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린루스카
제주 도심에서 일박을 하고 두 번째 날, 커피템플 김사홍 바리스타의 추천으로 삼도동에 위치한 그린루스카를 찾았다. 그린루스카는 하소로커피, 카페 이미와 같은 쟁쟁한 업체에서 근무했던 윤명수 바리스타가 창업한 신규 매장이다.
그린루스카는 오래된 구축을 리모델링했는데 제주 구축의 느낌을 잘 살렸고, 필름카메라와 빈티지 아라비아 커피잔 같은 매장 소품들도 매력적이다. 그린루스카의 추천 커피는 카페페퍼밀크. 귀리 우유를 베이스로 한 락토프리 밀크 커피에 고소한 크림, 아자드힌드 농장의 유기농 흑후추로 만들었다.
특이하게 로부스타 커피 블렌딩이 베이스이다. 로부스타 커피는 아라비카 커피에 비해 과일, 꽃과 같은 산미와 향미가 부족하지만, 강인한 질감과 임팩트의 강력한 효과를 선사한다. 얼마 전에 있었던 한국 바리스타 챔피언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커피리브레 소속의 김명근 바리스타가 파인로부스타를 베이스로 하는 커피를 선보여서 크게 화제가 되었다.
그린루스카의 언더독 로부스타 블렌딩에 이어서 코스타리카 라스라하스 농장의 싱글오리진 커피를 브루잉으로 마셨다. 그린루스카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는 브루잉 커피 전문점이다. 정성 어린 바리스타의 브루잉과 매장 내부를 살펴보다 보니, 커피를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자두를 연상시키는 코스타리카 브루잉 커피의 섬세하고 샤프한 향미가 입안 가득 맴돌았다. 제주 원도심의 새로운 스페셜티 커피 매장, 그린루스카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린루스카
[3] 팩토리얼파크(팩파)
<Wicker park>라는 영화를 좋아한다(국내 개봉 제목은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 특별한 내용이 아니고 배우들의 연기도 평범하지만, 영화의 분위기, 주인공의 느낌, 파크라는 이름의 어감이 좋았다.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시카고의 위커파크는 연트럴공원과 비슷한 느낌이다.
작고 아담하지만, 개발이 덜 된 듯한 느낌과 좋은 스페셜티 커피 매장이 많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팩토리얼파크는 전주 사람 강평화 씨와 제주 사람 길영배 씨가 함께 운영하는 제주 최고의 에스프레소 커피 바이다. 매장의 위치는 제주 소통문화센터가 멀지 않은 원도심. 제주 공항에서 315번 버스를 타고 15분을 이동해서 팩토리얼 파크에 도착했다.
팩토리얼 파크는 구도심의 깔끔한 건물 1층에 있다. 새벽 비행기를 탄 덕택에 오픈런으로 매장에 도착했다. 매장 내부 조명이 많지 않은 조용한 분위기였지만, 생각보다 식물들이 많아서 조금 놀랐다. 팩토리얼의 식물을 차분히 살펴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커피인들에게 추억 같은 페이마. 독특한 그룹헤드 덕택에 이탈리안 스타일의 에스프레소가 쫄깃하게 추출이 된다.
팩토리얼 파크의 추천 메뉴는 기본 에스프레소. 쫄깃하고 담백하고 임팩트가 강하다. 두 번째로는 창작메뉴 서핑 플레이를 추천한다. 서핑 플레이는 팩토리얼 파크의 플레이 커피 블렌딩을 베이스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머스캣과 레몬으로 블렌딩한 티 슬러시를 시원하게 추가한다. 쌉싸름한 커피의 바탕색에 파도가 들어오는 느낌과 함께 청량감이 가득하다. 식후 입가심으로 마셔도 좋고 여러 잔의 커피를 마신 후에 정리하는 기분으로 즐기기에도 좋다.
이외에도 에스프레소와 레몬의 조합 레몬로마노도 훌륭하다. 로마노라는 단어는 식수 상황이 좋지 않던 중세 시대, 생수에 레몬을 띄워서 마시는 로마스타일(Romano)이라는 표현에서 시작되었다. 칵테일 음료 업계에서는 다양하게 레몬을 첨가한 음료를 로마노라고 통칭한다. 레몬이 담겨있는 커피를 마시고, 에스프레소 바닥의 설탕과 레몬을 함께 먹으면, 단맛, 신맛, 쓴맛이 강력하게 매력적으로 조합된다.
팩토리얼은 제주 원도심의 에스프레소 전문 커피 바로 현지에서 인기가 매우 높다. 그리고 이건 진짜 비밀인데, 오전 11시까지는 모든 커피 음료를 커피 뷔페 한정으로 무한으로 마실 수 있다. 파이브 스타 호텔 조식 부페의 스페셜티 커피 에스프레소 버전이다.
팩토리얼파크(팩파)
[4] 커피라이트 로스터스
커피라이트는 원도심에서 가장 인상적인 로스팅 스페셜티 커피 매장이다. 커피라이트라는 이름은 커피가 길을 이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커피의 향미를 잘 발현하는 라이트 로스팅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커피라이트에 들어섰을 때 매장의 분위기가 참 좋았다. 매장의 바이브는 오너와 구성원의 취향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스페셜티 커피 산업에도 컨설턴트에 의해 기획된 개성 있는 전문 매장들이 많아졌지만,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어렵게 찾아간 매장이 타인에 의해 기획된 컨셉이라면, 뭐랄까? 아쉬울 때 있다. 커피라이트의 거친 듯하면서, 깔끔하고 섬세한 바이브는 인위적인 느낌이 없어 좋았다.
커피라이트에서 페루 게이샤와 코스타리카 커피를 마셨다. 게이샤 커피는 파나마의 에스메랄다 농장에서 시작한 강렬한 개성의 과일과 꽃과 같은 와인과 같은 복합적인 부케가 명확한 커피이다. 통상적으로 페루의 커피는 파나마보다 상대적으로 향미의 강도가 약한데, 2023년 페루의 게이샤 커피는 향미와 단맛, 밸런스까지 모두 훌륭하다.
커피라이트의 페루 게이샤 커피는 올해 마신 페루 커피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무산소 계열의 코스타리카 커피는 강렬한 향미와 달리 애프터가 편안하고 깔끔해서 좋았다. 커피의 지향점과 바리스타의 추출이 절묘하게 조합된 느낌이었다.
이외에도 커피라이트 바리스타의 근무하는 자세와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새삼스럽지만, 스페셜티 커피는 손님과 카페의 교감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고민 끝에 멋진 카페를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
커피라이트 로스터스
이번 제주 일정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동선을 계획했다. 렌터카 예약과 반납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고, 사시사철 멋진 제주의 풍경을 느끼면서 이동하는 재미가 좋았다. 뜨거워진 지구를 잠시나마 식힐 수 있는 작은 실천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