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편은 이 고개를 넘어서면 (애증의 강 편) 입니다. 그동안 사량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애증의 강 편은 먼저 연재 되었었는데 조금더 손을 봐 전편 과 속편으로 판매 되고 있습니다.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 됩니다
출간일 2016년 00월 00일
지은이 김 수 산
출판사 도서출판 퍼플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1번지
www.kyobobook.co.kr
ⓒ 김 수 산
본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으셔야 합니다.
목차
제1장 저자의 이야기 애증의 강기슭에 나오는 사람들 6
제2장 다시 군에 간 재덕 8
제3장 제대해 돌아온 재덕 20
제4장 수동이를 잃어버린 희상 35
제5장 재덕의 양자로 가고 정순 딸을 낳다 48
제6장 재덕 남의 일에 피터지게 싸우다 100
제7장 재덕 희상과 이혼을 하다 172
제8장 재덕 사람을 때려 소를 날리다 211
제9장 정순의 아들 상동이 죽다. 237
제10장 수동이 취직을 하다 256
제11장 양부 양묵의 사망 268
제1장 애증의 강 기슭에서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를 빠져나온 재덕은 전쟁 트라우마에 빠져서 이웃집 처녀의 방에 뛰어들어 뜻하지 않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사랑이 정리되기도 전에 다시 군에 끌려가 3년이 넘는 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으나 그 사랑을 기다린 정순 그리고 본처 희상과의 갈등 작은 사건 속에서 입양이라는 선택과 그 속에 휘말린 아들 수동의 기막힌 사연 그리고 양부 양묵과의 갈등 그리고 기나긴 애증 속에 희상과의 이혼 그리고 마지막 양부 양묵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왜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도 미움이라는 갈등을 격어야만 하는 걸 까요. 사랑만 가지고 살아 갈수 없는 것일 까요.
왜 실타래 같이 엉킨 운명 속에서 칡넝쿨과 등나무처럼 내 생각대로만 하려고 할까요. 상대를 이해하면 그렇게 까지 갈등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말이죠.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며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길 바라면서 이 글을 시작 하려 합니다. 그리고 속편 과 그 갈등의 끝을 빠져 뒷이야기 그리고 전편인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는 것도 거의 집필이 끝났습니다.
부디 모자라는 글이나마 끝까지 읽어 주시면 감사할 다름입니다.
꽃재 김 수산
애증의 강에 나오는 사람들
재덕 :이편에서의 주인공으로 육이오 때 방위군으로 끌려가 포로가 되어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전쟁의 트라우마에 걸려서 난폭하게 아니 불행하게 살아가는 주인공
정순 : 재덕에게 순결을 빼앗기고 재덕을 사랑하면서 재덕과 길곡의 생을 같이 한 재덕의 첩
수동 : 재덕의 아들로 재덕의 손에 이끌려 엄마와 떨어져 서모와 생을 같이 하게 된 슬픈 운명에 말려 들어간 비운의 주인공
희상 : 재덕의 정실로 남편은 정순에게 빼앗기고 아들마저 첩 정순에게 빼앗기고 눈물로 생을 살아가면서 우울증까지 알면서 살아가야 했던 여인
제철 : 희상의 아버지 남식 : 희상의 남동생 근상: 희상의 시집간 언니
정숙 : 재덕과 정순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딸 경숙 둘째 금숙 셋째 은숙 넷째 미숙 다섯째
윤희 : 재덕이 형수. 용동: 윤희의 장남. 연행 용동의 처 영동 윤희의 차남 연동 윤희의 삼남, 옥인: 윤희의 장녀. 옥자: 윤희의 차녀 등
재운 : 재덕의 형. 연순: 재운의 아내. 성동: 재운이 아들 옥순:재운의 딸
양묵 : 양자를 잘못 들여서 반생을 후회와 한숨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재덕의 양부
순례 : 양묵의 후실로 양아들 재덕과 양 며느리 정순과 갈등 끝에 아들 병묵의 집으로 쫓겨 가다시피 가서 살게 된……. 재순 : 양묵과 순례의 딸 명자 순례의 손녀 딸
용단 : 정순모 희상이 큰집 몸종으로 살다가 귀머거리 머슴 선복과 결혼하여 큰아들 태봉과 작은아들 만석 그리고 정순을 낳아 살던 중 육이오전쟁 때 큰아들 태봉이 의용군에 끌려가서 수복 후 빨갱이로 몰려 죽을 고비에서 대한청년단 감찰부장인 재덕의 형 재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으나 이후 딸이 재덕과 관계를 맺음으로서 재덕의 장모로 살게 된…….
선복 : 정순의 아버지 만석 정순의 오빠 삼순 만석의 처 .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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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다시 군에 간 재덕
그해가 저물어갈 무렵에 황골에는 재덕을 비롯한 젊은이들에게 징병검사 통지서가 나왔는데, 재덕은 또다시 그 생지옥에 가고 싶지 않아서 징병검사 받으러 오라는 날 징병검사를 받으러 가지 않았다. 몇 몇 나이가 많은 사람은 현역 대상에서 빠지고 몇 몇은 얼마 후 입영되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잡혀가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며 설이 지나고 몇 칠 후 공회당 음선의 집에서 마신 술이 얼큰해 가지고 집으로 향하는 느티나무 아래를 지나고 있을 때 좌방산 방향에서 L19 비행기가 프로펠러 소리를 내며 날아오고 있었다.“항공! 항공!”재덕이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정순의 집 뒤에 있는 방공호를 향하여 뛰어가는데 집을 나서던 정순의 손을 낚아채듯 잡아끌며. “하 하 항공. 하 항공.”휘둥그레진 눈으로 숨을 곳을 찾던 재덕을 본 정순은 깜짝 놀라서 “수동이 아버지 왜 그러세요.”
“항공, 항공 빨리 숨어 빨리!” 술에 취해서 트라우마가 도졌는지 방공호에 뛰어든 재덕은 정순을 끌어안고 엎드려 있었다. 잠시 후 비행기 소리가 사라지고 16세의 정순과 서른 살의 재덕의 가슴이 방망이 질 소리가 요란해지고 그렇게 한 송이의 피어나는 꽃은 꺾기고 말았다. 정순은 아무런 반항도 없이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몸을 바치고 만 것이었다. 재덕은 실로 오랜만에 첫사랑 음전의 향기를 느꼈다. 그날 용단은 시누이 선영의 집에 있어서 둘 사이의 일을 모르고 지나갔으나 맹추가 아닌 다음에야 정순의 표정에서 무언가 일이 있음을 직감하고 추궁을 해서 재덕과 딸의 일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이 미친년을 봤나. 이 염병을 앓다가 땀을 낼 년.”
하면서 등짝을 후려쳤지만 눈물만 흘리는 정순을 바라보고 있자니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 이었다. 그러나 제 작년에 받은 은혜가 있어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말을 못하면서 지내자니 속은 푹푹 썩어가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귀머거리 선복에게 소리쳐서 크게 이야기 할 수도 없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차츰 냉정을 되찾으면서 생각해 보니 ‘에 흐 팔자라면 첩살이라도 시켜야지.’ 하다가도 어떤 때에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 딸이 수동이 아빠에게 당했어요.’하고 누구한테 대놓고 이야기를 하자니 누어서 침 뱉기라 속으로 만 꾹꾹 참고 지내고 있었다. -8-
그리고 새해가 되었고 제철과 옥란은 살던 집을 윤희에게 넘겨주고 서울 청파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재덕이 이삿짐을 옮겨주고 내려 왔다.
새집으로 이사한 윤희는 기뻤다. 작은 황골과 큰황골 길목에 쓰러져 가던 초가삼간을 벗어나 다섯 칸이나 되는 집으로 이사를 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명의 산소가 빤히 건너다 보여서 아침마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정순어미 용단은 섭섭함보다도 시원함을 느끼고 있었다. 한집 건너에 살던 재덕의 장인이 이사를 가서 시원함도 있었지만 남편 선복과 동년배인데도 자기 큰집에 머슴을 살고 내가 종으로 살았다는 자격지심인지 몰라도 제철은 귀머거리 선복에게 하대와 업신여김까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 있는 피복 공장에서 견습공을 구한다고 해서 옳거니 떼어 놓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샘 건너에 사는 명순이 엄마에게 이야기해서 둘을 서울월곡동 근처에 방을 얻어서 보내기로 하고 보내게 되었는데 마침 재운이 알고 성동이가 공부를 곧 잘 하니 서울에 유학을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용단에게 정순이와 명순이가 사는 집에 방 하나를 더 얻어서 같이 밥을 끓여 먹으면서 쌀이며 부식은 서로 부담해서 올려 보내는 것이 어떠냐고 해서 합의를 보고 재운이 셋을 데리고 월곡동에 방을 얻어주고 내려왔다. 그러던 하루 재덕이 이렇게 어영부영 세월을 보낼게 아니라 벌이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에 서울에 가면 일자리가 있지 않을까 하고 서울 당숙 흥묵아저씨가 있는 안암동으로 가서 육촌형 재원이가 다니는 양조장에라도 취직을 하야야 하겠다는 생각과 한 번을 몸을 섞었지만 보고 싶은 생각이 가득차서 희상에게 서울로 가겠다고 했다. 서울로 가는 날 연순은 재덕에게 성동에게 줄 먹을 쌀과 밑반찬을 들려서 보내게 되었다. 재덕이 피복 공장이 있는 월곡동 부근 하숙집에 쌀과 밑반찬을 전해주고 정순이가 보고 싶었지만 퇴근을 하려면 시간이 좀 남아 안감내 사는 당숙 아저씨 흥묵의 집에 찾아가서 일자리를 알아볼 요량으로 종암동 쪽으로 걸어오다 헌병의 검문에 걸렸다. “시민증 좀 봅시다.”
“없는데요.” “당신 빨갱이 아냐.” 대뜸 겁부터 주었다.
“아닌데요.” “그런데 시민증이 없어?”
“저 집에 두고 안 가지고 왔는데요.” “집이 어딘데?” -9-
“월곡동인데요.” “당신 군대 갔다 왔어?” 뜨끔했다.
“갔다 왔는데요.” “그럼 제대증이라고 있을게 아니야?” “제대증은 없는데요.” 아 실수 아까 집에 도민증이 있다고 하고서 제대증이 없다고 하다니 옷을 급히 갈아입고 나오느냐고 안 넣고 나왔다고 하면 될 것을 없다고 한 것이다.
“이 새끼 기피자 아냐?” “아닌데요.”
“아니면 왜 제대증이 없어?”
“없는 게 아니라 집에 두고 나와서 그래요.”
“금방 없다고 했잖아. 그럼 어디서 근무했어.” “철원에서요.”
“철원 몇 사단.” 여기서 다시 꼬이고 말았다.
순간 포로로 끌려갔다온 이야기 까지 하면 아무런 근거 없이 빨갱이로 몰릴 것 같은 생각에 철원에서 근무 했다고 둘러 댔는데 부상이 아니면 제대가 되지 않는 전시에 말을 잘못한 것이었다. 머뭇머뭇 하는 재덕에게. “이 새끼 간첩이야 기피자야.”따라와 하면서 헌병초소로 데리고 들어갔고 상급자로 보이는 사람이 백지를 한 장을 앞에다 가져다 놓고 물었다. “당신 집 어디야.” “춘천이요.”
“나이는 서른한 살이요.” “생일은 시월 열사흘이요.”
“그럼 만 서른이 안 됐잖아.” 여기서 꼬인 것이다. 순진하게 서너 살 더 불렀으면 모르련만. “군에 갔다 왔어 안 갔다 왔어.”
“국민방위군으로 갔다가 왔는데요.” “그게 군대야.” 해서 포로로 가서 개고생을 한 일서부터 다 이야기 할까 하다가 믿어줄 것 갖지도 않고 변명으로 들릴 것 같아서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정찰기 소리가 들렸다. “항공, 항공!” 하면서 재덕이 책상 밑으로 숨었다. “이 새끼 수 쓰고 있네. 야, 이 새끼 집어넣어.”
그리고 헌병 초소에 갇혀서 저녁 무렵 닭장차에 실려져 서울역에서 군용열차에 실려져 새벽 무렵 논산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신체검사가 있었는데, 신검을 기다리는 동안 뭐 잉크를 마시면 폐가 엑스레이에 까맣게 나와서 불합격 된다는 둥 오른손 검지를 못 펴는 병신인 것처럼 하면 불합격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수검자가 귀가 안 들리는 것처럼 행동을 했는데 잘 넘어가다. 군의관이 아주 작은 소리로 “불합격 집으로 가” 했는데 너무나 기뿐 나머지 바보같이 걸어서 나가는 걸 잡아서 비오는 날 먼지 가 나듯 맞았다는 이야기 까지 있었다. 그렇게 신검을 받고 머리가 깎여지고 목욕탕에 집어넣어 졌다. 다시 지겨운 전장으로 가야만 한단 말인가. 휴전회담 중 이라고 하지만 훈련이 끝나면 다시 전장으로 가야 하나‘애라 될 때로 되어라’ 하는 마음으로 몸을 닦고 있는데 “야 신병 물 따듯하냐?”
얼 듯 보니 어라 오음산에서 부사수를 하던 박 영수였다.
“뜨거운지 차가운지 들어와 보면 알거 아냐.”
“어 새까만 신병이 반말이야 너 거기 기다려.”
“어딜 봐서 새 까마냐?”
박영수는 군화를 신은 채로 당장 요절을 낼 기세로 달려 왔다.
“어, 이게 누구야 김재덕, 너 이 새끼 살아 있었구나.”
“야 말 도 말아 목숨이 모질게 기니까 살아서 왔다. 넌 어떻게 된 거냐?”
“기가 막히게 살았지, 그나저나 너 몇 소대 몇 분대야.”
“삼 소대 이 분대.” “그래 이따가 내가 갈게.”
그리고 그날 저녁 영수는 PX에서 먹을 것을 사가지고 재덕의 내무반을 찾아왔다. 재덕이 격은 이야기를 들은 영수는
“야, 기막히게 살았구나. 난 바로 그날 게네들 한데 바로 붙잡혀서 끌려가다가, 원창고개에서 아래로 굴러서 도망을 쳐서 민가에 숨어서 수복이 되어서 귀대해서 지리산 공비토벌을 갔다가 6월 하순경 우리 8사단은 인제군 현리로 가서 4~5일 훈련을 받고 인제군 원통 지구에 가서 1주일 정도 사격술과 엄폐 차폐 등의 훈련을 받다가 출동 명령이 내려서 완전무장을 하고 집결해서 트럭을 타고 1031고지 공격작전에 투입됐는데, 비는 왜 그렇게 많이 오고 개 떨리듯 하는지 주먹밥을 먹는데 손까지 떨리더라. 한 열두시 쯤 돼서 수류탄이 터지고 조금 대응사격 하다가 후퇴를 했는데 소대장이 다시 올라가라고 해서 올라가 밤새 기관총을 쏘면서 날이 새니까 물러가더라고, 그리고 사흘 동안 포를 갈겨대고 겨우 1031고지를 빼었잖아, 그리고 여기 조교로 온지 일 년이 넘었어.”
“그랬구나. 이렇게 살아 있으니 만나는 구나.”
그렇게 그 날 해후가 있었고 재덕은 훈련 중 많은 특혜를 받으며 쉽게 훈련병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어떤 훈련병이 취사반에서 누룽지를 훔쳐 먹다가 걸렸는데 교관이 두 손바닥만 한 누룽지를 입에 물리고 “나는 개입니다.”를 복창하며 연병장을 돌게 하는 일도 있을 만큼 배고픔은 군 생활의 대명사였다. 한편 정순은 성동이 작은 아버지가 왔다갔다고 하자 저녁이면 만나러 오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오지 않아서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성동이가 작은아버지가 군에 갔다고 하면서 편지를 쓰는걸 보고 주소를 알게 되어 서툰 글씨나마 몰래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황골에 희상은 기다리는 서방님 대신에 군사우편으로 옷이 배달되어 다시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 뿐만 아니라 풀뿌리를 케어 먹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먹는 생활로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고 있었다. 그나마 낙이라는 게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수동이를 바라보는 게 낙이었다. 그리고 수동이의 첫돌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재덕은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5사단에 자대배치를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7월 27일 3년 1개월에 걸친 한국 전쟁이 휴전에 들어갔다. 그로 인하여 한반도 전체는 폐허화되었고, 참전한 외국의 병력에까지 극심한 해를 입었으며, 이때 사용된 폭탄의 수는 불분명하지만 1차 세계대전에 맞먹는다고도 하고 그렇지 않다고도 했다. 한국전쟁은 그밖에도 약 20만 명의 전쟁미망인과 10여만 명이 넘는 전쟁고아를 만들었으며 1천여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그 뿐만 아니라, 45%에 이르는 공업 시설이 파괴되어 경제적, 사회적 암흑기를 초래했다. 소련의 통계에 따르면, 북한도 북한인구의 11.1%에 해당되는 113만 명의 인구가 전쟁을 통하여 사망하였고, 양측을 합하여 250만 명이 사망하였다. 80%의 산업시설과 공공시설과 교통시설이 파괴되었고, 정부 건물의 4분의 3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으며, 가옥의 절반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다. 거리에는 구걸을 하러 다니는 거지에 나라에서 제대로 구호를 받지 못한 상이용사까지 목발을 집고 구걸을 다녔고 서울에 인심을 험악해 지자 시골로 내려와 구걸을 했는데. 황골에서도 중소 외나무다리에 군복을 입을 사람이 나타나면 모두 집을 비우고 산으로 피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명순 엄마는 목발을 집고 한쪽 팔을 잃어서 갈고리 손을 한 상이군인 두 사람이 들이 닥쳐서 행패를 당하였는데 갈고리로 손등을 할퀴어 생채기가 났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리고 밭 언저리 으슥한 곳에는 녹슬어 가는 불발탄이 즐비하고 주인 잃은 철모의 파이버는 끈을 잘라내고 구멍을 뚫고 긴 막대에 못을 박아서 똥 푸는 바가지로, 철모는 깨끗이 씻어져 간이 절구통으로 실탄통은 연장을 넣는 통이나 가겟집에서 간이 금고로 쓰이는 호사를 누리고 아이들은 탄피를 가지고 노는데 불발탄이 터져서 선영의 셋째 아들은 화로에 가에서 불발탄을 가지고 놀다가 터져서 다 죽어가는 걸 미군이 데려다 고쳤는데 다리는 허벅지를 관통을 해서 병신이 되고 눈도 실명에 가까운 걸 실명은 간신히 면했다고 했다. 혼자 생활을 해야 하는 희상은 옥자에게 수동이가 울면 업고 일하는 곳으로 젖을 먹이러 오라고 시키면서 까지 콩밭 매는 일을 다니기도 하였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고 겨울로 다가오자 그래도 아무리 용동이가 나무를 해다가 준다고 해도 미안한 마음에 가끔은 산기슭에서 나무를 끌어오기도 하고 하면 용동이가 작게 잘라서 때기 좋게 손질해 주기도 했다.
중대장이 하루는 숯 구어 본 사람을 찾아서 손을 들고 나갔더니.
“숯 구울 줄 알아?” “넷, 산판에서 숯을 구어 봤습니다.”
“그럼 타.” 그렇게 재덕은 중대장 지프차에 태워서 어느 외진 산골짜기에 내리게 하더니 산기슭에 있는 숯가마 앞으로 데리고 갔다. 보니 어디서 구했는지 전차레일을 둥그렇게 올려놓고 그 위에 어설프게 돌과 흙을 덮은 숯가마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니 숯이 제대로 구워질 리가 없어서 숯을 구워본 사람을 수소문해서 재덕이 뽑혀온 것인데, 가보니 참나무를 때서 다 타고 남은 불을 부삽으로 꺼내어 땅속에 묻어서 숯을 만든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무슨 숯이 나와요.”
“제가 숯가마를 제대로 만들겠습니다.”
“그래 그럼 계급도 필요 없다. 무조건 김 일병이 하라는 대로해라 알겠나?” 그렇게 10여명이 땅을 파고 참나무를 배어오고 재덕이 나무를 세우고 위에 진흙을 물을 붓고 짓이겨서 덥고 다지면서 숯가마에 불을 지펴서 하루 종일 불을 때서 하얀 영기가 파르스름한 영기가 나기 시작하자 공기가 들어갈 구멍이란 구멍을 다 틀어막고 사흘이 지나는 동아 다시 참나무를 벼 날랐다. 드디어 숯가마를 열고 숯을 꺼내니 잘 구워진 참나무 숯은 땡, 땡 하는 쇳소리마저 나는데, 그때 중대장이 올라왔다. 숯을 꺼내는 숯가마 속을 들여다보던 중대장이.“야 뜨겁잖아 나와 큰일 나겠어.”
“아닙니다. 월래 이렇게 뜨겁습니다.” -13-
중대장은 숯을 다 꺼내는 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지키고 서 있었다.
숯을 다 꺼내자 “야 빨리 부시고 다시 해.”
“아닙니다. 이번에는 나무만 약간 작게 잘라서 다시 구우면 됩니다.” “그럼 얼른 나무를 세워 넣어.”
“야 너 운전병 가서 쓰리쿼터 한 대 오라고 해 빨리 퍼 실고 가게.” “아닙니다. 이걸 다 껍질을 벗기고 섬에 담아야 합니다.”
“그래 그럼 빨리 김 일병이 지시를 해서 빨리하도록 해.” 일부는 산 아래 개골창에서 싸리나무, 갯버들. 갈대 억세 등을 베어오고 칡을 끊어다 숯섬을 만들어서 숯을 동그랗게 넣고 숯 한 섬이 완성되자. “와 됐어, 됐어.”
중대장을 얼굴이 함박만 해 가지고 싱글벙글 했다.
“중대장님 저 이렇게 일하려면, 돼지고기를 늘 상 먹어야 합니다.”
“알았어. 알았어.” 중대장이란 자는 기분이 좋아서 지프차를 타고 떠났고, 다음날 삼십 섬이 넘는 숯을 만들어 놓았을 때 중대장이 지프차를 타고 쓰리쿼터 한 대를 뒤에다 끌고, 돼지 뒷다리 하나를 가지고 왔다. 숯섬을 쓰리쿼터에 실고 있는 동안에 이번에는 재덕이 머리를 써서 숯가마에 불을 붙이는 의식을 해야 한다고 하니 운전병을 시켜서 돼지머리에 막걸리 한 통을 사오게 해서 절을 하고 술 한 대접을 부어놓고 절을 하고 중대장에게 불을 붙이게 했다. 돈을 받으면서 하는 일이 아니니 먹을 거라도 잘 챙겨 먹자는 심산이었다. 그날은 진탕만탕 술과 돼지고기를 숯가마 앞에서 구어서 먹었다. 그날부터 중대장은 산에 올 때마다 돼지다리와 술을 한 통씩 가지고 왔다. 그렇게 그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 복귀를 할 무렵이 되었다.
“중대장님” “왜 김 일병.”
“겨우내 가스를 마셔서 그런지 몸이 영.” “알았어, 알았어,”
바로 재덕은 환자로 꾸며져 입원을 시켜서 편안한 군 생활을 보내고 있다가 입대한지 일 년이 되어서 휴가를 받아서 황골에서 한 달이 보내고 귀대해서 다시 병원에 있다가 군 병원에 불시 감사가 있어서 환자복을 입고 있다가 들키고 말았다. “거기 환자 어디 가는가?”
“넷 화장실에 갑니다.” “이리와 봐 어디가 아픈 환잔가?”
“네 배가 아파서,” 살이 쪄서 피둥피둥한 재덕이 나이롱환자라는 것을 알아차린 감사관 대뜸. “야 이 새끼 너, 나이롱환자 아냐?”
그렇게 해서 다시 귀대를 해서 자대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순은 성동이를 통하여 재덕의 주소를 알아내어 위문편지 형식으로 편지를 보내기 시작 했는데 아무래도 수상히 여긴 성동이가 시골에 내려 왔을 때 연순에게 정순이가 수상하다고 이야기 했으나 연순은 설마 하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국제적으로는 8년간 계속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가 궤멸적인 패배를 맞아 종결되었고, 1954년 4월 26일부터 7월 21일까지 열린 제네바 협정을 통해 평화협정을 맺게 되었다. 제네바 협정 의장국이었던 영국의 외무장관은 "회의 최종 선언"을 발표하여 통일된 베트남을 수립하기 위해 1956년 7월 이내에 보통선거를 진행한다고 규정하였다. 이는 한반도 분단 상황에서 1947년 11월 14일 유엔이 의결하였던 총선거 방식을 준용한 것이다.
다시 가을이 되자 중대장은 예외 없이 재덕을 불러서 이번에는 가짜 하사 계급장과 모자를 주면서 본격적으로 숯 굽는 일의 책임자로 한겨울을 보내고 그리고 봄이 되어서 귀대를 해서 휴가를 다녀온 후 편한 보직이라며 이발병으로 근무를 하게 하였다. 거기서 일반 병들의 머리를 깎아주는 일을 하면서 가을이 되어서 다시 숯 굽는 일을 하였다. 중대장이란 자는 허가도 받지 않고 나무를 벌목해 숯을 구워서 군 트럭을 이용해 팔아서 착복을 하고 있을 만큼 허술했다.
한편 황골에 희상은 네 살 먹은 수동이를 데리고 모진 겨울을 나고 있었다. 밤마다 씨아에 목화를 먹여서 씨를 빼내고 있었다. 씨아를 한참 돌리면 빼 엑 빼 엑 소리를 내서 귀와 씨아 가락에 비누를 칠해서 소리가 나지 않게 하면서 “수동아 여기다 손가락 넣지 말아 아야 한다.” “ 응.” 수동이 그 녀석 단단히 일렀건만 시아 틀 귀가 맞물려 돌아가는 게 유혹을 했는지 어미의 말을 금세 잊어버리고 손가락을 집어넣어 “아 하하” 하며 울어서 보니 급히 씨아손을 놓고 살펴보니 검지가 약간 빨갛게 되어 있었다. 그런가 하면 녀석은 희상의 내복에 달린 파란 유리 단추를 삼키기도 하였다. 그리고 녀석이 겁이 나 있는 것 같아서 똥을 누면 나온다고 하고, 다음 날 똥이 마렵다는 수동이를 마당가에서 똥을 누게 하고 똥을 나뭇가지로 뒤져서 단추를 확인시켜 주고. -15-
“찌덕찌덕 지지범벅” 하면서 개를 불러서 수동이가 마당가에 누운 똥을 집어먹게 하였다. 그러고 틈틈이 밤마을을 가서 민화투를 치면 새가 그려진 것을 희상이 먹으면 좋아 했다. 그리고 봄이 되어서 십리 가까이 되는 발산학교에서 우두를 맞혀가지고 왔다. 그런데 녀석이 어떤 때는 떼를 쓰고 울면 그치질 않고 울음 끝이 길었다. 어느 날 친정 큰집에 업고 가서 내려놓고 놀다가 수동이가 울어서 회초리를 들고 때릴 기세로. “이 녀석아 안 그쳐 그만 그쳐라.” 하면
“음, 음, 음, 조금만 더 울고.” “너 안 그칠래.”
“음, 음, 음, 그치려고 해도 자꾸만 울음이 나는 걸 어떻게 해.”
하면서 울어 사촌 올케 미진과 함께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그해 여름 황골에서는 초복에 강 건너서 천렵을 다녀오다 나룻배가 뒤집혀 세 사람이나 물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이는 분명 육이오 난리 때 원통하게 죽은 원혼들의 짓이라는 소문과 함께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했다. 온 동내 사람들이 강가에서 굿 구경을 하는데 희상이도 수동이를 업고 구경을 했다. 나룻배 위에서 삼지창과 언월도를 든 무당이 북과 징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고 죽은 혼을 건져낸다며, 무당이 소창을 허리에 묶고 강물로 뛰어 들면 잠시 후 배위에서 소창 끈은 잡아 당겨서 무당을 끌어 올리면 무당이 올라와 물에 졌어 몸에 달라 붙어있는 한복을 입은 채로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다가 또 강물로 뛰어 들어서 혼은 건져내는 의식을 세 번에 걸쳐서 했다.
희상은 수동이를 데리고 품팔이를 다니는데 한여름 화전 콩밭을 매러 가게 되면 아침 일찍 한 움큼의 쌀을 보리쌀이 한번 끓고 나면 안쳐서 밥을 지어서 먹이고 작은 놋주발에 담고 수동이가 좋아하는 고춧잎장아찌를 작은 종지에 담아서 보자기에 싸들고 녀석을 업고 콩밭 매는 품팔이를 나섰다. 밭 언저리 개울가에 커다란 나무아래 그늘진 곳에 수동이를 내려놓으며
“수동아 엄마 저기서 밭 매고 있을게 여기서 잘 놀아.”
그래도 녀석은 물이 좋아서 그런지 고개를 끄떡이고 잘 놀았다.
콩밭을 매는 동안에도 연신 틈만 나면 녀석을 살펴보며 때가 되어 밥을 챙겨 먹이고 그녀는 일하는 집에서 나온 꽁보리밥에 나물을 넣고 비벼서 급히 입안에 밀어 넣으면서도 녀석이 제대로 먹는가를 살펴야 했다. 그리고 제일 잘사는 연수 네는 그 시절 보기 힘든 펌프로 물을 길어서 먹었고 대청에는 종이에 쉰 보리밥 한 숟가락 위에는 파리통이 있어서 파리가 잔뜩 모여 있으면 툭 처서 파리통을 파리가 들어가 날아다니다 물에 빠져서 둥둥 떠다녔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서는 다 떨어진 신발 밑창을 잘라서 싸리나무에 묶어서 파리채로 쓰고 있었다. 무덥던 여름이 가고 가을걷이가 끝나도 윤희는 부지런히 문래를 돌려서 삼을 삼고 베틀을 놓고 베를 짰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면 맷돌을 돌려서 메밀을 늠그어 얼개미로 메밀껍질을 골라내고 내려온 메밀을 도드미로 쳐서 메밀나깨를 빼내고 다시 메밀을 타개면서 도드미로 쳐서 내려온 메밀가루와 메밀나깨를 섞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반죽을 지어 암반에 밀어서 김치우거지를 넣고 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메밀쌀은 밥을 지을 때 넣어 먹든지 아니면 따로 보관을 했다가 가루를 내어서 명절에 전을 부쳤다. 그렇게 저녁으로 내 놓은 칼국수가 맛있어 보이는지 건넌방에서 수동이 녀석이 건너와.“큰어머니 우리 밥이랑 바꿔 먹어요.”
“그래 이 이 녀석아 한 그릇 줄게.”
그리고 그해 겨울 갓내울 연용이의 결혼식이 있어서 용동이와 희상이가 수동이를 업고 결혼식에 가면서 산길을 걸어서 가는 것 보다 언 홍천강을 걸어서 가는 게 지금길이어서 용동이가 제대로 얼었나 보려고 커다란 돌을 강에 던져보니 돌이 통통 튀어서 얼을 판 위를 굴러서 안심하고 홍천강을 이십 리 넘게 걸어서 가서 결혼식을 보고 하루를 묵어서 돌아왔다.
용동이와 영동이는 농한기에 돈을 벌어 보고자 강냉이 튀기는 중고기계 사왔다. 그리고 바깥마당에 벌려 놓고 시운전에 들어갔다. 남들이 하는 것을 본데로 풍로를 강냉이 튀기는 기계 밑에다 밀어 넣고 공기를 불어넣는 풍구에 고무줄을 강냉이 기계 손잡이 홈에 걸고 불쏘시개에 불을 붙이고 돌리면서 장작을 잘게 쪼개어 넣고 손잡이를 돌려서 불이 장작에 잘 붙은 다음 강냉이 기계를 판 사람이 가르쳐 준대로 옥수수를 깡통에 넣는데 위에 깡통에 둥글게 지나간 금에 맞게 넣고 사카린을 서너 알 넣고 뚜껑을 닫고 조이고 빙빙 돌렸다. 그리고 가끔씩 압력계를 보니 가르쳐 준대로 압력계 바늘이 올라가 있었다. “이제 다 됐어 망 가져와.”
영동이가 망을 가져오고 용동이는 풍로를 치우고 망을 가르쳐 준대로 강냉이 기계에 대고 망에 있는 줄을 강냉이 기계 손잡이에 걸어서 망이 압력에 견디게 고정을 하고 구경을 하고 있는 연동이 그리고 수동이를 비롯한 꼬맹이들에게. “다들 귀들 막아라.” 하면서 레버를 걸고 의기양양 하게 “뻥이요!” 레버를 젖혔으나 퍽 소리와 함께 반 밖에 안 튀겨진 강냉이가 나왔다. “에이 제대로 튀겨지지 않았네.” “너무 빨리 했나.”다시 옥수수를 넣고 사카린을 서 너 알 집어넣고 조이고 다시 시도 했지만 아까 보다 조금 나은 듯 했지만 역시였다. 그래도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수동이 녀석은 떨어진 강냉이를 주워 먹으며 좋아서 싱글벙글했다. “옜다 이 녀석아.”
용동이가 한 움큼의 강냉이를 수동이의 양쪽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신이난 수동이가 건넌방으로 쪼르르 달려가 주머니에서 강냉이를 꺼내어 희상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날 용동이와 영동이는 저녁 무렵까지 강냉이 기계와 씨름을 했지만 제대로 되지를 않았다. 저녁을 먹으며 윤희가 안타까운지 입을 열었다.
“그렇게 고생을 하는데도 안 되는걸 보니 잘못된 기계를 판 게 아니냐.” “그런 것 같아요. 어머니.” “괜한 고생 하지 말고 물러오는 게 나을 것 같다.” “그게 나을 것 갔네요.”
“겨울에 그 추운데서 얼마나 번다고 그 고생을 하느니 가마니를 치는 게 나을 성 싶다.“네 어머니 말씀대로 내일 물러오겠어요.”
다음날 아침 영동이와 작은황골 준현이가 강냉이 기계를 지고 춘천으로 강냉이 기계를 무르러 가는데 둘이서 지개하나에 지고가다 보니 1km씩 교대로 지고 갔다. 오후 늦게 춘천에 도착하여 한참을 옥신각신 해서 기계를 돌려주고 돈을 돌려받고 보니 벌써 날이 어두워 집으로 향하여 오다가 날이 저물어 발미서 황골서 이사 간 아는 집에 들러서 사랑방에서 하룻밤을 신세를 지게 되었다 하루종이 짐질을 해서 그런지 영동이와 준현이는 금세 골아 떨어졌다. 그런데 매캐한 냄새에 영동이 눈을 떠 보니 이런 준현이가 덥고 자던 이불자락이 화로에 들어가 타고 있었다. 급히 이불을 말아 쥐어 공기를 차단 시켜서 불을 끄면서 준현이를 흔들어 깨웠다. “야 준현아. 준현아.” “아 졸린데 왜, 그래 아제.” “야 불날 뻔 했어,”
그 소리에 준현이가 정신이 번쩍 들면서 냄새가 나는 것을 알아 차렸다. 자초지정을 들은 준현이가. “아제 내일 날 새면 도망가자.”
“야 말이 되냐 솔직히 예기하고 집에서 이불 한 채 갖다 주는 게 났지.” 그렇게 날이 새고 주인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용서를 빌었다.
“그만하길 다행이 아니오.”
“어르신 다음에 읍내 나오는 길이 있으면 어머니께 말씀드려서 이불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아이 괜찮아요. 내 자내 춘부장하고 잘 아는 사이고 우리가 그럴 사이가 아니니 괜히 자당께 말씀 드려서 마음 상하시지 않게 하시게.” 하면서 조반까지 먹여서 보냈다.
그리고 용동이와 영동이는 수소문을 하여 새끼줄을 꼬는 중고 기계를 사왔다, 낮에는 새끼를 꼬고 안방에는 가마니 치는 기계를 들여놓고 낮에 꼰 새끼줄을 바디에 끼워서 가마니 짜는 기계에 걸고 겨우내 형제가 가마니를 치는데 가끔씩 윤희나 희상이도 바디질을 했다. 용동이는 겨우내 친 가마니를 팔아서 닭은 열 마리 사왔다. 그리고 옆집 간난이내 닭과 섞이지 않게 머리에 파란색 페인트를 구해다 표시를 하는 데 수동이가 말을 걸었다. “형 왜 닭 머리에 칠해.”
“응 간난이내 닭하고 섞이면 안 되니까.”
그 무렵 수동이는 옆집 한 살 많은 간난이와 자주 놀았다. 그리고 엄마를 따라서 큰 외가에는 매일 놀러갔다. 거기에는 얼마 전 홀아비가 된 광상이 동생의 딸 희숙이를 미진이가 돌보고 있었는데 나이는 수동이보다 한 살 많았고 한 살 어린 미진의의 둘째 딸 연숙이가 있어서 세 녀석이 콩닥거리며 뛰어 놀면서 미진이와 희상이의 정신을 온통 빼앗아 놓았다. 그런가 하면 수동이는 사내 녀석이라 희숙이나 연숙이를 가끔씩 울리기까지 하였다.
용단의 아들 만석이 군에 갔고, 제철의 아들 남식도 군에 입대를 했다. 재운은 요즈음 일을 해도 신이 났다. 성동이가 한영공고 시험에 합격을 해서 고등학생이 되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서 일을 해도 힘들지 않았다. 오늘도 재운을 일찌감치 소에 쟁기를 얹어서 논갈이를 하고 있었고, 깡충거리며 뛰어다니는 수동이는 재운이 논가는 곳에 와있었다. “이려 어 어디 어디 치 마마 어 더 뎌.”
재운이 소를 몰아 논을 갈면서 논 가로 소를 몰아 나오자.
“큰아버지.” “오냐.”
“지금 뭐하는 거예요.” “논 갈지, 이랴 어 더뎌 어뎌치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