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봄 서울 잠실의 대표적인 먹자골목인 신천에 1억5000만원을 들여 테이크아웃 전문점을 낸 강모(36)씨는 상권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창업에 실패했다.“강남역은 주변에 회사가 많아 직원들이 커피를 사들고 사무실로 들어가요. 또 옷가게나 서점 등도 많아 커피를 사들고 ‘무언가’를 할 수 있죠. 하지만 여긴 주변에 회사나 쇼핑가가 전혀 없는, 말 그대로 ‘먹고 마시는’ 유흥가예요. 그런데 왜 커피를 사들고 밖을 헤매겠어요. 차라리 의자도 푹신하고 분위기도 좋고 커피도 리필 해주고 케이크도 공짜로 주는 일반 커피전문점을 가겠죠. 또 커피를 즐기는 이는 주로 20대 중반 이후 여성인데, 여기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 오니 타깃 연령층도 맞지 않았고요. 1년 넘게 적자를 내다가 결국 가게를 처분해야 했어요.”
4. 창업 실패사례 - 편의점/PC방(진입장벽에 대한 Risk분석 실패)
유망업종 = 경쟁업종
유망하다는 업종에 무분별하게 뛰어드는 것도 실패의 1순위다. ‘유망업종’이란 이미 경쟁이 심한 성숙기 업종이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뜻하기 때문.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2001년 명예퇴직한 김희준(가명·44)씨. 재취업을 위해 50여군데 회사에 이력서를 보냈지만 한 군데서도 연락을 받지 못하자 소규모 창업을 결심하고 24시간 편의점 프랜차이즈의 문을 두들겼다. 회사와 이익을 나눠야 하고 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점포를 열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중년에 소자본으로 창업하기에는 그만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때만 해도 최고 유망업종이라고들 했다.
“한 달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저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했어요. 하지만 자본이 모자랐기 때문에 보증금이 싼 대신 이익의 40%를 가맹주가 가지는 조건으로 본사와 계약을 맺었죠. 또 B급 상권으로 보였지만 전세가 비교적 싼 수도권 한 지역에 자리를 잡았어요. 신도시라 발전할 가능성이 있어 보였고 작은 상권이다 보니 다른 편의점이 들어서지 않을 거라고 맹신했죠. 하지만 이것이 문제였어요.”
가족과 함께 밥 한번 먹지 못하고 밤새어가며 열심히 일했다. 그랬더니 본사 이익과 아르바이트 비용을 제외하고도 매달 300만원의 수익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문을 연 지 1년도 안 돼 그의 점포 300m 옆에 훨씬 큰 규모의 경쟁 프랜차이즈 편의점이 들어섰다. 고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 달 동안 30% 세일을 했다. 그러자 손님은 좀 늘었는데 마진이 낮아져 매출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매달 손에 떨어지는 돈이 150만원이 채 안 됐다. 궁여지책으로 심야 아르바이트를 없애고 온 가족이 매달렸지만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2004년 4월 본사와의 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그는 1000만원의 손해를 입은 채 사업에서 손을 떼었다.
PC방 체인은 요주의
“편의점은 아무나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만큼 경쟁이 치열한 업종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죠. 또 본사와 물류센터, 푸드회사, 가맹주가 이윤을 나누기 때문에 고생한 것에 비해서 마진도 적었고요. 또 프랜차이즈 본사만 믿고 목이 좋지 않은 곳에 작은 평수의 점포를 택한 것도 큰 실수였죠.”
취재중 만난 ‘시장에서 잔뼈 굵은’ 한 상인은 “화이트칼라 명퇴자들이 바로 프랜차이즈의 밥”이라고 강조했다. 사업 초보자다 보니 대부분이 본사의 기술과 홍보력을 이용하는 프랜차이즈를 택하지만 가맹비, 로열티, 보증금 등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 기대한 만큼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 또 어떤 아이템이 뜬다 하면 이와 관련된 프랜차이즈 본사가 수십 개 생기는 만큼 ‘옥석’을 가리는 것도 중요하다.
따라서 프랜차이즈 창업을 하려면 경쟁력 없는 사업모델을 가졌거나 전문성을 보유하지 못한 회사, 인테리어 물류 등 프랜차이즈 관련 인프라가 부실한 회사, 운영자금이 없는 회사가 아닌지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퇴직금 등 1억5000만원을 모아 2002년 서울 광진구에 PC방을 창업한 전직 은행원인 강모(44)씨. 당시 꽤 이름을 날리던 S체인점을 이용했다. 본사가 원하는 대로 평당 140만원을 주고 30평 규모의 인테리어를 했다. 하지만 곧 냉방배선이 고장났고 문짝이 내려앉았다. 다른 인테리어 업자에게 물어봤더니 “평당 50만원짜리밖에 안 된다”고 했다. 본사가 가맹비(1000만원)뿐 아니라 인테리어비로만 평당 50만원씩 남긴 것이다. 강씨는 즉각 항의했지만 본사로부터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한 지적재산권 비용, 인테리어 업자에 대한 교육비와 소개비 때문”이라는 군색한 변명만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창업 6개월 후 강씨의 점포에서 불과 150m 떨어진 곳에 같은 체인점의 PC방이 들어섰다. 하지만 본사에선 “학생이 많이 다니는 등 입지가 좋으니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신규 PC방이 4개나 오픈했고 그중 하나는 규모나 시설 면에서 강씨 PC방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장사를 포기하고 부동산에 ‘권리금 없는 매각’을 의뢰했다. 보증금 2000만원을 제외하면 1년6개월 만에 대략 1억원의 손실을 봤다.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PC방은 절대로 체인을 끼지 말라’고 하더군요. PC방이라는 게 최신형 컴퓨터 시설을 갖춰놓으면 손님이 찾아오기 마련이거든요. 굳이 가맹비를 내고 프랜차이즈 노하우라는 걸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거죠. 또 PC는 사는 즉시 구형이 되고 아무리 다른 PC방이 들어오지 못할 입지라 생각해도 경쟁점포는 반드시 생기기 때문에 PC방은 투자자금을 최소로 해서 딱 1년만 하면 좋은 사업이라고 해요. 하지만 전 부실 프랜차이즈를 이용하는 바람에 돈도 더 들었고, 버벅거리는 컴퓨터를 간신히 업그레이드해가며 1년 넘게 끌었으니 실패할 수밖에 없었죠.”
2. 창업 실패사례 - 솔루션 창업(수요 무시한 창업)영어학원
개발과정 장악 못한 문외한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간 업종을 선택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 영업직에서 근무하던 이재흥(가명·50)씨는 이른바 ‘닷컴 열풍’이 한창이던 2000년 2월 e비즈니스 교육을 제공하는 (주)웹비즈컨설팅을 세웠다. 회사는 CEO 대상 e비즈니스 교육 외에 사설학원용 사이버 교육 솔루션 제작을 주 사업영역으로 삼았다.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고 지인들의 투자를 받아 2억원을 마련했다. 사이트가 완성돼 수익모델이 구체화하면 당시 유행하던 ‘인터넷 소액 공모’를 통해 10억원을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었다. 서울 양재역 근처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웹 프로그래머와 웹 디자이너 등 직원 11명을 뽑았다.
“그런데 저는 웹 프로그램이나 웹 디자인에 문외한이었어요. 솔루션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몰랐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개발 과정을 ‘장악’할 수가 없었죠. 4개월로 예정된 사이트 구축은 2개월 이상 지연됐어요. 또 당시는 회사마다 웹 관련 기술자를 스카우트하던 때라 만약을 대비해 필요 인력보다 많이 채용해 인건비가 2배 이상 들었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닷컴 열풍이 얼어붙으면서 2차 펀딩도 무산됐어요.”
2002년 8월 간신히 CEO 교육용 사이트를 완성해 영업을 시작했으나 생각만큼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 CEO들이 컴퓨터로 e비즈니스 교육을 받는다는 발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고육책으로 학원 사이버교육 솔루션 쪽으로 집중했지만 대부분 사설학원 강사들이 자신의 강의가 인터넷으로 공개되는 것에 반대해 난항을 겪었다.
결국 사업을 시작한 지 10개월 만에 어음 2000만원을 막지 못해 부도를 냈고, 이후 1년을 더 버티며 재기를 모색했지만 2001년 11월 폐업하고 말았다.
“오랫동안 영업직에서 일한 만큼 비즈니스 분야에 대해선 최고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이버 교육이 막 시작되던 때라 제가 가진 뛰어난 콘텐츠를 인터넷으로 제공하면 사업이 되겠다 싶었죠. 하지만 태동기다 보니 콘텐츠 자체보다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술력이 더 중요했는데, 제가 그쪽에는 무지했거든요. 또 젊은이에게나 사이버 교육이 겨우 알려지던 때에 중견 CEO를 타깃으로 잡았으니 사업이 될 수 없었고요.”
그는 “이젠 사이버교육이 일반화했기 때문에 기술력이 아닌 콘텐츠로 승부하는 시기”라며 “차라리 지금 창업한다면 ‘훌륭한 콘텐츠’라는 나만의 핵심역량이 있으니 큰 성과를 거둘 텐데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며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