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오색에서 한계령까지 등정기
오색약수터에서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까지는 5.1km이다. 출발 후 2.3km쯤에 이르니 동해 바다위로 아침 해가 붉게 떠오르고 있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는 태양은 거룩하기까지 하다.
우리 민족을 배달만족이라고 한다. 이는 「밝달」즉 밝은 태양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태양은 지구, 금성, 목성, 화성 등 여러 위성을 거느리고 태양계를 이루면서 우주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태양은 절대적이다. 절대자의 권위아래에 여러 위성이 존재한다. 우리 인간은 일찍이 그 이치를 깨닫고 태양에 견주는 천제를 최고 정점으로 하여 위성겪인 임금을 두고 그 아래에 이를 실행하는 여러 신하를 통하여 하늘-임(하늘에 계신 임), 즉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을 다스렸다.
그러나 이러한 절대자인 군주라 하여도 백성의 뜻, 즉 하늘의 뜻을 거스르면 바꿔칠 수 있다는 논리를 개발하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 또는 몇몇의 이익에만 급급한 지도자는 하늘의 이름으로 가차 없이 처단하였다.
막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잠시 쉬었다. 여러 번 수해를 입은 오색계곡의 등산로는 인공적으로 가꾸어졌다. 처음 50분 거리의 등산로는 돌계단 식으로 다듬어져 있는데 각도가 60도는 된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만나는 가파른 길을 오르고 나니 숨이 찬다.
해발 1,700여m인 설악산 초고봉의 정상이 600m 남은 지점에 이르렀다. 배가 고프다. 초콜릿과 물로 허기를 채우고 정상을 향해 올랐다. 8부 능선쯤부터는 눈이 보인다. 양지 바른 쪽은 눈이 녹아 있으나 음지, 또는 나무 밑에는 제법 쌓여 있다.
드디어 정상이다. 3시간 35분이 소요되었다. 보통 4시간 30분이 걸린다고 등산 안내 책자는 소개하고 있으니, 다소 빠르게 오른 셈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설악산은 맑고 시원하게 탁 트였다. 그러나 내설악 쪽은 운무가 쌓여 장관을 이룬다. 나는 대청봉을 여러 번 올랐으나 오늘 같이 맑은 모습으로 나를 반기는 설악산을 본적이 없다. 늘 구름 아니면 안개에 가리고 비, 또는 바람으로 정상에 서 있기가 힘들었는데 오늘은 왼 일인가. 기분이 몹시 상쾌하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다. 중청을 향하여 내려오다 보니 갑자기 운무가 몰려와 다시 모습을 감춘다,
중청대피소의 취사장에서 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다소 여유를 부리다가 또 다시 서북능선을 향하여 발길을 옮겼다. 능선 길은 눈이 많이 쌓여 있고 내리막길도 있으므로 아이젠을 착용했다. 중청을 지나 가리봉을 지나고 저 멀리에서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유혹하는 귀때기청봉을 향하여 걷고 또 걸었다. 내리막길이 있는가 하면 다시 오르기도 하고,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걸었다.
산에서는 목적지를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도 없고, 목적지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계산할 필요도 없다. 그냥 산속에 있다는 그 자체가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이며, ‘나는 산 사나이 이다.’고 생각할 때 한 없이 가슴이 뿌듯하다. 산에서는 서두르며 빠르게 걸어서도 안 되고, 자만해서도 안 된다. 특히 자만은 금물이다. 언제나 속세의 탐심(貪心:욕심)과 진심(瞋心:남을 원망하거나 미워한다거나, 화내는 마음)을 여의고 느긋한 마음으로 한발 한발 정성을 드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걷는 그 자체가 소중하고 보람이다.
능선을 걷자니 내 외설악이 환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운무에 가려 앞을 가늠하기 힘들 때도 있다. 다행히 눈길은 잘 다져지어서 걷는데 별다른 지장은 없다.
눈길은 계속되고 산모퉁이를 돌아서니 드디어 귀때기청봉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눈앞에 우뚝 선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약간 한 쪽으로 치우친 듯한 모습으로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대장부다. 서북능선은 계속 이어지고 있으나 나는 이곳 한계령 삼거리에서 방향을 바꾸어 한계령을 목적지로 걸음을 옮겼다. 한계령계곡은 지난해 비 피해를 심하게 입어 나를 몹시 귀찮게 했다. 더구나 남향이다 보니 눈이 녹아 지척거리는 비탈길은 많은 주의와 체력을 요구하였다. 이럴 때 한 순간 방심하면 미끄러져 계곡으로 구를 염려가 있을 뿐 아니라 돌너덜이 심하여 넘어지면서 자칫 몸의 일부를 상하기 십상팔구다. 잔득 긴장하고 내리고 오르기를 거듭하면서 지루한 하산 길을 마쳤다. 드디어 목적지인 한계령에 도착했다.
이 번 산행은 휴식 시간을 합하여 모두 9시간이 소요 되었다. 날씨는 바람이 없고 간혹 시기하는 운무를 제외하고는 쾌청하여 산행하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였다. 9시간을 산행하였으나 특별히 피곤하거나 다리가 아프지 않다.
한계령 휴게소에 이르니 이른 봄기운을 받으며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다. 인제에 있는 「감자네」 집에서 민물매운탕에 소주를 곁들인 늦은 점심을 먹고 이번 산행을 마감했다. 나를 포근하게 맞아준 설악산에게 감사를 표한다.
“설악산아 다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