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스님. 소승이 한 잔 하고 왔습니다요…”
젊은 승려는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스님 앞에 나섰다.
“너 이놈! 백양사 중창불사에 보태겠다고 탁발을 나가더니,
탁발한 곡식을 팔아 술을 마시고 와?”
“에이 참 스님두... 아 내일 더 많이 탁발을 해오면 될 것 아닙니까?”
“너 이놈! 당장 승복 벗어놓고 백양사에서 나가지 못할까!”
“예? 아니 곡차 한 잔 했다고 나가라니요 스님?
아 옛날 원효 대사나 경허 선사는 곡차를 즐기셨는데…”
“너 이놈! 감히 어디서 계를 파하고 원효 대사, 겅허 선사를 팔아먹느냐?
네놈이 그럼 원효 대사처럼 교학에 달통하고 백성들을 구제하고 자비행을 실천했더냐?
네놈이 과연 경허 선사처럼 생사의 도리를 깨치고 불도를 이루었느냐?”
만암 스님은 그 젊은 승려를 사정없이 주장자로 때리면서 엄히 꾸짖었다.
“산문에 들어와 삭발출가한 수행자들 가운데
걸핏하면 계율을 어기고 취처음주에 육식마저 하면서
참회하기는커녕 원효 대사도 곡차를 마셨네,
원효 대사도 요석공주를 보았네,
진묵 대사, 겅허 선사도 곡차를 마셨네 하면서
핑계 삼는 자가 한둘이 아니다.
허나 이는 어리석은 자들이 그림자만 보고 실체를 보지 못함이니,
나는 절대로 용서치 않겠다!
당장 내 앞에서 옷 벗고 나가거라!”
평상시 까막까치에게도 자비를 베풀고
노루 다람쥐에게도 포근한 사랑을 나눠주시던 만암 스님었지만 계
율을 어긴 자에겐 서릿발 같은 꾸짖음을 내리셨으니
백양사의 가풍이 칼날 같았음을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1956년, 만암 스님의 세속 나이가 여든 한 살을 넘었다.
“종조를 바꾼 것은 환부역조와 같다”고 꾸짖고
종정 감투를 미련 없이 벗어던진 후 백양사로 내려와
오직 후학들을 지도하고 계시던 만암 스님은
12월 어느 날 손주상좌를 불러
스님이 거처하시던 방 다락문을 열게 하시고는
다락방 안에서 궤를 꺼내게 하고
그 귀속에 들어있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방바닥에 꺼내게 하였다.
그 궤 안에는 만암 스님이 평생 쓰던 지필묵이며,
경책이며, 낡은 옷가지들 몇 점이 들어있었다.
만암 스님은 당신이 쓰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일일이 손수 집어 들고 전해줄 사람을 일일이 지목했다.
“마지막 입는 옷엔 주머니 없어”
“이건 서옹한테 주고, 이건 월하한테 전하고,
또 이건 정열이, 영옥이, 이건 원주 주고, 가만 있거라.
이것은 공양주한테 주거라...”
“아니 스님, 왜 이렇게 물건들을 죄다 나누어 주십니까요 스님?”
영문 모르는 손주상좌가 스님께 물었다.
“인석아, 마지막 입는 옷에는 주머니가 없어.
담아가지고 가려 해도 소용없는 일인거야…”
“예에? 마지막 입는 옷이라니요?”
세상 떠날 때 마지막 입는 옷 말이다. 참 너는 뭐가 갖고 싶으냐?“
“아이구 스님, 저는 아무것도 안주셔도 괜찮습니다.”
“아 여기 염주가 있구나. 너는 이걸 갖도록 해라.”
스님은 이렇게 당신의 유물을 모두 다 몫지어 나누어 주고 빈털털이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저렇게 눈이 오면 명년 농사가 풍년들겠구나…”
만암 스님은 눈을 감으시면서도 백성들의 농사를 걱정하며 열반에 드셨다.
자료 출처: 법보신문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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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글이네요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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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스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