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길옆 방앗간집
지난번 칼러쥐들 얘기로 아는친구들도 몇몇있겠지만...^^
내가 국민학교 5학년까지는 온양고등학교 앞 방앗간집에서 살았습니다.
방축동 지봉이네 동네로 이사간후로는 가세가 점점 기울어지고 집안분위기도 안좋아져서인지
저 스스로 기억을 지워버렸나봅니다.
그래서인지 방앗간에서의 추억이 더 많습니다.
우리집 방앗간 작은뒤뜰로 나가면 철길이 있었습니다.
한여름... 뜨겁게 달궈진 철로 위에 귀를 갖다대면 저 멀리서 기차가 오는 소리가 자그맣게 들렸습니다
"칙칙 푹푹...칙칙 푹푹..."
기차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면 내 작은 심장도 덩달아 크게 뛰었습니다
동생과 난 레일위에다 사이다 뚜껑이니 못이니 가지런히 올려놓고 열차가 가까히 오면
레일옆 뚝으로 달려가 기대어 귀를 두손으로 막고 두눈은 꼭 감고 있었습니다.
기차가 지나간후 달려가보면 그 병뚜껑들과 못은 납작해져서
우리가 소꼽놀이 할 변변한 게 없었던 시절...접시, 수저로 요긴하게 사용했습니다.
지금생각하니 철도 보수하는 아저씨들이었던거 같은데
그 아저씨들은 주황색옷을 입고 노란수레를 밀고 다니셨습니다.
철도에서 노는것을 위험하게 생각하신 할머니가 "철도원 아저씨가 너 잡으러온다!" 하시며
겁을 주시곤 하셨는데 얼마나 무서운지 나살려라~하고 도망가곤하였죠..^^
어렸을적 제겐 온양고등학교 소사 어저씨와 철도원 아저씨가 세상에서 제일무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방앗간엔 늘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예전엔 보일러 시설이 없으니 장작이나 커다란연탄 같은걸로 떡을 찌었습니다.
그러니 시간이 오래걸릴 수 밖에요
떡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집 안방은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경숙이 엄마, 용운이 엄마, 우규엄마,가 기억납니다. 경미엄마도요...
엄마들은 나한테 꼭 노래를 시키셨어요
어른들 칭찬에 약한 나는 개다리춤도추며 노래했던 기억이 납니다.^^
춤춘댓가로 아줌마들은 떡이 나오면 긴가래떡 하나를 주시고 가시곤 하셨어요.
전요..지금도 가래떡 안먹습니다 ^^
여름이면 방앗간 마당엔 내키보다 커다란 국수가 널려있었죠.
동생과 뛰어놀다 국수가래를 떨어트려 국수너는 대나무로 할아버지한테 엄청 맞았습니다.
간혹 방앗간에 남자친구들이 부모님 쫒아 올때가 있었습니다.
그땐 왜 그렇게 부끄러웠는지요...
그애가 갈때까지 방안에서 나오질 못했습니다.
그애들은 내가 방안 이불장 구석에서 얼굴뻘개져가지고 가슴두근거려한걸...모르겠죠?
지금도 내 목소리가 큰이유는
그때 방앗간 시끄런 기계소리 속에서 엄마들한테 열심히 노래 들려주려고 애썼던 노력 때문아닌가...
싶네요^^
*오샘! 제목은 다르지만 이것도 추억이니 숙제 맞져? ^^
첫댓글 오래간만에 까페에 왔다 9년전 동창회결성하던해 오향분 친구가 카페에 올렸던 글이 보이길래 스크렙해서 다시올렸습니다
나이가들면 친구들이 그리워 진다는데 까페에 들어오면 너무 썰렁해서 그때가 그립기만하네요 나도 반성해야겠죠.
아이참 성현이가 쓴글인줄알고 !! 향분이네 떡방아깐 할머니 / 엄니따라 자주갔는데.. 향분이 않보인 이유가 있었구먼.. ㅎㅎ
덕준아 잘지내지? 내가 9년전 잠결에 일어나 썼던글 스크렙 렙해서 올릴께...ㅋ
@백성현 함 올리봐라..
우리 성현이가 돌아왔네? 그러게 존재의 이유를???
덕준인 떡보단 향분이 보러 갔었구만!! 얼라리 꼴라리...ㅋ
그래 워쩔래 !! ㅋㅋ
잊었던 예쁜 추억을 다시 상기시켜준 성현 고마우이~~^^*
명동쪽에가면 떢뽂기 사주남!!
@안덕준 명동에 떡볶기가 유명하니? @@ 우리 회사 충정로로 일년 전에 이사했쓰~~!
@오향분 충정로로 가면되는 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