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 정수경
타일의 의지 같았다
옷자락을 뒤에서 잡는 사람의 일 같아서 눈을 깜박거렸다 당겨주는 시선이 없어 타일은
사슴의 목덜미를 오래도록 물고만 있었다 죽음을 4초에 한 번씩 털어냈고 사슴은 서서히 타일의 시간과 겹치기 시작했다
약을 먹어도 나무는 진초록이 되지 않았고 일몰은 늦춰지지 않았다 틈은 좁혀질 생각이 없었으므로
배관이 인지하지 못하도록 실금을 냈고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만 흘렀다 누수는 오래도록 보이지 않았고
타일 밑에서의 일이었다
층계에는 금이 간 타일이 쌓여 있다 마치 지연에 관한 초록 같았다
사물들은 각자의 성향을 연기시키고 있었고 그건 타일의 속성과는 다른 의미였다 나는 좀 더 늙어가고 있었다
새는 걸 막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의지와는 다르게
정수경
전남보성 출생
웹진 『시인광장 』 제9회 신인상 등단
현재 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 재학중
한국문인협회 시흥지부 회원
시향문학회 회원.
<조극래/초보 시인을 위한 현대시 창작> 중
시를 통해서 다시 한번 더 '환유적으로 시 쓰기'에 대해 알아보자.
환유란 두 대상 사이에 아무런 공통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두 대상이 관습적으로 인접해 있을 때 성립하는 비유를 말한다. (본 시창작 1부 23강
참조)
현대시에서 환유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환유는 관습으로 생겨나기 때문에 생략되는 일이 다반사다. 예를 들면 '꽃다발을 받다'라는 문장의 의미는
'꽃다발로 축하를 받다'이다. 여기서 '축하'는 자주 생략되어 버린다. 환유가 가청적 속성을 갖기 때문에,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아는 영
역은 쉽게 생략된다.
그러나 생경한 문장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 때는 상당히 곤란해진다. 난해한 시를 앞에 놓은 것처럼 머리에 구름이 인다. 이럴 때는 감성에 와 닿는
대로 시를 읽는 게 좋다. 시 이론을 몰라도 상관없다. 그냥 '환유'라는 것을
은유, 제유, 상징, 알레고리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하다.
위의 시를 감상하려면 이해가 쉽지 않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좀처럼 감이 안 잡힌다. 그러나 환유적으로 풀이해 보면 문장은 뜻밖에 단
순해진다. 생략된 한 문장만 끌어오면 된다.
① 화자는 소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소나무 껍질이 마치 타일 같다. 그러면 소나무는 배관인 걸까?
② 시적 화자는 나무둥치를 끌어안아 본다. 나무둥치를 끌어안는 동물이 있을까. 사람만이 가능한 일인 것 같다.
③ 나뭇가지는 사슴의 뿔처럼 생겼다. 그러면 나무둥치는 사슴의 목덜미인 걸까. 그러고 보니 사슴에게도 타일 같은 얼룩무늬가 있구나.
④ 결국, 소나무는 사슴과 타일로 환유될 수 있겠구나.
⑤ 그런데 저 소나무는 고목이다. 물관부를 통해서 끊임없이 물을 공급해도 늙어가는 건 어쩔 수 없구나. 인간이나 소나무나 죽음이란 운명은 피할 수 없구나. 단지 약을 먹어 생명을 지연시키는 일만 가능한 것이구나. 우리가 매일 약을 먹듯 나무도 약을 먹는 것이구나.
⑥ 하지만 내가 늙어가듯 소나무도 여전히 늙어간다. 단지 늙음이 새는걸 막고 있을 뿐인 걸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