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공자 서언]이하에서 박가분지음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자음과 모음.2014로 고진할배의 생각을 더듬어 볼건데요,이번 게시글은 바로 전의 게시글의 연장선상에서 쓰는 게시글이 되겠습니다.나 파공자도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이라는 책을 소장하고 읽기도 했었는데,지금은 가지고 있지않아(팔아먹어 버려서) 박가분의 책을 다시 읽으며 고진할배의 생각을 요약 정리코자 합니다.고진사유의 핵심은 이 근대의 바깥을 주체와 구조의 양 모두에서 어떻게 넘어가느냐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으며,저 파공자의 과문으로는 고진이 보는 근대는 자본=네이션(국민)=스테이트(국가)인데,요는 이 보르메오의 매듭을 어떻게 푸느냐인데,고진은 이미 하나의 이념적인 방향으로 자본은 어소시에이셔니즘으로,스테이트는 세계공화국을 제시했지요. 그리고 이 주체와 구조를 사유하며 그 실천적 방향을 전철수처럼 이끄는 개념이 바로 주체에서는 단독자로서 고유명이고 구조에서는 교환양식으로서 세계사가 되겠습니다.그런데 이러한 고진의 사유의 단초는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해준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1980에서 부터 이미 시작됐다는 것입니다.그런데 박가분의 이 책이 고진의 사상적 기원을 깔끔하니 잘 정리해 주고 있어서 제가 굳이 원저에서 인용하는 수고를 덜어주네요...책 잘 팔아 먹었다.하하하^0^ 더 잘 팔아먹은건 수백장의 클래식 CD이지만......여담이지만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 대담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여기서 고진이 네그리라인의 제국개념에 대해서 시니컬하게 비꼬는 대사가 기억납니다.아마 정확한 제 기억은 아니지만 네그리라인은 이 국민국가의 엄중한 존재,현실사태를 너무 우습게 본다면서 자신의 역사반복의 도식으로 봤을때 지금(1990년이후 현재는)은 제국주의 시대이지,제국(네그리라인의 핵심개념)이 아니라는 것이죠...고진은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세계자본주의의 순환적 단계상 제국주의적 단계라고 주장하며,자신이 보는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적-자유주의적-제국주의적-자유주의적-제국주의적을 반복한다는 독특한 주장을 합니다.그것도 60년 주기로 반복한다고 주장합니다. 이하에 대괄호나 소괄호안의 문장들은 항상 그렇듯이 저 파공자가 첨가한 말입니다.써놓고 보니까 어디까지가 박가분 말이고 어디까지가 저 파공자 말인지 저도 헷갈릴 정도이고,완전 하이브리드한 괴물같은 글이 탄생했네요 ^0^ 맨아래 추가로 덧붙인 [참조]글은 다른 카페에 오래전에 써놓은 글을 펌복사해온 것으로 이름 그대로 참조 바랍니다 ^0^
[고진이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쓰고 나서 쓴 책이 바로 <은유로서의 건축>1983인데요.이 책에서 고진은]“나는 바깥을 가정조차 할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울타리 안에 있는 나를 발견했다.(....)보다 결정적 인 전회가 요구되었다.” 이와같은 문제의식에서 가라타니는 <은유로서의 건축>을 계속 써나가는 기획을 중단하게 되었다.가라타니가 말하는 바깥은 나중에 그가 주목하는 가르치다-배우다,그리고 사다-팔다의 관계 속에서 발견된다.[이는 탐구1(1986)에서 가르치다-배우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사유를 빌려서,사다-팔다는 맑스의 사유를 빌려서 구체화 됩니다.]가라타니는 당대의 구조주의/포스트 구조주의 조류 속에서 초월적 주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간주된 구조가 실은 초월적 자아와 [한편으로]공모하고 있음을 간파했다.그것은 주체외부에 있는 풍경이 실은 내면과 공모하고 있다는 그의 초기주저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서 펼쳤던 사유의 지형과 동일하다. 나중에 보겠지만 가라타니는 후일 풍경에 사로잡힌 내면 혹은 체계에 사로잡힌 초월적 자아의 바깥을 고유명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이는 탐구2(1989)에서 구체화 되는데,고유명은 키에르케고르의 단독자 개념의 사유를 빌려서 발견하게 됩니다.]가라타니의 이론적 여정은 형식적인 구조와 주체 양자의 바깥에 있는 고유한 역사적 구조와 주체를 발견하고 이론화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가 말한 내면= 초월적 주관은 고유명으로 재사유되며,그가 말한 구조=풍경은 후일 세계사의 구조로 재사유된다고 할 수 있다.
[고진은 그의 후기??(현재 고진사유는 진행형이므로 이 후기라는 딱지가 조금 저어되는데요)주저라고 볼수 있는 세계사의 구조(2010)를 내기 전인 2006년에 상당히 주목할 만한 책을 내는데,그 제명은 <세계공화국으로>인데 이책에서 고진은 지금 자신의 최신간인 <제국의 구조>(2016=이 년대만 국내출판년도이고,앞서 표기한 고진 저서 출판년도는 모두 일본판 출판년도임)까지 보이는 사유의 아우트라인을 모두 제시합니다.저 파공자 생각은 마치 고진은 이 <세계공화국으로>에서 자신이 향후 전개할 사유의 스케치를 미리 그려 놓고서 지금은 그 그림을 하나씩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습니다.] [이제 우리는 탐구이후의 고진 사유를 검토하기 보다는 거꾸로 그의 사유의 기원에 해당하는 <일본 근대문 학의 기원으로>1980으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이 내면-풍경으로서의 일본근대문학에 고진이 무엇이 불편, 불만이었는지,박가분의 책을 통해서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가라타니의 견해는 실제로 굉장히 단순하고 축자적이다.“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것은 근대문학 이후 예를 들어 포스트모던 문학이 있다는 말도 아니고,또 문학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말도 아닙니다.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문학이 근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았고,그 때문에 특별한 중요성,특별한 가치가 있었지만 그런것이 이젠 사라졌다는 것 입니다.이건 내가 소리 높여 말하고 다닐 사항은 아닙니다.단적인 사실입니다.문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이젠 적습니다.[저 파공자도 그리 생각하는 사람중의 한명입니다.]때문에 굳이 내가 말하고 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고진은 일본근대문학에 무엇이 문제가 있다고 보았는가?고진은 일본근대문학은 그 기원에 있어 어떤 전도 또는 도착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고진은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 내면과 풍경의 발견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런 내면과 근대이전의 내면과 풍경과는 다른 전도가 있는데,이를 고진은 메이지 30년대에 활약했던 구니키다 돗포의 두 소설 <무사시노>와 <잊을 수 없는 사람들>에서 발견해 내는데,이 소설에서 주위에 무관심한 내적 인간(내면)에 의해 처음으로 풍경이 발견되는데,이 풍경은 오히려 외부를 보지 않는 자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결국 이와같은 풍경의 발견은 내적인간 즉 내면의 발견과 표리일체를 이룬다.[한마디로 고진의 문제의식은 이 근대가 낳은 내면-풍경 도식으로는 근대의 외부로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여기에 고진의 심각한 고민이 있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고진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근대외부로 나갈 수 있느냐에 있는데,자신이 보는 일본근대문학은 그 기원에 있어서 근대 내부에로 종속된 상징형식을 계속 반복한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그런데,근대에 대해서 문학이 자신이 뭔가 그 전도를 의식하고 저항적이고 풍자적인 작품을 쓴 이가 있는 데,그가 바로 지금은 독보적으로 일본의 최고문학가로 인정받는 나쓰메 소세키가 되겠다.여기에다 고진은 후타바테이 시메이를 꼽는다.가라타니는 이와같은 근대문학자의 예외적인 저항적인 태도를 주목해 근대문학 과 다른 대안적인 문학의 가능성을 암묵적으로 긍정하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후일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가라타니는 그런 가능성을 부질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앞에서 저 파공자는 고진이 네그리라인의 제국개념이 난센스라고 시니컬하게 비꼬는 내용이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의 대담에서 했다고 했는데,이 근대 문학의 종언에서 가라타니가 그렇게 말한 걸 읽었는지 조금 헷갈리네요...누가 아시는 분 있으면,저 파공자의 헷갈리는 저의 기억을 바로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이 두 저서가 아닐 수도 있겠네요???]
앞서 보았듯이 가라타니는 근대문학을 성립시키는 것은 어떤 전도라고 말한다.근대문학은 어느 시점에서 부터인가 자명해져 버린 내면과 풍경의 발견에 의해 성립된다.그것은 내면 바깥의 인간 주체성의 다양한 측면,그리고 풍경 바깥의 사회적 관계를 괄호안에 넣음으로서 자명해진다.내면과 풍경의 바깥을 지워버리는 것이 근대문학의 전도인 셈이다.중요한 점은 이런 주관(내면)이나 객관(풍경)이 역사적으로 출현했다는 점이며,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문학의 역사성이라는 측면을 치열하게 의식하고 작업했던 후타바테이나 나쓰메같은 작가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그러나 그와같은 치열한 의식은 오늘날 잊혀졌다.가라타니가 문학인 (정확히는 문예비평가)으로서 정체성을 포기하고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한 것은 오히려 그가 근대문학이 성립시킨 내면과 풍경의 역사적 자명성 속에 우리가 살아간다는 점을 철저하게 이해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아무래도 문학만으로는 그 바깥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문학인의 정체성을 포기한 것이다.[그리고 나서 이론가로,사상가로?끝내는 철학자로 변신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서부터 가라타니를 지금까지 추동하는 것은 어디서부터가 안이고,어디서부터가 바깥인지가 모호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바깥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다.바로 그런 입장에서 부터 그 후의 가라 타니의 이론적 여정이 시작된다.이러한 이론적 사유의 첫출발은 고유명의 발견에서 부터 시작하는데,가라타니는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자로서 나쓰메를 일본 근대문학사에서 소환하며 그를 자연주의(이편-박가분 첨가)니 낭만주의(저편-박가분 첨가)니 하는 일반적 개념으로 정리할 수 없는 고유명=단독자로서 사고하고 있다.
[참조]새천년(2000년)을 앞두고 일본 아사히 신문이 조사한 지난 1000년간 최고 문학가 순위입니다.
1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련님』 『마음』을 쓴 말이 필요없는 일본 대표 국민작가
2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 -『겐지 이야기』를 쓴 중세 헤이안시대 여류문인
3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역사소설가,아마 역사소설로는 가장 많이 드라마 영화화된 작가가 아닐까???
4 미야자와 겐지(宮澤現治):애니 【은하철도999】의 원본인 <은하철도의 밤>의 원작자.파공자도 이분의 시 <비에도 지지않고>를 가끔씩 읊조리곤 하죠^^ 렌도라 <사랑스런 그대에게>서 작중 주인공인 배우 후지키 나오히토가 극중에서 가장 사랑했던 시로 나온걸로도 기억되네요.
사랑스런 그대에게(愛し君へ) Final Scene
재생시간02:24사랑스런 그대에게 <--여기에 클릭하세요
【비에도 지지않고 시원문과 번역】
雨ニモマケズ
風ニモマケズ
雪ニモ夏ノ暑サニモマケヌ
丈夫ナカラダヲモチ
慾ハナク
決シテ瞋ラズ
イツモシヅカニワラッテヰル
一日ニ玄米四合ト
味噌ト少シノ野菜ヲタベ
アラユルコトヲ
ジブンヲカンジョウニ入レズニ
ヨクミキキシワカリ
ソシテワスレズ
野原ノ松ノ林ノ䕃ノ
小サナ萱ブキノ小屋ニヰテ
東ニ病気ノコドモアレバ
行ッテ看病シテヤリ
西ニツカレタ母アレバ
行ッテソノ稲ノ束ヲ負ヒ
南ニ死ニサウナ人アレバ
行ッテコハガラナクテモイヽトイヒ
北ニケンクヮヤソショウガアレバ
ツマラナイカラヤメロトイヒ
ヒデリノトキハナミダヲナガシ
サムサノナツハオロオロアルキ
ミンナニデクノボートヨバレ
ホメラレモセズ
クニモサレズ
サウイフモノニ
ワタシハナリタイ
南無無辺行菩薩
南無上行菩薩
南無多宝如来
南無妙法蓮華経
南無釈迦牟尼仏
南無浄行菩薩
南無安立行菩薩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건강한 몸을 갖고
욕심은 없고
절대로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네
하루에 현미 4홉과
된장과 야채 조금을 먹고
여러가지 일에 자신을 계산에 넣지 않고[2]
잘 보고 듣고 이해하고
그리고 잊지 않네
들판의 소나무 숲 그늘의
조그마한 이엉지붕 오두막집에 살며
동쪽에 병든 아이가 있으면
가서 간호를 해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가 있으면
가서 볏단을 져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마오라고 달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시시할 뿐이니 그만두라고 말리고
가물 때에는 눈물을 흘리고
찬 여름[3]에는 허둥지둥 걸으며
모두가 날 얼간이라 부르고
칭찬받지 못하고 근심거리도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네
나무무변행보살
나무상행보살
나무다보여래
나무묘법연화경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정행보살
나무안립행보살
5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음독자살) 자살때 나이가 35세인가 그렇죠.이분이 자식에게 준 유서를 읽어 보노라면 괜스레 눈가에 이슬 맺히죠!! 막연한 불안(ぼんやりとした不安)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1927년 7월 24일 35세의 젊은 나이에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고 자살했지요.아래 7위에 랭크된 다자이 오사무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죠!!
6 마츠오 바쇼(松尾芭蕉)-17세기 에도시대 하이쿠시인.나쓰메 소세키의 절친인 마쓰오카 시키가 하이쿠를 현대화했죠!!
7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투신자살)여러번의 자살시도에 재수없이??^^ 계속 실패만 하시더니 드디어 39세에 끝내 투신자살에 성공하신 분!!^^틈만 나면 이 분의 소설 <인간실격>이 드라마, 영화화 되곤 하지요!!
8 마츠모토 세이쵸(松本淸張)-파공자가 존경하는 사회파 추리 소설가.우리 카페에 게시글 올린 것도 있으니 궁금하신 분만 찾아서 읽어보시기 바람^^
9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일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스자살) 그냥 폼으로라도 이분의 【설국】은 누구나 다?? 한번 정도는 읽어 보게 되지요.이 【설국】의 배경이 된 장소도 저 파공자가 우리 카페에 게시글 올렸으니 이 또한 궁금하신 분만 찾아서 보시기 바람^^
10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할복자살),정말 싸가지 없는 꼴통사키.현재 수상 아베의 직속 꼴통선배로 보겠음.미시마 유키오(1925~1970)는 1970년 11월 25일, 왕년의 우국열사 에토 고자부로(江藤小三郞)의 자결에 자극받아 다테노카이 대원 네 명과 함께 자위대 이치가야(市ヶ谷) 주둔지(지금의 일본 방위성防衛省 본성)를 찾아가 동부방면총감(東部方面総監)을 감금하고, 막료 여러 명에게 부상을 입힌뒤, 사무실 앞에서 발코니 연설로 쿠데타를 일으키자는 연설을 하고는 5분 뒤에 할복 자살하였다.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신우익(新右翼)이라 불리는 우익 세력이 생겨나게 하는등 그후 일본 국내의 정치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위키자료로 좀더 보충한다면,1970년 11월 25일 방패모임 대원 4명과 함께 자위대 이치가야 주둔지에 '우수 자위대원 표창'을 명목으로 들어가 자위대 동부방면 총감과 면담하던 중에 가지고 간 일본도로 위협해 인질로 잡은 뒤 부하 8명을 부상하게 한 뒤에 총감의 방 앞 발코니에서 몰려든 기자들을 향해 1.미일 안보조약 개정, 2.헌법 개정, 3.자위대의 쿠데타 를 촉구하는 '이치가야 연설' 을 한 뒤 약 5분 후 모리타 마사카쓰와 함께 할복 자살했다. (##미시마 유키오의 주장 중에서 현 아베정권하에서 거의 다 이루어지고, 남은 것 두개는 헌법개정과 자위대의 군대로의 명칭변경과 함께 자위대=군대의 쿠데타만 남은것 같네요!!;파공자주)
11 아리시마 타케오(有島武郞) :[펌글]1923년 일본 소설가 아리시마 다케오와 여기자 하타노 아키코가 가루이자와의 별장에서 이른바 정사(情死)로 생을 마감했다. 남자는 8년 전 아내를 여읜 홀아비였고, 여자는 유부녀였다.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아 다이쇼(大正) 시대의 마지막 해인 3년 뒤, 오사카에서 <사의 찬미>를 녹음하고 돌아오는 길에 서른 살의 윤심덕과 김우진이 현해탄에 함께 몸을 던진다. 아리시마와 하타노의 ‘신주’(心中·동반자살)는 이처럼 두 나라를 뒤흔든 큰 사건이었는데, 아리시마 다케오가 조선에 영향을 미친 것은 단지 이 자살 사건뿐만은 아니었다.
그에게 큰 영향을 받은 두 한국 작가가 있다. 한국 근대문학의 기둥이던 김동인과 염상섭으로, 이들이 일본에서 유학했던 1910~20년대는 아리시마 다케오가 가장 활발히 창작 활동을 했던 시기다. 염상섭의 초기작에는 아리시마의 <다시 태어나는 고통> <돌에 짓눌린 잡초>의 흔적이 엿보이며, 김동인의 <붉은 산>은 홋카이도 농민들의 혹독한 삶을 그린 <카인의 후예>의 영향을 받았음을 숨길 수 없다.
아리시마 다케오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인물이다. 1878년 대장성 관료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귀족 자제들이 다니는 가쿠슈인(學習院)에서 훗날 다이쇼 천황이 될 황태자의 놀이 친구로 수학했다. 이후 홋카이도대학의 전신인 삿포로농업학교에 입학해 당대 많은 이들이 그랬듯 종교사상가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으로 기독교도가 됐으나, 미국 하버드대학에 유학하면서 신앙에 회의를 품게 되고 이어 사회주의자가 된다. 귀국한 뒤에는 삿포로의 모교에 부임해 농민들과 삶을 함께하면서, ‘시라카바’(白樺)파의 동인으로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인도주의와 이상주의를 기반으로 삼았던 시라카바파는 ‘새마을’ 운동을 제창하며 휘트먼과 같은 자연 회귀를 부르짖었으나, 사실 가쿠슈인 출신 작가들이 모인 시라카바파의 사회적 활동이라는 것은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가 트리아농 궁에서 양치기 소녀를 흉내낸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아리시마 다케오는 시가 나오야, 무사노코지 사네아쓰, 그리고 친동생인 소설가 사토미 돈 등의 동인들 중에서 모임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그리고 1922년, 그는 어쩌면 다음해 그의 자살 사건보다도 후세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사건을 벌인다. 작가로서의 양심선언이라 할 만한 ‘선언 하나’라는 글을 발표함과 동시에, 홋카이도에 있던 자신의 농장을 소작인들에게 ‘공산 농원’이라는 형태로 무상 증여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런 행위에 대해서도 낭만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이런 농원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반드시 자본가에 의해 탕진되고 말 것이라고 예견한다.
〈어떤 여자〉
그의 이런 냉정한 시각은 소설 속에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의 장편소설 중 대표작이라 할 <어떤 여자>(향연 펴냄)는 크게는 <안나 카레니나>의 틀을 빌려왔으며,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가 구니키다 돗포의 아내였던 사사키 노부코가 남편과 이혼한 뒤 미국의 약혼자를 만나러 여객선에 몸을 싣고 가던 도중, 유부남 사무장과 사랑에 빠져 몰래 일본에서 살림을 차린 사건이다. 장장 7회에 걸쳐 신문에 연재될 정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이 사건을 소설화하면서, 아리시마 다케오는 사사키 요코로 이름지은 여주인공을 톨스토이풍의 비련의 인물로 묘사하기보다는 자의식이 강하고 대담한 현대적인 요부로 그려냈다.
요코는 인간적인 결함을 지닌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본능과 자연에 충실한 삶을 살려는 여주인공의 손을 들어준다. “<어떤 여자>에서 내가 독자들이 감명받기를 바라는 바는, 현대 여자들의 비극적인 운명의 쓸쓸함이라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생존의 권리를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 결과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서 오직 하나, 남자를 농락할 수 있는 무기를 이용할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거기서 남녀관계의 비극이 배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함석헌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무교회주의 종교가 우치무라 간조는 훗날 아리시마 다케오의 배교에 분노해 그의 슬픈 죽음 뒤에도 ‘배교자 아리시마’라는 글을 쓰며 비난을 멈추지 않았는데, 간조의 이런 완강함은 흥미롭게도 <어떤 여자>에서 요코를 배척하는 원리주의자 종교가 우치다 선생이라는 인물을 통해 묘사된다.
국내에 출간된 아리시마 다케오의 작품은 <어떤 여자> 외에 <돌에 짓눌린 잡초>(소화 펴냄), <내 어린 아이들에게>(꿈이 있는 세상 펴냄) 등이 있다. 나쓰메 소세키가 그려낸 메이지 시대에 이어,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의 시대인 다이쇼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작가의 영혼을 엿보기엔 부족함이 없다.
12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현재 생존 문인 중 최고 순위.나는 하루키가 그냥 아무 생각, 이유 없이 싫더라.
13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일본의 대표적 문학잡지 <문예춘추>를 만드신 분으로, 단편소설에만 수여하는 <아쿠타가와> 상 역시나 이분이 제정하신 것임.왜구들 나라에서는 〈나오키〉상과 더불어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이죠!!
14 세이 쇼나곤(淸少納言) :앞의 2위인 무라사키 시키부와 쌍벽을 이룬 헤이안시대 여류작가이자 가인. 앞의 무라사키 시키부가 쇼나곤의 재능에 대해서 은근히 질투한걸루 유명하죠!!시키부와 쇼나곤 둘사이에 재미있는 야담이 많지요!!^^
15 요사노 아키코(謝野晶子) :왜구야들이 은근히 좋아하고 또 존경하는 여류시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여자 역시 우익냄새가 풀풀 나는 반꼴통으로,이녀의 시 <그대여 죽지 말아라>를 읽고는 나 파공자는 몹시 씁쓸한 감회에 젖는다!!
출처 : 아오조라 문고
요사노 아키코(1878~1942)
아아 동생아. 너 때문에 울고 있다.
그대여 죽지 말아라.
막내로 태어난 그대이기에
부모님의 정을 듬뿍 받았었다.
부모님이 칼을 쥐고
사람을 죽이는 시범을 보이셨느냐.
사람을 죽이다 죽으라고
24세까지 너를 기른 것이겠느냐,
사카이 거리의 점포상점
유서 깊은 집안에 태어나
부모의 가업을 물려받을 그대이기에
그대여 죽지 말아라
여순의 성이 떨어지든
떨어지지 않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
그대는 모르느냐. 그런 건
점포상 집안의 율법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대여 죽지 말아라
폐하께서도 이 싸움에
그 분 스스로는 나가지 않으셨다.
서로의 피를 흘리게 하고
짐승처럼 죽으라고 하면서
죽이는 것을 사람의 공적으로 떠받드는 건
폐하의 깊으신 마음으로도
탐탁치 않아하셨을 거다.
아아 동생아, 싸움에서
그대여 죽지 말아라.
지난 가을 아버님을
여의신 어머님은
한탄의 나날 속에서도 안타깝게
자식을 전쟁터에 내보내고, 집을 지키신다
태평함을 들려 주신다던 폐하의 다스림도
늘어가는 어머니의 흰 머리는 이기지 못한다
포렴 뒤에 엎드러 눈물짓는
네 어린 새색시를
그대는 잊어버렸나. 기억하느냐.
열 달이나 떨어져 기다리고 있는
소녀의 마음을 생각해 봤느냐
너는 이제 홀몸도 아니란다
그 애가 달리 누굴 의지하겠느냐
그대여, 죽지 말아라.
요사노 아키코與謝野晶子
일본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통렬한 반전시로 꼽히는 요사노 아키코與謝野晶子의 <그대여 죽지 말아라君死にたまふことなかれ>입니다. 그녀는 여순 요새 포위전에 종군하던 동생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 시를 발표하여, 당시 일본 문단 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 전체를 발칵 뒤집었습니다. 국수주의자들은 그녀를 '국가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는 속물' 내지는 '비애국자, 역적'으로 비난했지만, 당시 일본인 전체 인구의 3%에 달하는 청년들이 전쟁에 동원되었는데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던 전쟁 참가자들의 가족들 다수는 이 시에 공감했습니다. 어느 전쟁에서도 그렇듯 전쟁에 동원된 군인이란 건 대부분 젊은이들이므로, 그들이 전쟁에 끌려나가면 가족들은 생업에 지장을 받기 때문이지요. 그들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할 위험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요. 당시에는 논란에 휩싸이던 이 시입니다만, 지금은 일본 국어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요사노 아키코는, 메이지 시대 대표적인 신여성 중 하나로 일본의 여권신장운동, 여성해방운동, 여성문학 발전에 공헌했습니다. 여성해방운동을 주도하던 대표적인 잡지였던 <세이토>의 발기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남편(요사노 데쓰칸)을 잘 두어서 여성문단에서 높은 위치를 획득했다는 말도 있고, 만주국 건국 당시 여성문인회를 이끌고 여러 번 종군위문을 갔던 것이랑, 태평양전쟁 개전날, 미일개전 찬양시를 썼던 것은 그녀가 '말년에 타락했다'는 말을 듣는 단서가 되었습니다.
16 모리 오오가이(森鷗外):영화 <게이샤의 추억>에 포주로 나왔던 원로 여배우 모모이 가오리와 그 이름에서 괜히 나 파공자를 언제나 아주아주 쬐끔 눈꼽만큼 헷갈리게 하시는 분^^ 도올 김용옥과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대담을 언젠가 읽어 본 적이 있었는데,박여사는 1위에 랭크된 나쓰메 소세키는 구미소설들을 표절한 표절작가로 매도하며 형편없이 무시하는 반면에,모리 오오가이는 높이 평가하시던데.....박여사의 속내까지야 내가 모르니 그냥 그런갑다 하고 넘어감!!
17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내가 좋아하는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의 소설 원작자.여담이지만 무사시는 역사인물로는 왜구야들이 오다 노부나가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드라마,영화화한 역사인물이 아닐까 싶다!!
[참조]무사시 드라마 목록:저 파공자가 이 카페에 쓴 게시글에서 펌해옴.
1.미야모토 무사시 (1961,후지티비,무사시:탄바 테츠로)
2.그때부터의 무사시 (1964~65,마이니치방송,무사시:츠키카타 류노스케)
3.미야모토 무사시 (1965~66,일본티비,무사시:키타오오지 킨야)
4.미야모토 무사시 (1970,NET,무사시:다카하시 코지)
5.미야모토 무사시 (1975,후지티비,무사시:이치가와 에비조)
6.그때부터의 무사시 (1981,1.2. 티비도쿄 12시간 초와이드 드라마,무사시:요로즈야 킨노스케)
7.미야모토 무사시 (1984 NHK신대형 시대극,무사시:야쿠쇼 코지)
8.미야모토 무사시 (1990,티비도쿄,12시간 초와이드 드라마,무사시:키타오오지 킨야)
9.간류지마 코지로와 무사시 (1992,NHK, 무사시:타키타 사카에)
10.도쿠가와 검호전 그때부터의 무사시(1996,티비도쿄 12시간 초와이드 드라마,키타오오지 킨야)
11.미야모토 무사시 (2001.1.2. 티비도쿄 신세대와이드 시대극,무사시:카미카와 타카야)
12.무사시 (2003,NHK대하드라마,무사시:이치가와 에비조)
13.아규무예첩 (2010,티비도쿄 신춘와이드 시대극,무사시:타쿠마 신)
14.미야모토 무사시 (TV아사히 개국 55주년 기념드라마 스페샬,무사시:기무라 타쿠야)
15.신해석 일본사 제6화(2014,MBS,무사시:무로 츠요시)
18 오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이분이 일본의 두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 되시겄음.[세번째 수상자는 2017년에 수상한 일본계 영국인인 이시구로 가즈오인데,이분의 소설 <나를 보내지마>가 2016년 1분기에 렌도라로 각색되어 방영됐으나 시청율은 그다지 좋지 않았었지요.노벨문학상 수상뒤에 렌도라로 각색 방영했더라면 시청율 높지 않았을까???]
19 무라카미 류(村上龍) :하루키와 괜히 헷갈리게 만드시는 분^^이분 추종자들은 모두 오타쿠들 아닐까???
20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일본의 김소월,아니 김소월이 조선의 타쿠보쿠!!우리 카페에 나 파공자가 게시글 올렸으니 궁금하신 분만 찾아서 읽어 보시기 바람.
21 타니자키 쥰이치로(谷崎潤一郞)-『세설』, 『치인의 사랑』의 원작자. --(국내외 평자들은 타니자키가 일본인으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타지않을까 추정했더랬음)
22 이노우에 야스시(井上靖)-역사소설가.파공자가 전국시대 타이가로 지인들에게 항상 적극 추천하는 【풍림화산】의 원작자 되시겄음.야스시 이분 해마다 자신이 이번에는 노벨상 타지 않을까하고 기대만 하시다가 결국 타지 못하고 꽥하신 분^^
23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
23 아베 코보(安部公房)
25 타카무라 코타로(高村光太郞)
26 후지사와 슈헤이(藤澤周平):사무라이 소설에 일가견 있으신분.파공자가 좋아하는 영화【황혼의 사무라이】원작자 되시겠음.사무라이 영화에 취미 있으신 분들만 한번 꼭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제가 좋아하는 배우인 사나다 히로유키가 주인공이고 히로인역은 미야자와 리에가 하였지요!!
27 시마자키 토손(島崎藤村) :일본 근대문학 형성에 있어 일본문학사(고전,낭만,상징,자연주의까지 모든 사조를 다 거치면서 실험함.처음에는 시인으로 등단했으나 소설로 전향하여 소설가로 그 족적을 확실히 남김.)에서 잊고 가거나 빠뜨리고 가면 괜히 서운해 하실 분.정처가 넷째딸을 낳으면서 죽은뒤,그의 조카딸과의 불륜을 소재로 담은 『신생』을 써서 왜구열도를 발칵 뒤집어 놨죠!!^^
28 나카하라 나카야(中原中也)
29 코바야시 잇사(小林一茶)
30 세리자와 코지로(芹澤光治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