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 트래비스와의 추억
박무형
90년대 초, 교육부 근무 4년 차였던 나는 외자사업과로 발령을 받았다. 그곳은 우리나라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선진 외국으로부터 차관을 얻어 교육시설과 교육기자제 도입을 추진했던 부서다.
그때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내가 담당했던 우리나라 ‘IBRD’ 교육차관사업 평가단의 일원이었다. 차관자금을 적정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또 새로 청구하는 차관사업이 타당한지를 분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나는 그녀의 업무 파트너로서 일을 돕게 되었다.
중년을 훌쩍 넘어 보이는 그녀는 갈색 머리에 푸른 눈동자, 오뚝한 콧날에 약간 나온 듯한 관골의 곡선이 오히려 부드러워 보이는, 갸름한 얼굴의 여인이었다. 감청색 스커트에 연초록빛 재킷이 잘 어울렸다. 나는 언뜻 할리우드 여배우 캐서린 헵번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헵번은 미모는 아니지만, 지적 개성이 더 큰 매력으로 우러나는 배우였다.
새로 맡은 낯선 업무에 신경이 많이 쓰이던 차였다. 차관사업 업무는 대부분이 영어를 구사해야 수행할 수 있었다. 그래서 부내 직원들이 꺼리는 부서이기도 했다. 보직 관리나 승진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시쳇말로 이른바 영양가 없는 부서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것보다 우선 나의 어학 실력으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회의실에서 ‘IBRD’ 평가단 인솔자인 Lee 단장의 소개로 그녀를 소개받았다. 그녀와 나는 서로 초면 인사를 나누며 응접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이른바 업무 상견례였다. 무척 긴장했던 나는 그녀의 상냥한 미소와 차분한 어조에 일단 편안함을 느꼈다. 그녀의 말씨는 또렷했고, 자상했다. 모르는 어휘는 메모지에 스펠링을 해가며 소통하였다. 대화에 어눌한 나를 배려하는 듯한 마음씨가 고마웠다.
우리는 서로의 프로필을 간략히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예사롭지 않은 전공 학력과 다양한 취미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대학 학부 과정은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대학원 석사과정은 문헌정보학을, 박사과정은 전산학을 전공했다는 것이다. 남편이 한국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전해서 한국에 각별한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우리의 대상 업무는 신규 사업으로 전국 국립대학 학술 전산망 구축이었다. 아울러 기존에 차관자금으로 도입된 과학 실험 실습 기자재 활용실태를 살펴보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해당 대학을 방문할 일정을 논의하였다. 전산망 구축사업은 서울대학교에 중앙센터를 두기로 하고 데이터베이스와 네트워크 구축계획은 서울대 도서관장인 선우 교수가 주도하고 있었다. 능동적이었던 선우 교수는 이후에 21대 서울대 총장이 되었다. 우리는 자주 선우 교수를 찾아가곤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추진 상황을 확인하고 두툼한 체크리스트를 꺼내 들고 빼곡히 기록하곤 하였다.
지방대학에 갈 때는 업무를 마치고 그곳 박물관을 들러거나 문화재를 찾곤 했다. 사찰도 찾았다. 사찰에서는 거대한 불상보다 주변에 작은 나한 상들이 있으면 더 흥미를 느끼는 듯 그들 하나하나의 표정들을 카메라에 담곤 했다. 그녀는 음악과 미술, 특히 고고학에 대해서 폭넓은 소양과 높은 안목을 가진 듯했다. 결코 자신의 지식을 함부로 내놓지 않고 상대의 이해와 호기심의 정도에 따라 대화를 엮어나가는 태도를 지녔다.
그녀와의 대화가 차츰 편해지는 듯해서 업무 자체가 즐거웠다. 그녀는 과학적인 합리성으로 업무에는 냉철하나 사적 대화에서는 항상 밝고 부드러웠다. 나와는 음악에 대한 취미나 취향이 엇비슷해서 교감이 잘 되었던 것일까, 말이 어눌한 경우에도 잘 통했던 것 같았다. 나만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출장은 반은 업무요 반은 데이트 같았다.
한번은 당시 경복궁에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에 ‘스키타이 황금 유물전’을 보러 갔다. 구소련 에르미타시 박물관 소장품의 순회전시였다. 그녀는 수년 전 뉴욕에서 순회 전시할 때 기회를 놓쳐 못내 아쉬워했는데 뜻밖에 한국에 와서 보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그녀는 진지하게, 때로는 경이롭다는 표정으로 메모를 해가며 관람했다. 스키타이족은 고대 기마 유목민족이어서인지 전시물 중에는 금이나 은으로 만든 장신구와 칼, 칼집, 말 장식, 잔(盞) 등. 이동식 보석 소품들이 많아 눈길을 끌었다.
그녀가 91년 두 번째 방한했을 때도 나와 그녀는 업무 파트너였다. 출장을 갈 때는 화기가 돌았고 이런저런 대화도 많이 했다.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일본 NHK 방송교향악단 연주회에도 갔고, 서울대 선우 교수의 초청으로 롯데 호텔 홀에서 국악 디너쇼를 함께 즐기기도 했다. 이따금 찻집에서, 찻간에서 오페라 등 음악 연주회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대전 충남대학교 방문을 마치고 귀경하는 열차 안에서였다. 나는 그녀에게 우리 업무에 대한 중요 사안을 건의했다. 지방 몇몇 대학에서 도입 기자재 활용이 부실한 데다 심지어 타목적으로 오용되는 사례가 지적되어 그들 대학은 향후 연차 지원대상에서 제외되어 전체 차관자금 상당 부분이 삭감될 개연성이 있었다, 한국은 이미 경제적으로 중진국 이상의 수준에 있으니 아예 조기상환 조치로 차관수혜국에서 조기 졸업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우리 부서에서는 모처럼 확보한 프로젝트 진행에 차질이 초래될까 염려하고 있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의 차관사업은 예정대로 완수되어야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도입 기자재 활용 부적절 문제에 대해서는 해당 기자재를 환수 조치하여 이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다른 대학에 인계하고, 그 대학에 차관지원 목적사업이 계속 추진되도록 건의했다. 그녀는 메모해가며 경청했고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사안이어서 Lee 단장과 적극적으로 상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우리 집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다. 그녀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스터 박! 어제 그 문제를 아침에 Lee 단장과 상의했더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어요”.
우리가 맡은 프로젝트는 전체적으로 전과같이 계속 진행 시킬 예정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또한 도입 기자재 타 대학 이관 방안도 잘 처리하라는 것이었다.
뛸 듯이 기뻤다. 수화기를 붙들고 거듭 감사하다고 말했다. 신속하고 명쾌한 문제 해결 스타일에 감탄했다. 그녀는 숙소인 조선호텔에서 Lee 단장과 아침 식사를 하면서 그와 합의를 끌어냈고 그 결과를 바로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세 번째 그녀와의 만남은 그다음 해 부산에서였다. 나는 승진하여 외자사업과를 떠나 부산에 있는 H 대학에 근무할 때였다. 교육부 외자사업과에서 H 대학의 외자도입 기자재 활용사항 점검차 미즈 트래비스가 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놀랐다. 아니 설렜다. 외자 사업과 직원 미스 정을 대동하고 그녀는 학교에 나타났다.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기쁘고 반가웠다. 내가 있는 곳으로 일부러 방문 대상 학교를 택했다는 말을 했다.
그날 점검업무는 오후 일찍 끝났다. 대학 총장과 이른 만찬 후, 저물녘에 나는 그녀를 해운대 달맞이 고개로 안내했다. 우리는 전망 좋은 언덕 위 통유리로 된 카페 창가에 앉았다. 그녀는 달뜬 목소리로 일부러 나를 찾아온 연유를 말했다. 바이올린을 명품으로 바꾸었는데 내게 자랑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내가 물었다. 그에 버금가는 독일 수제 명품이라고 했다. 내가 쉬이 알아맞히지 못하고 궁금하여 그녀를 바라봤다.
“루돌프 도너!”
그녀가 말한 브랜드가 낯설었으나 들은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오페라 CD를 내밀었다. 1953년 사바타 판 <토스카>였다. 내가 좋아하는 마리아 칼라스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결정판이라고 했다. 감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때마침 달빛이 저 아래 해변을 비추었다. 저 멀리 서쪽 동백섬으로부터 그 언덕에 비치는 조선비치호텔, 그리고 반달처럼 길게 휘어진 해운대 비치의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그녀는 "Wonderful!"을 연발했다. 우리는 그 밤 꽤 늦도록 흐뭇한 분위기 속에서 정담을 나누었다.
그녀는 헤어질 때 미스터 박과 또 하나의 환상적인 추억을 만들었다며 즐거워했다. 나 역시 그녀와 달맞이 고개에서 보낸 데이트는 감격스러운 시간이었다. 내 생애에 파란 눈동자를 지닌 매력적인 커리어 우먼과 함께한 자체가 특별한 인연이었고 축복이었다. 두고두고 추억거리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 또한 영양가 없다던 교육부 외자사업과에 근무한 인연 덕택이라며 나는 웃음 지었다.
30여년 전 나의 파트너 미즈 트래비스! 지금도 안녕하신지 궁금하다.
첫댓글 2년 전에 작성하여 제 작품집에 올렸던 글이나
나의 '인연'이란 제재에 특히 부합되는 내용이라
다수 수정하여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