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독서의 지향은 결국 문학에 닿아있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세계의 모든 드라마를 섭렵하는 것도 결국은 이야기, 즉 서사를 좋아하는 탓이다. 대하 서사일수록 감동의 폭은 크고 강렬한 몰입감을 준다. 어릴 적 이 세계에 소설만한 이야기 매체가 없었을 당시 우리가 읽었던 대하소설들의 울림은 얼마나 큰 것이었나. <삼국지>는 물론이었거니와 <영웅문> 같은 무협지를 비롯해 일본의 영웅전 <대망> 같은 소설을 읽고 자란 우리들은 어른이 되어서 <고요한 돈강> <태백산맥> <토지> <장길산> <객주> 같은 대하소설에 마음을 빼앗겼다.
지금 우리 곁에는 대하소설들이 사라졌다. 독자가 없다, 긴 글을 읽지 못한다는 핑계로 소설들은 점점 짧아지고 짧아져 드디어는 과거의 중편들이 장편으로 바뀌었고 단편들은 '엽편소설' '장(손바닥)편소설' 이라는 이름을 붙여 점점 더 짧아졌다. 대신 대하 서사의 세계는 웹소설과 웹툰, 영화로 옮겨갔다. 심해에 넘실거리는 그야말로 대양의 이야기에 목마른 나는 소설에서 채워지지 않는 서사의 갈증을 각종 드라마로 풀고 있는 듯하다.
미드로 시작한 세계 드라마 섭렵은 일드와 영드를 거쳐 이제 중드에 이르렀다. 보통 60부작, 80부작에 이르는 중국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왜 이토록 유치하고 때로 허황된 중드에 꽂혀서 허덕이고 있나 현실 자각에 이르는 순간들이 있다. 그 모든 중드의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끄는 건 말도 안되게 전 우주적이고 광대무변한 세계관과 끝을 모르는 대하 서사의 넓고 깊음 때문인 것 같다(고 스스로 분석해본다).
암튼 이렇게 대하 서사에 목마른 나를 위한 요즘 문학이 드문 가운데 올해 나를 매혹했던 소설 몇 편을 꼽아 본다.
독서노트 93편 글 중에 48편이 문학이었다.
<잠중록>(아르테) 중국 웹소설 베스트1위. 인터넷 1억뷰. 80만부 판매...등의 광고글이 요란한 이 소설은 내게 웹소설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몇 년 전 전자책으로 읽었지만 올해 종이책으로 다시 읽고 기록을 남겼는데 우리 웹소설과는 품격이 다른 깊이와 중국 문학의 서사에 감탄했다.
<스마일>(김중혁/문학과지성사) 최근 나온 한국 작가 소설집 가운데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을 쓸 때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놓고 그 음악들을 들으며 쓴다는 작가의 말을 읽고 이 작품들에 인용된 음악을 검색해 들어봤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양영희/마음산책) 아프고 또 애틋한 맘으로 읽었다. 조선학교와 교류하며 만났던 어린 청춘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읽는 내내 마음이 아렸다.
<체호프 희곡전집>(시공사) 체호프의 희곡 전집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난 건 처음인 것 같다. 전작을 완독하지 못하고 중간중간 골라 읽은 게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바냐외삼촌, 벚꽃동산, 세 자매, 갈매기 등 유명했던 작품들을 읽은 것으로 만족했다.
<내 어머니의 자서전>(저메이카 킨케이드/민음사) 올해 읽었던 소설 중 가장 강렬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그 생경함과 섬세한 묘사에 홀리듯 빠져들어 읽었다.
<미국을 노린 음모>(필립 로스/문학동네) 가상의 역사에 절묘하게 현실을 뒤섞어놓은 수작. 유대인의 삶을 포함해 미국 역사와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되었다.
<욘 포세 삼부작>(욘 포세/새움) 2023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노르웨이의 낯선 작가. 처연하고 아름답고 슬프고 가난한 사랑의 이야기가 긴 여운을 남긴다.
<사랑과 혁명>(김탁환) 그리고 <제주도우다>(현기영)는 말할 것도 없이 작가정신에 존경과 찬탄을 보낸다.
첫댓글 아..그래서 드라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