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대부도를 걸었다. 계획된 도시와 거기에 맞닿아 있는 자연 그대로의 땅. 잠시만 스쳐도 깊은 인연이 되는 이야기. 그 절묘하면서도 오묘한 조화가 신선하다. 그래서 더 좋은, 여긴 안산 하고도 대부도다.
누에섬, 달 전망대
여행이라면 언제나, 집으로부터 멀리, 나로부터 멀리, 그런 걸로 생각했다. 그래야 뭔가 달라지는 느낌, 어디론가 와 있다는 생각에 절로 편안했다. 어쩜 강박이었을지도 모른다. 깊고 깊은 심연의 무엇보다 누군가의 관념과 시선을 더 의식하는.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안산의 한 쪽, 대부도를 여행하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이것도 여행인가? 아마도 집으로부터 가급적이면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내딛은 발길이 아득한 시화방조제에 닿을 때까지는 그저 동네 마실 정도의 무미건조하면서도 시큰둥한 산책에 지나지 않았다. 시화호. 사람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하던 거대한 크기의 담수호는 과거와 많이 달라 있었다.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옛 유행가를 우스개처럼 얘기하며, 세계 최대의 간척사업의 하나로 밀어붙였던 곳이다. 그때 생겨난 것이 무려 12.7km에 이르는 시화방조제다. 그 거대한 둑 한 쪽에 고여 썩어가던 물은 바닷물을 유통시키고서야 비로소 마주 대할 수 있는 자연이 되었다. 그렇게 20여 년. 시화방조제는 지금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웅혼한 서해바다와 맑고 잔잔한 시화호를 양 옆으로 두고 마치 천혜의 자연인 양 멋진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거대한 바다와 호수,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청정한 자연 속으로 거침없이 길게 쭉 뻗은 방조제 위를 달리는 기분은 상쾌하고도 삼삼하다. 숨 막히는 공장지대를 벗어나 깊고 푸른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길, 대부도로 가는 길이다. 시화방조제 위에는 세계 최대의 발전 용량을 자랑하는 시화호조력발전소가 있고, 청정에너지를 만드는 조력 발전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공원과 문화관 등이 조성돼 있다. 시화나래휴게소도 그곳에 있다. 시화나래휴게소 주변 공원에는 ‘빛의 오벨리스크’를 비롯 여러 점의 설치미술 작품들이 전시돼 있고, 휴게소 정면 바닷가에는 간척사업과 방조제 공사 때 그곳에서 나온 괴석과 고목으로 ‘해안암석원’을 꾸며놓았다. 그래서 이곳 휴게소는 고속도로의 여느 휴게소와는 달리 잠시 들렀다 가는 곳이 아닌 일부러 찾아와 즐길 수 있는 야외 문화공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시화호가 수질 오염으로 외면받던 때를 생각하면 반가운 변화다. 시화나래휴게소에 들리게 되면 달전망대에는 꼭 한 번 올라가보는 게 좋다. 높이가 무려 75m로, 25층 높이의 거대한 전망대는 아름다운 시화호와 서해바다를 360도 조망할 수 있는 멋진 스카이라운지다. 또 바닥이 투명유리로 돼 있어 하늘 꼭대기에서 짜릿함을 제대로 느껴볼 수도 있다. 이용료는 무료. 현재 시설 개선공사 중이라 새해부터 다시 이용이 가능하다.
▶너무 몰랐던 풍경, 대부해솔길
대부도 해솔길의 ‘백미 중 백미’로 꼽히는 1코스
대부도에는 낭만적인 해안 올레길이 있다. 바다와 숲, 들판을 두루 거치는 멋진 트레킹 코스. 대부해솔길이다. 짧게는 5km, 길게는 17km에 이르는, 총 11개의 코스가 있는데 대부도의 자연과 명소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길이다. 어느 길 하나 심심한 건 없지만, 모든 길을 다 걸을 수 없다면 대부해솔길 중 아름다운 해안길과 금빛 낙조를 볼 수 있는 1코스는 꼭 걸어봐야 할 멋진 길이다. 대부해솔길의 백미 중의 백미로 꼽히는 길로 너른 서해안 갯벌을 병풍처럼 둘러싼 해송 숲이 사철 푸르고, 북망산과 구봉도를 휘돌아 눈부신 낙조전망대로 이어지는 환상의 코스다. 길이는 약 7.5km. 2시간 정도 걸리는 구간이지만, 빼어난 자연 풍광에 빠져 걷다 보면 언제 시간이 간 줄 모를 정도다. 만약 그 거리도 부담스럽다거나 시간 여유가 없다면 종현어촌체험마을에서 구봉도 낙조전망대까지만 걸어도 대부해솔길 1코스의 매력은 충분히 느껴볼 수 있다.
이 길의 압도적 아름다움은 코스 끝자락에서 만나는 구봉도 낙조전망대와 개미의 모양과 쏙 빼닮은 아치교 ‘개미허리’가 만드는 풍광이다. 밀물 때 개미허리 다리 아래로 물이 차고 또 하나의 섬이 만들어지면 그저 바라만 봐도 넋이 빠지는 절경이 된다. 구봉도 낙조전망대에서 만나는 해넘이는 또 하나의 선경이다. 서해바다의 찬란한 황금빛 석양으로 물든 낙조전망대의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종현어촌체험마을에서 구봉도 낙조전망대로 가는 해안길 모퉁이 바다에 떠 있는 할매바위와 할아배바위의 풍광도 압권이다.
대부해솔길은 안내 표식이 잘 되어있어 걷기 편하다. 주황색과 은색 리본만 따라 걸으면 헤매지 않고 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 낙조전망대로 갈 때 물때를 만나면 해안길이 막히니 사전에 밀물과 썰물을 확인해야 한다. 개미허리 다리 부근에 물이 차올라 해안길이 잠기면 700m 전방에서 숲길로 올라 낙조전망대로 갈 수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대부도 유리섬
‘한국의 무라노’로 불리는 대부도 유리섬
대부도에는 또 하나의 섬이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섬이다. 이곳에 오면 누구나 아름다운 유리 공예 작품에 감탄하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놀란다. 4만3000㎡의 규모에 미술관, 박물관, 조각공원, 체험장, 아트숍 등 없는 게 없는 유리공예 테마파크다. 그래서 이곳을 ‘한국의 무라노’라 부른다. 무라노는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치아의 마라니 운하를 따라 위치한 섬으로 세계 최고라는 ‘베네치아 글라스’의 산실이다. 대부도의 유리섬 역시 국내 유리공예의 정수를 살펴볼 수 있는 곳으로, 최고를 자부하는 유리 조형작가들의 예술혼이 담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유리공연 시연을 관람하거나 블로잉, 램프워킹, 샌딩, 글라스페인팅 체험 등 평소 접하기 힘든 유리공예 체험도 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유리섬 최고 인기 프로그램인 유리공예 시연
대부도 유리섬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하루 세 차례 열리는 유리공예 시연이다. 200여 명의 관람객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150평 규모의 극장식 시연장에서 유리조형 작가들이 유리 공예품을 만드는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유리공예 시연은 고온의 불을 자유자재로 다뤄야 하는 작업으로, 액체처럼 보이는 1200℃의 유리 반죽을 블로 파이프(Blow Pipe)로 불고, 굴리고, 다듬어 동물과 식물의 모양 등 온갖 형태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마치 마술과도 같은 놀랍고 신기한 장면에 관람객들의 감탄사가 쏟아지기 일쑤다. 유리조형 작가들은 이곳에서 조각, 공예, 도예,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화려하게 빛나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그 작품들은 유리섬 곳곳에서 관람객들을 만난다.
유리섬미술관과 맥아트미술관에 전시된 수많은 작품들을 관람하고 난 후 유리조각공원과 야외 전시장에 설치되어 있는 유리 공예 작품들과 각종 조형물들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특히 조각공원 산책로를 따라 조성된 러브스토리 테마의 산책로 ‘러브로드’가 관람객들의 인기를 모은다. 널찍하게 마련된 유리조각공원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기 캐릭터 조형물도 전시되어 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이라면 필히 들려볼 만한 체험공간이다.
▶생각이 시작되는 곳, 종이미술관
종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는 없지만 대부도에서 문득 종이를 만나고, 종이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은 상상 못했다. 너무 평범한 이름이어서 오히려 낯설었던 ‘종이미술관’. 지금 종이미술관은 대부도를 ‘예향’으로 인식시켜주는 또 하나의 문화예술 공간이다. 이곳은 국내 최초의 종이조형 미술관으로 종이와 미술을 소재로 다양하게 표현되는 문화와 예술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이다. 모두 3개 층으로 이뤄진 미술관에는 기획 및 상설 전시가 이뤄지는 2개의 전시실과 아트숍, 전시공간이기도 한 카페가 있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익숙하면서도 정감 어린 닥종이 인형이 방문객을 맞아주고, 종이로 만든 장미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종이로 이처럼 아름다운 장미꽃을 만들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카페로 이어지는 복도를 가득 채운 수천 마리의 종이학도 인상적이다. 누구나 한번쯤 접어 봤음직한 종이학이 기막힌 설치미술 작품이 되어 포토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3층과 2층, 2개의 전시관에서는 한지 의상 작품전과 화병, 문갑, 서랍장 등 한지로 만든 생활용품들과 한지등, 액자 등의 예쁜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나하나가 모두 섬세하면서도 세련된 작품들이다.
매일경제 12월30일
미술관에는 다양한 체험이 이뤄지는 야외 공간도 있고 한옥에서의 숙박 체험도 가능하다. 미술관과 가까운 곳에 대남초등학교가 있는데 이 학교는 가수 이미자가 젊은 시절에 불렀던 노래 ‘섬마을 선생님’의 무대가 됐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길의 이름도 ‘섬마을선생님 해당화길’이다. 종이미술관 관람과 연계해 그 길을 걸어 봐도 좋다.
▶탄도항의 노을, 누에섬의 낭만
대부도에서 저녁을 맞기는 탄도항이 제일이다. 대부도 해솔길 6코스의 종점이자 7코스의 시작점인 탄도항은 환상적인 저녁노을로 유명한 곳이다. 갯벌 사이로 우뚝 솟은 풍력발전기가 망망한 바다와 어우러진 기막힌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다에 물이 빠지면 탄도항에서 흰 등대가 우뚝 솟은 누에섬까지 걷는 길이 만들어진다. 이른바 ‘모세의 기적’이 이곳에도 있다. 바로 옆 제부도의 ‘모세 길’보다 호젓하고 풍경은 더욱 진하다. 누에섬은 멀리서 보면 누에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부도와 제부도, 선감도, 탄도 등 크고 작은 섬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정겨운 섬이다. 사람들이 바닷길을 걸어 그 섬에 가는 이유는 섬 안에 있는 등대전망대 때문. 누에의 눈처럼 비죽 솟아오른 것이 등대전망대다. 등대에는 전시실과 전망대 시설이 있다. 1층에는 인근 바다를 소개하는 체험관, 2층에서는 기원전 280년경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등대 이집트 파로스 등대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인 인천 팔미도 등대까지 국내외 등대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3층 전망대에 오르면 누에섬 인근의 섬과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조금 일찍 와서 하루 두 번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바닷길을 걸어보고 등대전망대에 올라 드넓은 서해바다를 감상해보길 권한다. 누에섬에 가려거든 꼭 알아둬야 할 게 있다. 물이 드나드는 물때를 잘 맞춰야 한다는 것. 등대전망대 역시 물때에 따라 관람시간이 변경되니 사전에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몰 전 물때에 맞춰 육지로 나와야 한다. 사람 걸음보다 몇 배 빠른 밀물로 인해 자칫 고립될 수 있으니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글과 사진 이상호(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11호 (22.01.0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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