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은인을 그리며
其一
四明有狂客(사명유광객),
명산에 자칭 광객(狂客)이 있었으니,
風流賀季眞(풍류하계진).
풍류로 이름난 하계진(賀季眞)이지.
長安一相見(장안일상견),
장안에서 처음 만났을 때,
呼我謫仙人(호아적선인).
나를 ‘하늘에서 쫓겨난 신선’이라 불러주었지.
昔好杯中物(석호배중물),
그 옛날 그리도 술 좋아하시더니,
今爲松下塵(금위송하진).
이제 소나무 아래 흙으로 돌아갔네.
金龜換酒處(금귀환주처),
금 장식 거북으로 술 바꿔 마시던 곳,
却憶淚沾巾(각억루첨건).
그 추억에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
其二
狂客歸四明(광객귀사명)
광객(狂客)이 사명산(四明山)으로 돌아가니
山陰道士迎(산음도사영)
산음(山陰)의 도사(道士)가 그를 맞이하였다오
敕賜鏡湖水(칙사경호수)
칙명(勅命)으로 경호(鏡湖)의 물 하사하니
爲君臺沼榮(위군대소영)
그대 때문에 누대와 못 영화로웠네
人亡餘故宅(인망여고택)
사람은 죽어 없어지고 옛집만 남아
空有荷花生(공유하화생)
부질없이 연꽃만 피었구나
念此杳如夢(염차묘여몽)
이것을 생각하면 아득하기 꿈만 같으니
淒然傷我情(처연상아정)
처량하게 나의 마음 상심하게 하네
―‘술을 앞에 놓고 하 대감을 그리다(對酒憶賀監二首竝書·대주억하감 2수 병서)·이백(李白, 701-762)
《李太白集》23권에 실려 있는 시다. 이 시의 병서(幷序)에 “직책이 태자빈객(太子賓客)인 하지장(賀知章)이 장안(長安)의 자극궁(紫極宮)에서 나를 한번 보고는 적선인(謫仙人)이라 부르고, 금귀(金龜)를 풀어 술을 사서 즐겁게 마셨다. 서글픈 마음에 그리움이 일어 이 시를 짓는다.” 하였다. 하지장은 사명광객(四明狂客)이라 자호(自號)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광달(曠達)하고 소탈한 인물이었다. 이백이 처음 장안에 왔을 때에 이백의 시를 보고 기량을 인정해 주었으며, 술을 좋아하고 담소를 즐겨 이백의 호방한 성품과 잘 통하였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죽자, 이백이 예전에 그와 함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쓸쓸한 현재의 심경을 읊은 것이다.
* 四明有狂客(사명유광객) 風流賀季眞(풍류하계진) : 사명(四明)은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山의 이름이고 계진(季眞)은 賀知章의 字인데, 하지장이 ‘四明狂客(사명광객)’이라고 자호(自號)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 四明有狂客 (사명유광객) : 하지장(賀知章)이 스스로 사명광객(四明狂客)이라 호하고는 李白을 이름하여 적선인(謫仙人)이라고 하였다.
* 謫仙(적선) : 벌을 받아 인간 세계로 쫓겨 내려온 선인(仙人).
* 長安一相見 (장안일상견) 呼我謫仙人 (호아적선인) : 하지장(賀知章)이 자극궁에 있으면서 한 번 이백(李白)을 보고는 적선(謫仙)이라 불렀으니, 적(謫)은 인간으로 내려온 것이다.
* 金龜換酒處 (금귀환주처) : 하지장(賀知章)이 이백(李白)을 보고 금거북을 풀어 술을 사서 실컷 즐기고 헤어졌다.
* 金龜(금귀) : 《事物紀元(사물기원)》에 따르면 삼대(三代) 이전에는 관리들이 가죽으로 만든 산대(算袋)라는 것을 찼는데 위(魏)나라 때에 거북 모양으로 고쳤다. 당(唐) 고조(高祖)가 몸에 차는 물고기를 주었는데, 삼품(三品) 이상은 금으로 장식했고 오품(五品) 이상은 은으로 장식하였으므로 어대(魚袋)라고 이름하였다. 측전무후(則天武后) 때에 거북 모양으로 바꾸었다가 얼마 후 물고기 모양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금귀는 천자가 관리에게 차도록 하사한 장신구인데, 하지장(賀知章)이 함부로 술을 바꾸어 마신 것을 보면 이백이 하지장을 광객(狂客), 풍류(風流)라고 칭한 것이 지나친 말은 아닐 듯하다.
* 却憶淚沾巾(각억루첨건) : 賀知章이 일찍 죽었으므로 말한 것이다.
* 狂客歸四明(광객귀사명) 山陰道士迎(산음도사영) : 賀知章이 스스로 四明狂客이라 호하고 인하여 도사가 되어서 향리로 돌아갈 것을 청하자, 경호(鏡湖) 섬천(剡川) 한 굽이를 하사하도록 명하였다.개원년간(開元年間)에 예부시랑 겸 집현태학사로 승진하였으며, 천보년간(天寶年間)에 도사(道士)가 되어 집을 천추관(千秋觀)으로 삼을 것을 청하자 그에게 주어 살게 하였다.
* 爲君臺沼榮(위군대소영) : 이덕홍(李德弘)의 《艮齋集(간재집)》 속집 4권에 “皇帝로부터 감호(鑑湖)를 하사받고 또 대관(臺觀)을 지어 살았으니, 어찌 영화롭지 않겠는가. 호(湖)도 소(沼)의 뜻이다.” 하였다.
對酒憶賀監二首竝書(대주억하감이수병서)에는 “직책이 태자빈객(太子賓客)인 하지장(賀知章)이 장안(長安)의 자극궁(紫極宮)에서 나를 한번 보고는 적선인(謫仙人)이라 부르고, 금귀(金龜)를 풀어 술을 사서 즐겁게 마셨다. 서글픈 마음에 그리움이 일어 이 시를 짓는다.” 하였다. 하지장은 사명광객(四明狂客)이라 자호(自號)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광달(曠達)하고 소탈한 인물이었다. 이백이 처음 장안에 왔을 때에 이백의 시를 보고 기량을 인정해 주었으며, 술을 좋아하고 담소를 즐겨 이백의 호방한 성품과 잘 통하였던 인물이다.
하지장(賀知章, 659~744)은 이백(李白, 701-762)이 벼슬길에 드는 데 직접 도움을 주었고 최초로 ‘시선(詩仙)’이란 영예도 부여했던 지음(知音). 술을 마주한 시인은 지금 그 고마운 인연을 되씹고 있다. 객지를 유람하다 갓 장안에 온 마흔 초반의 이백, 하지장과의 첫 대면에서 그는 장편시 ‘촉으로 가는 험난한 길(촉도난·蜀道難)’을 선보였다.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과 과장법을 동원하여 촉 지방의 험난한 지형과 인생살이의 고달픔을 대비적으로 묘사한 시다. 이 시를 읽으며 하지장은 연거푸 찬사를 쏟아냈고 ‘하늘에서 쫓겨난 신선’이라고까지 치켜세웠다. 뿐인가. 그 길로 이백을 술집으로 데리고 갔는데, 술값이 없자 ‘금 장식 거북’을 풀었다. 3품 이상 관리가 패용하는 신분 표지물이었다. 벼슬 없는 신출내기 선비가 마흔둘이나 많은 고관대작으로부터 이런 극찬과 술대접을 받았으니 그 감개가 오죽했으랴.
50년 이상 관직에 있으면서도 소탈하고 풍류를 즐겨 스스로 ‘사명광객(四明狂客)’이란 호를 썼던 하지장, 계진은 그의 자. 옛 선비들은 상대방의 이름 대신 자나 관직명을 부르는 걸 예법으로 여겼다.
✵ 하지장(賀知章, 659~744)은 중국 당(唐)나라 때 낭만파(浪漫派) 시인(詩人)이다. 자(字)는 계진(季眞)이며 호(號)를 사명광객(四明狂客)과 비서외감(秘書外監)이라고 했다. 양귀비(楊貴妃)와 로멘스로 유명한 황제(皇帝) 현종(玄宗)을 섬겼고, 당(唐)나라 최고의 천재시인(天才詩人) 이백(李白)을 발굴하여 세상에 알린 인물이 바로 하지장(賀知章)이다.
천보 3년(天寶 三年: 서기 744)에 노쇄하여 관직(官職)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나이 86세의 고령이었다. 50여 년만의 귀향(歸鄕)의 정감(情感)을 노래한 시(詩) "회향우서(回鄕偶書)"와 "기일(其一)"을 이때 지었다.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에 지은 시(詩)이다. 본 시(詩)의 제목 회향우서(回鄕偶書)에서 "우서(偶書)"는 "우연히 쓰다". 혹은 "즉흥시(卽興詩)"라는 말이다. 그 즉흥적(卽興的)인 짧은 글에 인생의 참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기도 한 것이 시(詩)만이 가질 수 있는 큰 매력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시(詩)를 좋아한다.
少小離家老大回(소소이가노대회),
젊어 고향을 떠나 늙어서 돌아오니,
鄕音無改鬢毛衰(향음무개빈모쇠).
고향 말씨는 변하지 않았건만 귀밑머리 쇠었네.
兒童相見不相識(아동상견불상식),
마을 아이들 서로 보고 못 알아보며,
笑問客從何處來(소문객종하처래).
웃으며 묻기를, 손님은 어디로부터 오셨나요.
離別家鄕歲月多(이별가향세월다),
고향을 떠난 후 세월이 많이 흘러,
近來人事半消磨(근래인사반소마).
요사이 사람의 일이 태반이나 변했네.
惟有門前鏡湖水(유유문전경호수),
다만 문 앞 경호의 물만이,
春風不改舊時波(춘풍불개구시파).
변함없이 옛날처럼 봄바람에 물결치네.
―'고향으로 돌아와서 즉흥적으로 쓰다(회향우서·回鄕偶書)'· 하지장(賀知章, 659~744)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서 아주 늙어 고향에 돌아오니, 고향 사투리는 그대로 인데 머리털만 쇠었다. 고향에 돌아와 모든 것이 반가운 화자에게 아이들이 "어디서 오신 손님입니까?"로 무심코 던진 말에 화자는 당황해하면서도 세월의 무정함을 느끼고 있다.
평범한 소재를 이용해 소박하면서도 인정미 넘치는 시로, 고향을 떠나 있었던 긴 시간을 직접 묘사하는 대신 고향 마을 아이들의 질문을 통해 세월의 무상함이라는 주제를 신선하면서도 선명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2연에서 사람의 일은 변해도 경호의 물결만은 변함없이 반겨준다고 하여, 위안을 받고 있다. 그래서 고향은 늘 향수의 대상인가보다.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한다.
여우가 죽을 때에 머리를 저 살던 굴 쪽으로 향한다는 뜻으로 수구초심(首丘初心)이 있다. 미물인 여우도 고향을 찾는데, 하물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현대인은 돌아갈 곳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도 하지장처럼 돌아갈 고향, 아니 마음의 고향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추억이 있던 고향 마을과 고향 사람들을 생각하면 옛정과 그리움이 아련히 피어 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詩)는 참혹하리만치 흘러 가버린 세월의 무상함과 옛 동무의 변해버린 모습을 통해 지나온 생(生)을 되돌아보게 하는 긴 여운을 남기는 명작(名作)이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首(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4년 06월 21일(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