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촌면의 연혁
조선조때 현감(현감)을 두었다가 26대 고종 32년(1895)에 군이 되어 화촌면(花村面), 두촌, 내촌, 서석, 영귀미(동면), 감물악(서면), 금물산(남면), 현내, 북방면 등 9개면을 두었을 때 화촌면이라 명명되었다. 그후 1917년 현재 불리고 있는 화촌면(化村面)이라 명명되었다. 면의 소재지는 본래 구성포리에 두었다가 지금의 성산으로 옮기게 되었다. 6.25 동란으로 면사무소가 소실되어 2년간 외삼포리에 면사무소를 임시로 설치하였다가 1954년 현 위치로 정상복귀 하였으며 1987년 12월 현대식 2층 건물로 신축하였다. 홍천읍에서 동해안으로 가는 44번 국도변에 위치하며 군청소재지에서 13.89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동쪽에는 홍천강을 경계로 내촌면과 서석면이 접해있고 서쪽에는 홍천읍이 남으로는 공작산을 경계로 동면, 북으로는 해발 1,051m의 가리산을 비롯 춘천군 동산면과 접해 있다. 전형적인 농촌지구로 전이 55%, 답이 45% 차지하고 있으며, 풍천리에서는 전국 생산량의 약 70%를 생산하는 잣 생산지로 유명하며, 성산리와 송정리를 위주로 국도변에 상점 및 제조업체가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
송정리 |
홍천읍에서 44번 국도변에 8km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동편에 흐르는 홍천강을 끼고 있으며 옛날 소나무가 많았고 정자가 있어 송정이라 불리웠으며 1916년 만내 부락,새점말 부락을 병합하였고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1946년 개교된 구송초등학교가 있고 학교 앞에는 굴운리로 건너가는 새마을교량이 1975년에 준공되어 여름철 피서객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기도하다. |
굴운리 |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점말, 큰골, 작은골을 병합하여 굴운리라 하였다. 1970년대초 굴운 저수지가 완성됨으로서 굴운리와 와동리 일대가 쌀 주산지가 되었고 강태공들의 낚시터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1975년 5월 준공된 165m 의 굴운교가 가설됨으로서 굴운리 주민은 물론 홍천읍 와동리 주민까지 천녀의 한이 풀리고 1980년 3월부터 시내버스가 운행되기 시작해 교통이 편리해졌다. |
구성포리 |
풍천리 상류로부터 흘러내리는 소하천 유역에 형성된 마을로 물굽이가 이홉번 굽이쳐 구성포리라 불리워졌다. 마을 중심으로 44,56번 국도가 교차하는 곳으로 91년 56번 국도가 포장됨으로서 교통 중심지로 변모하고 있기도 하다. 전평, 돈두루, 신내, 둔덕촌, 오림촌, 오리숲말, 백이동, 와가촌의 자연부락으로 되어 있으며 2리 지역에는 논틀말, 무랭이, 무수터 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가축을 많이 사육하고 있다. 이 밖에도 양봉의 적지로 꿀 생산량이 많으며 구기자, 호프, 더덕, 자소엽 등의 특용작물도 많이 재배되고 있는 곳이다. 신내지역은 국도가 개설되기 이전인 1932년까지 소금배가 들어왔던 곳이며 우마차가 쉬어가는 주막과 여인숙이 많았고 그 당시 서울에서 알아주는 막국수 집이 있었다 한다. |
풍천리 |
본래 춘천군 동산면 지역으로 1973년 7월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홍천군 화촌면으로 편입되었다. 산간 오지에다 교통이 불편하고 면적도 광범위해서 가구수에 불문하고 풍천1,2리로 나누었다. 모든 주민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소와 양봉등 축산도 많이 하고 있는 부락이다. 또한 이곳 풍천리 일대에는 350여ha에 20여만 그루의 잣나무 밀림에서 해마다 잣 채취 작업으로 얻은 수입이 주업인 농업 수입보다 높은 편이다. 이곳 잣나무단지는 1936년 일본인 野村德七이 북방면 북방리와 풍천리 600여ha에 조림한 것으로 연간 5∼6백 가마의 잣이 생산돼 총 잣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웃버덩, 덕밭재, 장재울, 변가터, 신내, 새터, 벌대울 등의 자연부락으로 되어 있다. 1978년 10월에 전기가 들어왔으며 시내버스는 1981년 5월부터 운행하고 있고 1991년도에 56번 국도가 포장됨으로서 주민 교통편의는 물론 여름철 관광객 유치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2리 신내에는 구송초등학교 영신분교가 1953년 설립되었는데 당시 이지역 이장 김영배씨와 주민 장신환씨의 교육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학교 설립에 온갖 정성을 다해 그뜻을 기리기 위해 두분의 이름을 따서 영신이란 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이곳 풍천리는 전국 제1의 잣나무 단지를 보호 관리하기 위한 원주 영림서 홍천관리소 풍천출장소가 있다. |
외삼포리 |
삼정포의 바깥쪽에 되므로 외삼정포 또는 외삼포라 하였는데 홍천현의 현감을 이곳에 설치하였었다고도 하며,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건금리, 대평리를 병합하여 외삼포라 하였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며 일부 축산업에 종사하는 주민들도 있다. 이곳 삼포에는 1954년 9월 13일 개교된 화촌중학교가 자리하고 있으며 밀성박씨의 집성촌으로 1885년 봄 충정공 민영화(1860년 출생 고종15년 문과급제, 1905년 을사보호조약 체결을 반대하고 자결)이 이곳에와 박씨문중의 규수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기도 한 곳이며 면 소재지와는 홍천강이 흐르고 있어 성산과는 가깝고도 멋 생활을 해 왔으나1986년 마을앞에 120m의 교량가설과 그 이전인 1959년에[ 놓여진 대진교와 1974년에 새마을 사업으로 완공된 성포교로 인하여 주민생활에 편의를 제공하는 한편 원활한 교통을 가능케 했다. 이곳은 큰들이 있어 대평동이라 불리는 대평부락과 건금리 지역은 논이 많아 쌀의 주 생산지가 되었다. 마을 앞강은 물이 맑고 깨끗하며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광대소에는 각종 물고기가 서식하며 대진교 부근에 있던 대진나루터는 1959년에 다리가 놓여짐으로서 나루터는 옛말이 되었고 1974년 놓여진 성포교 부근의 나루터는 이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학생 및 지역 주민의 교통수단으로 이용돼오다 이제는 흔적도 찾을 길 없는 옛말이 되었다. 논이 적고 밭이 많았지만 비옥치 못하다하여 붙여진 건금리 지역은 1987년 경지정리가 되면서 척박한 땅이 비옥토로 바뀌는 탈바꿈을 하였고 인조 23년(1645년)에 건립된 와난이씨열녀문이 1978년 말끔히 보수되어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
내삼포리 |
본래 홍천군의 옛 고을터로 전해지는 이곳은 삼정포의 안쪽이 되므로 내삼정포로 불리우다가 내삼포로 명명되었다. 구렁말과 사창골, 노냇골 등의 자연부락이 있고 복골, 가망골, 노내골 등의 골짜기도 있으며, 이곳엔 지금도 대궐터가 있다고 한다. 홍천읍에서 동북쪽으로 12km 떨어진 이마을은 농업과 축산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1969년에 전기가, 1974년에 시내버스가 운행을 시작 주민 편의에 큰 몫을 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1955년 설립된 삼포초등학교가 있다. |
성산리 |
옛 성이 있었다고 하며 구성포리쪽에 있는 진등고개 산이 마치 성을 쌓은 것 같다하여 성산이라하며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앞말, 뒷말, 일건, 새말, 원평, 석정동, 답골, 점촌 등을 병합하여 성산리라 하며 1976년에 1,2리로 분리되었다. 면의 중심지로 면사무소를 비롯 면단위 기관들이 자리하고 있고 이미 1925년에 개교한 화촌초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시내버스 운행 이전에는 장이 서던 곳으로 농업이 주를 이루고 상업에 종사하는 주민과 공무원, 군인이 살고 있다. 1971년 9월에 전기가 들어오고 1976년 3월부터 시내버스가 통행하여 교통이 편리한 곳으로 이곳에 조선조 정종때 박영철의 효행을 기리는 화성단이 있다. |
야시대리 |
본래 홍천군 화촌면 지역으로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무랭이, 무지기, 벌말, 갈공터를 병합하여 야시대리라 하였다. 1리와 2리로 분리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주민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1963년 벌촌초등학교를 설립 운영해오다가 학생수 감소로 현재는 분교로 되었다. 1973년에 전기가 들어오고 1978년에는 전화가 설치되고, 성산에서 시내버스가 들어와 교통도 편리해 졌다. 1981년 벌촌에서부터 2리의 양짓말까지 4km구간의 도로가 개설되고 1982년에 귀미말 교량이 가설됨으로서 주민생활에 큰 편리를 제공하고 있다. 주로 많은 면적이 임야이고 마을은 개울을 따라 올라가면서 곳곳에 부락을 형성한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주음치리 |
본래 홍천군 화촌면 지역으로 술음재고개 아래있는 부락으로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업,밤나무골, 부못골, 문바웃골, 품새, 삼맛골을 통합하여 주음치리라 한다. 성산에서 동북으로 3km 떨어진 이 지역은 홍천강이 마을 앞을 구비쳐 흐르고 강건너 국도는 말고개 낭떨어지여서 교통이 매우 불편한 곳이었다. 1985년 12월 골박 지점에 102m의 교량을 가설, 말고개 중턱 비탈길로 연결 국도까지 연결함으로서 생활에 편리를 가져오게 되었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소, 닭, 양봉들도 많이 사육하고 있다. 6·25당시 적군의 탱크를 육탄으로 방어하여 전사에 길이 빛난 전적지인 말고개와 육탄용사의 위용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
군업리 |
본래 홍천군 화촌면 지역으로 군업이라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군들, 나븐들,, 도광터, 답연들, 말골, 조가터를 병합하여 군업리라 한다. 1리와 2리로 분리되어 있으며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며 가축과 호프, 고추, 담배등 특용작물도 많이 생산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공작산 북쪽에 자리한 곳으로 당무에는 당무분교가 있고(1953년 설립) 당산이라는 전설이 깃든 산이 있으며 산신제를 큰 두렁골에서 3년마다 지내고 있다. 2리 지역에는 1963년 설립된 군업분교가 있고 학교 뒷산에는 박정숙 열녀비각이 있으며 마주보이는 곳에 명륜사의 김규현 효자비각이 있어 이곳이 충절과 예의바른 고장임을 알게한다. 양짓말쪽의 산기슭에는 아양정이 있어 남녀노소가 많이 찾아드는 곳이다. 공작산에서 발원한 골짜기를 따라 오르다보면 높이 20m 정도의 폭포가 있으며 주위의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옥수수 엿을 생산하던 부락으로 현재 엿공장이 마을에 자리하고 있으며 마을을 지나는 56번 국도변에는 강원도 지정기념물 제56호인 군업리 지석묘군이 자리하고 있다. |
장평리 |
본래 홍천군 화촌면 지역으로 긴들 옆이 되므로 진들, 진둘 또는 장평이라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골말, 노루터, 마전동, 솔치, 신뱃공을 병합하여 장평리라 하였다. 1리와 2리로 분할되어 있으며 주민 거의 모두가 농업에 종사하며 고추, 호프등 특용작물도 많이 재배하고 있고 인근 산에서는 더덕, 취나물, 고사리 등의 산나물도 많이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1리에는 성황당이 4개소에 있는데 매년 음력 정월 초닷새날 성황제를 성황제를 지내고 있으며 솔치고개 아래에 있는 부락이다. 2리에는 1939년 4월 설립된 군평초등학교가 있으며 사기규 효자문이 동리 어귀에 자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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