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숙종 재위 시기(1674~1720)의 사실 답①
'장희빈, 인현 왕후'와 관계 있는 왕은 숙종입니다.
숙종은 인현 왕후가 원자(후에 경종)를 낳지 못하는 가운데 후궁 장씨(후에 장 희빈)가 아들을 낳자 이듬해 원자로 삼고 후궁 장씨를 희빈으로 높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서인들이 강하게 반대하자 이들을 몰아내고 남인들을 대거 등용하여 남인들이 집권하였어요. 이후 제주도로 귀양보낸 송시열을 사사하고 인현 왕후를 폐비한 후 희빈 장씨를 왕비로 책봉하였습니다(기사환국, 1689).
숙종은 자신이 주도하여 정국을 주도하는 붕당과 견제하는 붕당을 급격하게 바꾸는 방식(환국)으로 붕당의 기반을 약화시켜 왕권을 강화하였습니다. 숙종 때에는 경신환국(1680), 기사환국(1689), 갑술환국(1694)의 세 차례 환국이 일어났는데, 이 과정에서 서인과 남인은 번갈아 집권하면서 상대 붕당을 인정하지 않고 가혹한 보복과 탄압을 가하였어요. 이에 따라 견제와 균형을 통한 공존 관계를 유지하던 붕당의 원리가 깨지고 특정 붕당이 정권을 독점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결국 숙종 때의 환국을 통해 남인이 몰락하고, 서인이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져 대립이 심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붕당 정치의 변질로 노론 중심의 일당 전제화가 지속되고, 공론보다 개인이나 가문의 이익을 우선하는 경향이 나타났어요. 이에 숙종은 극심해지는 붕당의 대립을 조정하기 위해 탕평 교서를 내리기도 하였지만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였습니다.
① 숙종 때에는 경신환국(1680), 기사환국(1689), 갑술환국(1694)의 세 차례 환국이 일어났어요.
② 중종은 조광조의 건의로 현량과를 실시하였습니다.
이는 유능한 선비를 천거하여 관리로 등용하는 제도로, 사림이 관직에 진출하는 데 도움을 주었어요.
③ 영조는 군역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하여 1년에 군포 1필만을 부담하도록 하는 균역법을 실시하였습니다(1750).
④, ⑤ 정조는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여 왕권을 뒷받침하는 군사 기반도 확보하였고, 신진 인물이나 중·하급
관리 중에서 유능한 인재를 재교육하는 초계문신제를 실시하여 개혁 세력을 육성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붕당의 흐름
환국
경신환국(1680): 유악 사건이 계기가 되어 서인이 남인을 역모로 몰아내고 정권을 독점한 사건
이때 서인 내부에서 남인에 대한 처벌을 놓고 노론(강경론)과 소론(온건론)으로 분화됨
기사환국(1689): 원자(장희빈 소생) 정하는 과정에서 남인이 집권하고 서인이 축출됨, 송시열 등이 사사
갑술환국(1694): 인현왕후(서인 옹호) 복위되고 서인이 재집권하면서 남인은 축출됨
유사 기출문제
21회 중급 25번 문제
25. 숙종 대의 사실 답⑤
얼마전 "장옥정, 사랑에 살다"라는 사극이 인기를 끌었었는데, 그 주제와 관련하여 출제되었네요. 거기서 숙종과 장옥정이 노론계 인물의 동생인 김만중이 집필한 "사씨남정기"가 장안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에 불안해 하던 장면이 나왔었는데, 그 드라마를 보셨던 분은 이 문제를 맞추기 쉬웠을 것 같아요.
문제에 설명된 "인현 왕후 폐출과 장희빈 왕비 책봉"이라는 내용을 통해 밑줄친 이 왕이 숙종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숙종 대의 사실을 파악해 봐야겠죠?
조선 후기에 붕당 정치가 변질되면서 정치 집단 간의 세력 균형이 무너지고, 왕권 자체도 불안해졌습니다. 이에 강력한 왕권을 토대로 국왕이 정치의 중심에 서서 세력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탕평론이 제기되었어요.
숙종은 인사 관리를 통하여 세력 균형을 유지하려는 탕평론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황에 따라 한 당파를 일거에 내몰고 상대 당파에게 정권을 모두 위임하는 편당적인 인사 관리로 일관하여 환국이 일어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환국이란 한 당을 일시에 나몰고 상대당을 일시에 등용하는 급격한 정국 변화를 뜻합니다. 이러한 환국은 숙종 때 크게 경신환국(1680), 기사환국(1689), 갑술환국(1694)이 있었어요.
이때부터 상대 세력과 공존하기보다는 권력을 잡은 당은 상대당을 철저하게 숙청,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환국을 왕이 직접 나서서 주도함에 따라, 외척이나 종실 등 왕과 직결된 집단의 정치적 비중이 커지게 됩니다. 정치 권력은 점차 고위 관원에게 집중 되었으며, 언론 기관이나 재야 사족의 정치 참여가 점차 어려워짐에 따라 붕당 정치의 기반도 무너져가기 시작하였습니다.
① 이양선(서양 선박)이 통상을 요구하기 시작하는 것은 19세기 들어서입니다.
이양선(모양이 다른 배)은 기존에 보던 배와 생김새가 다르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양선은 18세기 말부터
조선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순조 때인 1832년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인 로드 암허스트호가 최초로 공식적인
통상을 요구하였습니다.
② 예송이 발생한 것은 현종(1659~1674) 때입니다.
효종의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과 관련하여 기해예송(1659), 갑인예송(1674)이 발생하면서 서인과 남인 사이에
대립이 격화되었어요.
③ 서얼 출신의 규장각 검서관 등용은 정조(1776~1800) 때의 일입니다.
정조는 붕당이나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였어요. 이때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등 서얼 출신 학자들이
청요직으로 불릴 수 있는 규장각 검서관에 등용되었습니다.
④ 속대전 편찬은 영조(1724~1776) 때의 일입니다.
⑤ 환국으로 상대당을 일시에 내몰면서 특정 붕당이 정권을 독차지하는 일당 전제화 추세가 나타났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20회 중급 15번 문제
15. 붕당의 등장과 성격 답②
붕당 정치는 정말 중요한 출제 주제라는 것 말하지 않아도 알죠?
'이조 전랑 자리를 둘러싼 김효원과 심의겸의 대립',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이 나타나 있으니 붕당에 대한 설명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따라서 붕당과 붕당 정치의 전개 모습을 살펴보면 되겠네요.
붕당은 인사권을 가진 이조 전랑의 임명 문제(김효원과 심충겸)와 공론을 둘러싸고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1575). 붕당은 정치적 이념과 학문적 경향에 따라 결집되어 정파적 성격과 학파적 성격을 동시에 가졌으며, 공론을 앞세운 정치 운영을 추구하였어요.
붕당 정치의 흐름을 쭉 살펴보시죠.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후, 처음에는 동인이 우세한 가운데 정국이 운영되었습니다. 동인은 정여립 모반 사건 등을 계기로 온건파인 남인과 급진파인 북인으로 나뉘었죠. 처음에는 남인이 정국을 주도하였으나, 임진왜란이 끝난 뒤 북인이 집권하여 광해군 때까지 정국을 주도하였습니다.
북인은 서인과 남인 등을 배제한 채 정권을 독점하려 하였고, 결국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에 의해 몰락하였습니다(1623). 서인은 남인 일부와 연합하여 정국을 운영해 나갔어요. 서인과 남인은 모두 학파적 결속을 확고히 한 정파들로, 이들은 기본적으로 서로의 학문적 입장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상호 비판적인 공존 체제를 이루어 나갔습니다.
이후 현종 때까지는 서인이 우세한 가운데 남인과 연합하여 공존하는 구도로 붕당 정치가 전개되었어요. 그러나 현종 때에 효종의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과 관련하여 두 차례의 예송이 발생하면서 두 붕당 사이에 대립이 격화됩니다.
숙종 때에 이르러 정국을 주도하는 붕당과 견제하는 붕당이 서로 교체됨으로써 정국이 급격하게 전환하는 환국이 나타났어요. 이로써 특정 붕당이 정권을 독점하는 일당 전제화의 추세가 대두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서인과 남인이 격렬하게 대립하였으며, 나중에는 서인에서 갈라져 나온 노론과 소론이 치열하게 경쟁하였어요. 이렇듯 붕당 정치가 변질되면서 정치 집단 간의 세력 균형이 무너지고, 왕권 자체도 불안해졌습니다. 이에 숙종~정조 때에는 강력한 왕권을 토대로 국왕이 정치의 중심에 서서 세력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탕평책이 추진됩니다.
① 각 붕당들은 공론을 형성하고 이를 앞세워 정치 운영을 추구하였어요.
② 신진 사대부는 고려 후기에 등장하였으니 붕당과는 거리가 멀죠?
무신 집권기 이래 과거를 통해 중앙 관리로 진출한 신진 사대부들은 공민왕(1351~1374)이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계 진출을 확대하였어요.
③ 붕당들은 특정 정당의 독주를 방지하고 상호 비판과 견제를 통해 정치 활성화에 기여하였습니다.
④ 숙종 때에 이르러 정국을 주도하는 붕당과 견제하는 붕당이 일시에 교체됨으로써 정국이 급격하게 전환되는 환국이
나타났어요. 환국으로 특정 붕당이 정권을 독점하는 일당 전제화의 추세가 나타났습니다.
⑤ 붕당은 정치적 이념과 학문적 경향에 따라 결집되어 정파적 성격과 학파적 성격을 동시에 가졌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9회 중급 21번 문제
21. 예송 논쟁이 일어난 시기 답③
붕당 정치와 관련된 내용은 정말 자주 출제되네요.
동서 분당, 예송 논쟁, 환국, 탕평책 등과 관련한 내용이나 시기 파악 등에 대한 문제가 출제되니 잘 공부해 두세요.
문제에 제시된 대화 내용은 효종이 죽었을 때의 상황이네요.
효종이 죽자 몇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를 놓고 남인과 서인 간에 대립한 사건, 즉 예송의 모습입니다.
예송을 모르더라도 효종이 언제 재위했는지를 알면 그가 죽었다는 상황만 가지고도 (다)를 찾을 수 있는 문제예요.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1623) 이후 현종 때까지는 서인이 우세한 가운데 남인과 연합하여 공존하는 구도가 유지된 채 붕당 정치가 전개되었어요.
그러나 현종 때에 효종의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과 관련하여 두 차례의 예송(禮訟)이 발생하면서 서인과 남인 사이에 대립이 격화되었습니다.
예송은 1659년 효종의 사망 시(기해예송)와 1674년 효종비의 사망 시(갑인예송)에 두 차례 일어났어요.
두 예송 모두 인조의 계비이자 효종의 새 어머니인 자의대비가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나를 놓고 대립한 사건입니다.
서인은 '왕과 사대부의 예는 기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보고 선왕이 적장자가 아니므로 대비가 1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주장하였고, 남인은 '왕과 사대부는 다른 예가 적용되어야 하므로 선왕이 적장자는 아니지만 왕위를 이어받았으므로 장자의 예로 대우해 대비는 3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기해예송에서는 서인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서인이 정권을 잡았고, 갑인예송에서는 남인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남인이 정권을 잡았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18회 중급 22번 문제
22. 북벌을 주도한 송시열 답①
문제에 제시된 내용의 '북벌 운동을 편 서인 노론의 영수(당수), 효종이 하사한 담비 가죽옷' 등을 통해 (가)에 들어갈 인물이 우암 송시열(1607~1689)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송시열은 서인 노론의 지도자로서 효종 때에는 북벌 운동을 주도하였던 인물입니다.
효종에 이어 즉위한 현종 때에는 효종의 장례와 관련하여 자의대비(인종의 계비로 효종의 어머니격)가 상복을 얼마 기간 동안 입을 것인가를 놓고 남인과 서인 사이에 예송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서인은 신권을 강조하는 상복설(1년, 9개월)을 주장하였습니다.
이후 숙종 때 기사환국(1689) 당시 남인이 정치적 실권을 잡으면서 유배되었다가 사약을 받고 죽었습니다.
기사환국은 숙종이 정비인 인현왕후가 아이를 낳지 못하고 소의 장씨(장희빈)이 아들을 낳아 이를 원자로 삼으려 했는데, 서인들이 이에 반대하자 이들을 내치고 남인들이 중용하였으며, 끝까지 이를 반대한 송시열은 사사되었던 사건입니다.
② 박지원(1737~1805)은 북학파(중상학파) 실학자였습니다.
그는 연행사로 청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저술하고 상공업의 진흥을 강조하면서 수레와 선박의 이용, 화폐 유통의
필요성 등을 주장하고, 양반전, 허생전, 호질, 민옹전 등의 소설을 써서 양반 문벌 제도의 비생산성을 비판하였어요.
농업에서는 한전론을 주장하였으며 영농 방법의 혁신, 상업적 농업의 장려, 수리 시설의 확충 등을 통하여 농업 생산
력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③ 신숙주(1417~1475)는 집현전 학사 출신으로 세종~성종에 이르는 시기에 활동한 인물입니다.
그는 집현전 학사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수양대군의 편에 서서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로 즉위하는 데 참여
하는 등 많은 공신에 추대되었는데, 이 때문에 변절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④ 김정희(1786~1856)하면 추사체로 유명하죠.
그는 ‘금석과안록’을 지어 북한산비와 황초령 등 진흥왕 순수비를 소개하였고, 제주도 유배 시절에 그린 ‘세한도’
등의 그림과 ‘추사체’로 대표되는 독특한 서체로 유명합니다.
⑤ 채제공(1720~1799)은 영조~정조 시기의 남인의 영수였습니다.
그는 남인으로 영의정에 올랐으며, 사도세자에 대한 의리가 깊었고, 신해통공(1791)을 주도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17회 중급 24번 문제
24. 숙종(1674~1720) 대의 정치적 상황 답④
자료를 파악할 것도 필요 없이 그냥 숙종 때의 주요 사건을 파악하는 문제입니다.
숙종 때에 국왕이 정치의 중심에 서서 세력 균형을 유지하려는 탕평론이 처음 제시되었지만, 상황에 따라 한 당파를 일거에 내몰고 상대 당파에게 정권을 모두 위임하는 편당적인 인사 관리로 일관하여 정국이 급격하게 전환되는 환국이 일어나는 빌미를 제공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서인과 남인이 격렬하게 대립하였어요. 경신환국(1680, 유악 남용 사건)에서는 서인 승리, 기사환국에서는 남인 승리(1689, 원자 정호 문제), 갑술환국(1694, 인현왕후 복위)에서는 다시 서인이 승리하였습니다. 이때 정권을 잡은 당파는 상대 당파를 일거에 춛출하고 정권을 독점하였습니다. 이로써 특정 붕당이 정권을 독점하는 일당 전제화의 추세가 대두되었지요.
갑술환국 이후에는 남인은 배제되고 서인에서 갈라져 나온 노론(남인에 대한 강경파)과 소론((남에 대한인 온건파)이 치열하게 경쟁하였습니다.
①, ② 정조(1776~1800) 때의 일입니다.
정조는 붕당의 비대화를 막고 자신의 권력과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신진 인물이나 중·하급 관리 중에서 유능한
인사를 재교육하는 초계문신 제도를 실시하였습니다. 또한 수원으로 사도세자의 묘를 옮기고 화성을 세워 정치적·
군사적 기능을 부여하고 상공인을 유치하여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상징적 도시로 육성하고자 이곳에 자주
행차하였어요.
③, ⑤ 고종의 즉위 후 흥선 대원군이 추진한 대내외 정책과 관련된 것입니다.
흥선 대원군은 프랑스와 미국의 침략을 물리친 후 서양 세력에 대해 자신감을 가졌고, 각지에 척화비를 세워(1871)
서양과의 수교를 거부한다는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오페르트가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발각되어 달아난 사건이 일어났는데(1868),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는 서양인을 오랑캐로 보는 풍조가 널리 퍼졌습니다.
④ 숙종 때인 1694년 인현 왕후 복위 문제를 놓고 서인과 남인이 대립하여 서인이 승리하면서 서인이 재집권하고
남인이 축출됩니다(갑술환국). 이를 계기로 남인이 정계에서 완전히 밀려나고 이후 정국은 노론과 소론이 경쟁하는
구도로 바뀌죠.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4회 중급 25번 문제
25. 붕당 정치의 전개 과정 답②
(가) 선조 때 중앙 정치를 주도권을 잡은 사림 세력은 이조 전랑의 임명 문제를 둘러싸고 신진 사림을 중심으로 한 동인과 기성 사림을 중심으로 한 서인으로 붕당을 형성하였습니다.
(나) 정조가 갑작스럽게 죽고 나이 어린 순조가 즉위하면서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은 몇몇 가문이 정권을 장악하는 세도 정치가 등장하였습니다. 순조 때에 순조의 장인이었던 김조순을 중심으로 안동 김씨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시작된 세도 정치는 순조, 헌종, 철종의 3대 60여 년 동안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왕의 외척 세력에 의해 지속되었어요.
(다) 숙종 때에 이르러 정국을 주도하는 붕당과 견제하는 붕당이 일시에 교체됨으로써 정국이 급격하게 전환되는 환국이
나타났어요. 환국으로 특정 붕당이 정권을 독점하는 일당 전제화의 추세가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가)-(다)-(나)로 묶인 ②번입니다.
효율적인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공부법
카페에서 추천하는 부담 없는 [한권으로 끝내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교재로 중요내용을 공부하고
마지막으로 카페에 올려진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출문제해설을 꼼꼼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고급 교재지만, 고등학교 교과서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3급 준비에도 최고!!!!!
2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국사사랑방/한국사능력검정시험합격률/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출문제/한국사기출문제해설/한국사능력검정시험난이도/한국사능력검정시험합격률/한권으로끝내는한국사능력검정시험
첫댓글 댓글은
감사합니다....라는 글은 달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문제에 대한 난이도, 자료 등에 대한 느낌이나
개인적인 문제풀이 접근법 등을 달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문제 난이도가 참 큽니다. 어찌보면 사극 이랑 연계가 큰것 같네요.
어려운데요...ㅜ
기본적으로 그 시대에 일어났던 배경사건들을 중심으로 공부를 해야겠네요. 2급 따려면 시간 많이 걸릴듯 합니다..ㅠ.,ㅠ
역사책을 읽으며 다시한번 문제에 접근해야겠어요 어렵네요
감사합니다
연관문제를 같이 올려주셔서 이 문제에 대해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는거 같습니다.
문제가 어렵지만 해설까지 읽는 재미가 있어 너무너무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난이도가 그닥 어렵진 않은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하나도 모르겠네요 ㅜ,.ㅡ
어렵네요ㅠ 앞으로 정말 열심히 해야겠어요ㅠㅠ
연관 문제와 자세한 해설에 감동입니다. 시험 막바지 총정리를 하게 되어 좋습니다. 모두 파이팅이요!
어렵네요..ㅠㅠ 해설 항상 감사합니다!
공부한 부분이지만 막상 문제를 접하면 이리저리 섞여있는 개념들을 끄집어내기가 참 힘듭니다.
그렇지만, 해설을 읽고 다시 문제를 접하니 머리속에 차분히 정리되는 것 같아 한결 쉬워집니다.
깊이 공부해야 하네요~
어렵네요 진짜~~ㅠㅠ
사씨남정기에서는 숙종에 비유한 유한림이 우유부단한 인물로 묘사되는데,,
환국을 적절히 이용해 붕당을 견제한 숙종 실제로는 카리스마있는 왕이었던 것 같네요^^
해설이 훌륭합니다
붕당은 암기보단 흐름을 이해하는게 도움이 될 듯 합니다......어렵네요
반복학습의 중요성을 유사문제를 풀면서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