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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길 이야기(9)-회재로 ▲ 회재로는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에서 지석천을 건너 서창방면 좌측 도로에서 바로 시작해 고싸움놀이테마파크, 전평제, 서부농수산물도매시장, 풍암호수, 국제양궁장, 백운광장 고가도로가 시작하는 대남대로를 지나 프라도호텔 위 사거리에서 독립로를 만나면서 끝이 난다. 1. 회재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도롭니까? 그 이유는 이 도로가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에서 시작해서 프라도호텔 위 사거리까지 연결되는 꽤나 긴 도로이기 때문이죠. 또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또 하나의 통로이기도 합니다. 회재로는 바로 박광옥 선생의 호에서 따온 것입니다. 2009년 행정안전부 장관이 고시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신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있으면서 고경명(高敬命)·김천일(金千鎰)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고향의 의병도청(義兵都廳)에서 군대의 장비와 양식을 조달했습니다. 또 회재는 매월동 회산(懷山)에서 살면서 매월마을과 벽진마을 주민들의 물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개산 남쪽의 물을 끌어들여 전평제를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고요. 회재는 이 방죽에 인공섬을 만들어 수월당을 짓고 기대승(奇大升)·박순(朴淳)·이이(李珥)·노사신(盧思愼) 등과 교유했다고 합니다. 전평제는 매월방죽으로도 불리고 있는데요. 최근엔 시민들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러 많이들 찾고 있지요. 회재는 나주목사로 재임하다 1593년에 운명했습니다. 서창 벽진동(碧津洞)에 세워진 의열사(義烈祠)에 제향되었으며, 운봉(雲峰)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도 제향되었고요. 의열사는 뒤에 벽진서원으로 고쳐졌습니다. ▲ 전평제는 원래 450여년전 회재가 1568년 그의 나이 43세 때 당시 광주 선도면 개산(蓋山), 현재 매월동 회산(懷山)에서 살면서 매월과 벽진마을 주민들의 물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개산 남쪽의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기 위해 방죽을 막아 개산방죽(介山防築)이라 이름한데서 유래하고 있다. 4. 회재로에는 풍암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 많죠? 어떻습니까?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또 원광대 한방병원을 조금 더 지나면 2015년 광주하계U대회 양궁경기가 펼쳐졌던 국제양궁장이 나오는데요. 이곳도 주월동 주민들이 운동하러 많이 찾고 있습니다. 무리지어 늘어선 비닐하우스 군락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어 이 길은 충렬공 고경명(忠烈公 高敬命)을 모시고 있는 포충사로 가는 포충길과 고싸움놀이테마파크, 부용정칠석동은행나무로 갈 수 있는 다른 길들과 만났다 헤어집니다. 조금 더 가다보면 용두동 지석묘로 가는 길이 나오고, 조선 중기 문인이며 의인이었던 박상의 호를 따 붙인 눌재로와도 만납니다. 여기까지 펼쳐진 시골 풍경은 전평제에서부터 도회지 풍경으로 변하고요. 서부농수산물도매시장, 시청자미디어센터, 서구 신흥개발지역인 풍암1지구, 풍암저수지, 풍암생활체육공원, 풍암2지구, 국제양궁경기장 등도 회재로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들입니다. 번지수를 구간별로 안내하고 있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지역 주민들이 회재로라는 도로명 주소는 알아도 왜 회재로라고 이름을 지었는지, 회재가 뭐한 사람이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재는 누구인지 등에 대해 설명하는 안내판을 만들어 놓으면 지금보다는 좀 더 많은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출처] 광주의 길 이야기(9)-회재로|작성자 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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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반갑읍니다~오늘도 즐겁고 건강 하시고 행복한 시간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