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지난 30년 가까이 청소년선도사업을 하면서 늘 아쉬움을 갖는 것이 있었습니다. 한때 잘못된 길에 들어선 청소년들은 대부분 가정에서 행복하지 못한 청소년들이었는데 그들이 좀더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왔다면 결코 탈선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가정을 살려나가는 것이 청소년문제를 풀어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길이라는 뜻에서 효(孝)문화사업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구호뿐인 효 운동만으로는 안 되고 어떻게 하면 실천적으로 접목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만난 것이 태권도였습니다.
본래 효란 가슴으로 느끼고 행하는 실천이 중요한데, 그 실천이란 것은 머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배워 실천하는 습관이 되어야한다는 사실을 옛 선인들의 “밥상머리 교육”이나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린이가 부모님의 헌신에 감사하고 부모님의 희망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습관을 몸으로 길러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태권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태권도는 예시예종을 중시하고 몸으로 행하는 무도정신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런 우리 문화입니다. 세계가 인정하는 이런 한국의 무예를 통해 효문화를 생활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전국 1만여 태권도장은 100만 명에 이르는 우리 어린 새싹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인성교육장이자 가정교육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교육장입니다.
태권도와 효의 만남은 태권도 수련과 효의 생활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하는 실천덕목교육으로 이어져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다고 할 만큼 절묘한 만남입니다.
그래서 ‘태권도효교육사업단“을 설치하여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관장이나 사범들에게 ”효지도자교육“을 시작하였습니다.
태권도 효교육은 아이들이 부모님의 헌신에 감사하고 부모님 희망으로 거듭나면 또 아이들을 통해 부모가 효를 다시 생각하게하는 행복한 가정과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초석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이 작은 책자가 가족해체와 계층갈등 그리고 패륜으로 얼룩진 현대사회의 문제를 풀어나가고 온 가족이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 오손 도손 정을 나누는 사회로 가는데 조그만 보탬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동안 원고를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신 여러분과 아름다운 우리 풍속그림을 제공해주신 이서지 화백님, 그리고 태권도장에서 매일 같이 아이들의 교육에 힘쓰고 계신 지도자 여러분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며 인사에 가름합니다.
2006년 1월 강지원(서울대 문리과대학 졸업,행정.사법고시 합격, 검사, 청소년보호위원회 초대위원장,한국법심리학회 초대회장,현 정보통신 윤리위원장,현 법률사무소 청지 고문변호사,현 세계효문화본부 효교육사업단장)
가장 한국인다운 문화 키워드 “효”
한국인을 한국인답게 만드는 문화요소가 있습니다.
자와 효, 충과 열, 성과 인, 신과 의, 연과 업, 정과 한, 경과 인, 멋과 신명입니다.
그 중 효는 부모 자녀의 관계와 자녀교육을 지배하는 기본원리입니다.
효는 이 많은 문화요소 중 가장 으뜸이고 핵심입니다. 효는 한국인의 삶을 지배하는 집단 무의식의 개념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결코 인위적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닙니다.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난 이도 없고, 자식을 선택해서 얻는 이도 없습니다. 심지어 입양의 절차를 밟는데도 설명할 수 없는 하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천륜, 즉 하늘이 맺어준 관계입니다.
그래서 죽어서도 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어지는 수많은 복 중에 제일가는 복은 인연의 복입니다. 그 인연의 복 중에 제일가는 인연이 바로 부모 자식간의 인연입니다.
그 소중한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가 있습니다.
그 기본이 바로 “효” 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면 우선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내가 낳은 자식에 대한 사랑과 정성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 마음과 행위가 바로 “효”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천륜을 지키는 것을 인간최고의 가치로 알고 실천하면서 살았습니다.
가장 한국인다운 문화 키워드 ‘효“
한국인을 한국인답게 만드는 문화요소가 있습니다.
자와 효, 충과 열, 성과 인, 신과 의, 연과 업, 정과 한, 경과 인, 멋과 신명입니다.
그 중 효는 부모 자녀의 관계와 자녀교육을 지배하는 기본원리입니다.
효는 이 많은 문화요소 중 가장 으뜸이고 핵심입니다. 효는 한국인의 삶을 지배하는 집단 무의식의 개념입니다.
효는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입니다.
효의 실천 덕행에는 부모의 몫인 부자실천 행동지침과 자녀의 몫인 자효 실천 덕행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부자“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라는 뜻이고, 자녀의 몫인 ”자효“란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실천 덕행입니다.
효는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입니다.
여러분은 “효”가 일방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부모 말이라면 무조건,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은 효라고 생각하시나요? 흔한 상식으로 “효”란 자식이 부모에 대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애기입니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에 대한 한없는 은혜를 몸과 마음으로 보답하는 것이 바로 “효”이지요. 그러나 효는 자식에서 출발해 부모에게로만 가는 일방통행의 개념이 아닙니다. 효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강요하는 일방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이라는 인간적 유대와 함께 상호간에 도덕적 의무를 규정하는 상호 개념입니다. 우리나라 옛 전통을 살펴보더라도 효는 자식과 부모가 주고받는 정, 즉, 상호적 개념의 사랑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부자자효(父慈子孝)”입니다. “부자자효”의 의미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봉양하고 공경하는 쌍무적 관계위에서 효가 성립되는 것을 말합니다. 효의 실천 덕행에는 부모의 몫인 부자실천 행동지침과 자녀의 몫인 자효 실천 덕행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부자”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라는 뜻이고, 자녀의 몫인 “자효”란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실천 덕행입니다.
서구적인 사고방식에 “Give and take"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는만큼 받는다는 지극히 실리적인 말이지요.
우리의 효 개념도 따지고 보면 그런 실리적인 개념이 숨어있습니다. 단, 그것을 주고 받는 다는 것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서로 넘치듯 준다는 개념으로 이해되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자녀를 충분히 사랑하세요. 그러면 당신의 자녀도 당신에게 가슴 벅찬 효의 마음을 전해올 것입니다. 또 “효”가 상호적이라는 것은, ‘효“가 조건적이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효의 상호작용은 부모의 자애의 정과 자식의 경모의 정이 혈육의 정을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입니다. 내 자녀 앞에서 내 부모에게 효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자녀의 잘못을 꾸짖기 전에 가슴 가득 꼬옥 안아주세요. 늘 웃음 넘치는 행복한 가정 분위기를 만들어주세요. 나무람보다는 예쁘고 고운 칭찬의 말을 해주세요. 자녀는 부모를 위해 부모가 원하는 행동을 하세요.
평소 고운 말씨를 사요하고, 공손한 태도로 인사하고, 일찍 귀가하고, 밥 잘 먹고, 건강하고, 열심히 자기 계발을 하는 것 모두가 효를 실천하는 일입니다.
습관들이기, 아주 중요한 교육입니다.
습득한 행동이 되풀이되는 동안 헛된 동작이 없어져서 안정된 경우가 습관입니다.
그래서 습관은 일찍부터 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능처럼, 몸과 마음에 익숙해지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머리로 배운 것은 잊어버려도 몸으로 익힌 것은 평생갑니다.
어른을 보면 공손히 인사를 해야 한다는 예법,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항상 내 주변을 정리정돈하기 등은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몸에 습관처럼 배어들게 해야 합니다.
습관들이기, 아주 중요한 교육입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흔하게 듣는 말이어서 가벼이 생각할지 모르지만 새기고 또 새겨보면 이것만큼 무서운 말이 또 있을까요. 바로 이부분에서 우리는 교육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육의 힘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습“(習)이란 한자 어원적으로 ”새끼 새가 어미 새를 본받아 여러 번 날면 숨결이 입과 코로 나오므로 “習” 자를 합하여 새끼 새가 나는 법을 익힌다는 뜻으로 나타냅니다.
습관이란 동일한 상황 아래에서 반복된 행동이 상황에 따라 정형화되고 자동화된 것을 말합니다. 즉, 습득한 행동이 되풀이되는 동안 헛된 동작이 없어져서 안정된 경우가 습관입니다.
그래서 습관은 일찍부터 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됨의 기본이 되는 “효”를 가르침에 있어서도 아주 어린 아이일수록 더더욱 선명하게 각인되는 것은 바로 몸과 마음에 습관처럼 쉽게 익숙해지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문제를 상담하다보면 어린 청소년기에 10번 애기해서 고쳐질 부분이 어린아이들의 경우 1,2번이면 충분히 고쳐질 수 있습니다. 그만큼 나이가 어린아이일수록 속마음이 순수해서 찰흙판에 글자새기듯 어떤 개념을 각인시키기 쉽다는 것을 말합니다.
유치원이나 보육원, 혹은 가정에서 아주 어린 유아를 교육시킬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습관형성인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단, 습관형성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한번에 습득하게 하기보다는 되풀이하고, 아이 눈에 비춰지는 가장 가까운 어른인 부모가 그 습관 형성의 훌륭한 모범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일단 습관을 들이고 그 습관적 행동이 갖는 뜻을 후차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한 초등학교에서 ‘효“에 관한 습관들이기에 대해 조사한 것을 살펴보면 저학년의 겨우 ”효“ 생활 습관에 관한 인지도는 낮지만 실천 의지는 높게 나타난 반면, 고학년은 인지도는 기대 수준에 있지만 자율적인 실천의지가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효도하려는 마음은 가지고 있지만 방법을 잘 몰라 실천하지 못하거나 핵가족의 영향으로 자기중심적이고 효의 기본이 되는 예절과 효도하는 태도가 낮은 수준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동시에 남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태도 역시 낮은 편이지요.
“효”는 새롭게 만들어진 지식이 아닙니다. 이해해야 실천할 수 있는 덕목과도 다소 거리감이 있습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아주 당연한 것처럼, 본능처럼, 몸과 마음에 익숙해지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된 사람의 도리를 알게 되고 먼 훗날 그 자녀가 부모가 됐을 때 그 자녀의 자녀들에게 부모로서의 ‘자(慈)“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머리로 배운 것은 잊어버려도 몸으로 익힌 것은 평생간다.
나이 들어 어른이 된 사람이 중 고등학교시절 풀던 수학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대개는 당황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썩 잘 풀어내던 문제들도 세월이 많이 지나면 상당부분 잊어버리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어렸을 때 배웟던 자전거 타는 법이나 수영 등은 세월이 아무리 많이 지나도 좀처럼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다가도 금세 옛날 몸으로 익혔던 실력이 슬슬 나타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똑같이 예전에 배우고 습득한 것인데, 왜 그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요?
바로 머리로 익힌 것과 몸으로 익힌 것의 차이입니다.
머리로 배운 것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몸으로 익힌 것은 어지간해서는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요즘 아이들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주택가로 오고가는 노란색 학원버스들은 쉴새없이 아이들을 싣어 나르며 지식습득에 열을 올립니다.
그러나 정작 올바른 사람으로 키우는 사람공부에는 얼마만큼 공을 들이는지요?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특히 1+1=2 같은 공부 지식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을 보면 공손히 인사를 해야 한다는 예법,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기, 항상 내 주변을 정리정돈하기 등은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몸에 습관처럼 베어들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긴 시간이 걸리고, 긴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듯 반복해서 바른습관을 가르치는 것, 바로 양육입니다. 책으로 하는 공부는 학교에서도 가르칠 수 있지만, 몸에 베일만큼 반복을 통해 이루어지는 생활 학습은 학교교육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올바른 사람으로 키우는 생활학습은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트예프스키는 인간을 유순한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일도 잘 배우고 잘 길들여지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사랑스러운 우리의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좋은 습관, 올바른 버릇을 담아주세요. 부모로서 가장 훌륭한 가르침을 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혼자인 것 같아도 결코 혼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살 수도 막 살아서도 안됩니다.
부모에 대한 “효”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고, 자녀에 대한 사랑도 생각하게 됩니다.
가정이 최고의 학교다
가정교육이 바로 이러한 생생한 인간 감정의 부딪침을 통해 아이들에게 사랑과 자신감, 성취감 등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효도의 의미, 형제간의 우애, 사람에 대한 너그러운 가슴을 품는 것, 생명 존중의 존엄성을 깨달아가는 것, 모두 책이나 도구로 배우는 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부딪침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세 살 된 어린아이라도 ‘너“ 누구야”하고 질문하면 자기 이름과 나이를 말합니다. 미리 가르쳐주었다면 아빠 이름과 엄마 이름, 그리고 형제자매와 할아버지, 할머니 이름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이제 겨우 3살 난 어린아이조차 자신을 둘러싼 가족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른인 여러분은, 그 질문에 얼마만큼 답할 수 있고,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얻어 내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에 얼마만큼 만족하시나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근본이 되는 뿌리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이 말은 그 사람의 인생 자체를 가름 할 만큼 의미가 깊은 말입니다. 이 물음은 인간에게 인간됨을 깨닫게 하는 철학의 시발점이 되며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철학의 완성이라고 해도 관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인지 알게 되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부모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부모의 부모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반대로 나를 보고 자라나는 어린자녀에 대해 그리고 훗날 손자, 소녀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혼자인 것 같아도 결코 혼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살 수도 막 살아서도 안됩니다. 부모에 대한 ‘효“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고, 자녀에 대한 사랑도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이 누군인지,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사람, 즉,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람이 자기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을 베풀 수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해보세요. 세 살난 어린아이처럼 가족관계의 이름만 나열하지 말고, 내 부모의 자식인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 어린자녀가 훗날 나를 어떻게 회상할지 상상하면서 “나는 누구인지”의 해답을 풀어보세요.
가정이 최고의 학교다
세계보건기구의 보고에 의하면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육아와 가정교육은 서툴러진다고 합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좋은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부모들은 자녀가 살아가는 데 있어 인생의 기둥이 될 가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할 부모 된 의무가 있습니다. 그 가치를 가르치는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에는 다른 무엇에도 양보할 수 없는 교육적 역할이 있습니다.
학교나 군대, 직장, 교회 등, 사회 어느 단체에서도 하지 못하고 오직 가정에서만 해낼 수 있는 교육이 있습니다. 문명이 제아무리 발달하고, 사회가 아무리 분업화된다고 해도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교육의 기초는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정이기에 가르칠 수 있는 첫 번째 교육은 감정교육입니다. 감정이란 것은 인간 성품의 핵입니다. 감정은 논리적으로 따지거나 똑 떨어지게 나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아주 원초적인 성격이기에 오직 체험을 통해 몸에 배게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가정교육이 바로 이러한 생생한 인간 감정의 부딪침을 통해 아이들에게 사랑과 자신감, 성취감 등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효도의 의미, 형제간의 우애, 사람에 대한 너그러운 가슴을 품는 것, 생명 존중의 존엄성을 깨달아가는 것, 모두 책이나 도구로 배우는 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부딪침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다음은 노동교육입니다. 가정이 공장이나 공사판도 아닌데, 어린아이에게 웬 노동교육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노동의 가치에 대해 잘 모르기에 하는 말입니다.
노동은 모든 창조의 근원이며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풍부하게 합니다.
노동을 통해 가족간에 서로 협동하기를 배우고 노동을 통해 자기 능력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어린자녀에게 자기방을 스스로 청소하도록 하는 일, 아빠 구두를 윤이 나게 닦아놓는 일, 유리창을 닦는 일 등, 어린자녀에게 노동의 기쁨과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깨끗해진 방을 보면 상쾌한 기분이 되는 것, 아빠 구두를 닦은 뒤 용돈을 얻게 되는 기쁨, 가족 모두 화합해 유리창을 닦으면서 배우는 협동심, 모두가 노동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교육입니다.
다음은 생활교육입니다.
생활교육이란 사람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생활속의 규칙입니다. 밥먹는 습관, 배설하는 습관, 옷 입는 습관, 정리정돈의 습관 모두,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익히고 배워야할 생활교육으로, 다른 곳이 아닌 가정에서 배워야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가치관 교육입니다. 샤르트르는 “인간의 위치는 그 사람의 어린시절이 결정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위치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말합니다.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 형제간에 우애하는 마음,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 형제간에 우애하는 마음, 어린자녀를 사랑하는 마음, 모두가 인간됨의 가치관을 배우는 교육입니다. 가정교육이 이렇듯 중요할진데, 요즘 우리의 가정교육은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조각배와도 같습니다.
표류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 어린자녀들의 미래가 암울해집니다.
가정은 이 세상 최고의 학교입니다. 그 중요성을 되새기고 또 되새겨야 합니다.
인사는 예절의 기본입니다.
인사하기는 “효”를 실천하는 가장 첫 번째 행동입니다. 또한 사회생활의 기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기는 온갖 인간관계를 좌우하는 큰 요소가 바로 첫인상이다.
그 첫인상은 바로 인사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세요
어린시절부터 가정의 소중함을,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지 못한 아이는 부모에 효도할 줄도, 다른 가족을 사랑할 줄 도 모릅니다.
인사는 예절의 기본입니다.
출근과 등교로 정신없는 아침시간,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한 초등학생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쯤 되어 보이는 이 여학생은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어른을 보면 아주 공손한 모습으로 인사를 합니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늘 예의 바른 모습을 보입니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구요? 그러게요.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닌데, 유독 그 어린 여학생의 행동이 돋보이는 것은 그렇지 않은 어린학생들이 너무 많아서인것 같습니다. 대개의 어린이들은 어른이 타건 말건 핸드폰게임에 열중하거나 멀뚱멀뚱 얼굴만 빤히 쳐다봅니다. 행여 인사를 하더라도 건성으로 하는 듯 마는 듯, 그 어린여학생처럼 공손하게 인사하는 어린이는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 어린여학생이 참 대단해 보입니다. 또 그 어린 여학생의 부모가, 그리고 그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이 참 훌륭한 분들 일거라는데, 조금의 의심도 없습니다.
바른 인사습관 하나만 보았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 어린 여학생을 앞 다투어 칭찬합니다.
때때로 호탕하게 웃는 모습보다는 엷게 미소 짓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속에 더 큰 파문을 느끼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주 사소한 것에 감동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른에게 공손히 인사하는 아주 사소한 생활습관이 그 아파트 주민들을 감동시킨 것처럼 말입니다. 인사하기는 “효”를 실천하는 가장 첫 번째 행동입니다. 또한 사회생활의 기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기는 온갖 인간관계를 좌우하는 큰 요소가 바로 첫 인상이지요.
그 첫인상은 바로 인사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또한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인사성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아무리 일을 잘 하는 사람이라도 인사성도 못 차리는 예의 없는 사람이라면 능력과는 상관없이 소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릴 때 인사하는 습관을 몸으로 익힌 사람은 평생을 두고 인사를 잘 하게 됩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같지만 평생을 통해 아이에게 인사하는 예법만이라도 제대로 가르친 부모라면 부모노릇의 절반은 다 한 것입니다. 그만큼 인사는 중요합니다.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세요
집은 인간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터전이면서 삶을 살아가는 에너지와 활력소를 충전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비추어볼 때 집은 있지만 정작 중요한 가정이 없는 집이 많습니다.
힘들고 고단한 일상으로부터 포근히 감싸주고, 언제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어, 언제든 돌아가면 반가이 두팔을 벌여 맞아주는 가정, 우리 아리들에게 그런 가정의 이미지를 각인시켜 주어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가정교육을 인간생활의 기반으로 보았고 페스탈로치는 가정생활을 학교의 원형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가정의 소중함을,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지 못한 아이는 부모에 효도할 줄도, 다른 가족을 사랑할 줄도 모릅니다. 어릴 적 한마디 충고는 짧은 시간에 뼈가 되고 살이 되지만, 다 큰 어른이 된 후에 따끔한 충고는 어지간해서는 받아들여지지가 않습니다.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아이가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그 순간부터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족사를 알려주세요
가족사를 알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자녀교육의 첫걸음입니다.
자신의 계보를 알아야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수 있고, 혈족에 대한 유대감을 갖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풍요로움의 정체
부족함을 모르고 자란 아이들은 먼 훗날 어른이 되어 갑작스레 닥치는 좌절과 고통이라는 현실 앞에 쉽게 좌절하고 주저앉습니다.
가족사를 알려 주세요
사회가 발전하고 핵가족화가 일반화되면서 가까운 친척간의 교류가 예전만 못합니다.
사촌이 넘어가면 촌수를 헤아리는 것조차 못하는가하면 심지어는 사촌이라도 만나는 횟수가 많지 않으면 서로 마주하고도 멀뚱멀뚱 먼산만 바라보기 일쑤입니다.
옛날 유행가 가사에도 멀리있는 사촌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더 가깝다고 할만큼 자주 만나지 않으면 소원해질 수 밖에 없는 관계가 바로 친척관계입니다.
이웃간에도 정겨운 정을 나누고 혈족 이상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친족이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관계는 상황에 따라 완전하게 관계의 끈이 끊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담없이 그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친족관계는 다릅니다. 교류가 있건 없건 죽을 때까지 관계가 지속됩니다. 나 한사람의 행동 하나가 좋건 싫건 친척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혼자인척 독불장군처럼 살아도 나를 둘러싼 연결고리는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 즉, 가족들의 관계를 아는 것은 어찌보면 이론적인 효의 시작입니다. 가족사를 알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자녀교육의 첫걸음입니다. 자신의 계보를 알아야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수 있고, 혈족에 대한 유대감을 갖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서로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내가 있고 부모가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고모, 삼촌, 외삼촌이 있습니다.
혈족이란 같은 조상에서 갈려나온 친족을 말합니다. 같은 피를 타고 태어난 친족의 호칭을 삼촌, 사촌, 오촌... 하는 식으로 멀고 가까운 거리 개념으로 나타내는 나라는 이 세상에서 우리나라 뿐일 것입니다.
피의 농도를 정이 통하는 거리로 환산하여 파악하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가족호칭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형제 자매 간은 이촌이고 부모 자녀간은 일촌입니다. 일촌보다 더 가까운 반촌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곧, 자녀가 부모를 대하는 정의 거리가 일촌이고,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정의 거리가 그 보다 더 가까운 반촌인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은 것입니다.
풍요로움 속의 과잉 보호
루소의 교육 소설 “에밀”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자식을 불행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언제나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요즘 부모 된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를 교육하고 사랑하는 방법 중 물질의 풍요를 상당한 가치로 생각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그것이 전부라고까지 생각합니다.
풍요로움 속에서 자란 아이는 부족하지 않고 유순하고 긍정적이라고 합니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넘치는 풍요로움이 과연 아이들에게 모두 긍정으로만 작용할까요?
루소의 이론에 따라 생각해 본다면 현대의 부모들은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자녀들의 불행을 교육시키는 결과를 빗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옛말에 어린이를 키우는데 3할의 추위와 3할의 굶주림이 절대 필요하다고 했고,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한다면 함부로 과보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녀를 훌륭한 인간으로 키우는 데는 풍요로움보다는 그 풍요를 이루기까지의 노력과 결과가 있기까지의 과정을 가르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편리함을 가장한 물질의 과잉보다는 “꼭” , “반드시”라는 전제가 아니라면 일단은 생략하고 조금은 부족한 듯 사는 것이 편리함보다 더 의미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강약의 법칙은 자녀교육에 반드시 필요한 항목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가 필요하다고 하면 가격을 떠나 무엇이든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나름대로 기준을 만들어도 아이의 애절한 표정 앞에 일순간 그 기준은 무너져버립니다. 아이들은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부모를 상대로 주문만 하면 어지간한 것은 곧바로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은 갖고 싶은 것을 갖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리지 않습니다.
쉽게 얻어지는 만큼 자기 것에 대한 애착도 덜하기 마련입니다. 꼭 필요한 것과 없어도 되는 것에 대한 개념을 가르치세요. 부족함을 모르고 자란 아이들은 먼 훗날 어른이 되어 갑작스레 닥치는 좌절과 고통이라는 현실 앞에 쉽게 좌절하고 주저앉습니다.
가끔은 부족함이 주는 애틋함도 느끼고 부족하지만 다른 것으로 대처하는 순발력도 길러주세요.
아이가 필요로 할 때 항상 부모가 있어주는 안정감도 중요하지만, 부모가 없어 난감해질 수 있는 상황을 겪으며 부모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도 마련해 주세요.
내 아이들이 살아가는 미래라는 시간 속에는 부족함과 어려움도 함께 할 것입니다. 그 시간 속에 부모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 시간을 사는 지혜를 가르치는 것, 곁에 있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 그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귓속말을 하세요
오늘부터라도 내 아이를 특별하게 대접해주세요. 사랑한다는 말도 귓속말로 조용히 속삭여주세요.
소리는 작지만 사랑은 감당할 수 없을만큼 크게 전달된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세요
일상생활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내 역할에 충실해보는 것만으로도 가족 모두를 행복하게 하고, 부모님에게는 큰 효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귓속말을 하세요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가르치는 태권도 도장 관장님 중에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지도하는 분이 계십니다. 10명이면 10명, 20명이면 20명 이 도장의 아이들은 모두가 자기는 관장님에게 아주 특별한 학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학생들에게 평범한 척하지만, 속마음으로는 관장님과의 특별한 관계에 얼마나 우쭐해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수련하고, 관장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웁니다.
왜냐구요? 자신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관장님에게 아주 특별한 학생이거든요. 아이들 모두를 특별하게 대접하는 이 분의 비결은 바로 귓속말입니다. 문제점이 보이는 아이에게 꾸짖고 나무라기보다는 슬쩍 귓속말을 합니다.
“너는 내가 늘 눈여겨 보는 아이인데, 요즘 왜 그러니? 네가 그렇게 기운없어 하니까 요즘 신경이 많이 쓰인단다.” 다른 아이보다 우수해 보이는 아이에게도 살싹 귓속말을 합니다.
“역시 대단하다. 너만 제일 많이 예뻐해주고 싶은데, 그러면 다른 아이들이 샘낼 것 같아 일부러 표현하지 않는 거란다. 너한테만 살작 말하는데, 네가 최고야!”
관장님과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대화에 아이들은 우쭐한 기분이 최고조에 달합니다. 기분은 최고지만 다른 아이에게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비밀로 하기로 했거든요.
여러분은 내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 어떻게 하세요? 사랑을 표현하는데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저 무덤덤하게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한다면 어느 순간, 사랑한다는 소리가 나는 말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고 맙니다. 때론 속삭이듯, 주변의 아무도 모르게 내 아이만 들을 수 있도록 귓속말로 속삭여 보세요. 둘만의 비밀스러운 분위기로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보세요.
내 아이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난 엄마에게, 혹은 아빠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구나, 동생도 모르게, 오빠도 모르게 우리 엄마, 아빠는 나를 아주 특별하게 생각하는구나,”
자신이 특별해지면 이상한 힘이 생겨납니다. 더 잘해야지 하는 욕심도 생깁니다.
아이들은 칭찬을 먹고 더 크게 크게 자라나거든요. 오늘부터라도 내 아이를 특별하게 대접해주세요.
사랑한다는 말도 귓속말로 조용히 속삭여주세요. 소리는 작지만 사랑은 감당할 수 없을만큼 크게 전달된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세요
엄마가 손수 마련한 알록달록 온갖 모양의 김밥 한 접시로 온 가족이 행복감에 젖어 본 적이 있으실겁니다. 늘 무표정이던 아빠의 재롱(?)으로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날을 보낸 적도 있으실 겁니다. 늘 늦잠만 자던 아들이 어느날 새벽부터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있어 흐믓한 기분이 되어 본 적도 있으실 겁니다.
그러고보니 행복이라는 것이, 사랑을 베푼다는 것이, 부모에 효도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내 역할에 충실해보는 것만으로도 가족 모두를 행복하게 하고, 부모님에게는 큰 효도가 될 수 있습니다.
가족 모두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세요. 이것저것 다 잘 할려고 하면 이것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하되 그 중 나만이 잘 할 수 있는 일, 엄마라는, 아빠라는, 자녀라는 각자의 역할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보세요.
세상 사람 모두 각자 자기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나만 생각하기에 앞서 다른 사람을 한번쯤 생각해 본다면 사람으로 인해 슬플 일도, 사람으로 인해 고통받을 일도 한결 줄어들 것입니다. 오늘 당신이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당신의 최선이 내 남편이나 아내를, 내 부모님을, 그리고 내 아이들을 행복 속으로 풍덩 빠뜨릴지도 모릅니다.
물론 당신도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식의 운명은 어머니가 만듭니다.
어머니의 책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자식의 정신과 영혼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자식사랑이란 곧 실천을 말합니다.
내 아이를 믿으세요
믿음은 인간관계이 기본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믿는 신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덕목으로 중요시 했습니다.
자식의 운명은 어머니가 만듭니다
어머니는 자애로움의 상징입니다.
자모(慈母)란 그런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모성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애로움이란 마냥 부드러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켜야 할 것에는 엄격하고 해야 할 것에는 강인하고 감싸야 할 것에는 부드러운 것을 모두 포함합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맹자가 학업도중 돌아왔을 때 비장한 마음으로 짜고 있던 베틀의 실을 끊어버렸습니다. 무슨 일이든 중도에 그만두면 안된다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백범의 어머니 곽씨는 글을 배우지 못한 일자무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식 교육에 있어서는 그 어떤 어머니보다 현명했고,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범이 105인 사건으로 옥에 갇혔을 때 그 어머니는 “나는 네가 경기감사를 한 것보다 더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하면서 아들에게 용기를 심어주었습니다.
백범이 나라일에 전념하느라 9년 만에 어머니와 상봉한 자리에서도 ‘나는 이제부터 너라고 아니하고 자네라고 하겠네, 또 말로 책할지언정 회초리로 자네를 때리지 않겠네, 이유는 듣건데 자네가 군관학교를 설립하고 청년들을 교육한다니 남의 사표가 된 모양이라 그 체면을 보여주자는 것일세,“ 자식이 가고자 하는 길을 한없이 자랑스럽게 여겼던 어머니, 그 길이 비록 험하고 목숨이 위태로운 가시밭길이지만 백범의 어머니는 늘 격려와 용기를 일깨워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어머니를 닮아보시지 않겠습니까?
어머니의 책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자식의 정신과 영혼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자식사랑이란 곧 실천을 말합니다.
어머니가 직접 자녀의 몸과 마음을 보살피는데, 노동의 봉사를 전제하지 않는 이상 자녀를 감화시키는 어렵습니다.
노동과 희생은 모성애를 신성한 것으로 하는 조건입니다.
자식의 장래는 그 어머니의 노력에 따라 정해집니다.
어떠한 악인도 모성애로 무장한 어머니의 사랑 앞에서는 교화됩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그 삶의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유태 격언에 “신은 도처에 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현명한 어머니는 백명의 스승보다 더 많은 것을 자녀에게 가르칩니다.
내 아이를 믿으세요
초등학교 4학교인 호성이는 어느날 황당한 상황에 맞부딪쳤습니다. 음악수업을 하기 위해 반 아이들이 음악실에 간 사이 같은 반 아이가 가지고 있던 돈이 없어진 것입니다.
호성이는 그 시간 몸이 아파 교실에 혼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선생님이 동시에 호성이를 의심하게 된 것입니다.
절대로 자신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믿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호성이의 어머니가 학교에 호출되고, 호성이와 어머니는 나란히 선생님 앞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제가 호성이를 낳아 지금껏 키워온 엄마입니다. 저희 아이에 대해서는 이 세상 누구보다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호성이는 절대로 그럴 아이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이 모두 안 믿어도 저는 호성이를 믿습니다. 다시한번 잘 알아봐주세요.“
어머니의 단호함 앞에 선생님도 고개를 끄떡였고, 호성이는 눈물이 날만큼 어머니가 고마웠습니다.
결국 선생님은 다시한번 상황을 조사했고, 결국 그 돈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책상 틈에 끼여있어 발견되지 못한 것임을 밝히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한번쯤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어린 호성이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더없이 크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의 부모님만큼은 나를 믿어준다는 확신, 그런 확신은 자녀의 미래를 밝게 만듭니다. 믿음과 신뢰를 받고 성장하는 자녀가 잘못될 일은 결코 없습니다.
믿음은 인간관계의 기본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믿는 신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덕목으로 중요시했습니다.
하물며 부모된 사람이라면 내 자식을 믿으세요. 부모가 자식을 믿지 못하는데, 다른 어떤 사람이 내 자식을 믿을까요. 부모가 자식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어떠한 기대도, 어떠한 가르침도 의미가 없습니다.
내 생일날 부모님께 효도선물드리기
생일은 자신이 축하받기 보다는 자신을 낳느라 고생하신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날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입니까
가족 역할 바꾸어보기
한달에 하루쯤, 하루에 1시간쯤, 내가 아닌 다른 가족의 역할을 대신해 보세요. 서로 역할을 바꾸어 봄으로써 평소 체험하지 못한 가족 나름의 어려운 입장을 이해하고 자신이 왜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내 생일날 부모님께 효도선물드리기
매년 자신의 생일날, 정성스레 선물을 준비해 부모님께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생일 선물을 받는 것이 지극히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은 선물을 받기에 앞서 자신의 부모님에게 감사의 선물을 드립니다.
그리고 선물 속에 이런 카드도 동봉합니다.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이렇게 사람구실할 수 있게 해주신 부모님께, 늘 감사합니다. 매년 오늘이 되면 저는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해가 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나 되돌아봅니다. 저를 낳고 기뻐하시던 그때의 마음이 오랜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큰 기쁨으로 계속될 수 있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부모님, 감사합니다.
매년 맞이하는 생일은 자신이 축하받기 보다는 자신을 낳느라 고생하신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날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입니까.
우리의 옛조상들은 자신의 신체는 모두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이기에 머리카락 한올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몸을 건강하고 깨끗하게 단련 시키는데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가족 역할 바꾸어보기
오늘은 수영이네 가족이 각자 역할 바꾸기를 하는 날입니다. 3개월 전부터 하고 있는 이 역할 바꾸기는 수영이네 가족에게 새로운 행복을 안겨주었습니다. 늘 피곤함에 찌들어있던 남편(아내) 얼굴에 짜증대신 웃음이 생기기 시작했고, 묵묵부답 말수가 적었던 큰 아들도 수다쟁이로 변신중입니다. 항상 불만에 가득 찼던 엄마(아빠) 얼굴에 행복이 깃들기 시작한 것도 이 역할 바꾸기를 시작하고 부터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역할 바꾸기를 하기 전, 가족회의를 통해 각자 가족 중 내가 아닌 다른 한 사람의 역할을 하기로 정합니다. 다음은 자기가 맡은 역할이 집에서 하는 일 가운데 다른 가족이 이해하고 체험을 했으면 하는 일을 3가지 정도 선정합니다.
이렇게 선정된 일을 가족 역할 바꾸기로 한 날 실천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빠는 하루종일 설거지를 해보고, 엄마는 2-3시간을 꼼짝 않고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해봅니다. 각자 내가 아닌 상대방의 역할을 하는 동안 느끼는 점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 느낀점을 글로 써보기도 하고, 상대의 불편을 이해했으면 본래의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말없이 깨닫게 됩니다.
수영이네 가족은 이런 역할 바꾸기를 통해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이해하게 됐고, 자신의 역할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복잡한 문제와 갈등이 생기는 것은 각자 자기 생각만 하기 때문입니다. 내 입장, 내 생각만 주장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입장도 고려해보세요. 자녀를 무조건 꾸짖기 보다는 왜 그런 잘못을 했는지, 어떤 불만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늘 힘들어하고 짜증이 부쩍 늘어난 남편이나 아내의 모습에 속상해하기 보다는 얼마나 힘들까, 어떤 편안함을 원하고 있을까. 배려해보세요. 자녀는 부모님의 입장을 살피고, 부모는 자녀의 입장을 애정어린 눈빛으로 다시 한번 바라보세요. 짜증도, 속상함도, 미움도, 원망도 눈녹듯 사라집니다.
한달에 하루쯤, 하루에 1시간쯤, 내가 아닌 다른 가족의 역할을 대신해 보세요.
서로 역할을 바꾸어 봄으로써 평소 체험하지 못한 가족 나름의 어려운 입장을 이해하고 자신이 왜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장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부모 자랑 발표회
부모에 대한 효행심은 자녀가 부모님께 자긍심과 긍지를 가질 때 우러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친절은 작고 사소하지만 사람살이의 최대 덕행이다.
친절이란 남에게 칭찬을 받을 만한 대단한 가치있는 행동만을 말하기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생길 수 있는 사소한 배려에서 나오는 행동을 말합니다.
내 부모 자랑 발표회
생각을 못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안해서 행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우리주변에는 참 많이 있습니다. 생각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해서라면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지요. 자녀들에게 부모를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가족 중심의 이벤트를 계획해보세요.
늘 함께 생활하며 늘 같이 하기에 잊고 살았던, 늘 곁에 있어서 소중함을 몰랐던 부분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이 내 부모에 대해 별다른 자랑거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깊이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부모에 대한 효행심은 자녀가 부모님께 자긍심과 긍지를 가질 때 우러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혹은 학교에서 학급에서 내 부모 자랑 발표회를 개최할 수 있다면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난감해 한다면 부모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느꼈을 때, 부모님이 가족을 위해 애쓰시는 일, 가족과 함께 보내는 즐거움, 어려움을 이겨낸 감동적인 이야기, 할아버지, 할머니께 효도한 이야기 등으로 나누어 생각하게 해주세요.
평소 알 수 없었던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을 엿 볼 수 있답니다. 부모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아이들 앞에 당신은 몇점짜리 부모인가요.
친절은 작고 사소하지만 사람살이의 최대 덕행이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몰라 헤맬때 친절한 누군가의 뜻하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세요.
상냥한 말투,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미소, 내 어려움을 자신의 어려움인양 잠깐이나마 동참해 주는 여유.... 내게 큰 돈을 준 것도 아니고, 내 목숨을 살려준 것도 아니지만, 세상이 따뜻하게 느껴지고, 가슴에 큰 파문이 생길만큼 잔잔한 감동이 밀려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친절을 베풀어준 이는 오랫동안, 아니 평생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
낯설기만 했던 도시의 이미지도 친절한 이의 미소처럼 따뜻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친절은 그런 것입니다.
친절이란 남에게 칭찬을 받을 만한 대단한 가치있는 행동만을 말하기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생길 수 있는 사소한 배려에서 나오는 행동을 말합니다.
그래서 친절은 사람이 하는 행동 중 가장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나를 비롯하여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덕을 베푸는 일입니다. 친절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상대의 입장에 서서 편하고 기분좋은 행동과 말을 하는 것, 그런 여유로움으로 상대도 기쁘고 나 역시 덩달아 기쁜 마음이 되는 것이 바로 친절입니다.
지극히 작고 사소한 내 친절이 세상을 얼마나 밝게 하는지, 내 주변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지금부터라도 실험해 보세요. 친절은 사람살이의 최대 덕행이랍니다.
효행 십훈
*하나, 건강하라
옛말에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 감히 훼상하지 않으니 효의 시작이니라.”고 하였다. 부모님이 주신 육신을 건강하게 보존해 나가는 것이 자식 된 도리의 시작이다.
*둘, 부모를 공대하라.
물질적인 봉양만이 효가 아니다. “부모를 공대하지 아니하고 봉양만 하는 경우는 제 집에 키우는 가축에게도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님을 공경하여 존댓말을 사용할 것이며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는 행위를 말아야 한다.
*셋, 출필고 반필면(出必告 反必面)-드나들 때는 반드시 인사를 하라.
집을 나갈 때는 어디에, 왜, 언제까지 다녀오겠다고 아뢰고, 다녀와서는 잘 다녀왔다고 얼굴을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부모의 걱정을 덜어 드리는 일이다.
*넷, 밝은 얼굴과 공손한 말씨로 부모를 대하라.
옛말에 색난(色難)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님 앞에서 얼굴 색을 밝게 가꾸기란 쉽지 않지만, 아프고, 짜증나고, 화나고, 슬픈 얼굴로 부모님을 대하는 것은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는 일이다.
항시 맑고 밝으며 부드러운 얼굴과 말씨로 부모를 대하면 부모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다섯, 자기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자기 성은 조상에서 나온 것이며, 이름은 부모께서 주신 것이니, 자기 이름을 더럽히는 것을 부모와 조상님을 욕되게 하는 짓이라 불효(不孝) 중에 불효(不孝)이다. 이름을 떨쳐 부모를 영화롭게 못할 망정 욕되게는 하지 말라.
*여섯, 거짓말로 부모를 속이지 말라.
거짓에서 불신이 생기면 이는 곧 가정 불화의 시작이다. 거짓은 마약과 같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를 망치는 병으로 이끈다. 항시 진실을 가까이 하여 밝은 행동에 힘써라.
옛말에 “참되면 밝고, 밝으면 복되다.”(誠0明, 明0福)고 하였다.
*일곱, 집안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부모의 수고를 덜어 드려라.
건강한 육신을 갖고 부모에게서 얻어먹기만 할 것인가? 옛말에 “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를 말라.(一日不作一日不食)”는 말도 있듯이 제방은 스스로 치울 것이며, 부모의 일도 거들고 도와 드려라.
*여덟, 형제간에 싸우지 말며 형을 공경하고 아울를 아끼며 서로 화목하라.
형제는 한 부모의 배에서 나왔다. 형을 받들고 아우를 아끼는 것은 곧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길이다. 또한 한 배에서 나온 형제끼리 싸우는 일은 부모께 큰 슬픔을 드리는 일이다.
부모를 슬프게 하는 자는 불효자이다. 옛말에 “사람의 죄 3천여가지 중 가장 큰 죄는 불효이니라.”하였다. 부모님께 화목의 기쁨을 드려라.
*아홉,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옛말에 “아버지는 아들의 덕을 자랑하지 말 것이며, 자식은 어버이의 허물을 말하지 아니할지니라.”고 하였다. 자신의 처지를 부모 탓으로 돌리지 말 것이며, 비록 부모님의 허물이 있을지언정 원망하지 말며 공손히 아뢰고 남에게는 결코 말하지 말라.
*열, 자기 하는 일에 충실하여 부모를 기쁘게 하라.
매사에 충실하면 이로써 성공할 것이다. 설령, 이름을 세상에 떨치지는 못하더라도, 큰 효도가 될 것이다. 옛말에 “몸을 세워 이름을 떨치니 이로써 부모도 드러난다. 이것이 효의 마침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