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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 | 교황 프란치스코는 누구인가? 교황으로 선출되기까지 | 제병영 신부 예수회 |
9/22 | 교황사적 관점에서 본 교황 프란치스코 | 심백섭 신부 예수회 |
9/29 | 교황 프란치스코의 사회적 가르침과 해방 영성의 시대적 맥락 | 성염 前 주 교황청 한국대사 |
10/6 | 성 프란치스코와 교황 프란치스코의 가난의 영성 | 허귀희 수녀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 |
10/13 | 교회와 세상에 대한 교황 프란치스코의 비전 | 조현철 신부 예수회 |
10/20 | 교황 프란치스코의 영성적 뿌리 ; 성 이냐시오의 사도적 영성 | 정제천 신부 예수회 관구장 |
10/27 | 죄인이면서도 예수님의 벗 됨. 신앙의 봉사와 정의에 투신 | 전주희 수사 예수회 |
11/3 | 교황 프란치스코의 체험에서 우러나는 가르침과 권고 | 최현순 박사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
11/10 | 교황 프란치스코의 소통과 친교의 영성 | 조인영 신부 예수회 |
11/17 | 교황 프란치스코와 함께 열린 미래를 향하여 | 강우일 주교 제주교구장,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
제1주 강의 교황 프란치스코는 누구인가? (교황으로 선출되기까지)
제병영 가브리엘 신부님 강의.
예수회 입회 31년 되셨고, 작년 처음 갖는 안식년 동안 교황에 대한 책을 변역하면서 교황님과 사랑에 빠짐.
베내딕토 교황 16세 사임에 대하여 (2013년 2.11)
“ 나는 하느님 앞에서 여러 번 양심 성찰을 한 후에 고령으로 인한 나의 건강이 더 이상 베드로의 사도직을 수행하는데 한계점에 이르렀다고 판단했습니다. 나의 직무는 말이나 행동만이 아니라 기도와 고통으로써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내 직무는 본질적으로 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현실은 많은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신앙생활에 관한 깊은 질문들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스리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강건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난 몇 달 동안 나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내게 맡겨진 직무를 소화하기에 무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심각한 이유를 깨닫고 나는 2005년 4월 19일 추기경들에 의해 내게 맡겨진 성 베드로의 후계자인 로마의 주교 직분에서 물러날 것을 선포합니다. 똑같은 방법으로, 2013년 2월 28일 20시부로 성 베드로 좌와 로마의 주교좌는 공석이 될 것이며, 새로운 주교를 선출하기 위해 법적으로 자격을 갖춘 추기경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콘클라베가 열릴 것입니다. ... 나 자신은 기도로써 봉헌할 것이며, 그런 삶을 통하여 헌신적으로 하느님의 성교회에 또한 봉사하기를 기원합니다.”
추기경단 의장인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에게만 미리 이야기 하신 후 극비에 붙여졌고 추기경 정례회의 때 사임 발표.
1,1 반응
- 모든 추기경이 놀랐습니다.
- 당황, 놀라움, 경의로움과 감동
- 건강상 이유로 사임한다는 것에 언론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언론)
- 교회의 위기를 처리하지 못한 그의 실정
- 수십년간 논의되어 온 교회의 가르침에 종지부를 찍도록 교회를 끌어들임
- 그것으로써 사임을 결정함
베네딕토16세 교황의 사임 동기에 대해 많은 언론들은 바티간의 스캔들 때문에, 교회 안에서의 분열로 인한 절망 때문에, 특히 성추행으로 인해 발생한 교회의 위기를 처리하지 못한 그의 ‘실정’ 때문에, 그는 교황좌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는 추정들이 있었고, 더 나아가 교회를 더 나은 마케팅과 심각한 쇄신이 필요한 단체로 이해시키는 언론의 보도.
이후,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는 즉각적으로 바티칸 공보실과「바티칸 라디오」를 통해 “교황님은 자신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기에 자유로이 사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다.”고 발표함.
1.2 의미
아린제 추기경의 「가톨릭 뉴스」와의 인터뷰.
“교황의 사임 결정이 많은 사람들의 신앙을 한층 성숙되게 하고 심화시키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교황의 사임은 우리 모두를 위해 좋은 실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주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선을 위해 일을 한다면서 자신들의 지위를 양보하려 하지 않는 정부나 국가의 수반인 정치인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교황이 보여준 결단은 교회, 국가, 대학, 혹은 기관이든 누구에게든지 교훈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권위와 기득권을 가지고 봉사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살아있는 교훈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어떤 자리에서도 우리 자신을 내려놓도록 베네딕토 16세께서 우리를 초대하셨다.
만약 베네딕토 16세께서 사임하지 않으셨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출될 수가 없었다.
교황의 내려놓음... 우리는 레지오 단장 자리도 안 내려놓으려 하는데... 각 가정에서도 아버지로서의 권위, 엄마로서의 권위, 남편으로서의 권위, 아내로서의 권위를 내려놓지 않으려고 얼마나 갈등을 빚나?
기도 안에서 이것이 나의 뜻이 아니고 하느님의 뜻이라면 언제라도 자신을 비울 수 있다는 것을 베네딕토 16세께서 보여주신 것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기도로서 교회에 봉사하겠다고 사임 마지막 말씀을 하셨다. 우리도 베네딕토 교황님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2월 27일 수요일 베네딕토 교황의 마지막 알현.
“복음의 진리는 교회의 힘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순화시키고 쇄신시킵니다. 신앙 공동체가 진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 안에 있는 생명력을 환영할 때마다 새 결실을 맺습니다. 이것이 나의 신앙이요, 기쁨입니다. ... 나는 최근 몇 달 동안 기력이 쇠약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선을 위해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끊임없는 기도로 하느님께 청하였습니다. 이런 결정의 심각성과 새로움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깊은 내적 평화와 더불어 이 걸음을 택하였습니다.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역시 시련을 견디며, 용기를 가지고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라 교회의 선 자체를 깨닫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 사적인 삶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도직 활동 수행을 포기하는 나의 결정은 취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사적인 삶으로, 여행, 회의, 접견 등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버리지 않고, 십자가상의 주님 곁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남을 것입니다. 더 이상 교회를 통치하기 위해 직무상의 권위를 행사하지 않고, 기도 안에서, 성 베드로의 영역 안에서 머물 것입니다....”
2. 교황의 부재에서 콘클라베까지
자의(自意)에 의함 사임은 교회역사상 처음.
교황 서거 후 9일 동안 지내는 애도기간 같은 전통은 실행되지 않음. 교황 부재가 시작된 후부터 콘클라베가 소집되기까지 최소 15일은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3일 앞당긴 12일 후인 3월 12일에 콘클라베가 소집됨. 그 근거로 베네딕토 교황이 자의 교서에서 교황 부재에 대한 법을 약간 수정했는데 ‘추경경단이 투표 시작 일을 변경해도 좋다’고 교황이 이미 허용.
2013년 3월 4일 첫 번째 총회 소집. 투표하지 않는 80세 이상의 추기경도 참여하는 예비 콘클라베였는데 투표의 통규를 검토하고, 콘클라베 시작 날짜도 확정하며, 현대 교회가 안고 있는 주요 쟁점도 토의 확정. 추기경단 115명 중 50명은 2005년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되는 콘클라베에 참석한 추기경들. 65명은 그 이후에 임명된 추기경들이었기에 서로간 잘 몰랐으나 콘클라베기간동안 서로 잘 알 수 있는 시간이 됨. 총회 후 소모임을 통해 세계 교회가 안고 있는 위기에 대한 논의와 이 위기를 이끌 교황은 어떤 분이어야 하는지 논의.
2.1 총회
첫째, 교황청의 개혁 :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인 가나의 베드로 투르크슨 추기경의 말 “... 바티칸 은행에 돈을 예치하는 갱단이나 마피아가 있습니다. 이 돈이 바티칸을 시궁창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나는 베네딕토의 후계자가 될 자격에 이것을 최우선 조건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새로운 복음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모든 교황은 끊임없이 말보다는 증언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짐은 모든 일에 신뢰성과 성실함을 보이는 것입니다.”
둘째, 성추행으로 야기된 위기 : 조지 추기경은 “따라서 이 상처는 그들의 마음과 가슴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상처들이 그들 안에 있는 한 우리 안에도 있는 것이고, 오랫동안 그 상처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다음 교황은 이 점을 반드시 인식하여야만 합니다.”
셋째, 세계 교회에 필요한 사람
넷째, 새로운 복음화 : 베네딕토 16세 교황 재임 때 새로운 복음화, 특히 냉담자나 신앙심이 약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세상에 다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2012년 10월 로마에서 개최된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주교시노드가 열렸고 추기경 선거인단 115명 중 50명이 참석. 교황청의 개혁과 통치에 대한 질문들이 언론으로부터 관심을 받았다면 새로운 복음화는 콘클라베 전에 숙고된 유일한 중요 주제였다.
밀라노의 안젤로 스콜라 추기경은 “비극은 하느님이 잊혀진 것이다.”라고 함.
워싱턴 D.C.의 도널드 웰 추기경은 “... 현재 교황청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을 보면 초기 교회가 겪었던 역경들과 흡사합니다. 그리스도교는 더 이상 문화를 주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세속주의가 세계문화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황은 이런 변화에 혼신을 쏟을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위의 4가지를 헤쳐 나갈 새로운 교황의 자질
다음 교황은
첫째 세계교회에 대한 진정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전 세계 인구의 17%가 가톨릭 신자이다.
지역 | 1960 | 2010 |
아프리카 | 22,855,000 | 185,620,000 |
유럽 | 241,030,000 | 284,924,000 |
북미주 | 106,874,000 | 246,981,000 |
남미주 | 128,488,000 | 339,017,000 |
아시아 | 35,419,000 | 129,661,000 |
오세아니아 | 2,867,000 | 9,468,000 |
| 537,553,000 | 1,195,671,000 |
위 통계를 자세히 보면 아프리카는 굉장히 빨리 성장했고 유럽은 거의 정지 상태이다. 유럽의 조금 는 숫자는 이민 신자들의 숫자가 늘어서이다. 남미도 성장했고 아시아도 괄목할 정도로 숫자가 늘었다. 오세아니아도 마찬가지이고. 이것을 보면 사람들이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고,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교회가 확장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가톨릭교회가 유럽 중심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숫자적으로 알 수 있다. 추기경들이 총회를 하면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비유럽권에서 교황이 나올 때가 되었다고 하였고 비유럽권에서 교황이 나오더라도 반대하지 않겠다는 공통적인 생각,
아프리카 교회에 신자 수는 늘었지만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이슬람 국가의 군사력 증가로 선교사들이 살해되고, 그리스도인들은 노예로 팔려가고, 가톨릭 교회는 이슬람 강경파 정부가 부과하는 가혹한 통제 아래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민족과 종교의 갈등,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정부의 부패 등. 그리고 아프리카의 고유한 문화 안에 이 그리스도교를어떻게 토착화 시키는가? 이것이 아프리카 교회가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아직 한국 교회도 토착화가 되지 않았다. 진짜 한국 문화 안에서, 한국 종교의 심성 안에서 태동하는 신학이 나와야 토착화이다. 우리는 전부 서구의 신학을 배워 와서 여기서 재탕만 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큰 숙제이다.
아시아가 갖고 있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아직도 서구 식민지에 대한 인식이 쓰라린 아픔으로 많이 갖고 있다. 그것 때문에 가톨릭교회가 정착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갖고 있다. 그래서 교회를 불태운다던가 파괴한다던가 하는 일은 인도와 부탄 같은 나라에서 비일비재한 일이다. 그리고 아시아 교회들 역시 토착화가 심각한 문제이다. 중국과 바티칸이 가지고 있는 긴장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만일 중국이 개방되면 중국이 갖는 잠재력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남미는 해방신학이 태동한 곳이다. 해방신학의 갖가지 부정적인 모습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좌파성향과 반가톨릭 성향의 정부가 여러 곳에 등장하고 있고 세속주의, 물질만능주의로 부정부패가 넘치는 곳이다. 그리고 오순절 교회, 복음주의 교회, 토속종교로 급속히 신자들이 이동하는 곳이다.
중동은 이슬람과의 관계 때문에 심각하다. 지난 10년간 예루살렘 성지와 중동에서 300만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성지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다. 이는 마치 13세기 십자군 운동이 종식될 때 그리스도인들의 탈출과 매우 흡사하다는 표현을 한다.
이러한 전 세계 교회의 모습을 통찰할 자질을 가진 교황님이 나와야 한다.
둘째, 사목자 : 교황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그리고 보호해 줄 이 없는 사람에게 애정을 베푸는 분. 봉사, 겸손, 사랑의 마음
셋째, 행정가 : 행정적 능력이 있으며 교회의 중앙기관인 교황청 내부의 문제를 투명하게 해결해내려는 의지가 있는 개혁가. 스캔들과 무능함을 말끔히 씻어내고 출세 제일주의나 내분을 넘어서 그런 형태들이 작동할 수 없도록 하는 행정가적 능력을 가진 교황
넷째,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 : 새 복음화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는 새로움과 창의적인 방법도 찾아내야만. 굳건한 기질, 경험, 지혜, 육체적 강건함과 정신적인 힘이 필요. 소셜미디어에서 사용하는 인터넷 환경을 잘 응용할 줄 알아야 한다.
다섯째, 기도하는 거룩한 사람 : 교리나 기도, 그리고 성덕에 있어 철저하고 정통한 사람. 신앙의 진리를 가르치는 능력은 필수적. 결국 누가 차기 교황이 되든 그는 그리스고 같은 사람, 신앙적 모델이 될수 있는 사람, 거룩함에 목말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3. 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누구인가?
* 가족
1936.12.17.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3남2녀의 장남으로 출생.
철도원인 아버지는 파시스트 정권 때문에 이탈리아를 떠나심.
*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영성은 만남의 영성이고 지금 만남의 영성을 창출하시는 분
6세 때, 자비의 성모 수도회가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고 첫영성체를 받으심.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림으로 곱셈구구단을 외우셨는데 어렸을 때부터 책상 앞에 있기보다 밖에 있기를 원하셨다. 그는 대중 앞에서 목자로서의 의무를 수행하셨다.
12살 때 첫사랑과의 만남. 실패와 거부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남.
17세 때의 만남. 학생의 날에 참석하러 학교로 가는 도중에 본당을 지나치다 갑자기 고백성사를 보고 싶었고, 다른 신부님이 계셨다. 성사를 보기 전과 후의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느낌. 그래서 사제가 될 결심. 성사를 통해 예수님과 만나 성소를 굳힘.
21세 때 (지금 오른쪽 폐가 없으심.) 폐렴에 걸림. 병원에 입원해서 절단을 함. 병원에서 간호수녀님이 아니었으면 죽었을 것이라 말씀하심. 오랜 경험을 가진 간호수녀님이 의사의 처방보다 많은 항생제의 투여로 살아남. 죽음에 임박하셔서 예수님을 만남.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고 자주 이야기하심.
22세 때, 예수회에 입회
31세 때 함께 공부하던 호세루이스 신부(성가정 수도회의 선교 신부님)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대해 이야기함. 부에노스아이레스 살바도르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함께 공부하고 같은 해에 서품을 받았는데 두뇌가 명석했고 중용의 덕을 가지고 있고 중재능력이 뛰어남.
33세 때 사제서품
서품이후 고속승진 37(1973년)세 때 관구장이 되심. 관구장 시절에 많은 것을 만나고 경험하심. (1973~1979)
아르헨티나는 그 당시 군부독재 하에 나라가 만신창이가 됨. 더러운 전쟁 (1976-1983)
1970년도 초에 남미의 많은 수도자들과 사제들은 해방신학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베르골료 신부는 사도직 수행에 있어 해방신학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의 관심과 복음에 뿌리를 둔 진정한 정의는 해방신학에서 주장하는 것과 그 내용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노예제도와 세속적이거나 일시적인 형태의 압박으로부터 해방을 강조하는 관점은 죄로부터의 해방을 두 번째 자리로 밀어내기 때문이다. 가장 급진적인 시각으로 해방신학은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차용하기 때문에 교회와 상당한 긴장관계를 가짐.
1975년 로마에서 열린 예수회 32차 총회에 참석하고 오셔서 회원들에게 “폭력의 대가는 가장 나약한 사람에 의해 지불됩니다.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과 진정한 자선의 범주 안에서 사목을 하십시오.”라고 하심.
그 당시 독재와 게릴라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감.
해방신학에 가담하는 예수회원들이 있게 되고 두 사람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 당시 관구장으로 사제를 구하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오해를 받음. 그러나 잡혀들어 간 두 신부님들을 위해 관구장이 대통령 궁에 가서 미사를 집전하시며 자비를 구하셨고 몇 달 후에 석방되었지만 알려지지 않아 받으신 오해. 감옥에 갔던 두 신부는 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구장의 직권으로 내보냄. 오히려 같이 살고 같이 호흡하면서 나누라 하심.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방법을 실천하길 원하심.
( 그러나, 교구장이 되신 후 더러운 전쟁 중에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저지른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했고, 과거의 실수에 대해 공식적으로 벌을 받도록 아르헨티나의 교회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는 2012년 아르헨티나 주교들에게 또 다른 사과를 하도록 권고함. “우리는 모든 사람의 고통을 공유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우리의 실수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지원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청합니다.” )
관구장 시절 밤에 도시를 돌아다니길 좋아하셨다고 함. 그는 설교로뿐만 아니라 실체적이고 구체적으로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하심, 이 모든 것들이 관구장의 결정들에 반영되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예수회에서 주관하는 대학을 민간에게 전해줌.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결정이었음.
관구장 임기 마치고, 엘살바도로 대학으로 감. 엄청난 외로움, 철저한 좌절, 거부를 받음. 그 시간 안에서 엄청난 영적인 변화를 가져옴. 그 시기동안 철저하게 고통 받으시는 예수님을 만나심.
1992년 보좌주교로 서품( 주교 모토 : 자비로이 부르시니 ), 1997년에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 1998년에 교구장으로 임명, 2006년 추기경으로 서품. 추기경 때 누군가 방문하면 크나큰 존경심을 갖고 매번 문간까지 배웅하심.
이 분의 만남의 영성은 직책과 상관없이 인간적으로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 이분의 소통의 방법.
교황님이 바티칸의 새로 수품 받은 주교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하신 말씀, “당신들 왕자병에 걸리지 마.” 사제들과 수녀들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심. 교회안에서 계급으로 성직적으로 군림하지 마라.
이분은 진보적인 사람도 아니고 보수적인 사람도 아니고 복음과 그리스도교의 사회윤리에 충실하면서 확실하게 불의한 가난과 구조적인 원인에 대항여서 싸우며 예수님 방식으로 행함. 예수님 방식은 십자가의 방식. 부활의 영광의 방식이 아니다. 내가 죽어야 한다.
여러 가지의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함. 교향악 같은 사람.
* 주교, 대주교, 추기경
- 겸손 : “나에게 추기경이라 말하지 마라, 호르헤 신부라고 하라.”“절대로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겸손한 사람이 되십시다.”“나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
- 가난하게 하는 모습 : 추기경으로 서임되셨을 때 전임 추기경의 옷을 고쳐 입고 가심. 대주교 관저를 손님신부님께 내주시고 본인은 대성당 주교관 2층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식복사도 없이 사시면서 버스를 타고 다니심.
- 가난하고 소외받은 자를 위한 사목자 : 가난하고 소외 받는 사람 안에 있는 고통 받는 예수님을 만나라고 하심.
“여러분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때 자신의 위신을 들어내기 위해서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을 이용함으로 대죄를 짓는 것입니다. 차라리 그런 사람들은 집안에 가만히 계십시오.”가난한 이를 도와준다는 것은 삶을 나누며 함께 해야 한다고 하심. 대주교로 계실 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가를 구제하기 위해서 교구 안에 전적으로 그들과 동거동락하는 ‘사제단’을 구성하심. 새벽 4시까지 고백성사를 주심.
- 사제를 사랑하는 사목자 : 교구내 300명의 신부 모두를 잘 알고, 오전 7시~8시는 원하는 모든 사제들과 통화하는 시간으로 정해 놓음.
- 개혁가 : 금융, 경제 사태를 겪으면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고통에 대한 신앙적 보호뿐만 아니라, 잘못된 금융정책들에 의해 빚어진 충격에 대해 강력히 경고함. 낙태, 동성연애, 노동착취, 인신매매, 매춘등 인간의 존엄성을 방해하는 사안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심.
*교황
교황으로 선출되는 순간, 그의 옆자리에 앉았던 그의 절친한 친구인 브라질의 클라우디오 후메스 추기경이 “가난한 사람을 잊지 말라”고 그에게 상기시켰다.
20개의 그리스도교 교회와 그리스도교적인 단체도 3월19일 취임미사에 참석하였고 1054년 동서 교회 분리 이후 이 행사를 위해 그리스 정교회의 수장이 로마에 온 것은 거의 천 년 만의 일.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연상하게 하는 그 이름을 그가 택한 사실은 주로 가난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들의 존엄성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며, 복음화에 대한 깊은 중점을 두겠다는 것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러시아 정교회의 진술.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복음화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기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이 되게 한 것은 어둠과 절망에 자주 뒤덮이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보이게 한 것입니다. 3월 15일, 방금 선출한 추기경들에게, “우리 모두는 교회의 영속적인 사명에 충실히 응답하도록 분투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사람들을 인도하고, 교회와 모든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실로 현존하시는 길이시오, 진리이시오, 생명이십니다.”
3월 19일 취임미사 강론에서 예수의 보호자, 그리고 교회의 수호성인 성 요셉의 발자취를 따라서 모든 사람의 보호자가 되기를 요청하면서, 그는 간결하게 이런 현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수호자가 되는 소명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근본적인 것입니다. 창세기의 말씀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듯이 창조물의 아름다움과 모든 창조물을 보호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하나하나를 존경하고, 우리가 사는 환경을 모두 존중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사람, 즉 어린이, 노인, 그리고 우리가 항상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돌보아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랍비 스코르카와 공동저작한 『하늘과 땅』에서 베라골료 추기경은 사제의 독신생활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했으며, 성추행에 대해서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확립해 놓은 엄중한 처벌 원칙을 확실하게 따른다고 발표했습니다.
2001년 4월 국제도서전시회에서 미래의 교황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그분을 만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증언하려는 충동을 느낍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소명이기 때문에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 그러나 여러분은 설득 능력을 가지고서는 결코 어떤 사람을 하느님과 만나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은총입니다. 하지만 태초부터 지금까지의 역사 안에서 항상 은총이 먼저 오고, 다음에 모든 나머지가 옵니다.”
2013년 3월 17일 미사 강론 “... 한 달 후 우리는 똑같은 상황에 놓일 것입니다. 주님께로 돌아가십시다. 주님은 결코 용서하는 데 지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용서를 구하는 데 지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은 결코 용서하시는데 지치지 않으시기에, 우리가 용서를 구하는데 지치지 않는 은총을 구합시다. 이 은총을 강구합시다.”
- 『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누구인가』, 매튜 번슨, 제병영 옮김, 하양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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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강의록과 강의하신 신부님이 번역하시고 강의 자료로 사용하신 책을 정리해서 올렸습니다.
감사
좋습니다.
좋네.. 덕분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