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배 할아버지, 히말라야를 가다-come on everybody
내 사랑하는 손녀 서현이에게 띄우는 편지다.
서현아!
2018년 11월 1일 목요일부터 같은 달 14일 수요일까지 쭉 이어진 14일 일정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트레킹도 이제는 막바지였다.
마지막 날 일정의 시작은 태국 방콕공항에서 우리나라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항로인 그 하늘에서부터였다.
잠깐 눈을 붙였다 깼다 싶었는데, 시각은 오전 4시를 막 찍고 넘어가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는 시속 915km에 고도 11,888m에 바깥기온 섭씨 –52도에 꼬리속도 시속 33km라고 표시되고 있었다.
서현아!
할아버지는 이번까지 포함해서 그동안 히말라야에서 세 번의 트레킹을 했었다.
첫 번째는 해발 4,615m의 초롱라 고개를 넘어가는 6년 전인 2013년 3월의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이었고, 두 번째는 소위 ‘검은 돌무더기’라고 하는 해발 5,545m의 칼라파타르 봉우리에 오르는 2년 전인 2017년 3월의 에베레스트 클래식트레킹이었고, 세 번째가 해발 3,210m의 푼힐 전망대와 해발 3,660m의 MBC 곧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와 해발 4,130m의 ABC 곧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해서 3개의 꼭짓점을 오르는 이번의 안나푸르나트레킹이었다.
할아버지 나이로 보면, 첫 번째는 예순여섯의 나이 때였고, 두 번째는 일흔의 나이 때였고, 이번의 세 번째는 일흔둘의 나이 때였다.
등산의 전문가들인 산악인들로서는 쉽게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이었겠지만, 일흔 나이를 전후로 한 할아버지로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도전이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매번 감히 그 도전에 나섰었고, 당초 목적했던 대로 다 이루어냈었다.
그런 내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리더인 세계적 알피니스트 이상배 대장은 엄지를 척 세워 보이면서 이 한마디로 나를 추켜 세워줬다.
“형님은 다들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신 분입니다. 정말로 장하십니다.”
서현아!
서현이는 이 할아버지의 불룩한 배를 손가락 끝으로 쿡쿡 찌르면서 ‘똥배! 똥배!’라고 놀렸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그렇게 장하다는 소리도 듣는 도전적 기질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뒀으면 된다.
그래야 먼 훗날 서현이가 그 어떤 도전의 기회가 왔을 때, 이 할아버지의 지난날 도전의 발자취를 떠올리면서, 우물쭈물하지 않고 선뜻 나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현아!
사람들은 그렇게 나를 추켜 세워주지만, 이 할아버지는 서현이 너 할머니를 그렇게 추켜 세워주고 싶구나.
히말라야에서의 첫 번째 도전이었던 안나푸르나 라운드트레킹은 이 할아버지 혼자만의 도전이었지만, 나머지 두 번의 경우는 할머니도 함께 도전을 해서 거뜬하게 감당을 해내셨기 때문이다.
거뜬하게 감당을 해냈다고 해서 쉬웠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야 했고, 거꾸로 깊은 계곡으로 내리꽂으면서 무릎에 중압감을 느껴야 했고, 그 계곡에 걸쳐놓은 현수교를 아슬아슬 건너야 했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뒤돌아서지를 않고 꿋꿋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 결국은 목적한 바를 성취하신 것이다.
그래서 내 ‘거뜬’이라는 단어로 추켜 세워드린 것이다.
서현아!
그렇게 뿌듯한 성취감을 돌이키다보니 어느덧 잠이 싹 달아나고 말았다.
창밖을 내다봤다.
먼 동녘하늘이 불그스름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샛별 하나가 그 하늘을 더 빛나게 하고 있었다.
이제 두어 시간이면, 우리들 일정이 모두 끝나는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 착륙할 터였다.
그 두어 시간을 그냥 허송할 수 없었다.
그래서 꺼내든 것이 책 한 권이었다.
이번 14일 일정의 안나푸르나트레킹 여정에서, 내 들고 간 두 권의 책 중의 한 권인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책이었다.
또 한 권인 우리 고향땅 문경출신의 사진작가인 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이라는 책은 일정의 초입에서 이미 다 읽었고, 이디스 해밀튼이 짓고 이재호 유철준이 옮긴 한신문화사 출판의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책은 그 분량이 만만치 않아서 틈나는 대로 조금씩 조금씩 읽어온 터였다.
서현아!
책을 꺼내 들었다고 해서 책의 실물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책의 실물은 짐이 될까 싶어서 아예 들고 오지 않았고, 책의 그 쪽 전부를 핸드폰 사진으로 찍어서 저장해둔 것이었다.
그렇게 저장된 책을 펼친 것이다.
‘사진, 그리고 거짓말’이라는 책은 절반 정도는 사진인데다가 사진에 대한 기초적 지식이 있어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책은 만만치를 않았다.
500여 쪽에 이르는 그 두께도 만만치 않았고, 글자체도 10포인트 정도로 작아서 읽어내야 할 분량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도 이번의 여정 중에 다 읽지 않으면, 그 책을 읽을 기회가 두 번 다시 오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정성을 다해 읽었다.
서현아!
내 그렇게 읽은 이야기들은 이랬다.
‘티탄들과 열두 올림포스 신들’ 이야기도 읽었고, 대지의 두 위대한 신들인 ‘데메테르’와 ‘디오뉘소스’ 이야기도 읽었고, 초기의 영웅들인 ‘프로메테우스와 이오’ 이야기, ‘나르킷소스, 휘아킨토스, 아도니스’ 이야기도 읽었고, 사랑과 모험의 이야기들인 ‘쿠피도와 프시케’ 이야기, ‘퓌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이야기, ‘황금 양털’ 이야기, ‘파에톤’ 이야기, ‘다이달로스’ 이야기도 읽었고, 트로이 전쟁 전의 위대한 영웅들 이야기인 ‘페르세우스’ 이야기, ‘테세우스’ 이야기, ‘헤라클레스’ 이야기, ‘아탈란테’ 이야기도 읽었고, 신화의 큰 가문들 이야기인 ‘아트레우스 가’ 이야기, ‘테바이 왕가’ 이야기, ‘아테나이 왕가’ 이야기도 읽었고, 그 이외의 자잘한 신화들인 ‘미다스’ 이야기, ‘시쉬포스’ 이야기, ‘아마존족’ 이야기, ‘오리온’ 이야기, ‘칼리스토’ 이야기도 읽었다.
그렇게 읽고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대목이 바로 트로이아 전쟁의 영웅들 이야기였다.
일정의 마지막에서 바로 그 대목을 펼쳤다.
서현아!
그 이야기는 소위 질투의 여신이라는 앨리스의 황금사과에서 비롯되는 ‘파리스의 심판’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앨리스가 올림포스의 잔치판에 나타나 황금사과 하나를 던져놓고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의 것’이라고 선언하고는 사라져버리자, 그 황금사과를 놓고 권력의 여신인 헤라와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와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기게 되는데, 그때 트로이의 왕자인 파리스가 심판자로 나서서 아프로디테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라고 심판한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그 심판으로 삐친 헤라와 아테나가 농간을 부려서 그리스가 트로이를 침공해서 10년 전쟁을 벌이게 되고, 결국 그리스의 지장인 오뒷세우스의 목마(木馬)작전에 휘말려 트로이가 망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서현아!
이야기는 더 이어지고 있었다.
바로 ‘오뒷세우스의 모험’이라는 이야기였다.
외눈박이 거인인 폴뤼페모스를 쳐 죽이는 이야기, 지난 세월을 다 잊어버리게 하는 열매인 로토스를 먹고 방황하는 이야기, 태양신의 딸인 키르케에게 붙잡혀 부하들이 돼지로 변해버린 이야기, 밀랍으로 귀를 막아 노래로 사람을 홀리는 세이렌들에게서 벗어난 이야기, 아틀라스의 딸인 칼륍소에게 홀려서 7년을 허송한 이야기, 친구 멘토에게 맡겨졌던 아들 텔레마코스와 함께 지난 20년 세월을 아내 페넬로페를 괴롭힌 정적들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그 이야기들 모두에는 동행들이 있었다.
오뒷세우스의 그 모험처럼, 어쩌면 할아버지도 동행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히말라야 트레킹에의 도전이었다.
그렇게 결말을 내고, 내 그 책을 덮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책 읽기가 그렇게 끝난 것이다.
서현아!
창밖을 보니, 우리 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 안착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 찰나였다.
카톡! 카톡! 카톡!
순식간에 핸드폰으로 수신되는 카카오톡 메시지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비행기가 멈출 때까지, 그 수신된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확인해봤다.
그 중 하나에 내 눈이 쏠려가고 귀가 쏠려갔다.
내 평소 ‘형님! 형님!’하면서 가까이 지는 ‘김윤필’이라고 하는 분이 그 새벽에 보내주신 메시지였다.
아무런 설명 없이 달랑 동영상 하나만 띄워 보내주신 것이었다.
여럿이가 함께 모여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 그런 동영상이었는데, 그 분위기가 딱 내 마음과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그 노래의 시작이 이랬다.
‘come on everybody’
너도 한 번 따라 해봐.
참 좋아.
서현아!
첫댓글 사랑하는 손녀 서현이에게
늘 교훈적이 삶을 가르쳐 주시니
할배의 사랑과 가르침으로
서현이의 장래가 보석처럼 빛이나겠어요
14일간의 일정 무사히 잘 마무리 하셨다고
경쾌하고 신나는 리듬에 맞추어
트위스트 추는 풍경
넘 신나고 멋지네요
영상을 보고 있자니
저도 그속에서 함께 춤을 추는듯
신나고 즐겁습니다
사진속 서현이 모습
넘 귀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