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물살을 거스르는 헤엄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어린 시절 나에게 가장 멋진 곳은 집에서 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강이었다. 뒷문으로 나가면 우리는 30초 내로 강둑에 올라설 수 있었다. 나는 그 강에서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었다. 상류로 헤엄쳐 올라가는 것은 고되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하류로 내려가는 것은 아무런 힘도 들지 않는다. 심지어 죽은 동물도 하류로 떠내려간다. 살아서 계속 물장구를 쳐야만 방향을 거스를 수 있다.
사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물결을 거스르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 삶은 죄, 나태함, 부주의의 물결을 따라 흘러내려가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떠가는 것은 쉬운 길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든 세상의 흐름을 따르는 사람은 성령의 물결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호세아 11장 4절에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대하시는 방식을 설명하면서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다라고 했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세상을 책망한다고 하셨다. 예레미야 31장 3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하나님의 성령은 세상을 책망하면서 자신에게로 이끄신다. 수많은 사람이 불안을 겪는 이유는 하나님의 이끄심에 줄기차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길을 잃고 싶다면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호소,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의 은혜를 저버리기만 하면 된다.
오늘 그분의 이끄심에 저항하지 말라. 마음을 예수께 바친 사람은 하늘의 초청을 거절하는 것이 얼마나 고생스런 일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물줄기를 거슬러 헤엄칠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기 가슴에 묶어 데려가고자 하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선교지에서 헌신하는 선교사들을 더 잘 섬길 수 있도록
5월 2일
어느 길인가?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6:25)
영국 개트윅 공항에 도착한 뒤 런던의 빅토리아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한 번도 유럽에 가 본 적이 없는 20대 초반이었던 내게는 그곳이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큰 역이었다. 매년 8,000만 명이 빅토리아역에서 출발하거나 도착하며 수백만 명이 이곳에서 환승한다.
빅토리아역은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진짜 문제는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지하철 승차권을 끊는 일이었다. 승차권 발매기는 난생처음 보는 기계였다. 승차권을 겨우 끊은 다음에는 목적지로 가는 길을 알아내야 했다. 아무 열차나 무작정 올라타지 않고 지도를 펴서 신중하게 안내를 따랐다. 지도가 없었다면 결코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경은 그럴싸해 보이는 일이 그럴싸하지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할 수도 있고 지혜로운 일,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할 수도 있다. 성경은 문제투성이 세상에서 우리가 길을 찾고 하늘까지 이르도록 돕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지도이다. 전설적인 야구 선수 요기 베라는 “갈림길에서는 선택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선택을 피할 수 없는 때가 있다. 선택이란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믿을 만한 지시와 지침을 주셔서 우리를 바른 곳에 이르게 하신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에 의지한다면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그분의 이끄심을 확신할 수 있다. 모세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이끄셨다. 여호수아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원수를 물리치셨다. 솔로몬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를 주셨다. 솔로몬이 무너졌을 때는 자기 좋은 대로 했을 때이다.
하나님의 길이 아니라면 옳은 길이 아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의권, 스즈키 에리코 선교사 부부(일본)
구지카와 삼육초등학교 학생 모집과 학생·학부모 전도를 위해
5월 3일
최상의 방법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9)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남부 도체스터의 쇼핑몰에서 어느 노숙자가 현금과 여행자 수표 등 4만 달러가 들어 있는 배낭을 발견했다. 정직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던 그는 경찰에게 가방을 넘겨주었다. 가방 주인은 원래 상태 그대로 가방을 돌려받았다. 보스턴 경찰서는 돈 가방을 돌려준 글렌 제임스에게 표창했다. 제임스의 정직함에 감명받은 버지니아의 한 남성은 온라인 성금을 시작했고 사흘 만에 10만 달러가 모금됐다. 빈털터리였던 제임스는 습득한 거액을 그대로 돌려준 덕분에 전혀 상상도 못한 보상을 받게 된 것이다.
복음의 원리도 그와 같다. 삶을 하나님께 드리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긴다.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이런 질문을 드렸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마 19:27). 그러자 예수님은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버리는 사람은 누구든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받을 것이라고 하셨다(29절). 아무도 예수를 선택해 손해를 볼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정직해서 피해를 본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리라고(삼상 2:3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4만 달러를 주운 사람은 대부분 시험에 빠질 것이다. 재산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면 그 유혹은 더 클 것이다. 간편한 방법은 돈을 챙기고 그 돈으로 필요한 것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큰 보상을 안겨 준 것은 정직함이었다. 예수를 위한 선택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우선순위는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아니다. 가장 위대한 선물은 영원한 삶이다. 머지않아 예수께서 돌아오셔서 자기 자녀들에게 귀중한 선물을 주실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효수, 김윤주 선교사 부부(터키)
수년 내에 현지인 사역자가 많이 배출되어 현지인들이 선교 사역을 계속할 수 있도록
5월 4일
수호천사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 18:10)
나는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언젠가부터 지금껏 믿어 왔던 것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존재는 결코 의심하지 않았지만 몇 가지 교리에 대해서는 내가 옳게 배웠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성경을 찾아보니 틀린 교리가 많았다. 아버지는 늘 나에게 수호천사가 있다고 했고 나는 그 이야기도 의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옳았음을 성경에서 확인하고 나서는 크게 안심이 되었다. 수호천사들은 정말 나를 지켜 주었다!
하나님께서 지정한 수호천사의 존재는 어린아이였던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천사들은 “능력”이 있고(시 103:20),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았다. 그들은 우리를 보호하고 구하고 하늘의 복을 가져다준다.
성경에는 천사들이 자주 등장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이 생각보다 더 가깝다며 용기를 주신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 중에는 천사와 교류한 사람들이 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을 찾아갔고(단 8:16~17; 9:21), 사가랴(눅 1:19)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26~27절)에게도 찾아갔다. 천사들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베드로에게 말했고(행 10:3~6) 빌립을 사막 한가운데로 보내 에티오피아 신하를 만나게 했고(행 8:26~27) 베드로를 감옥에서 꺼내 주었다(행 12:7~9). 여전히 천사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격려, 희망, 도움을 주고 있다.
천사들은 예수님의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을 항상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와 손주들은 물론 부모,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이 사실을 믿고 안심할 수 있다. 하늘의 도우미들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효신, 이은화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힘들게 사는 캄보디아 국민의 ADRA 구호 활동을 위해
5월 5일
걱정할 필요 없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 8:5)
특별한 순간에 천사들이 개입하여 누군가를 지켜 내고 구해 내는 장엄하고 기적적인 이야기를 읽으면 힘이 솟는다.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 젊은이들이 성경을 나누어 주고 있을 때 어느 가정의 어린이가 부모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저 사람들 뒤에 서 있는 키 큰 남자는 누구인가요?” 아이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자 젊은이들은 그제야 천사가 그들의 사역에 함께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큰 용기를 얻었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다.
올러빈 네이도 보너가 어린이를 위해 쓴 책 『눈보라를 뚫고(Into the Blizzard)』에는 용감한 문서전도인 잭 재커리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재커리는 컴컴한 밤에 산비탈을 홀로 걷다가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하게 자신을 붙잡는 손길을 느꼈다. 벼랑 끝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하나님의 특별한 심부름꾼이 자신을 붙잡아 큰 사고를 면했음을 깨닫고 그는 소름이 돋았다.
방금 도움을 준 사람이 갑자기 눈앞에 보이지 않거나 눈길 위에 나 있던 그의 발자국이 갑자기 끊어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천사들은 성경 시대에 사람들과 교류했듯 지금도 놀랍고 신비로운 방법으로 활약한다. 천사들은 보통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천사가 항상 곁에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하늘에 가서야 천사들의 활약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하나님의 천사가 개입해 도움을 주었음에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우연’이나 ‘행운’은 하늘 천사들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지어졌다고 말한다(시 8:5, 개역). 천사는 사람보다 뛰어난 존재로 창조되었다. 그 천사들이 우리를 위해 봉사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즐겨 받들며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자녀는 모두 알고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교린, 이미화 선교사 부부(아랍 에미리트)
걸프 필드 지역 20여 교회의 성장, 현지인 및 다국적 외국인 전도를 위하여
5월 6일
마음 푹 놓아도 된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시 103:20)
나는 천사를 직접 본 적이 없다. 어떤 이들은 빛나는 존재 혹은 하늘의 천사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누군가를 보기도 했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천사와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한 번 있다.
국제선 비행기를 타려고 워싱턴 D.C.로 가는 중이었는데 악천후로 길이 순탄치 않았다. 급기야 오하이오주의 어느 주유소에서 자동차가 퍼졌고 제때 공항에 도착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바로 그때 그를 만났다. 키 크고 가무잡잡한 얼굴에 구릿빛 수염을 가진 사내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내가 상상했던 천사의 모습과 똑같이 생긴 사내였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나에게 해피엔딩을 선사하려고 천사를 보내셨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사내가 차에 손만 대면 엔진이 다시 우렁차게 움직일 것이고 우리 모두가 깜짝 놀라는 사이 그는 홀연히 사라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한 사마리아인은 사실 차에 대해 잘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주유소 뒤편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은 천사가 아니었음을 나는 깨달았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 이 시대에도 천사를 만난다. 그러나 다른 수많은 사람은 천사를 만나고도 깨닫지 못한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
“섬기는 영”인 천사들은 강하다. 하나님은 선악 간의 대쟁투 속에서 천사들이 우리 곁에 있다면서 우리를 격려하신다. 천사들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 일했듯 오늘날도 자비와 도움을 베푸느라 바쁘다. 하나님은 우리가 혼자 힘으로 살아가도록 버려두지 않으신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힘을 주시고 예수님을 만나게 하신다. 또 힘센 천사들이 우리를 돕기 위해 파견되었다. 마음 푹 놓아도 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PMM(목회자 개척 선교 운동)
세계 곳곳에서 사역하는 PMM 선교사들의 영적 리더십을 위하여
5월 7일
코앞의 도움
“여러분은 시온산에 이르렀으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 하늘의 예루살렘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수많은 천사들이 기뻐하며 함께 모여 있는 곳입니다”(히 12:22, 쉬운).
요즘 세상은 분명 ‘예전’만 못하다. ‘예전’ 세상도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이 세상이 점점 하늘을 닮아 간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우리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계 12:12). 모든 것이 마귀의 손아귀에 놓인 듯한 세상의 모습에 낙심한 교인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다른 계획이 있다.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지위를 잃었을 때 천사 3분의 1도 하늘에서 반역했다.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계 12:4). 사탄이 타락했을 당시 하늘에 천사가 몇이나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매우 많은 수였다. 그러니 이 세상에 이다지도 죄악이 넘쳐 나는 것이다. 악에 빠진 천사들은 수십억 악인을 발판 삼아 엄청난 악행들을 부추길 수 있다.
그럼에도 좋은 소식이 있다. 고약한 악마가 엄청나게 많지만 거룩한 천사는 그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선지자 다니엘은 천사의 수가 천천이요 만만이라고 했다(단 7:10). 또 히브리서 12장 22절에서는 그들을 “수많은 천사들의 무리(우리말)”라고 묘사한다. 수많은 천사의 무리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손이 모자랄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수많은 천사들의 무리” 덕분에 하늘은 도움을 제공할 여력이 충분하다. 우리 시야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리스도와 사탄 간의 대쟁투는 이미 오래전에 결판난 것이다. 예수께서 천사 무리의 사령관으로 계시는 한, 분명히 하나님 편이 승리를 거둔다. 그리스도의 의를 앞세우며 그분의 지도를 따르는 사람은 이기는 편에 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지훈, 신은주 선교사 부부(미얀마)
한국에서 수술을 마친 크리스티 어린이가 부작용 없이 잘 성장하도록
5월 8일
보초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시 34:7)
시편 34편 7절에는 격려와 확신이 가득하다. 그 내용은 일종의 약속이다. 다윗이 어떤 상황에서 이러한 말을 했는지 앞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6절). 다윗은 하나님의 강한 천사들이 우리를 지키고 구한다는 점을 되새겨 준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자신의 모든 자녀를 보살피게 하셨으며 그 천사는 번번이 우리를 고통에서 건져 낸다.
사자 굴에서 구원받은 다니엘은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다고 밝혔다(단 6:22). 예수의 아버지 요셉은 꿈에서 천사가 나타나 어린 예수와 마리아를 데리고 이집트로 도망치라는 말을 들었다. 이집트는 예수를 죽이려던 사악한 왕 헤롯으로부터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마 2:13).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히 괴로워하실 때도 천사들이 나타나 힘을 더했다(눅 22:43). 또 예수의 무덤을 지키던 자들도 천사 한 명이 나타나자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다(마 28:4).
강한 천사가 도와준다는 약속이 하나님의 자녀 모두에게 주어졌다. ‘차를 몰다 사고가 났을 때 그런 보호를 못 받은 것 같은데요?’ ‘제 가족이 죽을 때 천사는 어디 있었나요?’ ‘천사는 음주 운전자도 못 막고 뭘 한 건가요?’라는 질문도 당연히 던질 수 있다. 이러한 질문은 간단히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비극이 일어나고 어려운 일도 생긴다. 심지어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도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한다.
하지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천사가 활동하지 않았다고 하나님을 탓하기보다는 매일매일 천사의 도움으로 부상과 죽음에서 보호받았다고 감사하는 편이 더 낫다. 천사들이 보호해 주고 도와준 덕분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안전하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여호와의 천사”가 보호하지 않았다면 사탄과 악한 천사들이 모든 하나님의 자녀를 파괴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용기를 내자. 하늘의 천사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정태, 김성진 선교사 부부(베트남)
베트남대회 목회부장의 소임을 잘 감당하도록
5월 9일
더 기다리신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눅 13:8~9)
몸무게가 240kg이나 되는 맥은 살을 좀 빼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에도 체중 감량을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엄청난 몸무게 때문에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이 2대나 망가졌다. 140kg 감량은 쉽지 않은 일이며 분명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그는 달성 가능한 작은 목표들을 세워서 조금씩 몸무게를 줄여 갔다. 현재 맥은 하프 마라톤과 자전거 경기에도 참가한다. 몇 년 전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맥은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의 인내심은 체중 감량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인내심이 없었다면 맥은 어떤 성과도 이루지 못하고 포기했을 것이다. 140kg 감량처럼 어떠한 일을 해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님도 인내하는 분이시다. 하늘로 향하는 여정에서 자기 자녀가 간혹 넘어져도 하나님은 이해해 주신다. 길 잃은 자들도 기다려 주신다. 예수께서도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다. 포도원 주인이 열매 맺지 못하는 감람나무를 베어 버리려고 하자 일꾼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부탁한다.
우리가 영생을 위해 준비될 수 있도록 하나님은 더 기다려 주신다. 영광스런 열매를 맺지 못할 듯싶은 자들도 내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죄인과 함께하면서 꾸준히 그들을 이끄실 만큼 은혜로우시다.
어느 정원사가 완전히 벌레 먹은 어린 토마토 가지 하나를 발견했다. 줄기만 남았지만 회복될 때까지 인내하며 정성 들여 보살폈고 그 토마토 줄기는 정원에서 가장 많은 열매를 맺었다.
하나님의 인내심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하나님이 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녀들을 돌보신다는 점은 알수록 기분 좋은 일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고 함께 일하신다. 친절하고 참을성 있게, 영생을 얻도록 우리를 기르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에스라 선교사(기타 지역)
종교 박해국에서 선교사들과 성도들이 안전하도록
5월 10일
분쟁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눅 12:51)
성경은 예수님을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한다. 그분은 “유대 지파의 사자”(계 5:5)인 동시에 “죽임을 당한 어린양”(계 13:8)이시다. 예수는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요일 2:1, 공동)이며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다(마 1:23, 쉬운).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었지만(마 11:29) “노끈으로 만든 채찍”을 휘둘러 돈 바꾸는 자들을 몰아내고 상을 뒤엎고 그들의 부당한 수익을 흩어 버려서 성전을 깨끗하게도 하셨다(요 2:15).
성경은 예수님을 “평강의 왕”(사 9:6)이라 묘사했지만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눅 12:51)고 직접 말씀하셨다.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면 세상의 법칙과 반대로 살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복음은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과 육신의 삶을 좇는 세상 사람들 사이에 단절을 일으킨다.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약 4:4)이라는 말씀과도 일맥상통한다. 하나님과 친구가 되는 것은 세상과 척을 지는 것이다.
자신이 세상과 얼마나 잘 어우러질 수 있는지 보여 주려다가 실수를 저지르는 그리스도인이 많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때문에 불편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을 사로잡기 위해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워 버려서는 안 된다. 세상은 타협이 아니라 진실한 사랑을 보고 그리스도를 믿는다.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은 언젠가는 분쟁을 경험하게 된다. 새 신자가 된 사람은 가족과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동료들과 어울리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은 괴짜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리스도인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달라진 삶은 다른 이들의 어두운 삶에 빛줄기가 될 것이다. 예수를 믿기에 분쟁을 경험할 때는 그리스도께서 곁에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가 예수님과 한 덩이가 되면 사람들은 예수님께 이끌리고 예수님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조장원, 이성혜 선교사 부부(동인도네시아)
선교사들의 사역과 안정을 위해
5월 11일
지나침?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히 13:5)
과소비로 유명한 어느 회사에서 최근 내놓은 상품이 눈길을 끌었다. 10인분 저녁 식사를 25만 달러에 제공한다는 것이다(정상급 요리사 4명이 음식을 제공한다.). 시계는 110만 달러보다 약간 싸게 구입할 수 있고 암탉 10마리가 들어 있는 닭장은 10만 달러였다(그 닭들이 황금 알을 낳는 닭이라는 설명은 카탈로그에 없었다.).
하나님은 돈 자체를 반대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런데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했다(딤전 6:10). 바울 역시 돈 자체를 악이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돈은 여러 가지로 유혹거리이다. 예수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다(눅 12:15). 물론 훨씬 저렴한 것에 대해서도 탐심은 생길 수 있다. 또 값비싼 물건을 소유한 것이 탐욕이나 사치의 증거는 아니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돈을 쓰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누구나 ‘물질’에 집착할 수 있고 그러한 집착은 결국 고통을 가져다줄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삶, 자기 본위의 삶, 원하는 것을 당장 손에 넣으려는 삶이 영적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려 주고자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탐내지 말라고 하셨다. 오늘날 사회는 소비를 부추긴다. 손쉬운 신용 결제 덕분에 사람들은 자기 형편에 맞지 않는 물건도 마구 사들일 수 있다. 현대 경제는 이러한 소비를 전제로 한다. 바울은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된다고 조언한다(딤전 6:6). 성경은 소유를 나쁘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소유물이 우상이 되는 순간 우리의 영적 기반을 뒤흔들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욕심을 내라고 하는 것도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더 큰 은사들을 간절히 구하”라고 말했다(고전 12:31, 우리말). 예수님을 모시는 일이나 성령의 은사를 받는 일에는 지나침이 없다. 가장 좋은 것을 얻는 일에 마음을 모은다면 우리는 하늘 왕국을 향해 자라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삼육대학교 해외선교센터
유학생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SU-HERALD(본방인 선교사)가 될 수 있도록
5월 12일
자신의 길을 꾸준히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눅 11:53~54)
성경에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다. 그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유혹으로 가득한 거친 동네에서 자랐다. 예수님의 동네가 얼마나 악명 높았던지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라고 묻기도 했다.
예수님이 가장 큰 저항을 만난 것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랍비의 학교에서 교육받지 않은 예수님의 순결함과 지혜는 종교 관계자들을 향한 끊임없는 책망으로 작용했다. 격분한 그들은 “예수를 박해하”(요 5:16)고 또 죽이려고 하였다. 한번은 회중이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한 적도 있다(눅 4:29). 당국자들 역시 예수님이 거슬렸다.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눅 13:31)라는 경고를 받을 정도였다. 예수님의 삶은 위험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물리적 위협에서 벗어났을 때도 예수님은 악한 계획과 모략의 대상이었다.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었다(눅 11:54). 이러한 상황이 정신적, 신체적, 감정적으로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우리는 그저 짐작만 할 따름이다.
만약 사람들이 우리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고 꼬투리를 잡기 위해 말 한마디 한마디를 전부 듣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예수님은 끊임없는 반대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언제나 승리를 거두셨고 마음으로조차 죄에 빠지지 않으셨다. 예수는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끝없는 반대 공세를 견뎌 내셨다. 거의 모든 사람의 증오를 받으면서도 우리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그분은 매일 박해에 맞서셨다. 줄기찬 반대에도 예수님은 사명을 저버리지 않으셨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형우, 배현경 선교사 부부(일본)
일본 재림교회의 영적 강성과 부흥을 위해
5월 13일
외식하는 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마 23:25)
남들 앞에서 단정하지 못하고 망가진 모습을 보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들과 마주하기 전에 자신의 모습에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머리를 빗고 옷을 펴서 다림질한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외모에 집중하는 사람은 있어도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겉은 그럴싸해 보여도 속은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지적하셨다. 그분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하셨다(마 23:27~28).
겉치레에 속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예수께서 지적했던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신실하고 거룩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부패한 자들이었다. 예수님 덕분에 그리스도인들은 그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일서 1장 9절에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보증해 주신다. 구약 시대의 성소 봉사는 인간을 정결하고 의롭게 되돌리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임을 보여 준다. “이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레 16:30).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거하시며 자신의 거룩함과 의를 가져다주신다. 그리고 그 의는 예수를 따르는 삶에서 더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외식하는 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본래 ‘연기자’를 뜻한다. 복음의 능력을 힘입으면 어떤 죄인이라도 ‘가짜 연기’를 그만둘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진품이 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광성, 이은정 선교사 부부(대만)
복음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언어의 달란트를 위해
5월 14일
무엇이 가득한가?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단순히 옳은 교리를 고수하는 것만이 아니다. 성경적으로 올바른지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을 주장할 뿐 아니라 구주를 마음에 모시기를 바라신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그 삶에 하나님이 활동하시도록 허용해야 한다. 하나님을 우리 안에서 마음대로 활동하시도록 허용할 때 그분은 존귀와 영광을 받으신다. 예수님은 넘어진 자를 일으키고 병든 자를 고치러 이 땅에 오셨다. 그런데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과거의 죄 된 삶에 사로잡혀 있다면 복음의 능력은 의심을 받게 된다. 바울은 에베소에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그러나 바울은 이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대해 말한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5~6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빌 3:14)가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될까?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눅 11:24~26).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나쁜 것을 배척하는 게 아니다. 의로우신 분께서 삶을 장악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그분이 가득하고, 변화시키는 은혜로 그리스도인이 새롭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봉길, 최경미 선교사 부부(필리핀)
더 많은 청년이 선교사로 지원하도록
5월 15일
안에서부터 밖으로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 13:33)
제빵사는 빵을 제대로 만들기 위한 필요한 재료를 알고 있다. 밀가루, 소금, 기타 여러 재료를 섞어서 반죽 한 덩이를 만든다. 그런데 이 반죽으로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을 수 없다. 필수적인 재료 하나가 더 필요하다. 반죽에 이스트를 넣어야만 마법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예수님도 영생을 준비하는 법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비유를 사용하셨다. 인간에게 작용하는 하나님의 역사는 반죽 속의 이스트와 같다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반죽에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변화제인 이스트가 제 역할을 다하기 때문이다. 반죽은 스스로 부풀 수 없다. 이스트가 첨가되고 나서도 반죽이 하는 일은 없다. 그저 이스트가 가져다준 변화를 경험할 뿐이다. 반죽은 그 안에서 작용하는 이스트에 의해서 변화된다.
성령이 우리의 삶에 들어오시면 우리를 뒤바꿔 놓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성령이 인간의 삶에 역사하실 때 인간은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기여할 것이 하나도 없다. 칭의와 성화는 믿음으로 얻는 것이며 이 믿음이란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예수께서 활약하시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이란 자기를 내려놓고 굴복하고 은혜로운 하나님의 활약에 스스로를 맡기는 것이다. 이것은 행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아니라 성공적인 그리스도인 삶을 위한 열쇠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결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으신다. 대신 우리 안에서 불가능한 일을 직접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즐겨 마음을 여는 사람 누구에게나 하나님은 완전한 변화를 가져다주신다. 마음에 성령께서 활약할 공간을 마련하는 사람의 삶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중식, 이주현 선교사 부부(대만)
루주 교회의 성도들의 건강과 영적 부흥을 위해
5월 16일
따라야 할 모본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눅 13:22)
예수님의 일상은 어땠을까? 예수께서는 끊임없이 다니셨고 영생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어디서든 사람을 만나셨다. 또 가는 곳마다 끝없는 반대에 부딪혔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속 남아 자기를 섬기며 감사하는 존재들에 둘러싸여 아름다움과 영화를 누리면서 사실 수도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하늘에서 천사들의 존경과 예배를 받으며 사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이름도 없이 목숨을 바쳐 남을 섬기기로 하셨다.
그분은 광야의 뜨거운 열기와 불결하고 극한 환경을 견디셨다. 장터에서, 도심에서, 흩어진 시골 마을에서 사람들을 위해 일하셨다.
이 땅에 와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면 예수님은 하늘에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그분은 선교사로 오셨고 성령 충만한 선교사의 열정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셨다. 현재 하늘로 올라가신 그분은 영혼 구원을 위해 교회가 똑같은 열정과 헌신을 보여 주기를 바라신다. 예수님은 하늘을 선사하고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삶을 내주셨고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으셨다. 그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히 12:2). 자기 백성이 구속받고 영생을 얻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분의 기쁨이다.
예수님은 잃은 자들을 찾는 자신의 사역에 우리를 부르신다.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마 28:19) 삼는 것이 예수께서 교회에 주신 임무이다. 세상을 위한 마지막 복음 기별은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선포되어야 한다(계 14:6). 도시마다 거리마다 예수를 배우고 그분의 구원하시는 은혜와 진리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든지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말씀을 전하면서 재림을 준비하도록 부름 받는다. 또 그들은 능력을 부여받을 것이다. 광야에서 예수를 전하라고 부름 받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예수를 전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10/40 미션 프로젝트-중동 A 국가 선교 센터 건립을 위해
5월 17일
진리와 오류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행 16:17)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했다. 성경에 따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행 16:6). 그 대신 바울은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9절, 새번역)라고 어느 마케도니아 남성이 간청하는 환상을 보았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그분의 이끄심에 따라야 한다. 우리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이 다를 때가 있다. 그렇다면 다른 길을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 젊은 여자가 따라다니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그 여자는 마귀에게 사로잡혔지만 신기하게도 옳은 말을 했다. 사탄은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을 이야기함으로써 바울과 실라를 방해하고자 했다.
종종 우리에게도 사탄이 사실을 말할 때가 있다. 어쩌면 사실을 말할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면 사탄은 거짓말도 한다는 것이다. 사탄의 거짓말은 매우 그럴듯하다. 사탄의 거짓말은 너무나도 효과적이어서 온 세상을 속일 정도라고 요한계시록은 말한다(계 13:8).
수많은 사탄의 하수인처럼 그 불쌍한 여인도 사실을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것은 성화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온전한 진리이다. 일부분에 불과한 진리는 우리에게 필요가 없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를 이루는지 확인하려면 성경을 찾아봐야 한다. 성경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아무리 소중해 보이더라도 과감히 버려야 한다. 더 많은 깨달음을 얻고 더 깊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도록 성령께 자신을 내맡기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가 되면 자신이 많은 부분에서 옳았지만 전체적으로는 틀렸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함영식, 김지은 선교사 부부(오만)
중동 현지인들을 전도할 수 있는 문이 속히 열리도록
5월 18일
인정사정없이?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
인정사정없는 세상이다. 그러나 이는 성경적인 모습이 아니다. 성경은 오히려 남을 생각하고 섬기고 돕는 데 관심을 기울이라고 권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말했다.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했다(롬 12:10).
다른 사람을 먼저 헤아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방법이다. 예수님은 여행으로 먼지 묻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넘어진 자를 찾아가 일으키고, 천대받는 자들과 어울리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밝혀 주셨다. 로마서 15장 1~2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이 땅에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사역은 일종의 자기희생이었다. 구주께 하늘의 모든 영광을 뒤로하고 “형제들과 같이” 되시어 남을 먼저 생각하며 자기를 희생하는 궁극적인 본보기가 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언젠가는 세상 끝까지 복음이 전해질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 가장 강력한 설교는 친절한 말과 사려 깊은 행동으로 전달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크고 분명하게 전달되는 것은 이타심이다. 진정으로 귀하고 소중히 여김 받는다는 일만큼 마음에 와닿는 것은 없다. 무정한 그리스도인과 무관심한 교회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놓아 버린다. 하나님을 따르는 이들은 남들에게 무신경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남들을 나보다 먼저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매일 우리에게 봉사할 기회를 주시며 그 기회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고 예수님이 드러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병섭, 이세주 선교사 부부(대만)
타이동 교회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5월 19일
모두의 유익을 위해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킹흠정)
세계적인 미술관과 가까운 곳에서 한동안 일한 적이 있다. 점심 시간에 조금만 걸으면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인상파 작품의 대규모 전시회가 열리면 모네, 세잔, 반 고흐 등의 아름답고 값진 작품도 감상했다.
이렇게 뛰어난 예술가들이 만약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을까?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작품을 공개하지 않았다면? 아인슈타인이 과학에 발만 담갔다가 다른 진로를 찾아갔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이 자신의 영적 은사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건 어떨까? 고린도전서 12장 8~10절에서 바울은 지혜, 지식, 믿음, 치유, 기적, 예언, 방언, 방언 통역, 영을 분별하는 은사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바울은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했다(7절, 킹흠정). 그리스도인은 각각 영적 은사를 부여받았다. 이들 은사는 몸 된 교회가 복을 받고 든든히 서 가도록 주어진 것이다.
가르치는 은사를 받았으면 가르쳐야 한다. 행정에 탁월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은사를 활용해야 한다. 지혜의 은사는 자랑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며 믿음의 은사 또한 묻어 두지 말고 활용하라고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남들에게 활용하지 않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불순종이다.
영적 은사는 감추어 놓으라고 주신 것이 아님을 예수님의 제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영적 은사는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은사를 괜히 주시지 않았다. 은사를 사용해 하늘 왕국을 확장하고 온 우주의 하나님을 드높여야 한다. 성령은 모두에게 복을 주기 위해 주어졌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신영천, 김혜림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말씀의 군사들을 양성할 캄보디아 삼육대학 설립을 위해
5월 20일
패배가 뻔한 싸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세계 곳곳에서 대기 오염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인도에서는 2019년에만 160만 명이 대기 오염으로 사망했다. 5분마다 갓난아기 1명이 오염된 공기로 목숨을 잃는다. LA 국제공항에 착륙해 봤다면 도시를 뒤덮은 두꺼운 갈색 스모그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대기 상태가 개선되었지만 스모그는 여전하다.
대기 오염을 해결하려는 사람이라면 한 번에 한 동네씩 공기를 정화하는 바보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대기의 질을 향상시키려면 공장, 자동차 매연 등 근본 문제를 손봐야 한다.
영적인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적 문제는 근원부터 손봐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스도인이라면 알고 있어야 한다. 바울은 죄의 문제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거듭나지 않은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은 하나님과 어울릴 수 없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대립할 뿐이다. 영적인 약점을 하나씩 극복해 나가면서 자신을 고치려는 사람은 결국 실패하고 만다. 죄인에게는 새로운 마음이 필요하다. ‘자제력’을 길러 준다는 교육 과정이 광고에 소개되기도 하지만 안에서부터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능력 없이는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아를 정복하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기고 그분께서 우리 삶에 거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자기 향상을 위해 혼자서 애쓰고 있는 사람은 패배가 뻔한 싸움을 하고 있다. 죄인의 마음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 굴복하지 않는다. 새 마음이란 회심할 때, 즉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일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새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기적을 경험할 때 생긴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모든 사람에게 그 기적을 베풀고자 하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권순범, 강지희 선교사 부부(대만)
대만 교회를 섬길 목회자 양성을 위해
5월 21일
약속 이행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9)
1988년, 대통령 후보인 조지 H. W. 부시는 전당 대회 때 “제 입술에서 나오는 말을 잘 들으세요. 새로운 세금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약속이었고 그는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약속을 이행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아무리 의도가 좋았어도 암울한 현실에 굴복해야 할 때가 있다. 나중에 재정 적자를 맞게 된 부시 행정부는 특정 세금의 인상을 허용했다. 부시는 재선에 실패했는데 약속을 어긴 것이 패배의 핵심 요인이었다.
하나님께 맹세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더 잘하겠습니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그런 죄는 절대 짓지 않겠습니다.’ 이런 말은 의심할 것도 없는 진심이겠지만 그 약속들은 결국 실패하고 만다.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바울은 빌립보서 3장 9절에서 그 핵심을 짚어 준다.
의로움이란 죄인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필요한 의는 그리스도의 의임을 알았다. 그것이 하늘 문을 열어 주는 유일한 의이다. 그 예수님의 의는 오직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자신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서 얻는 게 아니라고 바울은 잘라 말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에게 아무런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기울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노력이란 하나님께 자신을 내맡겨서 그분이 우리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바꾸시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유혹에는 저항해야 하며 자아는 부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은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실 때 가능하다. 삶을 하나님께 내맡기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의를 얻는다. 그 의는 믿는 자에게 영원한 유익을 선사하는 유일한 의이다.
하나님께 약속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받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우리가 믿기를 바라실 뿐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종철, 윤미경 선교사 부부(몽골)
몽골 재림 청년들의 신앙과 미래를 위해
5월 22일
초점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2)
사람들이 하늘의 평화를 맛보지 못하고 확실한 믿음을 경험하지 못하는 아주 단순한 이유가 있다. 마음을 거기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누구나 하늘의 일이든 땅의 일이든 집중할 대상을 자신이 선택한다.
불필요한 것에 마음이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 동영상을 보거나 목적 없이 페이스북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시간을 영적 성장에 집중한 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한가로운 시간이 필요하지만 땅의 것에 시간을 너무 많이 쏟으면 하늘의 것보다는 땅의 것을 더 좋아하게 된다. 의사나 변호사는 수년간 탐구하고 있는 문제를 위해 불가사의한 의학적 사실을 살펴보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판례를 인용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좋아하는 것에 몰두한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 18절에서 자신이 몰두하는 대상을 계속 바라보면 그런 모습으로 변한다고 기록했다.
시편 119편 97절에서 다윗은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라고 고백했다. 99절에서는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낫다고 말했다. 다윗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다. 말씀을 삶의 기초로 삼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성경, 예수님의 품성,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묵상하면 변화가 생긴다. 또 마음을 경박한 것으로 채워도 변화가 생긴다. 물론 그 변화의 방향은 정반대다. 운동에 흥미가 생긴 다음에 운동을 시작해 보겠다고 하는 사람은 결코 운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운동에 흥미가 생긴 사람은 대부분 운동을 열심히 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환경에 지배받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하늘의 것에 집중하겠다고 오늘 결심하라. 예수님에게 더 많이 집중할수록 더 많이 예수님을 닮는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기원, 이용숙 선교사 부부(대만)
루조우 교회가 복음 센터에서 교회로 승격할 수 있도록
5월 23일
가장 힘센 용사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톨스토이는 자신의 명작 『전쟁과 평화』에서 가장 힘센 용사 둘을 시간과 인내라고 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마지막 때 백성을 묘사하면서 “이런 때 인내가 필요하다.”라고 하셨다(계 14:12, 현대인). 성도들에게도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때때로 믿음의 길은 멀고도 험난해 보인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려는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좌절하고 영생을 포기하면 영혼의 원수가 좋아하는 일만 해 주는 것이다. 반면 우리가 무슨 일을 겪고 있든 오늘 예수님을 붙잡고 그분을 계속 믿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할 일을 하신다.
엘렌 화잇은 “성화란 한순간, 한 시간, 하루가 아니라 일생의 일”(행적, 560)이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의 완성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도토리가 참나무가 되려면 수년이 걸린다. 거대한 레드우드의 씨앗은 아주 작지만 시간이 흐르면 세상의 불가사의를 만들어 낸다. 나무는 느리게 자라지만 분명히 자란다.
살다가 시련을 만날 때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잡는 사람은 늘 변함없이 신실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발견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상실의 고통이나 슬픔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그 와중에도 위로를 얻을 수 있고 인생의 곤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희망의 태양이 절망의 먹구름을 결코 꿰뚫지 못할 것 같아도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이다. 시편 27편 14절(한글킹)에서 다윗은 확신을 품고 말한다.
“너는 주를 바라라.
담대하라.
그리하면 그가 네 마음에 힘을 주시리라.
내가 말하노니, 주를 바라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지수 선교사(대만)
신주금성 교회가 잘 연합하고 더 성장하는 교회가 되도록
5월 24일
유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
수년 동안 나는 유명인들의 묘지 여러 곳에 가 보았다. 존 웨슬리와 존 버니언은 런던 구도시 북쪽에 서로 140m 정도 떨어져 묻혀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 데이비드 리빙스턴, 기타 여러 임금, 왕비, 교황들이 잠들어 있는 묘지에도 가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어디든 묘지에는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이 묻혀 있다. 그들은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사랑하고 놀고 일하다가 죽었다. 이제 그들은 가 버렸고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은 자를 기억하시며 몇 사람은 아주 특별하게 기억하고 계신다.
결국에는 무엇이 중요할까? 모두가 노예 해방 선언문에 서명하거나 달 표면을 걷거나 에베레스트에 오를 수는 없다. 하지만 다니엘이 기록한 말을 주목하라.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
『공산당 선언』의 저자인 칼 마르크스의 무덤은 영국 런던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있다. 이곳은 마르크스 이론 신봉자들의 참배 장소가 되었다. 가수 짐 모리슨의 묘지도 그의 사후 수십 년부터 파리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블라디미르 레닌의 시신은 지금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전시되어 있다. 한때 강력한 국가를 이끌었던 그 남자의 무덤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거의 매일 줄을 잇는다. 이들은 세간의 이목을 끌고 세상에서 기억되고 있는 망자들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결코 유명하지는 않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있는 일을 행했기에 영원히 빛날 겸손한 사람들의 평범한 무덤이 곳곳에 널려 있다. 국가의 지도자? 록 밴드의 리더? 하나님은 영원히 빛날 사람이란 많은 영혼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영혼 구원은 하나님께 참으로 값진 일이다. 이것은 세월을 뛰어넘는 유산이다. 영원한 차이를 만들어 내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하라. 그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1000명 선교사 운동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이 선교 현장 선교사들에게 함께하도록
5월 25일
기억할 만한 일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시 112:6)
미국인이라면 스포츠 팬이 아니더라도 작년 슈퍼볼 승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그 한 번의 경기가 뉴스에서 가장 큰 이슈이기 때문이다. 경기가 시작할 때까지 TV에는 광고들이 맹렬하게 쏟아진다. 광고주들은 30초짜리 광고 하나에 수백만 달러를 지불하고 엄청나게 많은 시청자가 광고를 본다. 가장 많은 시청자 수를 기록한 TV 방송 30개 중 29개는 슈퍼볼 방송이었다.
그렇다면 2년 전 슈퍼볼 승자는 누구였을까? 5년 전에는? 진짜 스포츠 팬들만이 기억할 것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마다 화제가 되었던 풋볼 경기 결과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얼마 없고 그나마 잠깐 언급하고 지나가는 정도다. 더 많은 세월이 흐르면 마케팅과 열광에도 불구하고 경기의 결과는 대부분 잊어버린다.
살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오늘 공을 가지고 경기를 벌이는 남자들은 내일이면 사라지며 그 중요성은 지속적이지 않다.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다’라고 묘사한 것들에 불과하다. 성경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도움을 준다.
슈퍼볼 MVP나 아카데미 수상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심지어 노벨상 수상자라도 영광의 순간이 지나면 곧 잊히게 마련이다. 하나님께서 정말 귀히 보시는 것, 그분이 눈여겨보시는 성취는 그분을 위해 사는 삶, 특별히 사람들을 하늘로 이끄는 삶이다. 이름 없이 수고하는 선교사, 예수님을 사랑하도록 자녀를 기르는 신실한 싱글 맘, 청소년의 마음을 예수님께로 향하게 하는 교회의 교사야말로 영원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이들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는 칭찬, 명성, 영광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영혼이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축하해야 할 그 무엇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신승환, 이경희 선교사 부부(방글라데시)
아드라 코리아와 슬럼 지역 미용 학원 사업을 잘 시작하고 운영하도록
5월 26일
왕족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갈 4:6~7)
처음에 그 여인은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 “당신이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새벽 3시에 걸려온 전화였다. 그러나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서아프리카에 있는 그녀의 고향에서 부족의 왕이 사망했고 왕의 조카였던 그 여인이 왕위를 물려받으면 더없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워싱턴 D.C.에서 비서로 일하던 여인이 이튿날에는 부족 7천 명의 왕이 되었다(이것은 오표기가 아니다. 그 여인은 왕비가 아니라 왕이 되어야 했다.).
성경에는 급격한 상황 변화에 관한 이야기가 몇 가지 소개되어 있다. 형제에게 배신당하고, 노예로 팔려 가고,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투옥되고, 도움을 베풀고도 잊혀 버린 요셉은 이집트의 감옥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며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철저히 모든 것을 빼앗긴 요셉이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강대국에서 가장 힘 있는 인물이 되었다. 종이었던 그는 하늘의 하나님을 증언하는 대변인으로 선택받았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면 죄의 노예에서 하늘 임금의 자녀로 바뀐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갈 4:7)라고 했다. 예수님을 믿으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성도가 된다. 더 이상 죄 아래 있지 않으며 용서받고 무죄로 선언받는다. 더 이상 ‘평민’이 아니라 왕족이 된다.
이 놀라운 변신이 믿음으로 가능해진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로 선택하면 그 약속이 삶에서 실현된다. 그 순간 여러분은 왕족이 되며 하늘 폐하의 자녀가 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갑숙 선교사(말라위)
고아와 극빈자들을 위한 고등학교 설립을 위해
5월 27일
내성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 8:11)
항생제의 출현으로 일상적인 여러 질병을 간단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하면서 인류를 괴롭혔던 병들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질병은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병원에서 생기는 포도상 구균 감염의 가장 흔한 변종인 MRSA, 즉 메티실린 내성 포도상구균은 한때 성공적인 치료 효과를 보인 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갖고 있다.
죄에 대해서도 비슷한 일이 생긴다. 죄에 익숙해지면 그 결과에 대해 내성이 생긴다. 술을 처음 마시고 난 뒤에는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계속 마시다 보면 애주가가 된다. 청소년들은 맨 처음 담배를 피우고 나서 대부분 며칠 동안 몸이 아프지만 그 고통을 견디는 법을 터득하고 난 뒤에는 골초가 된다. 거짓말을 처음 할 때는 가슴이 콩닥거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입에서 거짓말이 술술 흘러나온다.
죄는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그 결과가 곧장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요한이 “도둑”(요 12:6)이라고 평가했던 유다도 맨 처음 거짓말을 했을 때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죽음으로 내모는 배신을 저지르게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 급속히 미끄러졌고 하늘의 하나님을 대놓고 반역했다.
간음, 살인, 도둑질 같은 죄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생각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죄에 관심을 기울이고 죄를 용인하면 죄가 더 이상 죄로 보이지 않는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그리스도의 품성에 눈뜨고, 하나님과 교제하면 죄가 혐오스럽게 보인다”(소망, 668). 유혹의 힘은 매우 실제적이지만 삶 속에 새롭고 거룩한 성향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훨씬 더 강력하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남웅, 심은정 선교사 부부(대만)
선교사 자녀들의 신앙과 성장을 위해
5월 28일
어떤 영인가?
“그분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눅 9:55, 킹흠정)
일반적으로 교회는 평화로운 공간이다. 그런데 미국의 어느 교회에서 싸움이 벌어져 여자 한 명이 칼에 찔렸고 음악 사역자는 목사에게 테이저건을 쏘았다. 인간은 충격적인 행동도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지시로 사마리아에 들어간 심부름꾼들이 마을 주민에게 배척당했다. 야고보와 요한은 이러한 모욕에 분통을 터뜨렸고 예수님에게 하늘에서 불을 내려오게 해 이 고약한 주민들을 태워 버리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우레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나중에 복음서 하나와 요한계시록을 포함해 신약 성경을 5권이나 기록하게 될 사람의 입에서 그런 요청이 나온 것이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 9:54). 야고보와 요한은 모두 평화의 왕이신 분의 제자였다. 요한은 요한복음 13장 34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했다. 그런 요한이 야고보와 함께 사람들이 가득한 마을을 불태워 멸망시키면 어떻겠냐고 물은 것이다.
예수님에게 굴복하지 않은 사람은 단연코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다. 존경받기에 손색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가장 끔찍한 범죄나 충격적인 행동을 저지를 때가 종종 있다. 기독교인이라거나 교회에 다닌다거나 헌금을 낸다는 것은 그리 믿을 만한 잣대가 되지 못한다. 화가 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는가? “품성은 위기의 때에 드러난다”(실물, 412). 누군가 내 발등을 밟았을 때 혹은 바라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자신이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눅 9:55, 킹흠정) 알고 있는가? 만약 여러분이 나쁜 영에게 지배받고 있는 모습을 하나님이 보여 주신다면 그것을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자리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여기라.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삶에 활동하실 때만 진정으로 변화될 수 있다. 유명한 속담의 말마따나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라면 나도 똑같은 사람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서세광, 최우정 선교사 부부(홍콩)
홍콩의 보안법 강화로 종교 자유가 침해당하지 않도록
5월 29일
오직 선하게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렘 9:24)
정의가 실현되어야 어떤 사회든 원만하게 굴러간다. 미국 국기에 대한 맹세에서는 “하나님 아래 하나의 나라이며…모든 이를 위한 자유와 정의의 나라”를 선언하고 있다. 스가랴 7장 9절에서 하나님은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라고 명하셨다. 미가 6장 8절에서는 “정의를 행”하라고 권고하신다.
14살짜리 여자아이가 간음죄로 처형당했다는 뉴스를 들은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정의를 실현하시는 방식이 일부 집단의 방식과 다르다는 점에 감사할 것이다. 하나님은 정의를 앞세우는 분으로 묘사될 때가 많다. 하나님이 정의로우신 것은 맞지만 그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자비하시기도 하다. 우주의 왕께서는 완전히 공의로우시기에 각 인간을 엄정하게 다루시지만 두려움보다는 사랑으로 인간과 가까워지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기를 기뻐하는 분이시다(렘 9:24).
그렇다고 하나님이 정의의 하나님이 아니란 말은 아니다. 하늘의 정의에는 자비와 선의가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부드럽게 대하신다. 그분은 죄인에 대해 오래 참으시고 불쌍히 여기신다. 죄인을 없애기보다는 타락한 자를 구하기 위해 온 힘을 쏟으며 호의를 베푸신다.
정의의 표준인 십계명은 광야 성막의 지성소 안에 있었고(출 25:21) 지금은 하늘 성소의 지성소 안에 있다(히 8:5; 9:5). 그런데 그 언약궤 위에는 순금으로 된 시은좌가 있다. 하나님 안에서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시 85:10).
하나님은 정의를 행하기 앞서 자비를 베풀고자 하신다. 인간은 정의의 칼을 휘두르는 데 빠르지만 하나님의 성품은 자비를 베푸는 데 빠르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찬민, 백수경 선교사 부부(레바논)
경제 위기와 정세 불안에 고통받는 레바논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5월 30일
믿으니 병이 나았다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눅 17:14)
나환자 10명이 예수님에게 찾아와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눅 17:13)라고 부르짖었다. 그리스도 당시에 나병은 무시무시한 불치병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심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14절)라고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못에 가서 눈을 씻으라고 하신 것도 아니고 처방을 알려 주신 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오랜 시간을 쓰지 않으셨다. 가서 제사장을 만나 보라고만 말씀하셨다. 제사장은 나병의 완치를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는 사람이었다.
한번은 나환자 하나가 예수님을 찾아와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마 8:2)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 나환자 한 명에게 예수님이 보인 반응은 나환자 10명을 대할 때와는 조금 달랐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 8:3). 말씀과 함께 손으로 만지신 것이 고통받는 자를 치유하기 위해 예수님이 하신 전부였다.
그런데 성경에 따르면 나환자 10명은 “가다가” 병이 나았다. 예수님은 그들을 고친 뒤에 보내신 게 아니다. 그들을 그냥 보내셨고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믿고 가는 도중에 나은 것이다. 이것은 진짜 믿음의 역사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본보기이다. 나환자 10명처럼 말씀에 따라 행동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여러분도 똑같은 믿음을 지닐 수 있고 똑같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약속을 앞세우면서 그 약속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대로 실현되리라고 기대한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활동하시리라고 믿어 주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진수, 이주연 선교사 부부(대만)
제자 훈련과 패스파인더 활성화를 위해
5월 31일
아홉은 어디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 17:17)
남다른 은혜를 받으면 감사의 마음도 남다를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학비를 대 주고, 차를 수리해 주고, 집세를 내주거나, 목적지까지 태워다 준다면 고마운 게 당연하다. 하물며 누군가가 여러분의 목숨을 구해 준다면? 평생 감사하며 살 것이다.
위대한 의사이신 예수님이 어느 날 나환자 10명을 고쳐 주셨다. 나환자 1명을 고치는 것도 대단한 기적이다(예수님은 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 그런데 10명을 고쳐 주셨다면 그것은 어마어마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10명 중 예수님에게 돌아와 감사를 표현한 사람은 단 1명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유대 출신인 예수에게 적대감을 품기가 훨씬 더 쉬운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 사마리아 사람이 민족적 편견을 벗어던지고 예수님에게 찾아와 그분의 치유에 의도적으로 감사를 드렸다.
나머지 9명은 그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죽을병이 나았다며 기뻐했다. 그들은 선물을 받아 즐거워했지만 정작 선물을 주신 분은 잊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만한 어떤 일을 하셨는지 한 번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 감사드리면 그분의 은혜가 마음에 새겨지고 그분의 선하심을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대승을 거뒀을 때 사무엘은 ‘에벤에셀’이라는 기념석을 세워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알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새겼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을 밟았을 때 여호수아는 “주님의 언약궤 앞에서 요단 강물이 끊기었다는 것과, 언약궤가 요단강을 지날 때 요단 강물이 끊기”었던 일을 기념하고자 돌기둥을 세웠다(수 4:7, 새번역). 하나님의 은혜는 되새기고 되새겨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수많은 선물에 자주 감사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그분께 감사할 일이 넘쳐 난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은 건강한 그리스도인 삶을 유지하는 필수 요소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고종식, 김은아 선교사 부부(필리핀)
코로나로 인한 여러 문제가 선교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