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을까? / 곽주현
수업 현장을 벗어난 교사들이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는 장면이 연일 톱 뉴스가 되고 있다. 최근 며칠 사이에 학부모와의 갈등으로 삶을 포기한 선생님이 여럿 있었다. 안타깝다. 그분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교권을 보장해 달라는 외침이 점점 커지고 있다. 교육이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교사와 학부모의 갈등이 어떻게 마무리되면 좋은지 내가 보고 들은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읍내에 있는 규모가 큰 학교(48학급)에서 일어난 일이다.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이다. 담임이 어제 내준 과제 검사를 하고 있다. 받아쓰기한다고 국어책 한 쪽을 그대로 써 오라 했다. 그날따라 숙제를 안 해 온 학생이 많았다. 이러면 선생님은 열이 좀 오른다. 칠판 귀퉁이에 걸어 둔 지휘봉을 내렸다. 애들의 손바닥을 내밀게 했다. 겁을 먹고 녀석들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지휘봉을 들었다가 다시 걸었다. 이제 갓 입학한 애들에게 차마 매를 들 수 없었다. 이때 교사는 고민한다. “다음에는 잘 해 와야 한다.”라고 말하고 넘어가면 좋겠지만 아이들은 그때가 지나면 도로아미타불이 되기 때문에 적당히 제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쉬운 선생님(?)으로 알고 점점 더 말을 안 듣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선생님은 다른 벌을 내렸다. 잘못했으니 반성하는 의미로 양손으로 자기 뺨을 두드리라고 했다. 이런 것쯤은 체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매 맞을까 봐 벌벌 떨다가 그렇게 하라고 하니 확 풀어졌다. 뺨을 또닥거리면서 펄쩍펄쩍 뛰거나 뒹굴고 깔깔거리며 장난을 쳤다. 교실이 난장판이 되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 볼이 빨갛게 될 때까지 하라고 윽박질렀다. 아이들은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했다. 하교 시간이 되었는데도 볼에 벌건 기운이 남아 있는 녀석이 더러 있었다.
담임이 퇴근 시간이 되어 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교실 전화벨이 울렸다. 명현이 아버지라며 대뜸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그럴 수 있냐며 따진다. 자기 아들의 뺨이 불덩이가 되어 왔다고 했다. 격앙된 목소리와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그대로 전해져 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해도 막무가내로 자기 말만 퍼부었다. 담임도 지지 않고 잘 가르치려고 그런 건데 그게 그렇게 잘못한 거냐며 맞대응했다.
그분은 교장에게 항의하고 학교 운영위원회 정식 안건으로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학부모는 어린아이에게 이런 자해 행위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교사는 내가 직접 한 것도 아니고 교육적 차원에서 자기 처벌을 하게 한 것이라 교사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운영위원들은 학부모에게 별것도 아닌 것 갖고 뭐 그러냐며 그냥 없던 것으로 하자고 끝냈다.
이렇게 마무리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사흘 후에 큰 사건이 터졌다. 인터넷에 대문짝만하게 그 일이 실렸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을 비하하려고 행했던 자기 신체 학대를 교사가 아이들에게 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비난 댓글이 쏟아지고 학교 전화통이 불났다. 신문과 방송에서도 주요 뉴스로 다뤘다. 기자들의 취재로 학교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만큼 혼란에 빠졌다. 무엇보다 교사의 정신적 고통이 커서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그녀는 30년 경력자로 동료와 학부모가 인정하는 노련한 교사였다. 자신의 교육적 신념을 굽힐 수 없다며 끝내 사과하지 않았고 바다 깊은 섬마을로 전출했다. 그 학부모가 운영하는 한의원은 환자의 발걸음이 한동안 뜸했다고 들었다. 선생님, 학부모는 그때 왜 그랬을까?
하나 더 들어보자. 내가 근무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을이었다. 내일 운동회를 앞두고 총연습을 했다. 마지막 순서인 청, 백군 이어달리기가 진행된다. 청군이 앞서고 있었다. 6학년 백군 주자가 추월해서 결승점에 먼저 들어왔다. 청군 주자와 같은 반 한 녀석이 “너 때문에 우리 편이 졌다.”고 야유와 욕설을 퍼부었다. 담임이 보고 들었다. 그 애도 최선을 다했으니 그만하라고 타일렀다. 화가 안 풀렸는지 뭐라고 구시렁대더니 선생님 바로 앞에 있던 축구공을 뻥 찼다. 동시에 철썩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뺨을 문지르며 코를 씩씩거리면서 교무실 쪽으로 달려갔다.
운동회 연습이 끝나고 흩어진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웬 경찰차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들어왔다. 아동 폭력(그때는 아동 학대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신고가 접수됐다고 한다. 좀 전에 그 녀석을 찾는다. 당황스러웠다. 담임은 말도 못 꺼내게 하고 교감인 내게 그 애를 불러 달라고 한다. 교장실로 데리고 가니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부탁한다. 조사는 짧게 끝났다. 신고자가 잘못했다고 빌어서 무혐의 처리하겠다고 말한다. 경찰은 차에 오르면서 이런 일이 사건화되면 걷잡을 수 없다는 말을 덧붙이고 떠났다. 담임은 자기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서 아차 했단다.
사흘이 지나고 운영위원장의 전화를 받았다. 격앙된 목소리로 그런 죽일 놈이 없다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서운한 소리를 들을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직원 협의를 하고 있었다. 위원장이 자기 아들과 같이 들어와서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한다. 자식새끼를 잘못 길러서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으니 용서해 달라며 또 절을 하는 게 아닌가.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목젖 부위가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한참 멍하니 있다가 얼른 달려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날 저녁 그분과 전 교직원이 함께 회식했다. 노래방에도 갔다. 학생, 선생님, 학부모는 왜 그랬을까?
교육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건이 하루에도 여러 건 일어난다.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이라 하찮은 일에도 곧잘 고집을 부리고 다툰다. 교사는 타이르고 때로는 엄포를 놓으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분명히 이놈이 친구를 괴롭히고 먼저 싸움을 걸었다고 여기면 그를 더 강하게 훈육한다. 그런데 부모는 다르게 판단한다. 내 자식이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인정한다 해도 그게 그렇게 나무랄 일이냐며 핏대를 세운다. 아동 학대라고 교사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심지어는 고소까지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교사들은 학생 인권법을 없애거나 개정해 달라고 요구한다. 누가 봐도 아동 학대 조항은 교사가 적극적으로 생활 지도를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 법과 제도를 고친다고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까?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학부모의 요구와 교사의 수용 사이에는 틈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걸 메꾸려면 전화, 에스엔에스 등을 이용해 늘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가 달라지고 있으니 교사는 그에 맞추어 교육력을 높이는 데 부단히 노력해야한다.
학부모가 되면 선생님은 늘 어려운 존재다. 누가 뭐라 해도 교사가 갑의 위치에 있기에 불만이 있어도 웬만하면 덮고 만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교실 문이 닫히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학부모는 모른다.
교사, 학생, 학부모를 교육의 삼위일체라 한다. 서로 신뢰해야 교육이 바로 선다. 모두 자기 위치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