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힘든 일 안 한다” vs. “현재 일당으로는 일할 수 없다”
⊙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29만명… 83%가 불법
⊙ “이대로 가면 공멸… 건설 노동자들 저임금 막을 제도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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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사거리 새벽 인력시장의 모습. 사진에 보이는 곳에 모인 이들은 대부분 중국 조선족 동포들이고, 사거리 맞은편에는 한국인 기능공들이 자리를 잡는다. |
지난 1월 29일 금요일 새벽 4시 반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사거리. 어둠 속에서 가방을 둘러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20분도 지나지 않아 사거리 일대가 인파로 뒤덮였다. 이곳은 매일 1000여 명의 사람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모여드는 우리나라 최대의 인력시장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경찰 순찰차 3대가 보였다. 교통정리를 하던 한 경찰관은 “5시20분에서 40분 사이에 사람이 가장 많이 나온다”며 “피크 타임에는 사람들이 찻길까지 밀려 내려오기 때문에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교통정리와 질서 유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파 속을 둘러보았다. 한파(寒波)가 가시지 않은 날씨라 모두 마스크로 철통무장을 한 채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인파 사이에서 오가는 말은 옌볜(延邊) 사투리나 중국어였다. 교통 경찰관은 “여기 나오는 사람 90% 이상이 중국 동포(조선족)들”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이 새벽 인력시장에 나온 이유는 신문에 실린 어느 독자편지 때문이다. 지난 1월 15일, 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읽던 기자는 경남 진주에 거주하는 어느 60대 일용직 노동자가 보낸 독자편지에 눈길이 고정됐다. 그는 “닷새째 인력회사에 출근했지만 일을 하지 못했다”며 “건설 현장에서 젊은 외국인을 먼저 쓰기 때문에 건강한 60세들도 폐지나 줍는 신세가 되었다”고 하소연했다.
중국 조선족 동포들이 장악한 국내 최대 인력시장
기자도 건설 현장에 조선족 동포를 포함, 외국인이 많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 펼쳐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새벽 인력시장의 풍경은 생각하던 것 이상이었다. 경남 진주에 사는 60대 일용직 노동자의 하소연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사거리 주변 건물은 눈 닿는 데마다 인력사무소가 들어서 있었다. 이곳 남구로역 일대에만 80여 개의 인력사무소가 밀집해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제법 규모가 큰 인력사무소에 들어가 보았다.
직원들이 신분증을 확인하고 사람들을 건설 현장으로 보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호명(呼名)을 받은 사람들은 작업 현장에서 온 사람을 따라 어디론가 떠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대로 의자에 앉아 있거나 커피를 마시며 사무실을 서성거렸다.
5시40분이 되자 북적거리던 인력사무소가 갑자기 텅 비었다. 인력사무소 측에서 건설 노동자들로부터 받아놓은 신분증을 얼핏 훑어보자 대부분이 외국인(조선족) 등록증이었다. 간혹 한국 주민등록증도 보였지만, 귀화한 중국 동포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인력사무소 직원의 귀띔이다.
인력사무소 한편에 앉아 있던 한 중국 동포(62)에게 “요즘 경기가 어떠냐”고 묻자 그는 “경기가 좋지 않아 허탕치고 들어가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중국의 경제가 지난 10여 년간 고공발전을 했는데 일하기에는 중국이 더 낫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중국은 인구가 많아 우리같이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잡기 어렵지만 한국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건설 현장 같은 데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을 떠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6시가 가까워 오자 시장통마냥 북적거리던 남구로역 사거리가 한산해졌다. 일을 잡지 못한 사람들 상당수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머지는 서성거리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인 철근·콘크리트 숙련공들이 모인다는 지하철역 5번 출구 쪽으로 가보았다. 아직 어둑한 거리에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었다. 그러니까 6시가 넘도록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오늘 모두 허탕을 친 셈이다.
“우리 같은 ‘잡부’ 인생에 뭣 하러 관심 가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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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동포들이 밀집한 가운데(사진 왼쪽) 그 바로 옆에는 소수의 한국인 기능공들이 공사 현장으로 가기 위해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사진 오른쪽). |
그 가운데 한 명에게 “한 달에 며칠이나 일을 하느냐”고 묻자 지극히 퉁명스럽게 답변을 했다.
“요즘 겨울에 일이 어딨어요.”
“실례지만 이렇게 일하시면 한 달에 얼마를 버나요.”
“아, 자기가 열심히 하면 많이 벌고, 놀면 덜 벌겠지요. 이렇게 맨날 와서 취재하면 뭐해요. 그저께도 방송국에서 찍어가고, 지난달에도 찍어가고, 겨울만 되면 3일이 멀다 하고 와서 취재를 하는데 달라지는 거 하나도 없어요.”
기자가 자리를 뜨지 않고, 오랫동안 한 노동자와 이야기를 나누자 주변을 서성이던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며 한마디씩 대화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수십 년 경력을 가진 우리하고, 4~5년 경력을 가진 저 사람들(중국 조선족 동포)하고 인건비는 1만~2만원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요. 현장에서는 한 푼이라도 더 싼 저 사람들을 먼저 쓰니 우리 같은 숙련 기능공들마저 현장에서 다 밀려났습니다.”(목수 30년 차라는 한 내국인 노동자)
“여기 한번 둘러보세요. 젊은 사람들이 단 한명이라도 있는지…. 이제 이 일로는 생활이 안 되다 보니까 젊은이 중에는 일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요. 내가 노가다(건설 일용직을 일컫는 은어·막노동)만 30년째인데, 어떻게 된 건지 IMF 때보다 일하기가 더 힘듭니다. 수입도 그때랑 비슷합니다.”(58세 콘크리트 기능공 박 모씨)
대화 중 한 명이 “요즘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월수입이 200만원이 안 된다”고 하자, 다른 이들이 “어떻게 200만원이나 버느냐. 성수기 때도 그렇게 벌기 어렵다”고 맞받았다.
“나는 15년째 용접 일을 하고 있는데 성수기 때도 한 달에 200만원 벌기 힘들어요. 그나마 일을 하고 싶어도 대형 공사장에서는 기능공(숙련공)까지 모두 외국인을 고용해 내국인 용접공들은 알음알음으로 소규모 현장만 다니고 있는 실정이죠.”(53세 용접공 이 모씨)
단순 일용직 일거리를 구하러 나왔다는 63세의 이 모씨는 “설을 앞두고 한 푼이라도 벌려고 나왔는데 오늘도 공(허탕)치고 들어가야 하니 죽을 맛”이라며 “내가 가리봉동에서 사는데 솔직히 그 일대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 중 중국 교포들보다 삶의 질이 더 떨어지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 원망을 돌렸다.
“도대체 정부는 뭣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외국인 때문에 한국인들이 다 죽게 생겼는데 공사 현장에서 한국인을 우선하여 쓰라고 행정지도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면 내국인 할당제라도 둬서 우리 같은 사람들도 좀 살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기야 높은 사람들이 언제 우리 같은 ‘잡부’ 인생에 관심을 가지기라도 했나요.”
6시45분이 되자 남구로역 인력시장은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는 분주한 행인들에게 장소를 내주기 시작했다. 기자가 자리를 떠날 때까지도 어둑한 길거리에서 무표정한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들이 여럿 남아 있었다.
“한국인들이 어디 힘든 일 하려고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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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로역 사거리 한 인력사무소의 모습. 매일 새벽 5시가 되면 이곳은 현장에 사람을 배치하는 직원과 일자리 배정을 기다리는 건설 노동자들로 북적거린다. 일을 기다리는 사람 대부분이 조선족 동포들이었다. |
서울을 벗어난 중소도시의 상황은 어떨까? 기자는 직업소개소가 밀집한 경기도 안산역 부근 원곡동을 둘러보았다. 안산역 대로 맞은편에 있는 원곡동 일대는 다문화 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중국 동포들의 거대한 집단거주지로 변모해 있었다. 이 일대 상가(商街)와 주택가는 한글보다 중국어 간체자 간판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기자 생활을 하며 취재차 전국을 많이 돌아다녀 본 기자에게도 이런 광경은 낯선 풍경이었다.
제법 규모가 커보이는 한 인력사무소에 들어가 보았다. 이곳에서 20년째 인력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소장은 “우리 사무소가 있는 라인(길)에만 20개 정도의 인력사무소가 있고, 원곡동 전체로 보면 60개가 넘는 인력사무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인력사무소에서 하루에 몇 명 정도를 건설 현장으로 보내는지요.
“50~60명 정도 됩니다. 지금은 일이 없는 계절이라 사람들이 적게 나오는 편이죠. 3월이 되면 건설 현장이 활기를 띠는데 그때 가면 더 많은 사람이 이곳 인력시장을 찾아옵니다.”
—이곳에서 현장으로 파견하는 건설 노동자들 중에 한국인과 외국인의 비율은 어느 정도 되나요.
“중국인이 80%이고, 한국인이 20% 정도 됩니다. 사실 한국인이라고 주민증은 내밀지만 이들 가운데도 귀화한 조선족이 많아 실제로 보면 외국인과 내국인의 비율이 9 대 1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은 이 일대 건설 일용직 구직자 대부분이 조선족 동포 혹은 외국인이라는 건데, 왜 그렇다고 봅니까.
“내 생각에는 한국인들은 힘들지 않은 편한 일만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국인들이 일을 교포들보다 야무지게 잘하지만, 어디 건설 일용직이 편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한국인들이 일하기에는 임금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요.
“공사 현장에서 내려온 책정된 노임 단가가 있는데 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똑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현재 책정된 노임이 너무 낮다며 그 돈을 받고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현장에서 한국인과 교포를 차별해서 임금을 책정하지는 않아요.”
—현재 건설 노동자들의 하루 일당은 얼마인가요.
“현장과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이곳의 경우 소개비(10%)를 제외하고 잡부(비기능 단순인력)가 가져가는 일당이 8만원, 숙련공인 목수는 16만원 정도 됩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이 단가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요즘같이 일이 없는 비성수기에는 잡부 일당이 7만5000원으로 내려갈 때도 많습니다.”
代가 끊긴 건설 현장의 한국인 기능인력
다음날인 1월 30일 토요일 새벽 4시 반. 기자는 경기도에서 가장 큰 성남 수정구 태평고개에 있는 인력시장을 찾았다. 이곳은 겨울철에는 200여 명, 성수기 때는 300~400명 가까이 사람들이 일거리를 찾기 위해 몰려드는 곳이다. 또한 노동부장관, 경기도지사, 성남시장, 국회의원들이 취임 시 민심을 살피기 위해 단골로 들르는 코스이기도 하다.
이곳의 특징은 경기도와 성남시가 공동으로 마련한 ‘노동자 쉼터’가 있어 일거리를 구하러 나온 건설 노동자들이 혹독한 겨울철 날씨에 찬바람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쉼터는 새벽 인력시장에 나온 노동자들의 대기장소로 활용되며, 새벽 이후에는 노동상담과 무료 직업소개를 하는 복지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 인력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오직 한국인 철근 기능공들만 모이는 장소라는 점이다. 다른 인력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국 동포나 외국인을 이곳에서는 한 명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또한 이들은 건설노동조합(민노총 산하)을 결성해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활동도 병행하고 있었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노동자 쉼터는 순식간에 불법체류자 성토장으로 변했다. 이들에게 건설 현장의 불법체류자 문제는 생존권의 문제임을 알 수 있었다. 철근 기능공 김정현(61) 팀장은 “현재 이곳 인력시장에 나오는 철근공의 평균 나이가 60세 정도인데 앞으로 4~5년 정도 지나면 한국인 철근 기능공의 대(代)가 끊기게 된다”며 걱정했다.
“비단 우리 철근 분야뿐 아니라, 목수, 콘크리트 등 모든 건설 부문에서 더 이상 내국인 숙련공들이 배출되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일을 배우러 오지 않으니 우리가 한국인 건설 기능공의 마지막 세대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철근, 목수, 형틀 기능공까지, 큰 공사 현장은 실력 안 되는 외국인들에게 다 돌아가고, 우리같이 수십 년간 현장에서 일을 배운 내국인 기능공들은 상가(商家)나 빌라처럼 규모가 작은 현장밖에 나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니면서 찌꺼기 같은 일이나 하는 신세가 된 겁니다.”
김 팀장은 “현재 법으로 외국인 불법체류자를 쓰지 못하도록 제약을 두고 있지만, 이를 지키는 현장이 거의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내국인과 외국인 기능공의 일당 차이가 1만원밖에 나지 않습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내국인 건설 노동자들의 임금은 지난 10년간 사실상 정체된 상태입니다. 한국인들은 현재의 임금으로는 생계가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현장을 자꾸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걱정되는 것은 숙련되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와 불법체류자들이 건설 현장의 주축이 되다 보니 건축물의 품질에 심각한 하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실시공 현장이 어떻게 감리를 통과하는지 저는 이해가 잘 안 가네요.”
“대기업 공사 현장일수록 불법체류자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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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림역 옆 골목과 안산역 길 건너 원곡동 어느 뒷골목 모습. 한국어 간판보다 중국어 간판이 더 많이 보인다. |
김 팀장은 “비숙련 불법체류 외국인들을 대규모로 고용하고 있는 우리나라 건설사들이 겉으로는 얼마간의 이윤을 남길지 몰라도 속으로는 다 썩어들어가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같은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한 구역은 외국인 기능공들이, 다른 구역은 순수 한국인들로 구성된 기능공들이 투입되어 아파트를 시공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회사의 각 구역을 맡은 하청업체가 달라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외국인들이 작업한 곳에서 콘크리트 타설 도중 부실하게 결속된 철근이 내려앉으면서 재시공을 했습니다. 부실로 인한 재시공이 잦기 때문에 공사 후 돈이 남는 게 아니라 도리어 까지는(적자 혹은 마이너스 상태) 현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실제 현장에서 느끼는 불법체류자 문제는 어느 정도인가요.
“오늘도 여기 사무실에 일이 없어 못 나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잖습니까? 실제 현장에 가보면 건설 노동자들의 70~80%가 외국인입니다. 예전에는 조선족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목수는 90% 이상이 조선족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건설 현장에 가보면 내국인은 일이 없어 놀고 있는데, 외국인들은 밤샘작업까지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더구나 대기업들이 하는 아파트 건설 현장일수록 나이제한이 까다로워 나이 많은 내국인은 쓰지 않고, 젊은 외국인들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목수의 경우, 조선족 비율이 왜 그렇게 높은지요.
“요즘은 건축기술이 발달해서 목수 일이 예전처럼 그렇게 복잡한 공정이 잘 없습니다. 특히 아파트 현장은 거푸집을 조립식으로 올리니까 거푸집을 고정하는 망치질만 할 줄 알면 됩니다. 그러니 경력도 얼마 안 되고 실력도 모자라는 외국인들이 너도나도 목수라며 망치를 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가가 조금 더 높은 기존의 한국인 목수들이 현장에서 모두 밀려난 것입니다. 외국인 목수들은 일당 17만원 정도를 받는데, 이 돈은 우리나라 목수들에게는 생계가 빠듯한 수준이지만, 외국인에게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금액입니다. 외국인들은 더 낮은 임금에서도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내국인 인건비가 오를 수가 없는 구조가 정착된 겁니다.”
대화를 듣고 있던 이 모(53)씨가 나서서 건설 현장에 만연한 구조적인 비리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만연한 상납 구조… 한국인들 비집고 들어갈 틈 없어”
“요즘 외국인 출신의 팀장이 많은데 그들은 서너 개의 현장팀을 데리고 있습니다. 한 팀당 적게는 50~60명에서 많게는 200~300명 정도 됩니다. 인부 1인당 1만원을 거둬 팀장에게 상납하는데 그 돈만 해도 팀장급이면 400만~600만원의 월급을 챙길 수가 있습니다. 그 아래 소팀장도 또 그렇게 챙깁니다. 당연히 그 위 하청업체 간부들에게도 돈이 올라갑니다. 이렇게 상납 구조가 만연해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는 “심지어 이들 외국인 팀장들은 건설사에는 한국인 기능공의 임금을 청구해서 받아낸 후 자신들이 부리는 불법체류자들에게는 그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상납 구조 속에서 자재 빼돌리기와 온갖 부실시공이 만연하다는 겁니다. 외국인들은 한국에 돈 벌러 온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 기능공들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겠다는 마인드 자체가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품질보증이 되겠습니까.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입니다.”
노동자 쉼터에서 만난 임차진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경기도지부장은 “지난 수년 동안 공사를 책임진 원청사와 하청업체 담당자를 찾아다니며 내국인을 우선 고용해 달라고 설득과 간청을 반복해 왔지만 나아지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임 지부장의 설명이다.
“우리 조합원들이 불법체류자를 대규모로 고용한 현장에 가서 시위도 벌여보고, 신고도 해봤지만 별 소용이 없습니다. 건설 분야는 일자리 창출의 가장 핵심 산업인데 이런 식으로 건설사가 불법체류 외국인만 고용하는 상태에서는 경기가 아무리 살아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한국인들이 현장에서 다 쫓겨나고 있는데요.”
건설 현장의 29만명 외국인 노동자 중 83%가 불법체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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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태평고개 인력시장에 마련된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의 쉼터 모습(왼쪽). 이곳 인력시장은 한국인 철근 기능공들만 모인다. 이날 모인 대부분의 사람이 일거리가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사진 오른쪽은 노동자 쉼터를 나와 서성거리다 집으로 돌아가는 건설 노동자들의 모습. |
현재 우리나라 건설 현장에 몇 명의 외국인이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워낙 불법체류자가 많아 정확한 집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건설근로자공조회에서는 2014년 건설 부문 일용직 근로자를 약 84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심규범 연구위원은 건설 근로자의 고용노동 분야를 연구하는 전문가다. 심 연구원은 작년 말 《건설이슈포커스》에 발표한 〈건설현장의 외국인 근로자 고용현황 및 개선과제〉라는 연구자료에서 우리나라 건설 현장의 외국인 근로자 숫자를 약 29만명으로 추정했다.
그는 “이 수치는 2015년 7월에 실시한 건설 현장의 노사에 대한 설문조사와 면담조사, 그리고 건설 기능인력 수급모형 분석을 종합하여 도출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합법적 신분이 약 5만명, 불법이 약 24만명으로 83%에 육박한다. 도출한 29만명은 귀화와 영주귀국 등으로 내국인 신분이 된 중국 조선족 동포의 숫자는 제외한 것으로 이들까지 포함하면 건설 현장의 사실상의 외국인 노동자는 35만명에 이른다.
보고서는 “조사를 시작한 수년 전만 해도 현장에 한국인과 외국인이 8:2 정도 비율이었지만, 요즘에는 5:5 비율도 맞추지 못할 정도로 내국인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한 “50대가 막내일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하여 현장 기능인력의 대가 끊어질 우려가 있으며, 70대 근로자도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안전사고의 위험도 높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지속적인 노무비 하락으로 공사 실행의 단가를 외국인 근로자를 기준으로 맞추고 있다”며 “이는 설사 관련 교육기관에서 내국인 숙련인력을 육성해서 배출한다고 해도 이들에게 적정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할 능력이 부족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현재의 노무비 저하의 구조를 깨지 못한다면 내국인 숙련인력을 더 이상 건설 현장에서 볼 수 없는 답답한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심규범 연구원과 일문일답.
—건설 현장에서 이제 한국인들을 열에 한 명도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 말을 일괄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건설 현장이나 공정, 직종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들의 투입 비율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건설 현장에는 아직도 반드시 한국인 숙련공의 손을 거쳐야만 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물론 100% 외국인으로 돌아가는 건설 현장도 부지기수고요. 어쨌거나 제가 실제 현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외국 인력이 전년(2014년)보다 늘었다’는 응답이 73%로 ‘전년보다 줄었다’(5%)는 대답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를 기피하는 근본 이유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숙련 기능공의 경우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1만~2만원 정도의 임금 차이가 나는데 이것이 큰돈이 아닌 것 같지만, 공사 규모나 기간을 감안할 때 건설사로서는 엄청나게 큰 금액입니다. 따라서 건설회사는 돈을 그만큼 더 절약하여 이윤을 남기기 위해 외국인을 투입하는 것입니다.”
최저가 낙찰제도의 최종 종착지는 부실시공과 노동자 임금 깎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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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동암역 북부광장의 한 인력사무소에서 사람들이 TV를 보며 일이 배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 소개소는 특정한 기술이 없는 단순 일용직 구직자들이 주로 찾아온다. |
심 연구원은 “하지만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기능인력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는 더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나라 건설 수주의 최저가 낙찰제도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건설사들이 수주를 위해 낮은 금액을 제시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애당초 적정 공사비가 확보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를 또다시 하도급을 주면서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최종 공사를 맡은 하청업체들은 노무비를 후려치거나 공기를 단축하거나 투입 인원을 줄이는 편법을 통해 적자를 메우는 방법을 쓰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건드리기 쉬운 건설 노동자들의 임금이 깎이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현행 제도와 하도급 구조 속에서는 제살깎기식의 수주 경쟁을 막을 안전장치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부실시공이 많아지고,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임금체납이나 산재발생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법체류자 문제를 막고 내국인 건설 노동자들의 임금이 삭감되는 것을 막으려면 원청업체에서 제대로 된 공사비를 받고, 이것이 근로자들을 고용하는 데까지 쭉 흘러내리는 소위 ‘낙수 효과’가 발생하도록 제도를 하루빨리 정비해야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들 때문에 내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이 깎이는 일은 지금 당장에라도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미국에서도 1931년에 이런 문제를 겪었는데, 그 후 법적 제도를 보완해서 불법체류자나 저임금 노동자들에 의해 건설 노동자들의 임금이 깎이는 문제를 막은 사례가 있습니다. 그 결과 현재 미국의 건설 노동자들은 자신의 임금 수준에 만족하며 중산층 이상의 삶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선진국의 이런 제도를 벤치마킹하여 공사 현장에서 적정 임금이 제때 지급되도록 법으로 강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저가 수주 경쟁의 악순환도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고 봅니다.”
—한국인들은 힘든 일을 꺼리기 때문에 외국인에게 건설 현장의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그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한국인들이 힘든 일을 기피해서 외국인들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제값을 안 주고 일을 시키려고 하니까 내국인들이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외국인들이 전혀 없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지금 기능공들 임금이 얼마나 올랐겠어요. 건설 기능공들은 자존심이 매우 강한 사람들입니다. 수십 년 현장에서 기술을 익힌 그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건설 현장을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정당한 임금을 주면 젊은 사람들이 왜 일을 하지 않겠습니까.”
심 연구원은 “무엇보다 큰 문제는 저임금 구조 속에서 젊은 내국인들이 건설 현장에 더 이상 유입이 되지 않으니까 예비 숙련공들이 탄생하지 않고, 결국 건설산업 전반이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을 맞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산업은 국가의 기간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은 국가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최저가로 하청에 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결국은 끊임없이 싼 인력을 찾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비숙련공들이 장악한 건설 현장은 반드시 부실시공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건설 노동자들 대부분이 불법체류 신분이다 보니 임금체납이나 착취 같은 문제도 발생하고, 산재(産災)가 발생해도 제대로 보상을 못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늘도 인력시장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
심 연구원은 “불법체류자 문제를 이대로 두면 건설사와 건설 노동자가 다 같이 죽는 공멸의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시장경제와 개방경제하에서 노동력 이동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그냥 방치하게 되면 저임금 노동력이 아무런 제약 없이 몰려들게 됩니다. 우리는 외국인과 불법체류자의 무분별한 유입을 관리하지 못하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시장실패 상황입니다. 시장이 실패했다고 진단되면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 이를 해결해야 합니다. 국가가 보호해야 할 사회적 약자들을 지금처럼 불법체류자와 저임금 경쟁으로 내몰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1월 31일 일요일 새벽, 인력시장 취재의 마지막 현장으로 경기도 인천 동암역 북부광장 부근의 인력시장소개소를 찾아가 보았다. 이곳에서 인력시장 취재 후 처음으로 20대 청년을 보았다. 작은 키에 대학생처럼 어려보이는 조모(27)씨는 코팅 관련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인력시장에 나왔다고 했다. 그는 “지난 3일간 연달아 나왔는데 일을 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며 “오늘은 일을 꼭 하기 위해 좀 더 일찍 나왔다”고 말했다.
40대 중반의 윤 모씨는 “굴착기 부품 제조 회사에 다니는데 경기가 좋지 않아 월급으로는 생계가 힘들어 매주 막노동으로 생활비를 보태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생활한 지가 3~4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잔업에 특근을 해도 월급이 200만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요즘 건설 현장에 가보면 목수와 철근 같은 기능공들은 대부분이 조선족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당을 17만원 정도 받던데 너무 부럽습니다. 제가 좀 더 젊었으면 회사에 다니지 않고, 목수나 철근 기능공이 되었을 겁니다.”
힘든 가운데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오늘도 새벽 인력시장을 찾고 있다. 이들에게 열심히 일을 하면 내일이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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