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거 엄마 처럼 볼 때마다 청바지 차림인 큰 딸을 보고 저 차림으로 " 어떻게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까 " 했던 큰 딸이 정장 차림으로
옷과 신발을 가져왔다
오래간만에 차려입고 새 신발을 신으니 어째 좀 어색하긴 해도 기차 타고 여행해 본 지가 10여 년이 넘은 것 같아 그러려니 했다.
기장해안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시작하여 해광사를 지나고
송정해수욕장 교차로→해운대로→ 송정터널→장산로 →대천램프삼거리 →우동지하차도
→장산1터널→-진입요금소→광안대교→ 동명오거리→부산항7부두→ 북항재개발구역 →10시30분 부산역 도착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거리들 이다
"KTX 12시에 부산역 출발, 14시 30분 광명역 도착" 이니 화장실에 갔다 오고 개찰구 가까운 의자에 앉아 TV 본다.
오가는 사람들 관상을 보니 각자의 말못 할 사연들이 얼굴에 스며있다.
TV에는 "7달러뿐인 사나이"가 방영되고 있다.
전 재산이 7달러 뿐인 사나이가 파이터로 성공하여 번 돈을 전액 고향에 식수 개발에 사용하도록 보낸다.
이 일을 알게 된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억만장자가
이 사람에게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저택을 마련해 준다는 이야기이다.
"5원짜리 동전 한개뿐인 사나이 "
내가 서울에서 생활할 때 친구와의 약속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혼자 집에 있기 힘들어 집을 나섰다.
전화해서 좀 빨리 나오라고 해야겠다 하고 주머니에 보니 딸랑 5원짜리 동전 한 개다.
나에게는 말할 수 없이 소중한 5원 짜리 동전이었다.
그 당시 3분간 통화할 수 있는 공중전화 통화료가 5원이었다.
서울역 앞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에서는 소음 때문에 소통이 안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서울역 앞에서 보기는 지척(咫尺)이지만 실제로 상당히 먼 거리인 후암동 사무실에 가기로 했다
힘들게 오르막길을 올라 동사무실 출입구 옆에 붙어 있는 전화기에 5원 짜리 동전을 넣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이얼을 돌렸다
발신음이 뚜~뚜~뚜~세 번 울리고 "뚝"하고 끊겨 버린다. 이런 난감한 일이 있나. 전화기를 세차게 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갈 데가 없다.
하는 수없이 남산으로 올라갔다. 5시간을 남산을 헤매었다 그 때의 기억이 "마누라와 함께 남산 타워
스카이라운지에서 저녁을 먹었던 것"보다 훨씬 전의 일인데 새롭게 느껴진다.
광명역에 도착하니 진주가 나와있다.
해주와 진주가 마누라의 기럭지를 물려받아 쭉쭉 뻗은 모습이 시원하다.
광명역에서 "헤이스 가든 " 가는 길
이정표에 시흥 지명이 자주 보인다.
마누라와 좋은 친구로 있을 때 시흥에 있는 ㅇㅇ집에 가끔 놀러갔다.
시흥이 이렇게 변했으니 상전도 벽해된다는 그것은 정녕 옳은 말이다.
우리가 푸른 하늘의 흰 구름과 푸른 호수의 은 물결을 바라보며 앉았던 벤치,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오리,
당구장, 중국집 등은 무릉도원을 거니는 꿈이었구나.
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걱정도 했고
비가 오면 불편은 하겠지만"비도 두 사람의 장도를 축하해 내리는 비"라 고맙다고 해야겠다
중천에 떠 있을 해가 서쪽으로 조금 기울어져 밖에서 행동하기 편토록 적당하게 구름 뒤에 숨어 있다.
식장에 들어서니 첫 번째 눈에 들어온 사람은
한복 입은 신부 엄마 모습이다. 아름다웠으나 어쩐지 한복이 무거운 듯하다.
눈이 근시인 내기 멀리서 보아도 알아 볼 수있는
김윤곤 폼이다. 나는 윤곤에게 형제들 중 제일 많이 신경이 갔다. 대학 진학부터 취직까지 돈도 많이 썼다.
내 손을 꼭 잡아준다. 무슨 뜻인 줄 알겠지만 내 걱정 해 줄 형편은 아닐 것이다.
현숙이는 청주초등학교에 신랑과 함께 근무 잘 하고 있고 규빈이는 만난 지 꽤 오래되었다 고 한다.
신부 아버지 유한식은 담담했으나 딸 보내는 마음이 편하지만 않는 것 같다
철의 여인이라고 해도 좋을 김복향원장은 화장으로 가렸으나 얼굴에 주름이 많이 보인다.
또 며느리와 손자 손녀 자랑이다. 큰 며느리는 공무원으로 전직하여 강남구청에 근무하고 성찬, 성현,경찬이도 건강해 보인다.
손녀 성현이가 중 3인데 긴 머리에 옅은 화장까지 하니 성찬 누나라고 해도 되겠다.
작은며느리 최영미도 공무원에 임용되었다고 한다.
목정진 처 최영미는 동래평생교육원에서 함께 일했다.
딸네미는 통통한 얼굴에 토끼머리로 묶었다. 얼굴에 총기가 졸졸흐른다.
해주 진주가 촬영 중인 신부에게 다가가니 현주 "해주 언니"하며 반갑다.
사실 일훈이와 현주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엄마 양상금이가 돌보아 주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할매 집에 오면 "할~ 메에 밥줘" 한다
현주가 삼수로 함양에 있는 기숙 학원에 있을 때
엄마, 나 ,이향이가 마누라 차로 면회갔다.
그때 본 현주는
"조막만한게 어찌 그리 대가 차는지" 혀를 찰 노릇이었다
대가 차니 미국계 회사에 근무하며
같은 회사에 있는 신랑을 선택하여
결혼식 올리고 신혼여행에서 돌아 오면 바로 미국으로 들어가 신혼 살림을 시작한다고 한다
일훈이는 해병대 자원입대할 때 포항 훈련소까지 엄마 양상금과 함께 입대 축하하러 갔다.
내가 점심 먹으면서 소주를 많이 마셔 훈련소 정문까지는 엄마 혼자서 배웅했다.
그 후 제대하고 만났을 때 배웅하러 온 사람이 취해가지고 핀잔한다."고놈 별 걸 다 기억하네"
일훈이 다가와 "삼촌 어찌 된 것입니까" 하고 이번에는 질책 (叱責)을 한다.
할 말이 별로 없다.
드디어 목정근이가 배를 내밀며 나타난다. 정근이는 L/G에 그대로 있다 한다 "고놈 참 오래도 붙어있네"
" 욱곤 아지야가 점잖게 있어니 내가 술 좀 먹고 떠들랍니다."한다.
정근이는 음주방법이 나와 같은 과다. 명절에 일가친척이 함께 모여 한 잔할 때 분위기메이커다.
과유불급만 아니면 꼭 필요한 존재다.
" 정근아 하지마라! 힘들다."
중곤이 형이 내게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
"형 담배 찾아요"
나도 5년 정도 피우지 않았는데 지금도 피우고 싶을 때가 있다.
유 서방 다가와 형님 참 잘 왔다고 한다
김재경이가 특유의 미소를 짓고 있다. 그 옆에 우경이, 꼬마 한명, 우경이 처가 차례로 앉아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꼬마가 이상했다.우경이 애가 저렇게 어릴 리가 없을 텐데 그 놈은 엄마 살아 계실 때 한양 아파트가 무너질 정도로 소리치고 돌아다녔다.
할 수 없이 일어나 옆으로 가서
"이놈 이름이 뭐꼬, 몇 살이고"
"연찬이고 다섯 살입니다." 저거 엄마가 이야기한다.
자리에 돌아와 꼬마를 보며 또 가만히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니 우경이가 될 수가 없다.
저놈이 누구지?
형, 형수, 누나, 나, 윤곤, 이향,
유 서방,경곤, 임교수는 왔고 자형, 영혜 ,진곤, 순희 ,선화가 안보인다.
워낙 많아 헷갈린다
진곤 집 대표로 민건이가 왔구나. 연찬이가 민건이 첫 째고 그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여인이 우리 집안에 전라도 사람으로 처음 들어온 민건이 처다.
드디어 민건인 것을 알고 나를 헷갈리게 한 곱슬머리를 탓하며
"민건아! 니 머리가 그렇게 곱슬이었나"
"지금 보다 더 곱슬인데 푼 것이 이 모양입니다"한다.
민건이는 내가 부산대학교 도서관에 독서하러 다닐 때
민건이는 이 학교 대학원생이었다.
점심 먹으러 가면 어디서 달려와 " 큰 아버지 안녕하십니까 " 했다.
이제는 민건이가 진주 오빠인가 또 헷갈렸다.
진주가 그걸 눈치채고
"내가 민건이 보다 두살 많은데 내가 동안이라
민건이 동생으로 보이는 거다" 한다
나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 소리를 듣고 해주 진주를 보니 동안이다.
나도 내보다 어린 사람이 나에게 하대하는 경우를 종종 당한다.
이때는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난다.
연찬이는 은성이 보다 한살어리다.이야기 하다 보니 같은 동네 산다고 한다
경곤이도 어릴 때 보던 조카들이 쌔끼라고 한 명씩 데리고 와서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할배가 돼버린 자신이 아쉬운 모양이다.
대구로 쫓겨났다가 다시 본부에 복귀했다고 우스게 말을 한다.
꼭 우스게 소리만이 아닐 것이다
"나도 2년 후에 정년이다 . 정년하면 조용히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
나도 경곤이가 공직에 있으면서 현대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자격은 객관적인 시야로 보아 충분하다고 본다
"임 교수"라 부르는 것이 습관화되어
내 주위에 있었던
임씨 성을 가진 이들 임경숙, 경미, 정숙 ,은미와
혼동하여 이름이 퍼뜩 생각나지 않는 경곤이 처는 고위 공직자 마누라답게 검소한 차림이다.
할 말은 많았지만 다음에 하기로 하고
"재현이 장가갈 때나 한 번 봅시다"
피로연에 준비한 뷔페음식은 다양하고 맛있었다.
첼로를 연주하는 외국인은 TV에서 본 것 같다.
건배사를 하고 있다.
17년 전에 내 결혼 축가 불러 준 유현주 ,,,,,
17년전?
현주가 34살이니~
34 빼기 17 그러면 17살 여고 때 시집갔다
빼기를 다시 해 본다 27살이네
34 -17=27 ?
내가 요사이 가감승제에 어려움을 느낀다.
빠르게 요강 단지를 돌려봐도 요강 단지일 뿐이다.
순발력 있는 진주가
" 17년 전이 아니고 2017년입니다"
26살 때이다
요강 단지가 돌대가리로 돌아왔다.
일훈이가 무얼 하는지 궁금했는데 "홍대 앞에서 카페 한다"고 합디다
운전을 하고 있는 이서방이 들은 이야기를 해준다.
" 장인어른! 절대로 엿 들을 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한다
순진하기는
광명역에서 20:13 분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마누라가 있었으면 " 둘째 외숙모 " 하며 현주가 좋아 죽을 텐데~
아쉬웠다.
첫댓글 마지막에 영혜 이름이 나오지만 이 글은 그냥 일기로구먼....
우꼬이 집안 자손도 참 많다.... 애국자 집안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