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여행1 - 텔아비브 공항에서 예루살렘에 들어가 성문으로 가다!
1. 기 간 : 1월 16일 - 1월 31일 ( 15박 16일 )
2. 배낭여행자 : 우리 부부 2명
3. 여행지 : 예루살렘 성과 신시가지 - 마사다요새와 사해 - 티베리아 - 갈릴리 호수
- 골란고원 - 아크레 - 하이파 - 카이자리아 - 야파 - 텔아비브
1. 이스라엘 전국일주 배낭여행 준비 :
돌아보니 그간 일본이며 중국, 동남아와 유럽 등 여행을 적잖이 해봤지만 이른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인 이스라엘 은 또다른 설레임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오랜세월 조상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탈애굽을 이끈 모세며 근세에 ‘조국으로의 탈출
등’ 독서와 영화등을 통해 내 머리에 각인된....
그 유서 깊은 옛 도시 들을 직접 발로 걸어서 그 감동을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다.
하여 집사람과 함께 둘이서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한 배낭여행을 계획하였다.
대한항공의 이스라엘 직항편이 97년 IMF 직전에 끊어졌기로 인터넷을 뒤지니 마침
우즈베키스탄 항공의 홈페이지가 할인 항공권을 게재하는등.....
아주 잘되어 있어 인터넷으로 예약을 신청하고 항공권은 송금하였다.
이스라엘 정정이 팔레스타인의 테러(독립운동?) 로 불안하였기로 항공권이 여유가 있
을줄 알았는데 뜻밖으로 자리가 없어 원하는 날짜에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는데...
나중에보니 우즈벡의 타쉬켄트가 유럽으로가는 중간 기착지가 되어 여러 방면의 승객
이 모이다 보니 타쉬켄트에서 서울로 오는 좌석이 매진된 때문이었다.
외국에 나가 느끼한 현지 음식에 질리는 경우에 대비해 햇반 10개와 컵라면, 멸치
볶음 등 을 마련하였다.
여행계획서를 날짜순으로 작성한후 짧은 영어 실력에 비추어 수첩에 항공기 탑승에서
, 입국장, 버스며 호텔등....
각지에서 사용이 예측되는 영어회화를 컴퓨터로 인쇄하여 부착하는등 준비를 갖추었다.
2. 여행일정
1월 16일(수) : 부산 - 서울 - 비행기 탑승 - 타쉬켄트
출발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시아나에서 전화가 와서 인천공항 직항편이 오사카에서
오는데 현지 사정으로 출발하지 못해 김해공항에서 정시 출발을 할수 없단다.
아무래도 불안하여 김포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로 바꾸고 급히 출발하였다 ( 김해에서
인천직항은 새벽과 오후 각 1편 밖에 없다)
김포공항에서 리무진으로 인천공항으로 가는데 고속도로가 참으로 시원하구나... 이윽
고 바다속에 매립지가 나타나고....
이른바 세계회 시대의 허브공항인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는 데!
그 위험한 곳에 뭐하러 가느냐는 눈치로 위험한 현장에 고의로 접근하면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며 겁을 준다.
항공요금을 서울로 송금하였기로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에서 항공권을 찾아 보딩패스
를 발급받았다.
밤 11시에 출발한 비행기가 7시간여를 날아 새벽 2시반에(시차 4시간) 타쉬켄트에
도착하였는데 한국인이 대부분인 승객으로 비행기는 입추의 여지가 없는데....
기타를 두 개씩이나 들고 선교여행을 떠나는 대학생 그룹이 인상적이다.
깜깜한 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타쉬켄트는 의외로 가로등이 많아 불빛이 가득한데
공항 활주로에 내리니 구 소련 굽복같은 복장을 한 보안요원의 눈초리가 매서운데...
우리식의 단일 건물에 넓찍한 공항에 익숙한 눈에 백여년전의 조그만 미술관 같은
건물 한동의 공항이 너무나 낯설다.
1월 17일(목) : 비행기-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 - 예루살렘
서툰 영어로 트랜짓을 외쳐 텔아비브행 보딩패스를 받고 대기실에 들어가니 의자가
다 찼기로 양탄자 깔린 바닥위에 앉아서는....
무려 5시간을 기다리는 데 화장실에 가니 우리네 70년대가 생각난다.
화장지도 회색 두꺼운 종이라 연신 손으로 부벼 부드럽게 하면서 새삼 상대적으로
소비재 생산이 떨어지는 구 소련땅에 왔음을 실감하여야 했다.
유럽이며 이스탄불 손님이 다 떠난 뒤 버스로 활주로에 이르러 비행기에 탑승하는
데 그 많던 승객은 모두 딴곳으로 떠나고..
우리부부외에는 남자둘과 부인, 애 4명으로된 한팀밖에 없으니 현지 승객을 합해
도 비행기가 텅 비어 마치 전세낸 것 같다.
두어시간을 날아 구름이 걷힌 땅을 내려다 보다 그만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아...아... 그곳에는.....
천지창조후 원시의 정적이 그대로 감돌고 있었다. 온 천지가 눈.. 눈.. 백설의 눈
이었다.
수미터는 쌓였음직한 눈덮인 고요의 땅에 이제 막 아침해가 떠오르는데 도로는 흔적
만 가까스로 보이는데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무서울 정도로 숨죽인 고요가 장엄한 침묵으로 존재하는구나
얼어붙은 호수도 흔적만 희미한데 비행기는 두시간을 날아도 눈바다가 계속 되다가
그예 구름에 덮혀버렸다.
5시간여를 날아 검푸른 지중해를 내려다 보는데 점점이 배가 지나는 모습이 한폭의
그림인양 평화를 느끼게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텔아비브는 거대한 해변이며 도처의 빌딩숲 한편으로 녹지며
숲이 조화를 이루는것처럼 보인다.
벤구리온 공항에 내리니 듣던대로 보안요원들의 눈초리가 살벌 하기까지 하다. 유일
한 다른 한국인 팀의 부인가 애가 활주로에서부터 조사를 받는 것을 뒤로하고....
입국장에 들어서는데 듣던대로 입국심사가 까다롭기 그지 없다. 어디서 묵을거냐,
입국 목적이 뭐냐, 마중나온 사람이 없느냐....
테러로 지새는 나라라 어쩔수가 없을게다. 호텔 예약표가 없어 시간을 끌었지만
성지순례 및 관광이 목적으로 아는 사람은 전혀 없는 순수한 여행자라 했더니...
말이 잘 안통는지 일단 통과시켜 주어 좋아했는 데,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입국심사대를 통과한 후에도 이사람이 꼬치꼬치 캐어 묻고는 또 다른 사람에 인계
되어 조사를 받고...
부인과 함께 여행하는 동양인으로 특별한 혐의점을 발견할수 없었는지 겨우 통과가
되었다.
*** 또 예루살렘은 십자군이 세운 이슬람왕국의 수도이다 ***
밖에 나오니 조금전의 일행중 사업차 왔다는 남자 한명이 먼저 나와 부인과 애를
기다리는데 가족은 아니고 부탁을 받은 모양이다.
지난주에도 입국하다 입국이 거절되어 한국으로 되돌아 갔다가 이번에 다시 입국을
시도 하였단다.
또다시 조사가 길어져 되돌아가야 하는게 아닌가 하고 걱정이 대단하였다. 현지에
서 사업하는분 두분이 이 일행을 마중을 나와....
세분이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마침내 부인이 애와 함께 겅어나와 나까지도 기뻐하였다.
같은 비행기에 타고온 남자분에게서 텔아비브며 예루살렘 한국음식점이며 영사님 전화
번호를 받고는 현지분에게서 100달러를 환전하여 공중전화 카드를 구입한다.
버스를 타려는데 오래 기다려야하니 우리네 합승처럼 생긴 셰루트를 타는게 좋다
는 얘기를 들었다.
하여 예루살렘행 셰루트에 탔는데 손님이 차기를 기다리느라 한참을 지체하였다. 요
금을 설명하는데 1인당 5달러란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10달러를 주니 80셰켈을 내란다
( 1달러 = 4 셰켈 , 1셰켈 = 250원, 1달러 = 1000원) . 토탈 100셰켈이란 말은 들었
지만 그건 셰루트에 탄 4사람의 요금 총합계라고 생각하였는데....
우리 부부 두사람 의 합계란 뜻이었을까. 아니면 원래 잘못 알아들었던 것일까?
예루살렘으로 가는길에서 보니 이곳은 거의 황무지에 돌산으로 준사막 에 해당해
보인다.
도대체 작물이 자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박토인데, 집들이 꼭 성냥갑 처럼 생긴게
지붕이 없이 그냥 박스형인데 한결같이 미색 일색이었다.
나중에 이곳의 집의 벽에는 콘크리트에 페인트칠을 하는게 아니고 이스라엘 스톤이라
고 불리우는 돌을 바깥벽에 붙인 때문이란걸 알게되었다. 온 천지가 돌산이다.
메노라 호텔 주소며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는데 찾는데 애를 먹다가 마침 승객
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주어 호텔앞에 내릴수 있었는데,
나중에보니 여행안내 책자에는 호텔이 킹다비드가로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야파거리
에 있어 약간의 혼란이 있었던게다.
지은지 오래되어 보이는 호텔은 시온광장 앞에 있어 신시가지의 중심부에 해당하였다.
마음씨 좋아보이는 할아버지가 가족끼리 운영하는 오래된 작은 규모의 호텔인데 스팀
이 나오지 않아 자자니 추위를 견딜수 없어 부르니 전기히터를 가리킨다.
고장이라는걸 설명하자니 애를 먹겠다. 웨있, 웨있하는 데, 아무리 기다려도 켜지지
않아 할머니를 불러 새 히터로 교체하여 겨우 추위를 누그러뜨릴수 있었다.
벤야후다 거리에서 200달러를 환전하였는 데, 공항의 현지 한국분에게서 환전한것
보다 환율이 좋았다. 그분들은 환율을 잘 쳐 준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마침 폭탄테러가 계속되다 보니 셰켈의 가치가
계속 절하되어 나중으로 갈수록 더 좋은 환율을 적용받게 되었다.
한국음식점에 전화하니 할머니가 마중나와 주셧는데 남편은 목사님이시란다. 교회
라야 좌석이 10여석에 불과하지만....
유대교의 심장부에서 기독교 교회를 개척하자니 그나마 대견하다고 보아야할까 보다.
음식점은 훈민정음으로 도배하고 연이며 한국 인형등 한국의 옛 냄새가 물씬나서
보기에 좋았는 데 비빔밥등을 먹는 이스라엘인도 꽤 있었다.
점심은 특별히 할인이 되어 불고기가 30셰켈등 싼 편이라 마음놓고 먹을수 있어 좋았다.
왠 동양여자가 어느나라 사람이냐고 묻기에 너는? 했더니 중국인이란다. 같은
동양인에 불과한데도 이다지도 반가운 것은 워낙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점심후 시내 지리도 익힐겸 걸어서 성벽으로 둘러쌓인 구시가지로 향했다. 가는길
에 규모가 매우 큰 러시아정교 교회를 만났는데....
동로마제국 멸망후 러시아가 기독교세계의 종주권 을 주장하였던 일이 떠오른다. 마치
명나라가 만주족에게 망하니 조선이 "소중화" 를 자처한 것과 마찬가지일러나?
야파(여기 발음으로는 자파) 문을 지나 성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요새라는 뜻인
시타델이라고도 불리는 ‘다비드의 탑’이 나타난다.
기원전 20년 헤롯왕이 세운 것으로 11세기에 유럽에서 건너온 십자군이 이 탑을 점령
하여 예루살렘성 공략의 교두보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모습은 아랍의 술레이만 1세에 의해 증축된 것으로 전설에 의하면 다윗왕이
여기에 탑을 세운데서 유래했다니...
예루살렘의 유적들은 3천년을 두고 여러 민족이 계속하여 건설한 것이 대부분으로
단일 민족인 우리에게는 낯선 모습인 것이다.
첫댓글 읽으면서도 왠지 모를 긴장감이.....그래도 가보고는싶어지네요...잘 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양복을 입고 살아가는 서구문명이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의 헬라니즘과 기독교의 모태인 팔레스타인의 헤브라이즘 이 합쳐서 된 문명이니..... 그 시원을 찾아가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