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최고로 꼽히는 작곡가는 누구일까요?
연로하신 장년층에서는 박시춘,박춘석을 꼽는분들이 많을테고 그 이외에 중년층에서는 신중현,오태호,윤일상,김형석,이문세의
영혼의 동반자 이영훈 등등 젊은 청년층에서는 스윗튠,신사동 호랭이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올듯합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음악평론가, 가수등 대중음악계 종사자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최고의 작곡가는 바로...고 박춘석 선생입니다..
박춘석 선생의 대단한점은 그가 작곡한 노래의 수량도 엄청날뿐아니라(2700여곡,한국저작권협회 등록곡만 1152곡 -
두 분야 모두한국 최고) 그중 히트곡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점이죠.
대중가요계에 최초로 사단이라는 이름이 붙은 가수들을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수들의 역량 또한 최고라고 불릴만한
가수들이었고.. 박춘석 선생은 1994년 65세의 나이에 뇌졸중으로 병석에 누우신후 16년간 병마와 싸우다가 2010년 81세 나이로
타계하셨습니다. 그의 빈소에는 수많은 가수,동료 작곡가들 뿐만 아니라 많은 문화계 관련 인사들이 찾아와 고인을 추억하며
슬퍼했는데 그 중에는 70이 넘은 이미자,패티김을 비롯 남진,나훈아 같은 한국대중음악계를 이끌어온 최고의 가수들도 많았죠.
그는 당대의 수많은 스타 가수들을 만들어낸 마이더스의 손이었습니다. 주요 수상경력으로는 대한민국 연예예술상(1994년),
옥관문화훈장(1995년), 은관문화훈장(2010년)등이 있습니다.
이미자,패티김,남진,나훈아,문주란...이들 5명의 공통점은?
이들은 소위 박춘석 사단이라 불리우며 박춘석에 의해 당대 최고의 위치로 올라선 가수들입니다. 위에 언급한 5명의 가수는
한국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최고의 가수를 꼽으라면 자타가공인하는 1위 조용필을 제외하고 이 5명중 한명을 2위로 놓는다고
해서 크게 반발을 일으키지 않을만큼 위대한 가수들이죠. 이들은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탑5에 충분히 들만한 가수들이고
최소한 탑10에는 별 이견없이 뽑힐만한 위대한 가수들입니다. (이중 당대의 최고가수에 문주란? 고개가 갸웃거릴 사람들이
많겠지만 개인적으로 문주란은 굉장히 저평가된 가수라고 생각합니다.)
19살 앳된 나이로 열아홉순정이라는 노래로 데뷔한 이미자는 24살때 발표한 동백아가씨라는 노래로 함께 활동하던 여타가수들을
평정하고 최고의 가수로 우뚝서게됩니다.
동백아가씨는 한국대중음악사 최초로 100만장(비공식 추정)을 돌파한 노래로 꼽히고 있죠. 그러나 발매후 얼마 안되어
왜색풍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방송금지곡으로 묶이면서 음반발매 및 판매도 금지가 되면서 이미자는 가수로서 최대의
위기를 맞게됩니다. 하지만 이때 박춘석과 손을 잡고 나온 "섬마을 선생님", "흑산도 아가씨"가 동백아가씨 못지않은 대 히트를
기록하면서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 주죠. 그 후 두 사람은 영혼의 콤비가 되어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 냅니다.
섬마을 선생님 (노래 : 이미자)
1960년대에서 70년대 초반까지 한복을 입고 부르는 전통적인 트롯가요의 여왕이 이미자였다면 화려한 의상에 짙은 화장과 함께
보사노바,탱고같은 외국풍 가요를 선보이며 동시대에 유일하게 이미자의 라이벌로 불리우던 가수가 바로 패티김이었습니다.
패티김 하면 가장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고 길옥윤 선생이죠. 한때 패티김의 남편이었을 뿐아니라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 이지만~~~"으로 시작하는 패티김 최고의 히트곡 "이별"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길옥윤이기 때문이니까요.
하지만 미8군무대에서 팝송을 부르던 애송이 소녀가수를 방송가에 데뷔시킨 장본인이 바로 박춘석 선생입이다. 미8군무대에
키크고 늘씨하며 팝송을 잘 부르는 소녀가수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 박춘석 선생이 그녀를 찾아가 준 노래가 바로 패티김의
데뷔곡인 "초우"입니다.
초우 (노래 : 패티김)
이 노래를 취입하고 패티김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바로 미국으로 훌쩍 날아가버립니다. 그러나 이 노래는 가수가 이땅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없는 가수로 라디오 전파를 타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 패티김이라는 이름 석자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됩니다. 몇년후 패티김은 다시 귀국을 하게 되고 아시다시피 길옥윤과 결혼 후 전성기를 맞이하며 수많은 히트곡을
양산해냅니다. 그러나 길옥윤과 이혼후 그녀는 다시 박춘석 사단에 합류하게 되고 박춘석이 작곡한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가시나무새, 사랑은 생명의 꽃 등의 노래로 가수로서 황혼기라 할수 있던 50대의 나이에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노래 : 패티김)
시커먼 얼굴에 커다란 덩치 호남형의 얼굴이지만 촌티가 줄줄 흐르던 전라도 깡촌 출신 남진은 오직 박춘석이 만든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찾아가게되고 박춘석이 있던 지구레코드사의 전속 가수가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박춘석이
작곡한 이 노래로 데뷔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되죠. 바로 "가슴 아프게" 입니다. 그 이후에 역시 박춘석이 만든 "마음이
고와야지" 연속으로 대히트를 하면서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가 됩니다.
가슴 아프게 (가수 : 남진)
여기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하나.. 흔히 한국노래중 일본에서 최초로 빅히트를 한 노래를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최초인걸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에 앞서 이성애라는 여가수가 바로 이 가슴아프게를 일본어로 번안해서 불러 대 히트를
기록하게 됩니다.
가슴아프게 (가수 : 이성애) - 일본어 번안 가사
남진의 마지막 히트곡이라 할수 있는 빈잔 까지 박춘석 선생이 작곡한 노래로 남진의 가수 인생은 박춘석의 노래로 시작해서
박춘석의 노래로 끝맺음을 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빈잔 (가수 : 남진)
나훈아의 데뷔곡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훈아라는 이름 석자를 세상에 알린 노래는 바로 박춘석이 작곡한 "물레방아
도는데"입니다. 타고난 음색에 멋드러진 가창력을 가졌음에도 변변한 히트곡이 없어서 밤업소 무명가수를 전전하던 나훈아는
다짜고짜 지구레코드사를 찾아갔고 몇번이나 문전박대를 당했지만 어느날 이 모습이 박춘석 선생의 눈에 띄게 되었고 그의
음색에 반한 박춘석 선생이 그를 위해 만들어준 노래가 바로 "물레방아 도는데"입니다.이 노래가 대 히트를 하면서 나훈아는
단번에 남진과 쌍벽을 이루는 최고의 남자가수로 등극하게 되죠. 지금도 나훈아는 당시 박춘석 선생의 눈에 띄지않았다면
지금의 나훈아는 없었을거라며 박춘석이 타계했을때에도 빈소에서 패티김,문주란과 함께 가장많이 애통하게 울었다고 합니다.
현재 박춘석기념사업회 고문역활도 맡고있죠.
물레방아 도는데 (가수 : 나훈아)
제가 서두에 문주란을 저평가된 가수라고 언급을 했는데 문주란은 당시 이미자,패티김 이외에는 커리어상 그녀보다 확실히
위라고 말할수있는 여가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간드러진 목소리가 대세이던 당시에 보기드믄 짙은 허스키 보이스에
중성적인 매력을 뿜어내던 희귀한 케이스의 여가수였죠. 18살 여고2년생이었던 문주란은 전쟁영화 "최후전선 180리"라는
전쟁노래에 삽입되었던 동숙의 노래로 데뷔하게 됩니다. 이때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삽입곡이었던 동숙의 노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어린소녀 문주란은 일약 신데렐라로 발돋음하게 됩니다. 지금도 문주란하면 동숙의 노래가 떠오를 정도죠.
비록 박춘석 선생이 만든 노래는 아니지만 그녀의 데뷔곡이자 최고 히트곡이라 불리우는 동숙의 노래를 한번 감상해보시죠.
동숙의노래 (가수 : 문주란)
동숙의 노래에 이어 "돌지않는풍차" 등을 연이어서 히트시키면서 최고 여가수 반열에 오르게되죠. 하지만 이러한 큰 인기가
스무살도 안된 어린 여가수에게는 감당할수 없는 어려움이었는지 방황을 하게되고 급기야는 스무살이되던 1969년에는
자살기도까지 하게 됩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녀는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게 되는데 이때 박춘석을 만나게 되면서 일명
공항시리즈라 불리우는 공항노래 3곡을 잇달아 대히트 시키면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게 됩니다. 당시 문주란이 박춘석을
만나지 않았다면 가수로서의 그녀의 인생은 거기서 끝이었을지도 모르죠. 그만큼 그녀에게 박춘석은 평생의 은인이 됩니다.
공항의 이별 (가수 : 문주란)
문주란은 이후에도 예전의 왕성함은 아니지만 가수로소의 명맥을 유지하다가 보통의 여가수가 커리어를 마감할때쯤인 50살이
넘어가던 시절 또하나의 빅히트곡을 남기게 되죠. 요즘도 노래방에 가면 심심치 않게 불리우는 노래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입니다. 문주란의 커리어나 히트곡의 면면을 보면 역대 여가수중에 다섯손가락안에 충분히 든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가수 : 문주란)
그외에 다들 한번쯤은 부르거나 들었을만한 박춘석씨가 작곡한 노래 몇곡 추려봤습니다.
38선의 봄 (노래 : 최갑석)
사춘기 (노래 : 김보연) - 당시 김보연은 임예진과 쌍벽을 이루던 하이틴 스타였죠. 가수활동도 병행했었습니다.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 (노래 : 곽순옥) - 80년대 TV로 이산가족찾기가 한참일때 전국민을 울린 노래죠. 아쉽게도 원곡을 부른 가수노래는 찾을수가 없네요.
아리랑 목동 (노래 : 박단마) - 지금도 각종 경기의 응원가로 많이 불리는 노래죠.
이 노래도 역시 원곡 가수의 노래는 찾을수가 없네요.
비내리는 호남선 (노래 : 손인호) - 56년 발표된 곡인데 27년생이신 원곡 가수가 80이 넘은 나이에 부르시는 모습이 참 멋지시네요
마포종점 (노래 : 은방울 자매) - 은방을자매가 어느 인터뷰에서 그랬죠. 자신들의 히트곡이라고 할만한 노래는 딱 이노래
한곡인데 이노래 한곡 덕분에 평생을 잘먹고 잘살고 있다고.. 지금도 밤무대 활동으로 각각 월 천만원이 넘는수익을 올리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