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보령 대회는 다음 주 있을 몽골 대초원 마라톤대회를 앞두고 마지막 장거리훈련 삼아 뛰게 된 것이다.
지난 달 천안 유관순 대회 이후로 장거리훈련을 전혀 하지 못했다.
내가 말하는 장거리훈련이라 함은 25km 이상을 달리는 것을 말한다.
날이 더워지니 장거리 달리기를 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겨우 하루에 10km 정도 달리며 근근이 마라톤 감각만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요즘 한 달 주행거리가 300km 넘기기도 빠듯하다.
이래서는 1년 주행거리 목표 3,600km 넘기기는 이미 글렀고, 지금으로서는 3,200km만 넘겨도 황송할 따름이다.
오늘은 하프를 달렸는데, 사실 하프도 25km가 되지 않으니 장거리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 거리라도 지금으로서는 장거리라고 주장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원래 오늘 보령에서 근무하는 담아내기도 출전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군대 간 아들을 갑자기 면회하러 갈 일이 생겨서 대회에 불참하게 되었다.
담아내기에게 바가지 좀 톡톡히 씌우려고 작정했었는데.... (쩝!)
담아내기 아들이 강원도 원통이라는 곳에 자대배치를 받았다는 것이다.
강원도 원통은 옆동네 인제와 더불어 군 부대 중에서 가장 오지 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래서 군대생활한 남정네들은 다 아는 것이지만 옛부터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말이 생겨났다.
아무쪼록 담아내기 아들 군 생활 무사히 잘하고 오길 바란다.
오늘 출전한 토끼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나를 비롯하여 대전의 은결(김정옥), 천안의 자연인(이기연), 그리고 서울에서 왔다는 바다향기(최숙자) 뿐이었다.
처음 보는 바다향기(최숙자)는 서울 구로에서 횟집을 운영한다고 한다.
이름이 최숙자여서 옛날에 '눈물의 연평도'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 최숙자가 연상이 되었다.
칠갑산산토끼도 왔다고 하는데 만나지는 못했다.
간밤에 밤새 비가 억수로 퍼부었고 오늘도 비는 계속 내린다고 하여 꼼짝없이 우중주해야겠다고 각오하고 길을 나섰는데, 대회장에 도착하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날씨가 좋아졌다.
나는 속으로 '역시 내가 평소 적선을 많이 했으니 하늘이 돕는구나'라고 생각하며 흐뭇해 했다.
작년엔 서울 퇴깽이들이 단체로 이곳 보령으로 몰려와서 1박2일 야유회를 즐겼고 나도 클럽 회원들과 함께 1박2일 야유회를 보낸 기억이 새롭다.
그날 대낮부터 막걸리에 취해 쓰러졌다가 월드컵 한국과 우루과이전도 못 보고 자버렸었다.
작년에는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할 정도로 날씨가 좋았었지.
오늘 레이스 도중 날씨는 정말 변화무쌍 그 자체였다.
레이스 출발 후 5km 지점까지는 비가 안 와서 달리기가 좋았는데, 5km 넘어서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금새 폭우로 변한다.
이때 나는 '아, 내가 평소 악행을 많이 한 것 같구나'라고 생각하며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비가 내려 내가 비 맞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지금 나랑 같이 달리고 있는 카메라인 것이다.
몽골 대회를 앞두고 며칠 전 카메라를 거금 몇만 원 들여 수리를 했었다.
내 카메라는 주인을 잘못 만나 항상 땀에 젖고 물에 젖어 툭하면 고장이 난다.
그런데 수리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소낙비 세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오늘 레이스 내내 비가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하기를 수없이 되풀이 한 것이다.
17km쯤 왔을 때였다.
저 멀리 주로에 고양이로 보이는 것이 어슬렁거리고 있어서 접근했더니 고양이가 아니고 강아지였다.
흠뻑 소낙비를 맞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그 강아지는 배가 고팠는지 내가 손을 저어가며 접근하자 처음에는 경계하더니 바로 내 품에 안겨 나의 손을 빨아댄다.
배고파 죽겠으니 빨리 밥을 달라는 뜻일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녀석을 둘러메고 달려서 골인하여 차에 태우고 집에 가서 잡아서 막걸리 안주로 삼을까 잠시 생각도 해봤는데...
결국 입맛만 다신 채 이녀석을 놓아주고 오고 말았다.
골인했을 때도 비가 세차게 내린다.
원래 계획은 레이스 끝나고 조용한 남포방파제에 가서 회 한 접시 먹고 오는 것이었는데, 비 때문에 회 먹으러 가는 것은 포기하고 주최 측에서 제공한 국밥 한 그릇 간단히 먹고 서둘러 귀가길에 올랐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서는 요란한 뒤풀이 사진을 독자들에게 서비스하지 못 하게 됨을 송구스럽고 애석하게 여기는 것이다.
여전히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한여름밤은 깊어만 가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후회막급이다.
지금도 그 녀석이 눈에서 아른거린다.
낮에 본 그 강아지를 어떻게 해서든 집으로 모시고 왔어야 하는 건데.....
첫댓글 수고들 했슈 ~~ ㅎㅎㅎㅎ 보령에는 집잃어버린 개들이 많이 돌아다닝가 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