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존재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빙수 (氷水)', 비타민B나 단백질이 풍부하게 함유된 팥이 주가 되는 차가운 음식인 '팥빙수'는 일제 강점기에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얼음을 잘게 갈아 설탕에 졸인 팥을 얹어 먹는 팥빙수 자체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시대에 탄생하였기에 일본 음식으로 오해를 사기도 하는 음식이 바로 이 '팥빙수'입니다.
팥을 삶은 뒤 설탕을 넣어 졸여서 진득하게 만든 팥 앙금을 잘게 간 얼음 위에 얹은 후 연유나 과일, 떡, 시리얼 등을 더하여 먹는 이 팥빙수는 묵직한 팥과 시원한 얼음의 조화가 매우 강렬하면서도 지친 여름날, 당을 충전해주기에 적격이기에 팥이 낯선 외국인 여행객들에게도 호평을 받는 한국 고유의 여름 디저트입니다.
한 때는 얼음을 갈아 다양한 재료를 얹어 먹는 빙수를 모두 팥빙수로 지칭하기도 했는데요. 요즘은 주재료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녹차빙수, 커피빙수, 인절미빙수, 딸기빙수, 망고빙수 등 그 종류도 다양해졌고, 팥자체가 빠지기도 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음식들을 '빙수'로 총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팥이 얹어진 빙수만을 팥빙수라고 부릅니다.
원조의 품격이 사라지지 않듯, 아직도 무더운 여름에는 꼭 찾게 되는 팥빙수와 어우러지는 클래식 음악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헨델의 파사칼리아는 어떨까요?
'게오르크 헨델 (George Friedrich Handel, 1685-1759)'는 음악의 어머니란 별명으로 잘 알려진 독일 출신이자 영국에서 활동한 음악가입니다. 그는 '할렐루야 (Hallelujah)'가 포함된 오라토리오 '메시아 (Messiah, HWV.56)', 아리아 '울게 하소서 (Lacia Chio Pianga)'가 수록된 오페라 '리날도 (Rinaldo, HWV. 7a)', '알라 혼 파이프 (Alla Hornpipe)'로 익숙한 '수상 음악 (Water Music, HWV.348-350)'과 46편의 오페라 등을 남긴 대표적인 바로크 작곡가입니다.
음악의 어머니 '헨델' [출처: 위키피디아]
헨델의 기악 작품들 중 다양한 버전으로 편곡되어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 바로 '파사칼리아 (Passacaglia)'입니다. 파사칼리아는 17세기 초,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3박자의 느린 춤곡이었는데요. 후에 프랑스로 넘어가 발레 음악의 한 장르로 발전하여 기악곡의 한 종류가 되었으며, 샤콘느와 함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느린 변주곡 형태의 춤곡입니다.
헨델의 파사칼리아는 1720년, 또는 그 전에 헨델이 작곡한 것으로 추정되는 '하프시코드를 위한 8개의 위대한 모음곡 (8 Great Suites for Cembalo)' 중 7번째 모음곡에 수록된 하프시코드 독주곡입니다.
'하프시코드 모음곡 7번 사단조, 작품번호 432번 (Suite for Cembalo in g minor, HWV.432)'는 1악장 '서곡 (Ouverture)', 2악장 '안단테 (Andante)', 3악장 '알레그로 (Allegro)', 4악장 '사라방드 (Sarabande)', 5악장 '지그 (Gigue)', 6악장 '파사칼리아 (Passacaille)'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이 모음곡의 마지막 악장이 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파사칼리아입니다.
노르웨이 음악가 '요한 할보르센' [출처: 위키피디아]
헨델의 파사칼리아는 현재 오리지널 버전의 하프시코드 독주보다는 노르웨이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 '요한 할보르센 (Johann Halvorsen, 1864-1935)'가 편곡한 버전이 널리 연주되고 있습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듀엣으로 편곡된 이 버전은 파사칼리아의 강한 힘과 열정, 중후함과 비장함이 잘 느껴진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요. 현재는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편곡이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으며 현악 사중주, 현악 오케스트라 등의 다양한 편곡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무더운 요즘, 속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면서도 묵직함을 잃지 않는 팥빙수처럼 그 중후함과 강렬함이 막혀있던 갑갑함을 뻥 뚫어주는 것 같은 헨델 파사칼리아는 마치 한 입을 크게 떠먹으면 그 차가움에 골이 울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팥빙수와 닮아있는데요.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함께 즐겨보시면 묵은 체증까지 내려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