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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煉獄; Ecclesia purificans; purgatory)은 세상에서 죄를 풀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불에 의해서 죄를 정화한다고 하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상태 혹은 장소를 말한다.
대죄(大罪)를 지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지만, 대죄의 사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아직 잠벌<暫罰; 지옥의 영벌(永罰; 영원한 벌)에 대조되는 지상과 연옥에서 잠정적인 기간 동안 겪는 잠정적인 벌>이 남아 있거나 소죄(小罪)를 지은 의인의 영혼은 그 죄를 정화함으로써 천국에 도달하게 된다.
바로 이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정화를 필요로 하는 상태 및 체류지가 연옥이다.
가톨릭의 연옥 도리는 하느님의 성성(聖性), 공의(公義), 예지, 자비를 명백히 보여주며, 인간을 절망과 윤리적 경솔함으로부터 지켜주고, 더군다나 죽은 사람도 도와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위로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고대와 중세의 카타리 파나 발두스 파 등등 이단자들은 죽은 자를 위한 전구나 연옥의 존재를 부정하였고, 마르틴 루터는 "연옥론 철회"(1530)에서 연옥을 부정하였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연옥에 대한 가르침을 공적으로 정의내린 것은 리옹 및 피렌체의 합동 공의회(1274년 및 1439년), 그레고리오 13세 및 우르바노 8세의 신경,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에 반대하여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에서였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의 유한한 삶 속에서 인간의 자유를 시험하는 기간이 종료되고, 내세에서는 더 이상 공덕을 쌓을 수 없기 때문에, 연옥의 영혼은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고통을 즐겁게 수용함으로써 죄에 대한 유한적인 벌을 치루면 확실하게 정화되는 것이다.
연옥에서 겪는 고통은 지옥에서처럼 실고(失苦)와 각고(覺苦)가 있다.
실고(失苦; poena damni)는 하느님을 상실하고 잃어버린 고통을 말한다. 지선(至善)하시고 전지전능하시고 생명과 사랑이신 하느님과 격리되어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대죄로 말미암아 겪는 지옥 영벌(永罰)의 가장 크고 영원한 고통이며, 연옥은 이 고통이 잠정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각고(覺苦; poena sensus)는 말그대로 감각적으로 느끼는 고통이다. 마태오 25장 41절의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처럼 뜨거운 불 속에서의 고통이다. 신학자들은 지옥이나 연옥에는 세상의 불과는 전혀 다른 불, 초자연적 불이 실제로 있다고 말한다. 다만 연옥은 지옥이 영원한 불의 고통인 것에 비해 잠정적이므로 이 고통이 끝나면 천국으로 가기에 희망적이라고 볼 수 있다.
연옥의 고통이란 모든 사람에게 동일 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죄에 상응한다. 그 고통의 기간이나 엄중함도 지상 교회의 신자들의 기도와 선업(善業) 즉 신자들의 전구에 의해 단축 또는 경감된다.
그리고 연옥의 영혼들은 하느님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하고 천국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하므로 고통이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흔들리게 하는 것은 아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연옥의 영혼이 지상의 우리들을 위하여 기도하지는 못하며, 또한 지상의 일에 대한 지식을 갖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공심판 뒤에 연옥은 존재하지 않게 되지만, 만일 공심판이 닥친다면, 하나 하나의 영혼에 있어서의 그 벌로부터의 온전한 해방은 형벌의 질적 차원인 강도(세기)에 의해 결정되리라고 본다.
연옥을 암시하는 성경 구절은 마카베오 하권 12장 40~45절, 집회서 7장 33절, 토빗기 4장 17절, 마태오 복음 5장 22~26절과 12장 32절, 루카 16장 19~31절, 테살로니카 전서 4장 13~18절, 필리피 2장 10절 이하, 묵시록 6장 9~11절이다.
마카베오 하권 12장 40~45절에는 전사자들을 위해 속죄 제물을 바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죽어서도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곳이 있기에 이렇게 죽은 이들을 위한 속죄 제물을 바칠 수 있는 것이지, 죽은 이들이 이미 지옥에 있다면 이러한 속죄 제물을 바치고 죄를 완전히 용서해 달라고 탄원하며 간청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2마카12,42.44.45참조).
집회서 7장 33절에는 "살아있는 모든 이에게 호의를 베풀고 죽은 이에 대한 호의를 거두지 마라."는 말씀이 있다. 바로 여기서 죽은 이들에 대한 호의는 바로 연옥 영혼들에 대한 애덕의 기도와 속죄의 제사를 의미한다고 본다.
토빗기 4장 17절에는 "의인들의 무덤에는 빵을 풍성하게 내놓되 죄인들에게는 주지 마라."는 말씀이 있다. 이미 지옥간 죄인에게는 빵을 내놓지 말고, 정화의 과정을 마치면 천국에 갈 의인들에게는 빵을 풍성하게 내놓아 제사를 지내라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5장 25~26절에는 "너를 고소하는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는 말씀이 있다.
마태오 복음 12장 32절에는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서 내세에서 용서받을 수 있는 죄와 장소(연옥의 존재)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계시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루카 복음 16장 19~31절의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에서의 부자가 있는 장소, 테살로니카 전서 4장 16절의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라는 구절, 필리피서 2장 10절의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라는 구절, 묵시록 6장 11절의 "자기들처럼 죽임을 당할 동료 종들과 형제들의 수가 찰 때까지 조금 더 쉬고 있으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는 구절들이 연옥을 암시하는 말씀들이다.
위에 열거된 구약의 성경들은 원문인 히브리어 원본이 없고, 희랍어로 쓰여진 말씀이다. 그래서 개신교는 정경(Canon)으로 분류하지 않고 외경으로 취급하며, 우리 가톨릭만이 제2정경(7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말씀들이다.
그리고 오상의 성 비오 사제 이야기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성인 성녀들의 묵시속에서 연옥의 실재는 너무나 잘 드러나 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분렬을 일으킨 1517년 전까지 가톨릭에서 믿어온 교리가 갑자기 뒤집어져서 물구나무를 서는 법은 없다.
개신교의 이신득의(以信得義; 믿음으로써 의인으로 인정받는다)나 칭의(稱義; 실제로 의롭지 않은데 의롭다고 불려지는 것)교리로 믿기만 하면 천국 간다는 교리는 겉으로 보면 그들의 믿음이 대단한 것으로 비쳐지게 하지만, 어쩌면 너무나 영적 오만의 소치일 수 있다.
벌레만도 못한 죄인이 감히 무한히 완전하시고 거룩함 자체이시고 절대 선, 절대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 대전에 스스로 구원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 십자가 우편의 강도(Dismas라는 이름으로 불려짐)처럼 죄를 지은 인간이 하느님편에 서서 하느님 중심으로 뉘우치는 상등통회가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의 벌이 무섭고 두려워서 자기 중심으로 뉘우치지 자신의 죄 때문에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생각해서 하느님 중심으로 뉘우치는 인간은 드물기 때문이다.
마치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알아 듣기가 쉽지 않고 자신이 혼인하여 자식을 양육하면서 자신의 부모의 마음을 알아듣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우리 불완전하고 나약하고 더러운 인간들은 거룩하시고 존엄하시며 무한히 완전하신 하느님 대전에 나아가려면 정화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데, 이러한 정화의 장소인 연옥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려야 한다.
개신교에서 자신들이 예수님을 믿기만 믿으면 천당간다고 아무리 자기식으로 강력하게 주장하여도, 고백성사 제도가 없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죄사함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그들이 유일하게 죄사함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은 하느님 중심으로 뉘우치는 상등통회뿐이다.
그래서 자신이 죄짓고 자신이 눈물뿌려 스스로 이 정도 했으면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개신교의 믿음 생활인데, 도대체 그렇게 해서 용서받았다는 근거가 어디 있으며, 또 그처럼 스스로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은 누가 주었으며, 어디에서 그런 권한이 왔는지를 밝혀야만 하는 것이다.
개신교는 아무리 자신의 생각이 옳다하여도 자신의 믿음과는 달리 죽으면 대다수가 이미 존재하는 연옥을 거쳐야만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것이 진리이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한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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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먼저 간 영혼들을 위한 기도와 연미사 봉헌은 이 땅에서
다하지 못한 애덕과 자선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멘~!^^
연옥이 있음이 정말 감사합니다
연옥영혼을 위해 기회될때마다
전대사 양도를 성실히 해야겠어요~~!!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저희 부모님이 고백성사를 보지 않아서 너무 속상해요.
말씀 감사합니다.
연옥이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옥에 가기도 어정쩡하고..그렇다고 직천국 할수 없는건 너무 자명하고...
연옥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ㅎㅎ 그곳서 받을 벌도 무섭긴 하지만요..
지금 이 시대는 기본적인 교리에 관심없고
외면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어 있고,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과 성전을 기초로 하느님의 계시진리를
제대로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진실과 거짓,
진리와 오류의 첨예한 대립만이 남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고, 사람을 통한 사탄과 그 졸개들의
훼방과 분렬을 의미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교회안에서 교묘하게 정통적인 교리를 변질시키고
왜곡하는 세력들과 사상적 흐름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진리를 깨닫는 능력인 이성에 가라지를 뿌려
진리 자체이신 주님과 교회를 파괴하는 것에 대한
깨어있음인 것입니다.
깨우쳐주셔서 감사합니다 . ^0^
아멘.
"그것이 진리이고,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한 믿음"~~아멘.
감사합니다.
찬미 예수님!
" 그들이 유일하게 죄사함으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은 하느님 중심으로 뉘우치는 상등통회뿐이다."
우리에게 죄 사함의 용서를 받을수 있는 고백성사를 세워주신 거룩하시고 살아계신 주님께 무한 감사와 찬미와 영광올리나이다~아멘~!
진리이신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아멘
바르고 정![확](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56.gif)
하게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을 소망합니다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꼭 훌륭한 성인이 되실 것을 믿습니다 . 영육간에 건강하시길 간구드립니다 .![^0^](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0.gif)
연옥이 아닌 직 천국
신부님
감사합니다 .
아멘,,감사합니다.
아멘.
저도 깨우쳐주셔서감사합니다 ...
![잇힝](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127.gif)
. ![잇힝](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127.gif)
![잇힝](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127.gif)
감사합니다 . 아멘,
어떠한것도 침범할수 없도록 깨어 있어야하겠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감사합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저의 죄 때문에 아파하시는 하느님을 생각하면서,![^.^](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30.gif)
회개하고 성찰할 것이 무엇인지를....
감사드립니다.
연옥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심에 감사드려요.. 연옥의 고통에 실고와 각고가 있다니 생각만해도 무서워요.
의인이 되는 삶으로 주님의 오른쪽에 앉고 싶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