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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말 한국문학의 큰 획을 그은 대하예술소설 "혼불"은 우리 문학계에 생태문학이라는 또 다른 영역과 현대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펼쳐 보였다. 그런가 하면 박제화되어가는 우리 민속 문화를 생생하게 복원, 재현하였다. 게다가 국어사전을 시집처럼 읽었던 최명희님은 "혼불"에서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운율을 살려 모국어의 감미로움과 미려함, 풍성함을 돋보이게 하여 찬탄을 자아내었다. "혼불"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움과 애련함, 근엄함과 서러움, 밝음과 어둠이 은행나무, 살구나무를 스친 댓바람 소리가 대실을 건너 노봉마을과 사매면을 싸고돈다. 가장 꽃다움을 보여주는 꽃심을 지닌 땅 노봉 마을의 이곳 저곳에서, 또 울분의 꿈틀거림이 녹아 있는 거멍굴의 이 골목 저 골목에서 "혼불"의 소살거림을 느낄 수 있다. 꾸불꾸불한 길을 "혼불"과 함께 한 식경 정도 걷노라면 최명희님의 내밀한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한 것이다. 즉 소설 "혼불"이 한국의 정서문화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남원은 바로 그 주무대이다 |
언어는 정신의 지문입니다. 한나라, 한민족의 정체는 목국어에 담아 있습니다. 라고 했다 한다.
또한 숨을 거두기전 한소 호흡기를 .쓴 채 마지막으로
" 혼불 하나면 됩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참으로 잘 살 살고 갑니다." 라고 했다.
혼불의 정신 작가 최명희.. 그녀의 정신을 받들다....
참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간 작가 최명희님의 마지막 눈물인가 봅니다...
눈물 마져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눈물 조차 아름다웠던
혼불 문학관 이었습니다...
작가 최명희 그녀의가 남기고간 흔적...
혼불 내부 전시관
혼불 줄거리
1930년대 남원 매안 이씨 집안의 삼대 종부(宗婦)가 커다란 축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청상의 몸으로, 다 기울어져 가는 이씨 집안을 힘겹게 일으켜 세운 청암부인 그리고 허약하고 무책임하기가 이를 데 없는 종손 강모를 낳은 율촌댁, 그리고 그 종손과 결혼한 효원이 그네였다. 이들이 전통사회의 양반가로서 부덕을 지켜내는 보루로 서 있다면 그 반대편엔 치열하게 생을 부지하는 하층민의 '거멍굴 사람들'이 있다. 특히 양반계층을 향해 서슴없이 대거리하는 옹골네와 춘복이, 당골네인 백단이가 강력한 자기장으로 긴장감을 유발시키고 있다.
이런 갈등의 그물은 우선 효원과 혼례를 치른 강모와 사촌 여동생인 강실이 사이의 근친상간에서 시작된다 . 애틋하게 바라만 보아오던 두 사람이 마침내 건너지 말았어야 할 선을 넘어 섬으로서 제각기 가파른 벼랑으로 내몰린다. 우유부단한 강모는 그를 따라나선 술집 기생 오유끼와 함께 머나먼 만주 봉천땅으로 도피를 해버리고, 강실이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홀로 삭이며 닥쳐오는 암운 앞에 무방비로 놓인다.
한편 상피에 대한 소문이 거멍굴로 전해지자 자기 자식만은 자신과 같은 운명에 놓여선 안 된다고 생각한 춘복이가 양반댁 강실아씨를 탐내기 시작하고, 춘복이와 몰래 동거를 하고 있던 과수댁 옹구네도 양반에 대한 복수심 그리고 춘복이를 잃고 싶지 않은 집착에서 모종의 음모를 꾸미게 된다. 그 음모란 상피에 대한 소문을 퍼뜨려서 강실이를 내치게끔 하고 그때를 노려 춘복이가 강실이를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차츰 은밀히 옹구네가 퍼뜨린 소문은 그물처럼 강실이와 효원을 죄어들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춘복이는 강실이를 겁간해 임신을 시키게 된다 . 이후 이런 모든 정황을 알게 된 효원은 애증이 교차된 마음으로 강실이를 피접시키려고 하나 그만 옹구네가 중간에서 강실이를 납치함으로서 상황은 예기치 않은 국면으로 치닫는다.
여기에 이씨 문중의 노비인 침모 우례에게 상전의 피가 흐르는 아들 봉출이가 번득이는 비수처럼 성장해 가고 , 청암부인의 묘에 투장을 했다가 덕석말이를 당한 당골네의 원한도 무서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계급적 모순을 인식하고 그것을 타파하려는 강모의 사촌형들, 강호와 강태도 강력한 전운을 드리우며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이런 갈등의 씨줄과 날줄이 촘촘히 짜여서 이제 생생하게 날뛰는 인간군상들을 막 건져 올릴 찰나에 허망하게도 소설은 끝이 아닌 끝이 나버렸다.
이야기 사이사이 마다 , 아니 이야기보다도 더 정성스럽게 저자는 당시 시대의 풍속사를 깨알같이 묘사하고 있다. 첫 장면인 혼례의식을 비롯해서 연(鳶) 이야기며 청암부인의 장례절차 그리고 유자광이나 조광조, '새로 쓰는 백제사'의 이야기도 돋보인다. 여기에 조왕신의 습속이나 복식에 대한 묘사, 윷점이야기 같은 내방의 섬세한 면면들도 감탄 속에 눈길을 끌고, 봉천땅의 구체적인 지리묘사라든지 사천왕의 긴 이야기도
사물에 대한 안목을 키워주는 대목이다 .
도대체 이런 기술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자료와 공부를 필요로 했을까 ? 독자들은 읽는 내내 고개가 저절로 숙여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성이야말로 바로 '혼불'을 만들어낸 근원이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된다.
몇장의 사진들... 이 시대의 내가 볼 수 없는 아주 귀하디 귀한 사진이라
재 촬영이라는 기법으로 몇장 올려 혼불을 다시 만났습니다.
혼불을 만난 사람들의 마음...
인증샷~ ^^
아직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빗방울은 멋지 않았습니다... 혼불 서민들의 마음이었을까요... 아마도 그랬던것 같습니다...
문학관 한족에 차를 마시는 방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직접 재배한 호불 고추가루가 있었는데 돈만 있었으면 냉큼 사오고 싶었을 정도도
신선도와 고추가루의 색채가 환상적이었습니다...
혼불문관관 차마시는 방 내부 천장의 모습입니다..
이리도 예쁘게 되어 있었습니다... ^^
혼불문학관의 전경입니다..
고개를 빼꼼... 혼불 문학관을 비를 맞으면서도 열심히 찍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곳 정자에서 혼불을 이야기하며따뜻한 차 한잔이 그리웠다,.
작가 최명희님의 어록 중...
그것은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그 윗대로 이어지는 분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가를 캐고 싶었다. |
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
지금 이토록 한 시대와 한 가문과 그래서 지금도 나는 다 못한 이야기를 이 일을 위하여 천군만마가 아니어도 좋은, |
'거짓이 아닌 글을 쓰게 하소서' '모국어가 살아야 민족이 산다' |
- 출처 혼불문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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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도 참 잘쓰시고 사진도 멋지고....^^
감사합니다.. 세상을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