墨 田 會
우) 121-842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485-2
문서번호:묵전회 제 7 호 2007. 10 . 26 . 수 신: 한국화동인 제위
제 목: 묵전회 2007년 가을 정기 사생 실시
1. 회원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 2007년 가을 정기야외사생을 아래와 같이 시행할 예정이오니 회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 있으시기 바랍니다 아 래 1) 가는 날 : 2007. 11. 10 (토) - 11. 11 (일) ( 둘째주 토.일요일 양일간) 2) 모이는 곳 : 서울 종로구 인사동 미림화방 앞 3) 출발시각: 오전 07시30 출발 예정(장거리로 일정상 지장이 없도록 정시에 출발 협조바람) 3) 가는 곳 : 경북 청송 영덕군 옥계계곡 주왕산 대전사, 주왕굴, 제1, 2폭포 주산지 백운정 등 4) 노자 돈 : 일금 일십만원(₩ 100,000) 5) 들러서 먹칠 할 곳: 붙임 참조 6) 가지고 갈 것들 : 개인 취향에 따른 화구(카메라 스케치 도구)와 개인 기호품. 7) 연락처 : 참석여부를 2007년 11월 3일한 신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회장 : 장 재 운 (☎ 018-385-2234) 총무 :박 창 구 (☎017-714-0901) 8) 참가신청납부금 계좌 : 우리은행 517-066930-02-102 예금주 장재운 ※ 화우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환영합니다. 신청전화 이정 장재운 010-4385-2234 심천 박창구 017-714-0901 이상성 010-3798-0008
墨 田 會
회 장 장 재 운 직인생략
들러서 먹칠 하는 곳
스케치 일정: 07:30 인사동 출발 →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서 안동IC→12:00 청송읍→점심→옥계계곡→주왕산대전사→석식 및 숙박→조식후 대전사 제1폭 2폭 주왕굴→ 13:30 점심 → 임하백운정 사생→ 16:30 안동 → 21:30 인사동도착
옥계계곡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옥계리소재한 옥계계곡은 천연림으로 뒤덮인 팔각산과 동대산의 기암절벽이 이루어낸 깊은 계곡이다. 옥같이 맑고 투명한 물은 그 이름에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절경이다.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돌아드는 풍경은 장관을 이루어 이곳을 찾는 화가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침수정(경상북도 문화재 제45호) 아래를 굽이쳐 흐르는 맑고 깨끗한 물은 50여개의 작은 내와 어우러져 영덕의 젖줄인 오십천을 이룬다.
주산지 산속에 위치한 인공호수 주산지는 영화 덕분에 이제 서울에서도 꽤많은 여행객들이 찾아올 만큼 유명한 여행지가 되었다. 청송의 대표적인 여행지로 새로이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오래전만해도 화가나 사진가들이 가끔 찾던 숨겨진 여행지였다고 한다.
주왕산 (720.6m)은 한반도 산맥의 중심 뼈대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이 국토 동남부로 뻗어나온 지맥에 위치한다. 수많은 암봉과 깊고 수려한 계곡이 빚어내는 절경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3대 암산의 하나이다. 1976년 3월 30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공원의 총 면적이 105.582 평방km로 행정구역상으로 청송군과 영덕군의 2개군 5개면에 걸쳐있고 북쪽에는 설악산과 오대산, 남쪽에는 경주, 서쪽에는 속리산과 덕유산 등의 국립공원이 인접해있으며 태행산, 두수람, 가메봉등의 봉우리 외에도 주방계곡, 절골계곡, 월외계곡 등이 있다.
기암과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12년(672)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임진왜란때 불타 조선 현종(顯宗) 13년(1672)에 새로 지어 현재 사찰의 중심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1976년에 보광전을 고칠 때 1662년의 상량문(上樑文)이 발견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자그마한 건물로 천장은 '井'자 모양으로 꾸몄으며, 내부에 비로자나불(毘盧子那佛)을 모시고 있다.
주왕굴과 제1 제2 제3폭포 주왕산의 학소대 위쪽에 있는 3개의 폭포로 제1폭포는 사면이 바위로 둘러싸인 속에 옥같이 맑은 물이 쏟아지고, 바로 위에 선녀탕과 구룡소가 있으며, 그 1km위에는 아담하고 주위경치가 빼어난 제2폭포가 있다. 왼편으로 500m 되는 곳에서는 웅장하고 거대한 2단의 제3폭포를 볼 수 있다. 이곳은 주왕산 국립공원의 핵심이라 하겠다
백운정 귀봉 김수일(龜峰 金守一)이 그의 부친 청계 김진(靑溪 金璡)으로부터 부지를 얻어서 1568년(선조원년)에 창건한 정자이다. {영가지} 누정조(樓亭條)에는 "판서에 증직된 김진이 세우고, 그의 아들 수일이 옛 제도에다 늘려지었다"고 기록했다. 반변천을 건너 천전동을 마주 바라보는 강 언덕 위에 자리잡아 정자의 마루가 동행으로 반변천을 굽어보게 배치하였다.
주왕산전설 본래 이름이 석병산이었던 것이 주왕산이라 불리게 된 데에는 스스로를 "후주천왕" 또는 "주왕"이라 부 르던 "주도"라는 사람에 대한 전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일각에서는 주왕에 대한 이야기가 당시, 즉 신라 후대의 진골 왕족이었던 김헌창의 난을 각색한 것이었다는 설이 제기되어 흥미를 돋우고 있다. 어쨌든 이 산의 유래가 된 주왕에 대한 전설을 살펴보면, 중국 당나라 덕종 때인 799년.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되려 했던 "주도"라는 사람이 당나라 군사에게 쫓겨 당시 신라 땅이었던 석병산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반란을 일으켰던 주도는 당나라 이전에 존재하던 진나라의 후손으로, 매우 기개가 높았던 인물이었으나 당나라 장수인 곽자의가 이끄는 군사에 대패하여 신라 땅으로 도망을 오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신라의 석병산이 산세가 매우 험한 천혜의 요새라는 말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나라 부탁을 받은 신라의 마일성 장군에 의해 주도는 이곳에서 최후를 맞고 말았다. 훗날 나옹화상은 그의 넋을 위로하는 마음에서 산 이름을 석병산에서 주왕산으로 고쳐 부른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주왕산에는 주도와 관련된 명소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전설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주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었다는 주왕암, 주도가 신라의 마일성 장군에 대항하기 위해 쌓았다는 자하성, 주도의 아들인 대전도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대전사, 주도의 딸인 백련낭자의 이름을 따서 지은 암자인 백련암, 주도와 끝까지 생사를 같이했던 군사들의 갑옷과 무기를 숨겨 두었던 곳이라는 무장굴, 그리고 주도가 마지막까지 숨어서 살았다는 주왕굴 등이 그 대표적인 명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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