있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였다.
이래서 호미 도인이라면 산중에서 알 만한 이는 모두 알게 되었다.
칠일 용맹정진 기간 동안에는 모두 잠을 안 자기 때문에 희한한 일들이 벌어진다.
변소나 눈 쌓인 마당, 심지어는 목욕탕의 욕조 안에서도 불시에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쓰러져 자는 이가 있다.
또 평소에는 그렇지 않던 사람들도 큰 소리로 고함을 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괜히 희죽희죽 웃거나, 울면서 눈물을 죄죄 짜는 등 갖가지 이변이 속출하는 것이다.
호미 도인은 그새를 못 참고 용맹정진 기간 중에 다시 호미를 꺼내와서 좌복 곁에 놔두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호미는 용맹 정진하느라 신경이 곤두선 대중에게 퍽 자극적이어서 불안스러웠는데, 다행히 입승 스님이 이를 발견하고 치우게 하였다.
그런 뒤로 호미 도인은 호미를 영 놔버릴 수가 없었던지 천조각으로 호미를 깊이 싸서 좌복 뒤켠에 두고는 호미 만지는 일을 계속하였다.
2. 오도자 불입 (悟道者不入)
호미 도인은 식광(識狂)에 걸려 한때는 선불 맞은 호랑이처럼 날뛰던 때가 있었다.
식광이란 공부하는 과정에서 식(識)이 잠시 맑아지는 변화를 잘못 생각해서 스스로 견성성불을 자처하는 일이다.
식광에 걸리면 그야말로 안하무인격이 되는데, 이때를 잘 넘기지 못하고 선지식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하면 흔히 공부의 길을 영영 잘못 드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호미 도인이 해인사를 떠나 창녕에 가서 머물 때의 일이다.
빈 절에 웬 젊은 객승이 와서 초하루 법문을 하는데 상단에 올라 앉아 사자후(獅子吼)를 한다는 소문이 창녕 읍내에 파다하게 퍼졌다.
물론 호미 도인이 처음 객승으로 지낼 때의 일이다.
호미 도인은 스스로 견처(見處)를 인가하고 사자후를 토하였다.
마침 호미 도인이 해 입대하기 전에 부전으로 지냈던 절의 주지 스님이 이 소식을 들었다.
주지 스님은 호미 도인의 식광을 바로잡아 주겠다는 심사로 그 증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호미 도인을 만나기로 작정을 하였다.
호미 도인 만나러 가니 마침 호미 도인은 마루에서 차담을 먹는 중이었다.
주지 스님은 군에 가기 전의 옛날 햇병아리 시절의 호미 도인만을 생각하고 보자 마자 대뜸 거칠게 말을 꺼냈다.
“야 너, 그 무슨 망령된 짓이냐? 아직 학인 주제에 법상에 오를 때가 아니지 않아?”
“흥 당신이 뭔데 내가 법상에 오르고 안 오르고 그걸 시비해. 주지면 눈에 뵈는 게 없나, 나를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리지?”
호미 도인이 하도 당당한 자세로 앉아서 소리치니까 주지도 잠시 움찔하였다.
“야 너, 내가 네 밑천 잘 알지 않어? 쥐뿔도 없는 게 벌써 상단법이야”
호미 도인도 물러나지 않고 말하였다.
“좋소, 나를 잘 안다니 어디 한번 서로 시험해 봅시다.”
이 말을 마치고 호미 도인은 부엌에 가서 식칼 두 자루를 꺼내와 마루 위에 꽂아 세웠다.
호미 도인이 주지를 바라보면서,
“주지 양반, 칼 한 자루를 어서 잡아! 나도 칼 한 자루를 잡아들 테니.”하고는 칼을 정말로 잡아들었다.
“내가 주지 스님과 같은지 다른지 겨뤄봐야 알지. 서로 칼로 찔러 보면 무언가 다를 것이야!”
막상 이렇게 나오자 주지는 새파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야 그만둬라. 이게 무슨 짓이냐?”
“뭐라고, 이제 그만두자고? 당신은 내가 쥐뿔도 없다면서 왜 꽁무니를 빼?”
호미 도인이 고함을 치면서 칼로 주지 스님을 먼저 찌르겠다고 덤벼드니 주지 스님은 기절초풍하여 싹싹 빌었다.
“야 야 그만 하자 내가 잘못 봤다.”
그러나 호미 도인은 그 말을 들은 척도 않고 칼을 휘두르니 주지 스님은 고양이 앞의 쥐가 되었다.
그 뒤로 호미 도인은 주지 스님의 후의(庫意)로 예전 군 입대 전에 부전살이하던 절에서 방을 한 칸 차지하고 가히 조실 스님처럼 행세한 적이 있었다.
그는 방 벽에, “깨달은 이는 들어오지 말라(悟道者不入)”
하는 글귀를 붓으로 큼직하게 써서 붙여 놓고 방문객을 맞이하였다.
할(喝)과 방(棒)을 자유자재 휘두르던 그 호미 도인은 지금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