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사법살인’ 조봉암 선생, 반세기만에 무죄 입증
법원 ‘사법살인’ 인정… 죽산 반세기만에 ‘복권’
입력 :2011-01-21 00:00ㅣ 수정 : 2011-01-21 00:38
죽산 조봉암 무죄 선고 의미·판결 근거
사법부가 반세기 만에 ‘사법살인’을 인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시환)는 20일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죽산(竹山) 조봉암(1898~1959)에 대한 재심에서 국가변란과 간첩 혐의에 대해 전원일치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따라 진보당을 창당한 조봉암은 사형 집행 52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게 됐다.
▲ 1958년 간첩 혐의 등으로 구속된 조봉암이 포승줄에 묶인 채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걸어가고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재판부는 국가변란 혐의에 대해 “진보당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결성됐다고 볼 수 없다.”며 “진보당의 평화통일론이 북한의 위장평화통일론을 따르는 것이라고 볼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간첩 혐의에 대해서는 “유일한 직접 증거인 육군특무부대 증인이 상급 법원에서 진술을 번복하는 등 신빙성이 없고, 증인의 진술은 일반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육군특무부대가 증인을 영장 없이 연행해 수사하는 등 불법으로 확보해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진보당을 창당한 죽산의 사형은 당시 이승만의 정적 제거 차원이라고 해석한 셈이다.
대법원이 죽산 조봉암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것은 1959년 당시의 사형 선고와 집행이 사실상 ‘사법살인’이었음을 고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판결은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이후 ‘어두운 과거’를 바로잡겠다는 뜻이 반영된 것으로 사법부의 과거청산 결정판이라고 해석하는 견해가 많다.
한편 재판부는 조봉암의 또 다른 혐의인 불법무기 소지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했지만, “재심에서 공소사실 대부분이 무죄로 밝혀졌으므로 뒤늦게나마 그 잘못을 바로잡고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직접적으로 ‘사과’란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반세기 만의 무언의 사과’라는 분석이다.
독립운동가로 제헌의원과 국회부의장, 초대 농림부 장관 등을 지낸 조봉암은 진보당을 창당하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대항마로 부상했지만, 1958년 간첩죄 등으로 기소됐다. ▲북한의 주장과 같은 평화통일을 정강정책으로 하고 대한민국을 변란할 목적으로 진보당을 결성했다는 것(국가보안법 위반) ▲육군 특무부대 공작요원 양이섭을 통해 자금 원조 등의 북한 지령을 받았다는 것(간첩죄) ▲허가 없이 권총 1정과 실탄 50발을 소지한 것(군정법령 5호 위반) 등이 그가 받은 혐의다.
1심에서는 징역 5년이 선고됐지만 2심과 3심에서 각각 사형이 선고됐다. 1959년 7월 30일 재심 청구는 기각됐고, 다음날 사형이 집행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죽산의 사형 집행을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비인도적, 반인권적 행위이자 정치탄압”이라고 규정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황희석 변호사는 “반세기 만에 진실을 밝혔지만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느낌”이라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사법살인’ 조봉암 선생, 반세기만에 무죄 입증
2011-01-21 08:55:08
[뉴스엔 김종효 기자]
이승만 정권의 희생자로, 또 헌정사상 첫 '사법살인'의 희생양이 된 죽산(竹山) 조봉암 선생이 반세기만에 누명을 벗고 무죄를 입증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월 20일 조봉암 선생에 유죄 및 사형을 내린 판결을 뒤집고 13명 전원 의견일치로 무죄를 선고했다. 1959년 조봉암 선생에 사형이 집행된지 무려 52년만이다.
재판부는 "조봉암 선생이 만든 진보당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평화통일론을 앞세워 북한에 동조했다는 공소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진보당의 평화통일론이 북한의 위장평화통일론을 따르는 것이라고 볼 증거도 없다"며 "간첩혐의 역시 증인이 진술을 번복했고 그 증인도 당시 육군특무부대가 불법으로 확보해 믿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죽산 조봉암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이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꼽히던 조봉암 선생은 이승만 정권 당시 평화통일론과 사회민주주의를 강령으로 한 진보당을 결성했다.
이에 대해 부패 사건 등으로 민심을 잃은 이승만 정권은 조봉암 선생을 간첩 혐의로 구속한 뒤 재판부의 결정에 따라 지난 1959년 사형을 집행했다.
그러나 지난 2007년 진실사회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이승만 정권이 정치계에서 적을 제거하기 위해 조작했다는 결론을 내렸고 조봉암 선생의 유족은 재심을 청구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재심을 결정했고 반세기만에 무죄를 증명하며 '무언의 사과'를 했다.
김종효 phenomdark@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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