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난데없이 머리를 들들 볶고 나타났습니다.
딱 보는순간 생각했죠. '아! 이건...이건 아니다! 이건, 진짜 아니다.'
그녀의 얇고 가는 머리카락에는요, 긴 생머리가 딱이었는데.
아, 얼마나 청순하고 예뻤는데...
그런데 정작 그녀는 자기 머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주 뿌듯한 표정으로 자꾸 묻는 겁니다.
"나 어때? 괜찮아?"
야! 아후... 괜찮긴 뭐가 괜찮아! 너 아줌마 같애. 빨리 머리 피고 와 다시.
이렇게 말하면 그녀가 삐지는게 당연한 일이죠.
전 그냥 담담하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 집에 보일러 터졌냐?"
그날 이후로 계속 시달렸어요.
물론 그냥 예쁘다고 말해주면 해결될 일이었는데,
하지만 그러기에는 청순하던 옛모습이 너무 그리웠습니다.
그러기를 일주일째. 오늘 단단히 삐진 그녀가 내 손을 끌고 말없이 미장원으로 가더군요.
이렇게해서 마침내 그녀는 찰랑거리는 단발머리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지금 그녀를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예쁘다고, 아주~ 예쁘다고 칭찬해 주는 중이죠.
[♀] 그 여자...
사실 나한테는 긴 생머리가 잘 어울려요. 나도 알고 있죠.
파마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 미장원 언니들도 다 말릴 정도였으니까.
그렇지만, 청순하다 얌전하다 나에 대한 그런 수식어를 한번쯤 바꾸고 싶었어요.
사실 예전부터 그러고 싶었죠. 안그런척 했지만 사람들 시선을 신경쓰느라,
옷도 머리모양도 검증된 스타일이 아니면 시도해보지도 못했다니깐요.
그런데 요즘 남자친구.
그러니까 날 제일 에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내게 자신감을 줬던 거 같아요.
다른사람이 뭐라건 상관없어. 그 사람은 내 어떤 모습도 좋아해 줄거니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정말 많이 섭섭했죠.
이 사람 나중에 내가 늙고 뚱뚱해지면 날 사랑하지 않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구.
지금 옆에서 머리 풀었다고 좋아라 웃고있는 이 사람, 아직도 많이 얄밉고 많이 서운해요.
혼자 마음을 달래고 있는 중입니다.
음...또... 그래. 최소한 나한테 거짓말은 안하겠구나.
아니, 근데 착한 거짓말은 좀 필요한 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