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월드컵을 치르면서 한국인들은 일본과 가까워졌지만 중국과는 멀어졌다. 국민정서가 그렇다. 한국의 4강 신화 달성을 깎아내린 중국인들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 때문이다. 왜 중국은 한국축구의 승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나. 그 이면에 담긴 사실들을 추적했다.
6월 한달 동안 한반도와 일본 열도, 그리고 세계를 달구었던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그 대장정을 끝냈다. 이번 월드컵은 한국인들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얻고, 또 느끼게 했다. 단군 이래 최대의 사건이라거나 해방 이후 국민들이 가장 열광했던 순간들이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월드컵 4강 신화를 통해 맛본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조직적 거리응원을 통해 분출된 공동체 의식과 애국심은 월드컵 시작 전까지는 꿈조차 못꿀 일이었다.
그런 포만감에 젖은 우리에게 딱 한가지 아쉬움이 남아 있다. 한국축구가 승승장구하던 시점에 중국에서 벌어진 ‘한국 때리기’ 소동이다. 한국축구와 한국인들을 노골적으로 폄하(貶遐)하고 욕보이려 했던 중국 언론과 중국인들의 태도에 우리는 적잖은 상처를 받았다.
‘소인배들의 의기양양’(小人得志)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승리’(勝之不武) ‘죽어도 승복하지 않는 한국인들의 악착같은 근성’ ‘한국팀의 승리는 벼락부자 같은 출세’ ‘한국팀 선수들은 죽도록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미친개’ 따위의….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 공부하는 베이징(北京)대의 공식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한국인들의 대표적인 응원 구호가 됐던 ‘대한민국’을 ‘대한견국’(大韓犬國)으로 표기하는 악의적인 일까지 벌어졌다.
월드컵 직전까지만 해도 이웃 국가 중국인들의 ‘인해(人海)응원’을 기대했고, 경기장에서는 ‘함께 가자. 16강으로…’를 외치며 선린(善隣)을 기대했던 한국인들로서는 그들의 돌출행동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참담함을 느껴야 했다.
들불처럼 번졌던 중국인들에 대한 한국 때리기에 국내 여론과 언론들도 한동안 맞불을 놓았다. 주중 한국대사관 게시판과 국내 인터넷 포털, 언론사 사이트들은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한 성토장으로 변했다. 일부에서는 조선족 교포들에게까지 원망의 화살을 겨누었다. 교포들에게 ‘당신들은 누구 편이냐’는 질타가 쏟아진 것이다.그러나 한국의 월드컵 4강전(한국-독일전)을 기화로 이런 분위기는 완연히 수그러들었다. 7월 들어 중국쪽 언론에서는 ‘한국축구를 본받자’는 목소리가 주류를 이루었다. 한국인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남긴 소동은 진정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중국인들은 왜 한국축구에 집중포화를 쏘아댔을까. 중국인들의 속 좁은 단순한 질투심인가, 아니면 중국인 특유의 오만함 때문인가. 무엇이 중국의 언론과 축구팬들로 하여금 뜨거운 여름에 ‘열감기’를 앓게 했나? 대부분의 세계 언론이 ‘한국축구와 한국인들을 본받자’고 했을 때 그들은 왜 ‘한국축구가 월드컵을 망쳤다’고 외쳤을까. 중국인들의 시비(是非)의 얼음장 아래로 흐르는 의식을 더듬어보자.
'중국고대체육문물도록'에 수록된 축구 관련 민화.
1.축구의 진짜 종주국은 중국
중국인들의 축구 사랑은 유별나다는 인상을 받는다. 오히려 축구에 대한 집착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1994년 중국 프로리그(甲리그)가 출범할 당시 중국에 유학했던 이들은 대부분이 “현지의 ‘축구붐’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전한다. 베이징대 유학 1세대로 꼽히는 김충식(이얼싼중국문화원 대표)씨의 전언.
“당시 중국의 CCTV는 이미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그나 이탈리아의 세리에 A등 유럽의 빅리그를 생중계했다. 유럽축구를 이야기하는 것을 엘리트의 척도처럼 여길 정도였다. 유럽컵 같은 클럽 대항전 때도 중국인들은 현지 유럽사람들 못지 않게 열광했다. 프로리그 출범에서 한국보다 11년이나 뒤진 중국에 이같은 축구열풍이 불어닥친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흔히 축구의 종주국은 잉글랜드라고 말한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현대축구의 종주국일 뿐 진정한 축구의 원조(元祖)는 아니다. 우리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난해 ‘축구의 기원은 중국’이라는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지난해 3월 중국 신문들은 FIFA 집행위원회가 “축구의 기원은 중국이며 그후 페르시아·이집트·이탈리아를 거쳐 영국으로 전파되면서 발전한 것”이라고 발표한 사실을 보도했다. 중국의 ‘천부신문’은 당시 정몽준 FIFA 부회장이 “축구의 기원은 중국이며, 이로써 중국은 2004년 국제축구 성립 100주년 경축 행사를 유치할 자격을 얻게 됐다”고 말한 것을 보도하고 있다(2001년 3월20일자).
중국인들의 심리 근저에는 축구의 종가(宗家)로서의 자부심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문화혁명 시기 침체되었던 중국의 축구 열기는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 개방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서서히 늘어났다.
1989~93년 개혁개방 초기 중국은 사회적인 안전판이 크게 흔들렸던 시기로 기억된다. 1993년 14차 3중전회(中全會:우리의 국회 상임위)에서 중국 정부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체제로의 이행을 위해 국유기업 문제를 과감히 해결하려 했다. 이를 위해 현대적 기업제도 확립을 꾀한 것이다.
그러나 헌법이 바뀌면서 역작용들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베이징대의 한 철학교수가 ‘중국 사회주의는 죽었는가’라는 유서를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벌여져 지식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베이징대 교수가 강단을 떠나 야채장사에 나섰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중국내 지역갈등을 다룬 ‘동서 분열론, 남북 분열론’ 같은 서적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중국의 프로축구는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안고 출범했다(1994년 4월 甲A리그, 甲B리그, 乙리그 등 3부리그로 출발했다). 매년 구단마다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프로축구를 이끌어 가는 데는 고도의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국내의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이 당시 TV 방송 등 매스컴을 통해 외국 문물에 대해 적극적인 개방을 하고 프로축구리그를 시작한 것은 당시 중국 내에 심각하게 대두됐던 빈부격차와 민심이완을 다스리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리그 창단후 인민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미 CCTV를 통해 유럽의 선진 축구에 매료돼 있던 중국인들로서는 지역연고제를 바탕으로 한 프로축구에 환호성을 올렸다.
1994년 당시 베이징에 유학하면서 중국의 축구붐을 경험했던 오규열(군사편찬위 선임연구원)씨는 “당시 축구열기가 1982년도에 출범해 인기를 누렸던 한국 프로야구 붐과 비교해 봐도 상대가 안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축구가 중국인들에게 과거 중국 사회주의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떠올랐다고 할 만큼 축구광풍이 중국대륙을 몰아쳤다.
프로축구 선수들의 연봉도 중국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의 몇백배에 달해 청소년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됐다. 프로축구리그의 정치적 효용성에 대한 상층부의 공감대가 없었다면 엄청난 몸값의 외국인 감독과 용병들을 데려온다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 중국 프로선수와 감독들의 몸값은 오히려 우리 프로리그의 수준을 능가할 정도다(중국 갑A리그 칭다오팀을 이끌고 있는 한국인 이장수 감독은 5억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프로리그까지 등록된 선수도 수백만명에 이르지만 축구장을 찾는 관중들의 규모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중국축구협회(CFA) 집계에 따르면 경기당 중국 갑A리그 평균 관중수는 무려 2만8,200명. 극동 3개국 중 가장 많다(지난해 K리그 평균 관중수는 1만2,500명).
열성 축구팬들인 ‘치우미’(球迷)들이 구단마다 생겨났고, 남성 치우미들 가운데는 가족과 직장 등 아예 생계를 뒷전에 둔 채 축구장만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생겨나 사회문제로 부각될 정도다. 조직화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열광적인 치우미들이 5,000만~1억명은 될 것으로 중국 언론들은 보고 있다.
상하이 신화(申花)팀과 베이징 궈안(國安)팀 간의 경기는 마치 한·일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하다. 두 팀 간의 경기가 열릴 때면 양팀 치우미들을 떼어놓기 위해 경기장에 담을 쌓아야 할 정도다.
어느 팀이나 원정경기때 10시간이 넘는 장거리에도 불구하고 기차를 이용해 원정응원을 떠나는 이들도 경기당 1,500명을 넘는다고 한다. 프로축구 경기장에서는 암표까지 등장했다. 극성팬들이 많기로 소문난 선양(沈陽) 경기장에서는 암표 가격이 중국 샐러리맨 평균 월급의 6배에 달하는 6,000위안에 팔린다고 한다.
중국인들의 축구에 대한 정열은 때로 관중들의 승패를 둘러싼 폭력사태로까지 번지기도 한다. 경기장에서 폭죽이 터지고 경기 결과에 따라 물병과 돌세례가 난무하거나 몸싸움과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동안 중국에서는 경기장 폭력사태로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을 정도다.
2.組예선 탈락에 대한 허탈감·치욕감
지난해에는 그런 중국인들을 흥분시킨 세가지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15년 전에 신청서를 냈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의 숙원이 이루어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베이징이 2008년 하계 올림픽대회를 유치한 것이었다. 두가지 모두 중국인들을 흡족하게 한 일이었지만 전 인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중국축구가 1958년 스웨덴월드컵 이후 44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이었다.
대표팀을 이끌어온 유고 출신 밀루티노비치 감독은 단숨에 ‘인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밀루티노비치 감독은 월드컵 예선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평가전에서 내리 4연패를 기록해 능력을 의심받기도 했지만 “예선에서 탈락하면 만리장성에서 뛰어내리겠다”는 호언장담 끝에 결국 중국팀의 월드컵 진출 한을 풀어주었다.
큰 대접을 받지 못하면서도, 여자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내는 등 세계 최정상급을 달리던 여자축구에 눌려있던 중국 남자축구가 기지개를 켜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경쟁국인 한국·일본의 기세에 밀려 번번이 월드컵 본선 진출이 좌절됐던 중국팀으로서는 본선 무대를 밟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 한·일 월드컵 조 예선에서 중국팀이 낸 성적은 중국인들 스스로 결코 받아들이기 어려운 처참한 것이었다. 중국대표팀 코치의 설명대로 당초 세워둔 목표인 ‘1골, 1승점, 1승’은커녕 3전 3패의 치욕적인 전적을 안고 귀국 짐을 꾸려야 했다(그것도 9대0이라는 스코어로 말이다).
이러한 중국팀의 저조한 성적에 대한 분노가 한국팀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둔갑했다는 지적이 많다. 그동안 한국축구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던 쓰라림이 투영되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월드컵 개막 한달여를 앞두고 가진 평가전에서 0대 0 무승부를 거둔 양팀이 실전에서는 하늘과 땅만큼 갈라져 있는 모습에 중국인들은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는 설명이다.
지역 예선전에서 ‘위안멍’(圓夢:꿈을 이룬다)을 그토록 외쳐왔던 중국은 ‘약소국’ 한국이 월드컵에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고 더 큰 절망감에 사로 잡혔을 것이다. 결국 ‘한국 때리기’의 광풍은 중국축구의 공한증(恐韓症)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는 얘기다.
결국 중국 언론들은 ‘프랑스도 한골도 못넣고 탈락했다’ ‘그래도 우리는 사우디보다 나은 처지다. 사우디는 8대 0으로 지지 않았나’ ‘브라질·터키가 4강에 오르지 않았나. 실제로 죽음의 조는 중국이 속한 조였다’는 식으로 아픈 마음을 달래야 했다.
3.强者의 논리에 지배받는 중국인들
중국인의 시기심과 질투 속에는 그들 특유의 우월주의도 자리잡고 있다. 중국인의 피 속에는 동양에서만큼은 우리가 최고라는 ‘중화(中華)주의’와 주변국을 ‘오랑캐’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한족(漢族)쇼비니즘’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인들의 우월주의는 유럽축구에 대한 맹신적 추종주의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중국의 역사 속에서도 이러한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한 네티즌의 분석.
‘중국은 역사 이래 이이제이(以夷制夷)와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두가지 전략으로 변방을 침략하면서 영토를 넓혀 왔다. 그 뒤로는 문화(文化:한자를 배워 쓰게 함)와 왕화(王化:제도를 전수하고 중국 천자의 제후국으로 봉함)를 통해 변방 국가들을 간접적으로 통치해 왔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의 국민성을 말하면서 ‘특유의 근성과 승부욕’을 곧잘 내세운다. 축구는 흔히 한 나라의 국민성이나 민족성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는 운동으로 꼽힌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한국축구와 피압박 민족이었던 아일랜드 축구는 그 스타일에서 곧잘 비교 상대가 됐다.
그러나 중국축구는 몸싸움을 꺼리고 몸을 사리는 축구를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축구에서 근성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래서일까. 중국인들은 한국축구의 스피드와 체력에 대해 칭찬하기보다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거나 유럽 선수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한국축구에 짜증스럽다는 반응들을 나타냈다.
특히 CCTV는 중계방송을 통해 “한국축구는 소동작(小動作)과 파울이 많다”고 평가절하한 반면 일본축구에 대해서는 “깨끗한 기술축구”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세계의 중심이라고 열심히 외치는 13억명의 중국인들에게, 엘리트 계층과 노동자 계층의 기호를 각각 대변하는 바둑과 축구에서 한국은 지금껏 공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공한증’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중국인들은 한국축구뿐만 아니라 한국바둑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평가보다 깎아내리는 데 바빴다.
중국 바둑신문인 ‘웨이치바오’(圍碁報)는 ‘한국은 상무(尙武)의 정신으로 세계 바둑계를 제패하고는 있지만 진정한 왕자(王者)는 아니다. 그들은 바둑을 이기는 데만 열중한다. 우리는 바둑의 승부와 문화적인 면을 조화하는 중국의 길을 가야 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최근 급속도로 발전한 중국경제에 대한 자신감도 한몫 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1997, 98년 이후 IMF 구제금융으로 흔들리는 한국 경제나 오랜 경제침체를 보여온 일본과 달리 중국은 1984년 이래 7∼8%의 고도성장을 이어왔다. 이에 따라 그들의 의식 속에는 한국과 일본경제도 별 것 아니라는 의식이 싹텄다. ‘포말(泡沫)경제’(거품경제)라는 비아냥이 들리기도 했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경제에서의 승리감을 축구에서도 맛보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축구와 한국축구, 중국축구와 일본축구 사이의 커다란 격차를 확인하는 순간 그들의 상실감은 어느 때보다 컸던 것이다.
4.유럽축구에 길들여진 ‘종교적’ 축구관
중국 축구팬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자국 팀의 예선탈락에도 분노했지만 프랑스와 아르헨티나 등 전통축구 강국들이 연거푸 예선탈락한 데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중국 언론 가운데는 ‘아르헨티나가 졌을 때 나는 울었고, 포르투갈이 떨어졌을 때 나는 분노했으며, 이탈리아팀이 밀렸을 때 나는 냉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등장했을 정도다.
이에 대한 중국 현지 한 조선족의 설명.
“(이번 월드컵에서)한족들은 특히 강팀이 탈락한 데 대해 민감했다. 보통 한국과 일본팀을 다 반대한다. 심지어 강팀이 탈락한 것을 두고 주최국을 원망하기도 한다. 기후니 시간이니 분조(조)추첨을 나무랄 정도로 그들은 상상력이 풍부했다.”
월드컵에서 한국축구를 일방적으로 깎아내렸던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오랫동안 유럽축구에 매료되어온 그들의 축구 감상법도 한몫 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 축구팬들이 그만큼 유럽축구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했듯 국영 CCTV가 오래 전부터 유럽의 빅리그를 생중계해 왔고 중국의 웬만한 축구팬들은 그곳 클럽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신상명세와 플레이 스타일을 손금 보듯 훤히 꿰뚫고 있을 정도다. 1990년대 초반부터 CCTV-5채널은 특히 스페인리그와 이탈리아리그를 생중계했고, 덕분에 유럽에서 뛰는 축구선수들은 중국 축구팬들의 우상이다.
중국인들에게는 유럽의 클럽간 대항전인 유럽컵도 커다란 관심사다. 유럽축구는 그들이 꿈꾸는 축구의 이상향이고, 그곳 프로팀들은 축구에 관한 한 그들의 준거집단처럼 여겨져 왔다.
한국팀이 조별 예선과 16강전, 8강전에서 연파한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팀은 특히 중국인들에게 친숙한 팀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CCTV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프로축구를 시청해온 중국인들 눈에는 이들 선수들이 한국팀보다 훨씬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우상들을 짓밟아버린 한국축구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 전문가인 김충식씨는 더욱 흥미로운 분석을 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의 축구는 1960∼70년대 한국에서 기독교가 퍼져 나가듯 엄청난 속도로 확산됐다. 축구는 중국에서 종교 이상의 존재가 돼버렸다. 이들이 그동안 TV를 통해 접했던 스페인·이탈리아 축구는 그들의 우상이었고 성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성지를 한국이 무너뜨린 데 대한 중국인들의 낙담과 분노의 감정을 표출한 것이다.”
중국 축구팬들의 유럽축구에 대한 지나친 존경심은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중국의 서구 선호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에 대해 중국교포들은 “중국 사람들은 응원문화까지 유럽의 훌리건을 모방하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런 중국인들은 평소 한국과 한국인들을 두고 “한국의 거리는 영문 간판으로 넘치고 한국인들은 말끝마다 외래어를 달고 살 정도로 사대 사상에 젖어있다”고 비아냥거린다.
한국에 패한 포르투갈이나 이탈리아·스페인팀이 심판의 판정 문제와 관련해 ‘음모론’을 제기하자 중국의 언론은 오히려 당사국들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이를 전파했다. 중국 언론은 FIFA와 월드컵의 유일한 감시자처럼 행동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서구 편향적 보도에 대해 홍콩 언론과 중국 일부에서 혹독한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홍콩의 경제일간 ‘신바오’(信報)는 ‘오호 애재라. 서방 축구팀을 위해 훌쩍이는 중국인’이라는 칼럼에서 ‘신문·방송·네티즌 할 것 없이 대부분 서방국가의 입장을 대변하며 현대적 의미의 ‘서양노예’ 역할을 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이 칼럼의 필자인 캉춘뉘(康春女)는 ‘16강전에서 무승부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포르투갈에 왜 한 골을 넣어주지 않았느냐며 한국팀을 꾸짖은 CCTV 해설원 H씨의 수준 낮은 논평에 분노가 치밀었다. H씨에게 감히 질문한다. 한국 선수들이 원칙을 지키고 골을 양보하지 않았다고 해서 한국의 소인배들이 뜻을 이뤘다는 식으로 욕을 퍼붓는 당신 모습이 더욱 추악하지 않은가. 당신은 먼저 사람 되는 도리를 배운 뒤에 축구 해설을 하는 것이 순서’라고 썼다.
중국의 주요 석간지 ‘베이징완바오’(北京晩報)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언론들이 자국팀의 패배와 관련해 ‘음모론’를 제기한 데 대해 ‘유럽축구의 오만’이라고 비판했다. 신문은 또 ‘중국축구도 아시아의 제3세계 수준이면서 마치 자신은 제3세계에 속하지 않은 듯 행동하고 있다’고 자국 언론에 자성을 촉구했다.
5.중국 CCTV의 해설원들이 비난 선동
중국 국영 CCTV-5채널은 한국 때리기에 앞장섰다. CCTV-5채널은 중국에서 월드컵 기간중 전 경기를 생중계한 유일한 채널이다. CCTV에서 한국축구를 깎아내렸던 이들은 축구해설원 황지안샹(黃健翔)과 류지안훙(劉建宏)과 여성 진행자인 첸빙(沈氷)이었다.
이들의 한국축구에 대한 일방적인 비방 발언들은 한국팀의 조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포르투갈전에서 시작됐다. 특히 황지안샹은 중국 갑A리그 경기 해설을 도맡아 할 정도로 중국 축구팬들에게는 잘 알려진 인물.
그는 축구계의 유명 인사로서 여러 신문들에 축구칼럼을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포르투갈전에서 황지안샹은 “한국이 한 골을 져주어야 하는데…”라며 한국팀의 승리에 대해 악담을 퍼부었다. 이들은 또 “월드컵은 전 세계인의 축제이지 저~ 작은 반도국가의 축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아~ 슬프다. 반도의 축제로 전락한 세계배…” 운운하면서 한국축구의 승리에 딴지를 걸었다.
CCTV의 악의적 중계방송은 한국이 4강전을 치를 때까지 계속됐다. 그들은 “한국이 심판을 구워삶아 4강에 오르는 바람에 월드컵과 아시아의 이미지를 흐렸다”고 말했고, “한국이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승리한 것은 세계 축구사의 치욕”이라는 과격한 언사를 계속 동원했다. 그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가 “한국은 1986년 아시안게임, 88년 올림픽에서도 심판을 매수해 성적을 조작한 경력이 있다”며 한국축구팀에 대한 ‘심판매수’의혹을 계속 부풀렸다.
이러한 시각은 중국 축구팬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됐다. 중국의 각종 인터넷 포털에도 한국축구의 승리를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신문을 비롯한 인쇄매체들도 덩달아 한국축구 죽이기에 따라 나섰다.
중국 현지에서 이를 지켜본 한 조선족 네티즌은 “앵무새 같이 불만이 많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보도를 카피하는 낮은 수준의 평론으로 자신의 감정과 그들 특유의 정서를 담은 보도에 취해 있는 한족들을 용서할 수는 있지만 류지안훙 같은 ×은 정말 양해할 수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CCTV 뉴스 진행자도 한국의 4강 진출후 “한국팀의 경기력이 아시아 최고 수준임은 확실하지만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심판 판정에 문제가 있다”고 혹평했다. 그들은 “이번 세계배(世界杯:월드컵)는 세계비(世界非)가 돼버렸다”(杯와 非는 중국어 발음이 ‘베이’로 같다)며 한국 비판에 가세했다.
중국에서 TV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중국에는 방송국이 무려 1,100여개에 달한다고는 하지만, 이들 방송국 중 분야별로 10여개의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국영 CCTV의 위력은 단연 최고일 수밖에 없다. 문맹률이 80%가 넘는 중국에서 TV방송은 주민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이용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외래문화에 대한 개방은 한국보다 오히려 빨랐다. 혁명극에 길들여졌던 중국인들은 TV 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서방 문화에 도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두고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TV의 위력은 과거 진시황제가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한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할 정도다.
1990년대 초반 중국은 미 프로농구(NBA) 농구나 유럽의 빅리그 축구를 고정적으로 생중계할 뿐만 아니라 일본 <font color=red>드라마</font>나 만화들도 방영했기 때문이다. CCTV-5채널 프로그램 편성에서도 축구 경기는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이런 CCTV가 한국 때리기에 앞장서자 젊은층들이 즐겨 읽는 ‘중궈칭녠바오’(中國靑年報)나 ‘베이징칭녠바오’(北京靑年報) 등도 그 뒤를 따랐다. ‘베이징오락신문’(北京娛樂新報) 6월23일자에 실린 ‘한국, 어둠의 휘슬이 전세계를 절망에 빠뜨리다’라는 기사는 중국인들의 비뚫어진 시각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스페인팀은 어제 광주에서 며칠전 포르투갈·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절망을 맛봐야 했다.…순진한 스페인 사람들은 음모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이렇게 진행될 줄은, 또한 검은 휘슬이 전세계에 공공연히 나는 이렇게 사악하다라고 선포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사실 한국이 대회 주최국으로서 이렇게 실력행사를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86년 아시안게임 배드민턴대회에서 심판은 눈병이 심하게 걸려 비정상적인 눈으로 한국팀에 유리한 것만 보게 되어 버렸다는 평을 들었다. 결승전에서 중국팀의 자오젠화(趙劍華)는 무수히 훌륭한 볼이 파울로 처리되면서 결국 준우승에 머물러야만 했다.’
한국 때리기의 최선봉에 섰던 CCTV 황지안샹은 자신의 신문 칼럼에서도 그러한 왜곡된 시각을 이어갔다. 황지안샹은 6월23일 ‘티단저우바오’(體壇週報)에 ‘한국인은 축구에서 이기고 중국인은 논쟁에 빠지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축구 우상화는 필요 없다. …중국은 언론자유 국가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고 썼다. 그는 오히려 ‘월드컵의 심판제도를 개혁하고’‘정치적 오염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면서 세계 축구계에 충고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현지에서 월드컵을 취재했던 기자들의 시각은 상당히 달랐다. 이들은 오히려 일부 중국 매체들의 일방적인 보도에 대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중국의 여러 축구신문에 영향력 있는 글을 쓰고 축구 방송프로에서 MC로도 활약중인 축구평론가 둥루(董路:그는 밀루티노비치에 관한 축구소설을 출간하기도 했다)는 월드컵 기간 내내 중국 언론의 이런 ‘음모론’적 시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특히 ‘신랑티유’(新浪體育) 6월14일자에 실린 ‘한국에 소극적 경기를 하라고? 월드컵이 갑A리그라도 되는 줄 아는가?’라는 직접적인 칼럼 제목으로 한국포르투갈전을 중계한 황지안샹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글에서 ‘중국 갑A리그에서 발생하는 승부조작 등 불량한 현상을 보는 습관들이 월드컵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썼다.
6.월드컵을 ‘甲A리그’로 착각했다
흔히 ‘국가대표의 축구 실력은 그 나라의 프로리그 수준이 좌우한다’고 말한다. 축구 저변을 넓히자는 말이다. 이 말에 근거해 한·중·일 3국 프로리그의 우열을 가린다면 최후 승자는 어디가 될까. 물론 프로축구의 역사로 본다면 단연 한국 K리그가 앞선다. 한국의 K리그는 1983년에 출범했고, 10년 후인 93년 일본, 94년 중국이 뒤를 따랐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은 프로리그를 1,2부로 운영하지만 한국은 10개팀 1부리그로 운영되고 있다. 프로축구의 운영이나 선수들의 몸값을 따져본다면 일본 J리그가 앞선다. 그러나 축구팬들의 열정이나 경기당 평균 관중수를 따져보면 한국이나 일본 프로리그는 중국의 갑A리그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그러나 중국 프로축구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은 승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종 부정(不淨) 시비다. 이를 두고 중국 축구계에는 ‘해이오(黑惡·부정) 현상’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중국 프로축구의 승부조작은 정치적인 흥정에 따라 이뤄지기도 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중앙에서는 성(省) 단위에서 지역 민심을 고려해 승부를 조작하고, 축구복표사업 도입과 함께 승부조작 시비는 더욱 격화되고 있다.
지역연고제는 특히 중국의 프로축구를 단기간에 발전시킨 가장 큰 동인이었지만 그 역기능도 만만찮다. 경기장에서의 홈관중과 원정 관중들의 충돌도 비일비재하다. 축구장의 폭력사태로 광둥(廣東)성에서는 2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적도 있다.
중국에서는 흔히 연고지 선수들과 축구팬들이 원정경기에서 폭력을 당하거나 현지 경찰의 가혹한 진압이 알려졌을 때 보복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결국 중국의 축구장을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공간’으로 인식하게 한 원인이다. 이러한 승부조작과 관련해 축구전문 스포츠마케팅사 스카이콤 하연수 사장은 “중국축구의 승부조작은 갑A와 갑B리그를 두고 두개팀씩 강등제를 실시하는 것이 원인이 됐다. 2부리그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구단들이 필사적으로 승부에 매달리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때 중국 갑A리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옌볜(延邊)팀의 최은택(한양대 교수) 전 감독은 지난 2000년 7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프로리그에서 횡행하는 승부조작에 대해 언급했다.
“1997년 시즌 톈진(天津)팀과의 경기에서 져주기 게임을 주문받았다. 톈진팀은 이전 시즌 B리그에서 올라온 팀인데 우리 팀과의 경기에서 지면 다시 B리그로 돌아가야 했다. 결국 2진 선수들을 내보내 3 대 2로 졌는데 신문들에서 난리가 났다.”
그러나 최감독으로서는 자치주 주장(州長)들 사이에 거래가 있었던 터여서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중국 갑리그에서 한때 감독생활을 했던 차범근씨와 충칭(重慶)팀에 이어 칭다오(靑島)팀 감독을 맡고 있는 이장수 감독도 중국 언론에서 한두차례 승부조작 구설수에 올랐을 정도다. 그러나 한국인 감독들이 중국 축구팬들로부터 존경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게임 승부조작에 초연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만큼 중국 갑리그에서 승부조작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올해 승급 과정에서는 승부조작설로 한개 팀이 자격을 상실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중국 갑리그에서는 지속적으로 ‘해이사오(黑哨·뒷거래) 반대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16강전에서 이탈리아 언론들이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음모론’을 제기했을 때 중국 언론과 네티즌 사이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단어가 바로 ‘해이사오’다. 중국 축구평론가 둥루는 이러한 중국언론의 잘못된 반응을 ‘왜곡된 분노와 논쟁은 자기유희’라는 칼럼에서 지적한다.
‘중국 국가대표팀이 귀국한 뒤 월드컵에 대한 중국인들의 발언 중에는 분명히 왜곡된 측면이 있다. 중국인들은 축구장에서 매년 ‘해이사오’와 ‘자치우’(假球·승부조작)가 벌어지다 보니 이 현상에 대해 특별히 민감하게 여긴다. 이런 현상은 중국인들에게 선천적으로 조건반사다.
우리는 한국팀을 깎아내리며 월드컵에서 심판을 매수해서 이겼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심판의 착오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한국팀에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모든 게임을 결정했다고 볼 수는 없다. 논쟁하고 분노하고 소리지르면서 우리는 월드컵의 정의를 위해 사악한 것을 심판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FIFA를 중국축구협회로, 월드컵을 갑A리그로 착각하고 그같은 사실을 대입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는 또 ‘한국축구의 승리와 중국축구의 영광에 큰 연관은 없다. 한국팀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들의 승리를 깎아내리는 것이 중국을 위해 좋은 일도 아니다. 나는 대신 우리가 반드시 생각하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고 본다.…오심 관련 이외 왜 한국팀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배울 생각을 하지 않는가. 기술·전술·체력·정신력 등 이미 한국팀은 여러 방면에서 굉장한 발전을 하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했다.
둥루는 특히 4강전에서 한국이 독일에 패한 뒤에도 비슷한 논조의 글을 썼다. 그는 ‘독일한국전은 무엇을 설명하는가’라는 칼럼에서 ‘봐라. 독일에 유리한 심판에 의해 시합이 이뤄졌는데도 한국은 근소한 골 차이로 훌륭한 게임을 했다. …만약 한국팀이 아니라 우리 중국팀이 사우디를 8:0으로 이긴 독일과 부딪쳤다면 어찌 됐을까. 한국팀의 근소한 골 차이, 이것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즉, 한국의 4강은 주심의 오판 때문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한국팀에 관련된 논쟁에 대해 분명하고 확실히 말하고 싶다. 한국축구에서 중국은 배워야 한다. 나는 알고 있다. 만약 중국축구가 한국처럼 빠른 속도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한국을 만나면 이기지 못하는 역사가 계속될 것’이라며 중국의 한국축구 때리기를 비판했다.
7.중국 정부는 ‘붉은악마’를 두려워했다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세계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한반도 전체를 붉게 물들인 국민들의 거리응원 물결일 것이다. 중국 언론의 한국축구 때리기의 배경에는 중국측이 붉은악마 신드롬을 우려했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 당국은 한국에서 일고 있는 자발적인 길거리응원이 호의적으로 보도될 경우 중국내 젊은이들을 자극할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석은 일본의 한 언론에서도 제기됐다.
1989년의 ‘톈안먼 사태’와 1999년의 ‘파룬궁 사태’ 등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 사회주의 체제를 뒤흔든 가장 위협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스탠다드텍 천주욱 대표는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은 이색 주장을 했다.
‘이번에 우리는 중국 정부가 그렇게도 철저히 막고 있는 대규모 군중들이 모인 거리응원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중국을 상징하는 색깔인 붉은 티셔츠를 입은 수백만명의 군중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으며, ‘Be The Reds’가 새겨진 티셔츠에 중국의 오성기만 그려 넣으면 우리 거리응원은 중국으로 바로 전염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중국내 반체제 성향이 있는 어떤 젊은이들의 단체가 나서서 인터넷을 통해 전국적으로 회원을 모집하면서 명분으로는 2008년 올림픽을 대비한 응원단을 결성하게 되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혹시 올림픽 개막식때 이런 응원단이 깜짝쇼로 펼치는 초대형 현수막 구호에 자유·평등 같은 체제비판적인 구호라도 내거는 사태를 중국 당국은 우려한 것이다.’
천대표는 중국 당국이 이런 이유로 반체제 운동의 위험성을 내포한 거리응원 문화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국영 언론인 CCTV를 동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다른 정치적인 ‘음모설’도 나왔다. 중국의 한국 때리기가 예선 탈락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들어 월드컵에서 참패한 중국축구팀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중국축구협회와 국가대표팀이 언론을 통해 사전 정지작업을 시도했다는 분석이다.
8.축구복표 투자가들, 한국 連勝에 화났다
중국의 한국 때리기의 큰 원인 중에는 중국인들의 축구복표 투자 실패에 따른 수천만명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나왔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오랫동안 매춘·마약·도박을 엄금했던 중국 정부도 축구복표사업에 대해서는 축구프로리그를 활성화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허락했다. 도박사업으로 분류되어 허용이 안되는 경마나 카지노사업과 달리유독 축구복표사업을 허용해준 것은 중국정부의 축구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축구복표사업은 중국 정부의 국가체육총국(國家體育總局)이 주관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이번 한·일 월드컵과 관련해 팔려나간 축구복표액이 5억1,500만위안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복표 투자가들도 수천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석간 ‘베이징완바오’(北京晩報)는 한국과 이탈리아전이 끝난 뒤 사회면 기사에서 한국전 관련 복표를 구입한 이들이 허탕쳤다는 기사를 ‘고십’기사로 처리했다. 한국-이탈리아전에 중국인 수천만명이 1대 1.3의 수익을 노려 이탈리아에 1만위안을 투자했다가 한국축구의 돌풍으로 투자액을 날렸다는 기사였다.
결국 유럽축구 3강을 격파한 한국축구의 연승 행진이 중국의 복표 투자가들에게는 커다란 손실을 초래했다는 이야기다. 또 주식투자에 실패한 이들이 해당 기업의 경영자를 비난하듯 중국 사람들의 불만은 자연스럽게 예측을 뒤엎고 승리한 한국팀에 대한 분노로 돌변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중국인들의 한국축구 때리기에 대해 “한국의 승리를 심판 매수에 따른 음모론이라고 제기한 대부분의 사람 가운데 복표에 투자한 이들이 90% 이상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분석하는 이들도 많다. 또한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승리를 예상했던 CCTV-5 체육채널에서도 그 책임을 면하기 위해 승부조작설을 의도적으로 흘렸다는 분석도 유력하다. 강자(强者)를 응원하는 국영방송의 축구 해설 논리에도 복표 사업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이야기다.
SINA닷컴이나 SOHU닷컴 등 중국의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에도 복표 투자에 실패한 중국 축구팬들의 글이 빗발쳤다. 갑A리그에서 심판 매수와 승부 조작을 둘러싼 부정 시비가 자주 일어나는 것도 복표 투자가들의 이권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축구복표사업이 실시된 이후 한층 ‘복마전’으로 빠져든 중국 프로축구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길들여진 중국인들이 월드컵도 복마전으로 취급했던 것이다.
9.중국의 패닉현상, 膽大한 자세 필요
중국의 한달에 걸친 한국 때리기 소동은 한국인과 중국인들 사이에 커다란 앙금만 남긴 채 정리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언론들의 반응은 7월 이후 자성의 빚이 뚜렷해졌다.
7월10일 ‘런민리바오’(人民日報)는 논평에서 ‘한국 축구팀과 축구팬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면서 ‘한국 선수들은 전 경기를 통해 강렬한 근성과 진취적 기상, 훌륭한 체력, 뛰어난 전술·전략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이어 ‘축구팀 외에 축구팬 또한 통일된 복장과 질서정연한 태도로 한국팀을 응원해 민족의 의지와 역량을 과시했다’고 칭찬했다.
중국 체육담당 기자들도 중국내 일부 매체들의 월드컵 관련 보도가 왜곡됐음을 인정하고 나섰다.
허후이시안 중국 체육기자협회장은 7월11일 월드컵 취재를 다녀온 기자들과 가진 ‘월드컵 보도평가 세미나’에서 “일부 매체들이 불공정하게 월드컵을 보도하는 바람에 해외에서 중국의 이름에 오명(汚名)을 씌웠다”고 말했다.
중국 관영 영자지인 ‘차이나데일리’도 11일자 ‘언론사들, 상당한 윤리 요망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번 월드컵을 보도한 기자들이야말로 스캔들의 주범들’이라고 비판했다. 일단 소동은 월드컵 음모론에서 중국 내부의 음모론쪽으로 바뀐 상황이다. 우리에게도 소득이 없는것은 아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중국인들의 은밀한 ‘속내’를 확실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났기 때문이다.
21세기 우리가 함께 가야 할 동반자로서의 중국. 이 시점에서 우리는 중국의 과오를 쫓기보다 우리 스스로를 한번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한·중·일 프로리그의 성공적 출범을 위해서라도 이번 월드컵을 둘러싼 한·중간 갈등은 이쯤에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반성이 꼭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 지나치게 승리감에 도취해 이웃 나라들을 자극하지는 않았는지….
첫댓글 음...재밌는 글이네요. 도무지 중국의 속내를 알수 없었던 차에 좋은 글 읽었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좀 길긴 했지만 재밌는 글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