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보고 나서 줄거리를 이야기 해줄 만한 가치도 없다면서 완전 이상한 영화라며 혹평을 했던 영화라서 특별하게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던 영화를 얼마 전 아는 동생을 통해서 파일로 받게 됐다. 이 동생 역시 기대를 하고 봤지만 느끼는 바가 없어, 그냥한번 봐!~~이런 정도로!~~
허... 어떻기에...
방구석에 있는 컴퓨터를 통해 혼자서 가볍게 보기 시작한 영화 감상은 어느 순간 나를 극도로 집중하게 만들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나의 일면들을 상징하고 있는 듯했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나와 인물들을 동일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는 등장인물들의 성격 파악과 그 캐릭터들에 동화될 수 있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물론 영화는 어떤 상징성을 위해서 인물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묘사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일상의 사람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일상의 우리들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이 비슷한 부분을 잘 살려서 이해한다면 영화 속 캐릭터들과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특히나 주인공 ‘상현’에게 나를 많이 발견하게 됐던 것 같다.
중심이 되는 인물 ‘상현’은 신부로 등장한다.
‘상현’은 성직자이기 때문에 ‘성직자로서 옳은 것’이라는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좋은 일’하기 위해 백신 개발 실험에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 외는 기도문은 좀 충격이지만 ‘상현’이라는 인물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허락하소서. 살이 썩어가는 나환자처럼 모두가 저를 피하게 하시고, 사지가 절단된 환자와 같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하시고, 두뺨을 떼어내어 그 위로 눈물이 흐를 수 없도록 하시고, 어깨와 등뼈가 굽어져 어떤 짐도 질 수 없게 하소서. 머리에 종양이 든 환자처럼 올바른 지력을 갖지 못하게 하시고, 영원히 순결에 바쳐진 부분을 능욕하여 어떤 자부심도 갖지 못하게 하시며, 저를 치욕 속에 있게 하소서. 아무도 저를 위해 기도하지 못하게 하시고,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만이 저를 불쌍히 여기도록 하소서.”
이로 인해 ‘상현’은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지만 뱀파이어의 피가 수혈되면서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이때부터 상현은 자신 스스로 자제할 수 없는 욕구적은 부분들로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피를 섭취해야만 하고, 성적인 쾌락을 갈구하게 된다. 하지만 성직자였던 ‘상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다. 살인을 하지 않고 피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자학을 해가면서 성적인 부분을 이겨내려고 하지만 결국 친구의 아내 ‘태연’을 사랑하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상현’에게 태연은 가정폭력을 당하는 불쌍한 여인이고 그가 구해줘야 할 사람이라는 어떤 윤리적 명분은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러니깐 불가피하게 뱀파이어가 되기는 했지만 뱀파이어로서도 윤리적 삶을 지켜나가겠다는 상현의 의지가 엿보인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어떤 종교를 갖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하는 식의 나만의 룰같은 게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나의 '신념'이라고 명명하고 최소한 그 틀에서는 벗어난 생활을 해서는 안된다는 거였다.
가령, 나는 이성을 추스리지 못할 만큼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당시에 내가 보기엔 친구들이 술취한 모습들이 너무 보기 안좋았고, 나에게 저런 모습은 도저히 용납되서는 안되는 것이였고, 용납할 수도 없는 모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대부분이 순간의 쾌락을 위해서 후회할 일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내용들이거나, 남들에게 보여질 나에 대한 이미지 관리적 부분이였다. 삶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내동댕이 쳐서 깨버린 것들이 이 신념들이기도 했지만 한 동안은 나도 영화 속 상현처럼 '나를 파괴할 권리'(당시엔 좀 충격적으로 봤었던 기억이 있는 영화 제목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일부분)를 철저하게 무시하며 살아 갔었던 적이 있었다.
상현이 갑자스럽게 뱀파이어가 되어 그 동안 자신에게 없었 던 다른 일면들이 들어 나게 되면서 혼란스러움을 겪듯이 그리고 그 속에서까지 쉽사리 일전의 자신의 윤리적 신념을 버릴 수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나의 새로운 내면을 발견하고 혼란스러워 하던 때가 있었다. 특히 이성에 대해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기는 감정적인 부분들은 한 동안 나를 무척 힘들게 했었다. 나중에는 더 발전해서 인간에게 성(性)이 어떤 의미인 것인지에 대한 생각과 나에게 그것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까지 하게 되어었다. 사실,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로 마음 속 한켠에 내려 놓은 상태이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가서 상현은 태연을 사랑하게 되면서 성직자 생활을 포기한다. 그리고 태연을 폭력 속에서 구해 내고자 자신의 뱀파이어적 힘을 이용해 태연의 남편인 친구를 죽이게 되고, 친구의 어머니 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결국은 전신 마비가 와서 아무런 의사표현도 할 수 없는 친구의 어머니와 태연, 상현은 한 집안에서 살게 된다.(아들의 죽음의 원인을 알았지만 아무런 표현도 할 수 없는 어머니의 눈빛 연기는 꽤 괜찮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우연히 태연의 말실수로 상현은 태연이 가정폭력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뱀파이어로서라도 자신이 지켜보려 발버둥치며 노력했던 윤리적 신념을 무너트려 버린 태연에게 화가 나서 태연을 죽인다. 그렇지만 상현은 그에게 남은 전부인 태연을 차마 죽이지 못하고 자신의 피를 나누면서 다시 살리게 되고 태연 또한 뱀파이어가 되게 된다.
여기서 잠깐 태연은 어떤 인물인가 생각해 볼만하다. 초반부엔 가정이라는 감옥 속 갇혀 자유를 갈망하는 아련한 여인이였다면 후반부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태연의 본질은 꽤나 놀라웠던 것 같다. 고아가 된 태연을 길러주고 결국 자신의 며느리로 받아들인 엄마이자 시어머니와 바보스럽지만 순수한 남편 속에서 지내던 태연이였다. 그러던 그녀가 남편의 친구이자 신부인 상현과 불륜을 저지르고 결국 남편을 모함해서 죽이게 까지 만든다. 이 모든 것이 상현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 태연은 상현이 잠시 사라진 사이에 또 다른 남자와 쾌락을 즐기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알 수 있다. 그럼 태연은 돌 맞아 죽어 마땅한 색(色)에 미친 여인인가? 태연의 욕구 불만의 정체는 무엇인가? 태연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부모에게 버림 받아 양모에게 키워졌고 평생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야 한다는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었다. 자신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만의 상태에서 태연은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얽매고 있는 존재들을 늘 제거해 버리고 싶었을 것이고 결국 그 것이 상현을 통해 이뤄낸 것이다.
나 또한 태연과 같이 '넌 막내라서 늘 편하게 받고만 자랐어!'라는 이야길 가족들로부터 자주 듣곤 하였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자식으로서 형제로서 나의 도리가 나를 얽매어 올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한 동안의 정신적 공항과 방황이 이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에서 시작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온다. 열심히 자유를 갈망했지만 난 결국 '누가 나 낳아 달랬어'라는 말을 꾹 참은 채 또 다시 가족들 가까이로 되돌아 올 수 밖에 없는 이 패배의 기분이....또 겨우 찾은 약간의 자유를 다시 잃기 싫어 가족들이 약간씩 주는 용돈도 마음 편히 받아지지 않는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맺어진 가족들과 나의 관계는 늘 내가 벗어나고 싶은 감옥같은 존재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그 속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결코 완전히 벗어 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분명 존재하기도 한 것 같다.
(물론, 난 부모님과 형제들을 마음으로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관계 문제는 나에겐 또 다른 문제일 뿐이다.)
이 후 태연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인간으로서의 삶을 버리고 뱀파이어의 삶을 즐기게 된다.
여우가 닭 잡아 먹는 게 죄야?
피를 얻기 위해 스스럼 없이 하는 살인하는 태연을 상현이 나무라자 태연이 상현에게 던지는 말이다.
(내심 태연의 말이 너무 합당해서 나도모르게 '그러게....'라는 생각이 들었던 대사이다ㅋ)
결국 상현은 걷잡을 수 없는 태연과 윤리적 신념을 포기해야만 살 수 있는 자신을 자각하게 되면서 태연과 함께 떠오르는 태양에 태워지는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구지 이 영화의 교훈을 찾자면 이 마지막 장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상현의 이런한 선택은 본능적인 것들이 무한 허용되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절제할 수 없을 때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론 마지막 장면이 나에겐 긴 여운을 줬던 장면이다.
우린 때론 윤리는 사회가 만든 감옥이라고 목소리 높이면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막무가내로 그 반대로만 하는 청개구리가 되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알게 된다. 그 청개구리 심보도 또한 누군가에 의해 우리에게 주입된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
(생각이 다른 데로 더 번지기 전에 어서 마무리....-_-;;)
위의 내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헛소리 였고 간단하게 내가 본 박찬욱 감독의 '박쥐'라는 영화는 인간의 본능과 이성이라는 양면성과 그 사이 경계에서 갈등하는 우리 대부분의 (?) 모습을 극화 시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인간에게 이러한 갈등은 죽을 때까지 계속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별 내용 없이 글자 수만 부풀린 영화 감상 후기를 마친다.
이 영화를 보고 떠오른 그림 작품 하나가 있었다.
에곤 쉴레의 추기경과 수녀
(어린 나이에 꽤 인상적으로 보았던 작품이라 잘 잊혀지지가 않는듯...지금은 뭐....인간, 뭐 별거 없으니 너무 고상한 척 하지 말자! 내 멋대로 그림 해석을 ㅋㅋㅋㅋ )
p.s
*보고 나서는 할 말이 무지 많을 것 같은 마음에 후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정리도 잘 안되고 표현도 잘 안돼서 힘들었다.
*송강호 연기 정말 잘하는 듯하다. 거기다 성기 노출까지... 급 놀랐음.
*박찬욱 감독 영화치고 도저히 볼 자신이 없어 눈가리기 3회 정도 했으면 양호한 편인 듯...
*에밀 졸라의 ‘테레즈 랑캥’를 원작으로 한다니 마음이 동할 때 한 번 읽어 봐야겠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 저두 그시간쯤 "뱀파이어 인 베니스" 보고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