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사)춘천역사문화연구회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이슈. 화제. 논쟁 우리가 알고 있는 지내리 삼회사는 천년고찰 삼회사가 아닐 수 있다.
뒤뚜루(오동철) 추천 0 조회 122 14.12.17 00:01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4.12.17 08:54

    첫댓글 끈질긴 노력의 결실로 보여 논고가 더욱 값집니다!

  • 14.12.19 01:53

    <풍토기>의 '회삼사'가 잘못된 이름이라는 건 이미 역사문연 창립 때의 지표조사간다고 할 때 내가 글을 올려 알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위 번역문도 소개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제 제대로 읽혔다는 느낌이 듭니다. 오선생의 꼼꼼한 비교로 드디어 엉터리가 드러나게 됐습니다!
    송광연의 <삼한동기>는 내 생각으론 문제가 있는 글로 여깁니다. 옛 지도의 '삼회동' 표기는 의문입니다. ~동은 골짜기를 의미하는 말이고, 왜 삼회동과 삼한동이란 명칭이 불과 40년 사이에 같이 쓰였을까를 생각하면 서로 다른 곳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경운산 서쪽이면 지금의 삼한골이 맞겠고, 화전민이 살 만한 곳이면 지내리나 발산리는 아닐 것도!

  • 14.12.19 01:54

    그럼 우리가 서너 번씩이나 갔던 성문안 그곳, 지금 한림대에서 발굴하는 거긴 뭐였단 말인지 더 궁금해집니다. 거기도 분명 절터였는데!!

  • 작성자 14.12.20 00:47

    저도 궁금한데요 발굴중에 무언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현재상태로는 작은 암자로 추정되는 규모같아요...
    건물지가 축대2단에 건물하나인지 두개인지.....근데 더이상 발굴을 안할거 같더군요...ㅠㅠ
    우리가 답사갈때 와편나오던곳 불상이있던 바로 앞이 유일한 건물지더군요..

  • 14.12.19 23:56

    송광연 춘천부사에 대한 정리부터 해야 싶네요... 삼한동기라고 남긴 글이 과연 진정성이 있는지도 궁금해 지네요.

  • 작성자 14.12.20 00:45

    송관연부사 글을 수없이 읽었는데 송광연 부사글에서 현재관점으로 문제제기가 될 글은 법화사부분입니다. 법화사를 현재관점에서 볼것이냐 아니면 삼회동인근에 법화사가 있었느냐도 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또한 현재 용화산의 법화사도 보아야 하는 대목이 바로 청평사보다 일찍있었다는 건자야라는 사찰입니다. 이부분은 따로 글을 쓸 예정입니다. 지도를 다시 보았는데 청구도에도 삼회동은 지내리가 아니라 훨씬 동쪽으로 나오더군요..

  • 작성자 14.12.20 00:50

    오늘 문화원에 사무실 사용신청서쓰러 갔던길에 권혁진 박사를 만났는데 권박사말이 송광연이 춘주지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쓴 지리지가 있다고 하는데 발문만 있고 원본이 전해지는지 확인이 불가능해서 이부분도 찾아보아야 할 대목으로 보입니다. 분명 삼회동은 삼한동과 연관이 있는것으로 보이는데 춘주지가 잘못기록한건지 송광연이 잘못기록한건지 위치는 발산리 삼한골 주변이 맞는듯 보입니다.

  • 14.12.20 02:05

    @뒤뚜루(오동철) 송광연의 지리지라? 첨 듣는데, 규장각에서 <범허정집>에 붙인 해제를 보면 그건 ≪춘주승람(春州勝覽)≫! 그 발문의 내용을 보면 단지 엄황의 춘주지를 <동국여지승람>의 편목대로 편차하면서 제영들을 뽑아 묶은 정도라고 하니 다른 내용은 크게 기대할 것이 없어 보임!
    엄황과 송광연, 두 사람 중에서라면 단연 엄황의 기록이 정확하다는 생각입니다. 엄황 춘주지는 차근차근 이주 같은 사람들을 여러 번 만나며 스스로 즐기듯 실감있게 서술해나간 책이니까요.

  • 14.12.20 04:09

    또 드는 의문은 엄황의 <춘주지>에는 '삼한동'이란 말이 여기서 왜 안 쓰였냐는 겁니다.
    우리 첨 답사 때 내가 김평묵의 <중암집>에 나오는 한시를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1877년의 이 자료와 다른 추가 자료들을 옆 '춘천의 역사 - 조선시대'방에 다시 올리겠음!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