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문서들, 개혁주의 성경연구소, 정성호 역]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국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수정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1647년의 초판 이후에 1658년에 2판이 다시 출판되었습니다. “엄밀한 개혁주의”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판에 대해서 다루는 장에서 일부를 소개하면, “1658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다시 출판되는 동기는 직접적으로 개혁의 양상의 차원이 있다”(김영규, 엄밀한 개혁주의, p. 138)고 하였고, 1658년에 회중교회 주의자들은 샤보이 선언을 하였고, 웨스터 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발생하였던 그 당시 상황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시대에 대한 새로운 위기 속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재출판 되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의회의 소집장의 내용과 첫 초대 인물들과 실제로 그 소집에 나타난 인물들을 공개하고 있고,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신앙고백서, 대소요리문답, 정치, 예배 모범, 및 목사의 교리적 정관들이 근거하는 성경구절들을 전부 열거하여 출판하였고, 그래서 일정한 주제 아래 성경의 공동구절들이 모아지고 정리되며 서로 비교해 주고 있다(김영규, 엄밀한 개혁주의, p. 148)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옛 고백서(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을 재 출판했을 때는 설교권도 잃고 형제들과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권리조차 잃어버릴 때로부터 멀지 않았던 것이라”고 되어 있고, “..이런 세속화와 수 많은 오류들과 부끄러운 일들이 홍수 같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때 사단의 왕국이 세워지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이런 홍수의 문을 여는 데 도운 것이 지금 가족 지침서의 오용이 가장 큰 것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발생하였던 상황과 배경이 사라지고 크롬웰 공화정이 등장하는 전환기에 가졌던 문제의식이다. 즉 영적인 속박으로부터 해방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무지와 오류로부터 해방이었다. 이런 슬픈 상황이란 가정과 교사의 의무를 생략한데서 오는 열매였다고 보았다. 교육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요, 참된 종교개혁에 고정되지 않은 사람들이 잘못에 대해 매우 수용적이라는 사실을 역시 지적하였다. 친구인체 하면서 들어오고 선의 모양으로 들어오는 오래된 속임수에 빠지지 않도록 단순한 두뇌지식이나 사변이 아니라 내적이고 구원적 지식을 강조하였다. 이런 이유에서 지금 다시 성경구절을 첨부하여 신앙고백서, 대소요리문답을 출판하였다. 십계명과 주기도문도 함께 출판하였는데, 그 목적도 시대의 위기의식과 관련된 것으로 행해야 할 것들의 요약으로서 그리고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에 대한 규칙서로 출판된 것이다. 이것이 그들로서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의 뜻은 정해져 있었다. 그 후의 모든 역사가 이 출판을 부끄럽게 한 것이 아니라, 그 후 얼마되지 않아 모든 신앙 권리가 박탈당하였을 때 그것 때문에 그들의 영광이 드러난 것이다”(김영규, 엄밀한 개혁주의, pp. 150-151,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문서들, 개혁주의 성경연구소, 정성호 역 pp. 24-31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