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인물 중의 하나가 고종의 정비인 명성황후 민씨입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녀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왕비라는 점은 대부분 동의하겠지요.
오늘 올려드리는 글은 그녀에 대한 평가가 아닌 호칭에 대한 문제입니다. 논란이 많은 인물이니 만큼 그 호칭에 있어서도 갑론을박이 자주 벌어지지요. 보통 그녀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명칭으로는 ‘명성황후’, ‘명성왕후’, 그리고 ‘민비’가 있습니다. 특히 민비라는 호칭이 가장 문제가 되지요.
일단 1982년 12월 30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정부 및 학계는 교과서 개정과 함께 그녀에 대한 공식 명칭을 ‘명성황후 민씨’로 규정했습니다. 그녀에 대한 평가와는 무관하게 명성황후란 명칭은 조선왕조에서 정식으로 추존한 시호인 만큼 존중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지요. 추가로 ‘성+비’로 된 민비라는 명칭은 가급적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민비라는 명칭을 쓰면 법적제제를 가한다거나 그런 건 없습니다. 공식명칭이 아니기에 가급적 쓰면 안 된다 뿐이지 단어의 사용은 순전히 개인의 호불호 문제지요.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게 민비라는 명칭이 일제의 잔재인가입니다. 일제가 을미사변을 통해 명성황후를 살해한 만큼 그녀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았고 이에 따라 민비라는 호칭을 널리 퍼뜨렸다는 설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히 확정된 것이 없습니다. 찬반양론이 모두 존재하지요.
우선 민비가 일제의 잔재가 아니다란 주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왕비를 호칭할 때 명성황후와 같은 식으로 말하는 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예고, 일반 민중들이 어떻게 불렀는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즉 일제의 입김이 닿지 않은 사료 중 민비라는 명칭이 쓰여 있다면 이 주장을 뒷받침 할 강력한 근거가 되는 것이지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재야문인 황현의 <매천야록>입니다. <매천야록>에는 명성황후를 민비로 호칭한 대목이 있지요. 물론 황현이 명성황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은 감안해야겠습니다. 하지만 황현은 동시에 일제도 무지막지하게 싫어했습니다. 경술국치 직후 자결했을 정도니까요. 그런 황현이 일제가 퍼뜨린 호칭을 그대로 썼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명성황후를 민비로 호칭하는 또 다른 사례는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의사의 격문입니다. 격문의 제목도 비범하지요. ‘왜놈대장 보거라.’ 이 격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의 민비를 살해하고도 너희 놈들이 살아서 가기를 바랄쏘냐. 아무리 유순한 백성이라 한들 가만히 보고만 있을 줄 알았단 말이냐. 이 마적 떼 오랑캐야 좋은 말로 할 때 용서를 빌고 가거라. 우리 조선 사람들은 화가 나면 황소, 호랑이와 같으니라!”
-윤희순, <왜놈대장 보거라> 중
내용을 보시면 알겠지만 일본 놈들 다 때려죽여버리겠다는 윤희순 의사의 결의가 느껴지는 글입니다. 그럼에도 민비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지요. 황현과 윤희순 의사가 민비라는 호칭을 만들어냈을 리는 없고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일반인들 사이에 민비란 호칭이 널리 퍼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이 주장에 반대하는, 일제의 잔재다란 의견도 존재합니다.
기본적으로 조선에서는 폐서인되지 않는 한 ‘성+비’로 불리는 일은 이전까지 없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민비와 같은 예는 순종의 정실인 순정효황후 윤씨 뿐입니다. 그녀 역시 오랫동안 윤비로 불렸거든요. 일제의 영향력이 미치던 시기의 두 왕비만이 ‘성+비’의 호칭을 가진다는 건 분명 집고 넘어갈 만한 사실입니다.
일본의 호칭 체계를 알아보면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겠습니다. 일본에서는 덴노와 결혼한 여성을 ‘이름+지위’로 지칭하지요. 예를 들면 현재 아키히토 덴노 부인의 공식명칭은 미치코 황후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이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명성황후 민씨’의 예에서 보듯이 성만을 활용하지요. 그래서 일제잔재론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일제가 대한제국을 삼킨 뒤 황실의 일원들을 왕공족으로 편입하면서 자신들이 주로 사용하는 호칭을 대입했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실제로 순종은 경술국치 이후 이씨 왕이라는 뜻의 이왕으로 불리기도 했고요. 민비, 윤비와 마찬가지로 ‘성+지위’의 예지요. 이런 명칭이 일제강점기 당시 널리 퍼졌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는 없습니다.
좀 더 첨언하자면 위에서 일제잔재론의 반대의견으로 제시되는 <매천야록>과 ‘왜놈대장 보거라’도 분명한 증거가 아니라는 주장도 존재합니다. 현재까지 내려오는 해당 문서는 원본이 아니거든요. <매천야록>의 경우 황현의 후손이 필사한 것이 현재까지 내려오는 것이고 ‘왜놈대장 보거라’도 윤희순 의사가 1935년 사망 직전에 작성한 <해평윤씨일성록>의 기록입니다. 원본이 아닌 만큼 단어가 원래 왕비 등으로 적혀 있던 게 민씨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요.
물론 또 다른 필사본이나 원본이 발견되지 않은 만큼 왜곡된 게 맞는지 확인하는 것은 현재로써 불가능합니다.
이 채널에서는 기본적으로 ‘명성황후’, ‘명성황후 민씨’로 호칭합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그녀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이것이 역사적 용어로써 타당성을 지니기 때문이지요. 조선시대 내내 비난받은 문정왕후가 윤비라 불리지 않고, 오랫동안 폭군으로 여겨진 광해군이 상당한 재평가가 이루어진 지금까지도 광해군이라 불리는 것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첫댓글 왕후의 지위에 있을 때에 ‘민비’라고 사용한 것을
일제가 그대로 사용한 것이 전래가 되었고,
이제는 황후의 지위에 있었음으로 ‘명성황후 민씨’
또는 ‘민황후’란 호칭이 다탕하다고 봅니다.
이것은 글쓴이의 견해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