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풀 반지
임래호
나
젊은 시절,
희미한 기억에 가라앉은
이름 모를 아름다운 추억 하나가 있다
화창한 봄 날의 어느 일요일,
게으른 태양이,
아직 아지랑이를 깨우지 못 한
이른 시간.
느슨한 정적이
가끔씩 새 소리를 실어 나르는
싱그러운 숲,
실개천을 따라
징검다리를 건널 때만 해도,
그녀와 나는
손을 잡지 않았다.
서로에게
꿈이 뭐냐고 묻지도 않았다.
이끼낀 바위를 지나
양지바른 풀밭에 다다랐을 때,
우린 그제서야
서로를 바라보며 생긋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하늘을 닮은 파아란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관능적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풀밭에 앉자,
그녀가,
내 무릎을 베고 누웠다.
핑크빛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살결이 참으로 하얗고 고왔다
아름다움이,
파아란 풀잎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을 때!
그녀가,
토끼풀로 만든 반지를 내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내 손을 만지며
토끼풀 반지를 쓰다듬는
그녀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에는,
막 깨어난 아지랑이가 묻어 있었다.
난
그 날 그녀에게,
그 반지의 의미가 뭐냐고
묻지를 못 했었다.
물었어야 했는데!
꼭 물었어야 했는데....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녀의 크고 까만 눈동자,
그리움이 묻었을까
추억이 맺혔을까...
싱그러운 4월의 맑은 하늘,
뭉게구름 속에서
그녀의 얼굴을 찾는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임래호 제1시집
<소금꽃 바람꽃>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