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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과 대구 참사랑의 27번째 산행이야기
제1부, 모락산 산행이야기
어디로: 의왕 모락산과 창덕궁
산행일시: 2019년10월27일
누구와: 대구참사랑산악회와 서울독립군
몇 번째: 스물일곱 번째 합동산행
산행거리: 약4.65㎞
산행시간: 2시간35분+창덕궁 관람
산행코스:무궁화아파트들머리(09:40)-국기봉갈림길3거리(10:48)-국기봉(12:36)-모락산정상(12:53)-
사인암(13:03)-능선갈림길(13:12~37)-갈미공원날머리(13:41~41)-창덕궁으로이동(13:56)-
창덕궁관람(15:02)
주요지점 통과 및 이동거리
09:40 무궁화아파트들머리, 해발50m
10:00 돼지바위
10:28 큰범바위
10:42 솔마루계단
10:48 국기봉갈림길3거리
11:00 국기봉, 산행거리2.75km,산행소요시간1시간20분, 해발380m
11:12~33 모락산정상, 산행거리3.14km,산행소요시간1시간33분, 해발390m(도면상385m)
11:40~47 사인암
12:04 모락산 32번 쉼터3거리
12:15 갈미공원날머리, 산행거리4.65km,산행소요시간2시간35분, 해발82m
○산행 전 이야기
조선시대 역사가 깃든 모락산을 걷다.
모락산에 조선시대의 역사와 연관이 있다?????
생소한 이야기지만 모락산은 세종의 아들 세조와 세조의 동생 임영대군에 대한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며
모락산 일대는 세종대왕의 4째 아들 임영대군이 세조로부터 사패지로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모락산 국기봉이나 사인암에 올라 사방을 보면 뛰어난 경관을 볼 수 있으며 잡목으로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청계산 국사봉 방향으로는 백운호수가 있습니다.
주변 경관이 뛰어난 이곳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라고 하는데 모락산 동쪽 능안마을에 세조의 동생 임영
대군의 묘가 있는데 역시 명당이라고 합니다.
조선 제17대 왕이었던 효종이 승하하자 전국의 명당을 찾았는데 이곳 임영대군의 묘가 당첨되었다고 합니다.
막상 이곳으로 효종의 능지로 정하려니 세종의 인자한 모습이 떠올랐는지 차마 임영대군의 묘소를 이장
시킬 수 없어 동구릉 지금은 손자인 영조가 묻힌 곳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왕의 능지로 당첨될 만큼 좋은 모락산 일대를 임영대군은 어떠한 사유로 사패지로 받을 수 있었을까?
2014년11~12월 이화지에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세종대왕은 18명의 아들 중 소헌왕후에게 8명, 계비에게 10명을 두었는데 소헌왕후에게 난 왕자는 문종,
세조, 안평대군, 임영대군, 광평대군, 금성대군, 평원대군, 영응대군입니다.
세종의 넷째인 임영대군은 재능이 뛰어나 세종에게 총애 받아 훗날 세종은 화포제작 감독으로 임명받아
화포는 물론 무기의 발전에 일조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임영대군은 문종이 승하한 후 형인 세조가 왕위쟁탈전을 벌일 것을 눈치 채고는 광주땅 의곡에 있는
취기산(의왕시 모락산)으로 홀로 은신해 산중벽초에 초암을 세우고 거처하였으며 머리에는 항상 패랭이를
쓰고 흰옷차림으로 토곡에 뷸상을 설치하고 참선하며 거사로 자처하였고 날마다 조석으로 산 정상에 올라
대궐을 향해 망궐례를 드리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왕위에서 물러난 단종을 그리며 절하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임영대군이 모락산으로 잠입한 것은 형님인 안평과 동생인 금성이 사사될 것을 눈치 채고 피신하였다는
것인데 그 후 이를 안 세조는 여러 차례 임영대군을 불렀으나 눈이 멀었다고 거짓말을 하며 나가지 않았다
합니다.
그러던 중 세조가 온천을 다녀오는 길에 근처를 지나다가 임영대군을 만나자고 전갈하였는데 임영대군은
형제로서는 만날 수 있으나 군신의 예로 만나자고 하면 만나지 않겠다고 하자 세조가 형제의 의로 만나다고
하여 만났다고 합니다.
이때 임영대군은 이러한 날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화살촉으로 눈을 찔러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는 연습을
하였는데 세조를 만났을 때 눈을 깜빡거리지 않고 장님노릇을 하였고 이를 본 세조는 임영대군이 일부러
피하며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임영대군을 만나보니 앞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아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동생을 오해했다고 하소연하며 임영대군이 살고 있던 모락산 일대를 사패지로 하사하여 지금
까지 세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글은 임영대군의 17대손이 쓴 글을 일부 편집한 것입니다.
아무래도 임영대군의 17대손이 쓴 글이므로 미화시켰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단지 앞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모락산 일대를 사패지로 내릴 수 있는 것인지.
역사는 말하지요, 진실을............
임영대군이 단종을 생각하며 세조에게 등을 돌린 것인지, 아니면 첨부터 세조 편에서 함께 동참하고 일조한
것인지, 이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판단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역사적인 이야기는 산행을 하며 국기봉 갈림길 3거리에서 국기봉을 가면서 이야기했는데
글로서 남기는 것이 이해하기가 쉽고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글로 남깁니다.
취기산, 그리고 모락산...........
세조와 임영대군의 이야기가 서려있는 이야기로 모락산 산행을 열어갑니다.
○모락산 산행이야기
대구 참사랑 산악회원들과 서울 독립군이 산행 들머리에서 예정보다 10분 늦게 산행을 시작합니다.
모락산은 몇 차례 올랐는데 이곳 무궁화아파트가 있는 들머리로는 첨이지요.
지난번 이 길로 내려서다가 임영대군이 살았다는 토굴, 경일암을 찾는다며 능선으로 헤매다 오매기마을로
내려서고 말았지요.
모락산둘레길 이정목을 지나 본격적인산행이 시작되네요.
좁고 가파른 길을 따라 20분을 오르니 바위가 나옵니다.
이건 모야........
입간판에 돼지바위라고 되어 있는데 모락산 산돼지는 이렇게 생겨먹었나???
아무리 돼지처럼 봐주려고 해도 아니네요.
그냥 지나가자고요, 산에 와서 뭘 그런 걸 가지고 따집니까?
그래두 사진은 하나 찍고 가는 게 맞자너요. 그럼 웃어봐요~ 찰칵
또 가야지요.
몇 발자국 떼어 놓으니 넓은 쉼터가 나타납니다.
쉼터의 목적은 산을 다니는 산객이 편히 쉬어 가라고 조성한 것이니 성의를 봐서 쉬어가야 하지요,
대구와 합동산행을 하면 좋은 게 또 있습니다.
쉬어 가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먹거리가 등장하자나요, ㅋㅋㅋ 아이 조아라~
대구에서 오신 여학생들이 기분이 좋다고 하던데, 아마도 오늘 산행이 맘에 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해발385m 길게 잡아 3시간이면 산행을 마칠 수 있으니까요.
잠시 쉬며 상훈아우가 주는 단감을 먹습니다.
시골집에서 단감 농장을 한다고 하던가?
제대로 들은 건지 아마도 3만평이라고 하던가, 30만평이라 하던가,
그거 팔면 창덕궁 살수도 있다고 하는 거 같았는데.....
단감 먹었으니 또 가야지요.
쉼터에서 10분을 가니, 이건 모야 삼각점이네요, 평범한 길가에 무신 삼각점이래?
삼각점이 있는 곳을 지나 13번이정목이 있는 3거리를 지나 10분을 오르니 2번째 입식안내판이 나오는데
제목이 큰범바위네요.
시방 장난치나.........
또 속습니다.
큰범인지 표범인지 비슷하게나 생겼어야지 믿지요, 또 속은 거지요.
세금 나오는 것도 아닌데 계속 속아주는 거지요, 그래야 의왕시도 속여먹는 재미가 있을게 아닐까하네요.
2번째 속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10분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등로가 갈라지고 15번 이정목도 있는데 백운산으로 가는 길이네요.
이정목을 막 지나면 계단이 나오는데 천국으로 가는 계단도 아닌데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네요.
이번에는 지가 속였군요, 끝이 없는 계단은 없는데.........
몇 계단이나 되는 지 헤아려 볼걸 그랬나 싶습니다.
마지막 계단을 올라섰는데 경환 아우가 보이지 않습니다.
승질도 급해, 조금을 참지 못하고, 지 처는 힘들다고 뒤에 처져있는데 국기봉으로 달아나 버린 겁니다.
계단을 올라서면 육각정자가 있습니다.
정자가 있으면 쉬어가라는 뜻이지요.
정자에 걸터앉아 후미가 도착하기를 기다립니다.
세조와 임영대군 이야기를 하는데 임대장 국기봉으로 가자고 몰이에 들어갑니다.
그래가지고 국기봉을 가면서 세조와 임영대군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제대로 들을 수나 있겠습니까?
제가 모락산산행기 몇 검토해보니까 세조와 임영대군 이야기를 쓴 사람이 조금 있네요, 의왕시 문화원이나
의왕시청에서 자료를 구했다고 하는데 자세하지는 않고요, 그래도 산행 전 이야기에 나온 세조와 임영대군
이야기는 임영대군 17대손이 2014년 말에 이화지에 실린 글이 자세하다는 생각입니다.
국기봉에 도착합니다.
항상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어서 부르는 이름이지요.
모락중학교를 들머리로 잡고 오르면 경치 좋은 암릉길을 따라 오르게 되고 절정이 이 국기봉이 됩니다.
우리 일행은 게양대가 있는 곳에 머물렀지만 조금 더가면 암릉길이 더 이어지는데 주변 경치도 좋지요.
일행이 한자리에 모여 사진을 찍습니다.
시인마뇽 선배님이 주변 산세를 설명하시는데 끼들었다가 호되게 야단맞고 쭈그러듭니다.
국기봉에서는 조망이 뛰어납니다.
동쪽으로는 무성한 잡목이 솟은 정상이 있고 우측으로 청계산 망경대가 꼭대기만 보이고 백운산으로 잇는
능선은 이수봉, 국사봉을 지나 바라산을 지나 백운산이 이릅니다.
바라산 아래는 4년전에 보이지 않던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생겨났음이 보이네요.
북쪽을 보면 안양시내와 관악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수리산의 듬직한 모습이 보이네요.
국기봉에는 아주 많지는 않지만 제법 사람들이 올랐네요.
학생같이 보이는 젊은이에게 부탁해서 일행 전체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만들어 봅니다.
일행들~
사진을 보면 즐거운 듯한 모습이 풍기네요.
보기 좋습니다.
사진 찍었으면 이동할까요?
이~ 성봉현님이 길을 열고 있네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정상으로 갑니다.
10분이면 충분합니다.
정상에는 묘지가 있습니다.
여기가 명당이라고 묘지를 쓴 모양입니다.
자식 잘되라고 명당을 골라 묘를 쓰지만 시대가 바뀌어 자식이 잘되면 지가 잘해서 잘되었다고 생각하지
선대가 명당을 잡아서 잘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 세상으로 바뀌었지요.
이런 거 선조들은 알까 모르겠네요.
그런데 봉분은 초라한데 주변 잔디는 잘 가꾸었고 묘역도 넓네요.
기지분묘권이라는 게 있잖아요.
오래된 묘는 바로 돈이니까 부모나 조부의 묘를 잘 가꾸기보다는 언젠가 받을 보상, 돈을 잘 가꾸고 있는
거지요.
배씨 묘지 위가 모락산 정상이지요.
그런데 정상치고는 별이 없습니다. 별이 있어야 보는데....
북쪽으로 잡목을 베어내면 안양시가지가 잘 보일텐데 손댈 생각이 없는 것 같네요.
이곳이 모락산 최고봉이긴 하지만 국기봉이 정상역할을 하는 거지요.
국기게양대 주춧돌이 정상석 역할을 하는 거고요.
우리야 아무런 상관없지요.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겠어요. 있는 대로 즐기면 되는 거지요.
그래서 또 쉬어가야 하고 쉬면 이어서 따르는 먹거리가 있자나요~~~~
상택 아우가 준비한 꽃사과주, 무슨 술인지 알아맞히면 100만원 준다는데 큰 노동하지 않고 돈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걍 날아가 버리고 마네요, 아유 아까버라~~~
정상에서 20분을 놀다가 일어섭니다.
다시 성봉현님이 앞장서네요.
정상에서 5분을 내려서 앞서 가던 성봉현님이 미소를 지으며 무엇인가를 가르키고 있네요.
바위를 타는 나무라는 입식 안내판이 있네요.
아니나 다를까? 또 속은 겁니다.
이런 걸 명물이라고 안내판을 세운다면 산에 다니며 걸리는 돌 마다 모두 안내판을 세워야 할 것 같네요,
하지만 안내판을 세운 성의를 봐서 용서해 주기로 하고 넘어가지요~
한 번 더 속고 암릉길로 2~3분 오릅니다.
덩치 큰 바위가 나오더니 눈앞에 사인임이 나타납니다.
다시 세조와 임영대군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과거로 돌아갑니다.
임영대군의 17대손이 쓴 글에 의하면 임영대군은 매일 조석으로 이곳 사인암에 올라 국가 안위를 위해 한양을
바라보며 망궐례를 올렸다는 것입니다.
망궐례, 궁궐을 보면서 국가 안위를 빌며 배를 올리는 예식이지요.
그러나 또 다른 설은 국가 안위가 아닌 지금의 창덕궁 낙선재에 있는 수강궁에서 영월로 귀양 가기전 상왕으로
지내고 있는 조카 단종에게 예를 표했을 것이라는 추론도 만만치 않다는 얘기지요,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서 이곳 산이름이 바뀌었다는 거 아닙니까?
본래 이산은 취기산(就其山)이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매일 한양을 바라 보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망궐례를 올린 데서 지금의 모락산으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정조임금이 사도세자의 묘지를 참배하러 다닌 기록에도 모락산(慕洛山)으로 나온다고 하는데 락(落)으로
쓰여야할 것이 락(洛)으로 잘 못 표기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네요.
락(落)과 락(洛)의 차이는 락(落)으로 쓰는 경우 왕위에서 떨어진 단종을 사모하며 드리는 궁궐례가 된다는
거지요.
아 29~ 골치 아퍼,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한가?
기분 좋게 사인암에 올라 조망 즐기고 단체사진 찍으면 되는 거지....................
사인암에서의 조망은 매우 뛰어나지요.
조금씩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모락산 정상부터 수리산과 안양시가지, 마치 조형물 같이 보이는 안양 시내
아파트 단지 뒤로 관악산이 보이고, 남태령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면 청계산 망경대가 보이지요.
여러분 들이 이 풍경을 보고 오늘 날씨가 넘 좋다고 하며 작년 우두산과 감악산 때는 비가 와서 안 좋았노라고.
다 함께 사인암에 올라 조망을 즐깁니다, 글구 단체사진이 있어야지요.
사진을 보니까 김원장 내외와 재형아우가 보이지 않네요.
보고 싶었던 사람들은 보구 싶을 때 봐야 하는데 마니 아쉽고.............
벌써 선발대가 사인암을 내려서서 하산하고 있네요.
5분을 내려서면 계단을 올라온 사람들을 배려하는 모락산전망대가 있지요. 선 채로 조망을 즐기며 잠시
쉬어가라는 이야기지요.
바라산과 바라재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 바라산 아래 이 아파트단지는 불과 5년전에는 흔적도 없던 것인데
새로 자리를 잡았네요.
바라재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무슨 산일까?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도를 보니 아마도 오포에 있는 문형산일 가능성이 크네요.
아이~ 제대로 조망도 못했는데 모두 내려가네.
퀴즈 낼려고 했는데, 무슨 퀴즈?
주성기 : 내려선 계단이 몇 계단이게????
맞히면 나두 100만원 줄게..........
모르겠지?
주성기 : 정답, 184계단
주성기 : 정답 맞아, 니가 문제 냈으니까 너한테 100만원 받아 가져......
계단을 내려서서 5분이면 3거리 안부가 나오네요.
이런 곳은 쉬어 가야하는데, 이번은 프리패스네요~
안부3거리에서 직진을 하면 2호봉 정상이 나오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능안마을로 임영대군의 묘와 사당이
있지요, 그런데 우리와 임영대군과는 별이 없지요. 그럼 빨랑 내려가서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게 맞지요.
하산길은 부드럽습니다.
등로에 보이는 바위는 자갈을 세면에 비벼서 굳은 모양입니다.
국기봉 산정에서도 이런 바위가 있어 시인선배님께서 설명을 하시던데, 시인선배님과 이교수선배님과 함께
하산을 하며 물었지요.
역암이라고 하시네요
오랜 침식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지며 해저 퇴적층에 광범위하게 분포한다는데 오래전 이곳이 바다였다는
이야기네요.
뭐라더라, 알켜주긴 했는데 그걸 여태까지 기억할 수가 없네요.
3거리 안부에서 10여분 내려서니 계원대 후문이네요.
먼저 내려선 일행이 우리만 보고 있네요,
몹니까?
산행이 벌써 끝난 겁니까?
▷무궁화 아파트들머리에서 계원대후문날머리까지 산행거리2.78km, 산행시간1시간55분, 해발651m,
현재시간 12시53분이다.
○이 후(13:00~14:30)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점심은 간단하게 보리밥으로 정했습니다.
대구 아우들이 서울팀을 대하는 것에 비하면 하찮기는 하지만 여학생들 입장에서 도시락 준비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는 건 축복이 아닐까? 해서요.
미리 예약한 집에 들려 맛있게 보리밥으로 점심을 때웁니다.
그리고 오후 일정이 있지요.
바로 고궁관람입니다.
조선시대와 현세를 넘나들며
약간 뻥을 가미 시키며 재미를 극대화하는 현시대 최고의 문화해설사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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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맛갈난 산행기 끝내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