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아주 오랫만에 ...
까마득한 옛날
한글을 겨우 깨우치기 시작할 무렵
길가 간판만 보면 신기해서 읽어보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날,
모처럼 엄마를 따라서
외갓집을 가기위해 안동 이모집을 들렀다.
이모집 동네 어귀에 구겨진 헌 양철판을 펴서
하얀 뺑기를 칠해 까만색 붓글씨로 큼직하게 쓰서 달아놓은
" 범비우동"이란 간판이 내 눈에 들어왔다.
" 범, 비, 우, 동, !"
의기양양 큰 소리로 읽었지,
순간, 같이가던 언니가 나를 툭~ 치며 주위를 살피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 범비 우동이 아니고 냄 비우동이라, "
옆에서 엄마가 웃었다.
그리고 한동안 언니는 우동만 보면 범비우동이라고 나를 놀렸다.
그러고 난 뒤
수십년이 훨씬 흐른 지난 1월 말,
난 범비우동의 추억이 담긴 안동을 다녀왔다.
아쉽게도 안동 시내쪽은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안동외각지대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왔지만
외갓집 가는길이란 기분좋은 옛추억 때문인지
괜히 마음이 들떳고 설레였었다..
그 옛날, 의성에 있는 외갓집을 갈래면 차편이 아주 애매해서
항상 상주서 안동행 버스를 타고가서
안동에서 의성 가는 기차를 갈아타고 가야했기 때문에
외갓집을 갈려면 버스도 타고 기차도 타고
또 안동역앞 이모집도 들러서 돌아돌아 가는길이
하루가 꼬박 걸려야 했다.
그리고 이모집에서 잠깐 기다리다
이종들까지 합류해서 함게 외갓집으로 갔기 때문에
늘 시끌벅적 신이 났고 재미가 꼴골 너무너무 즐거웠었다.
그렇게 신바람이 난 채 의성역에 도착하면
외사촌들이 단체로 마중을 나와 줄줄이 손 흔들고 반갑게 맞아주었지.
그 날부터 외갓집에 있는 동안은
한결같은 칙사 대접에 우리만의 신나는 세상이었다.
생각만 해도 신나는 추억이 끝도없이 나오는 외갓집 가는날
그래서 이 나이 된 지금도
안동이란 말 만 들어도 그때의 추억들이
활동사진 필름처럼 줄줄이 펼쳐지며
그리움에 마음이 아려온다.
이번 겨울방학
일년에 두차례 있는 "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 심화 교육이
1박 2일동안 안동에 있는
" 한국 국학 진흥원 "본부에서 진행됬다.
단체로 관광 버스를 타고 가서 1박2일로 하는 교육이었지만
교육을 받으러 가는것 보다 관광을 가는 느낌이었다
버스에서 부터 시작된 경로특별우대는
안동 도착 후엔 더 융숭한 대접으로
매끼마다 향토색 짙은 음식과 다과로 입맛을 돋우어 주었고
호텔 못지않은 잠자리와 집안 어른 모시듯
모든 직원들의 세심한 배려와 살뜰한 보살핌은
모두에게 감동과 고마움을 안겨 주었다.
"한국 국학 진흥원 "본부의 방대한 규모와
우리의 옛문화를 수집하고 연구하고 지키는 현장을 답사하고
그동안 수십년을 살아오며
지금껏 내가 배우고 알고 있었던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아주 얄팍하고 적은 지식의 일부분이었다는걸
깨닫게 해주었다 .
그리고 옛 조상들의 평범한 삶속의 희로애락을
후손들에게 알리는 작은 역활을 하게 하기위해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안에
많은 연구원들의 피땀어린 연구와
철저한 교육과 관리 검증으로
"아름다운 이야기 할며니"자격이 주어졌고
그 자리와 품위를 더욱 공고히 해주어
이야기 할머니라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고
현장에서 할머니들이 활동 할 수있도록
뒤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진심을 다해 노력을 하고 있었구나. 싶어
뭔가 모를 뭉클함과 든든함에
사명감 까지 생기며 자존감이 뿜뿜~
나도 모르게 어깨에 뽕 잔뜩 넣고 서울로 돌아온 셈이지^^
이렇게 이번 안동행은
정말 오랫만에 느껴본 외갓집 나드리 대신으로
한동안 옛 생각에 행복 했었고
또 인생의 마무리 단계에
뒤늦게 한 나의 탁월한 선택에
내 스스로를 칭찬을 하며 돌아왔다네
구정이 다가오며 .
옛날 같았으면 이것 저것 할게 많았는데
이젠 정말 일이 하기 싫었다.
이불 빨래도, 대청소도 다 생략하고
열손 제배하고 그냥 있을래니
숙제 안한 아이처럼 마음이 불안해오고 편치를 않았다.
그래도 간단하게라도 음식은 해야할 것 같아
부랴부랴 차례준비를 해서
설날 아침 시어른들께 세배를 올렸지.
이렇게라도 하고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구
언젠가 정말 힘에 부쳐
마음에 있어도 못하게 될 때를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내 몸 내 맘데로 움직이며 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며칠째 계속 되는 봄날같은 날씨가
벌써 봄이 왔나, 착각을 하게되니
세월이 너무 빠르게 간단 생각에
괜히 마음이 조급해 온다.
하지만 좀 더 느긋하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올해도 또 남은 나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려 다시 마음을 다진다.
친구들 모두 구정은 잘 보내셨는가?
모두 모두 건강 잘 지켜서 사는날 까지 활기차게 살자.
가끔씩 연락도 좀 하시고
늙어가는 모습, 우리 서로 보여주면서 사는것도
남은 삶을 외롭지 않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 싶네.
꽃피는 봄이 오면 만나게 되길~~~
우리카페 개설 21주년 다음날 ~
첫댓글 나도 외갓집이 안동에 있어서(풍산면 마애리) 어릴 때 안동 자주 갔었지 버스에서 내려 십리쯤 걸어 들어기는 두메산골~~
의성에는 이모집이 있었고~~
가로늦게 이야기 할머니가 되어 당당하게 박여행도 하고 대접도 받고 돈도 벌고...일거 5득쯤 되나?
축하해!
건강 잘 지켜서 이야기 할머니 오래 하기를 바래
엄마가 안동 분이시구나.
안동, 의성, 영주에 외갓집 친척들이 돌레돌레 살고있어서
방학이면 자주 갔었던거 같어
그래서 " 안동" 이란 말만 나오면 괜히 디기 친한 곳 같어, ㅎㅎㅎ
맞어 " 가로늦게 " 가 딱 맞는 말 ,
이야기 할머니가 생긴지 15년이나 됬던데 가로늦게 알게되어
나이제한 마지막에 들어간거지 ㅎㅎㅎ
하긴 진작 알았어도 올레길 다니느라 안했을꺼야 아마도...
지금이 딱! 이야, 일단 재밋고, 매주 애들 만나는게 즐거워
그리고 유치원서도 칙사대접 해주고.. 보람있는 일이야.
건강과 능력주신 것 늘 감사하고 지내고 있는중.^^
의성은 연고가 없는데,
궂이 찾으려면 돌아가신지 60년 다되가는 이모부의 고향이라는 것 정도.
안동이라... 안동 36사단에서 신병훈련을 받았지, 6주동안,
그런데, 의성에 기차가 다녔던가?
80년 가까이 살아도 그걸 몰랐네
의성에 연고가 없어 안가봤으니 기차가 다니는줄 모르는게 당연 ,
안동 36 사단이 원래 상주에 올려고 했는데
상주 노친네들이 반대해서 안동으로 갔다는 말 들은거 같은데 맞나?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 말해놓고도 자신이 없어, ㅠㅠ
잘 지내고 있지. ?
너 보이니 안심이 되네
담배는 계속 안 피울테고 술도 끈었나?
제발 건강 지키고 아프지 마.
이젠 친구들 먼저 갈까바 그것이 걱정이 되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