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건강 하시죠,? 곳곳에 잔설이 남아서 인지 날씨가 춥습니다, 따뜻한 물 많이 마시고 보온에도 신경
쓰시고 좋은 시간들 되십시요,, 일요일 이라 날씨도 춥고 딱히 갈 곳도 없으니 못다 읽은 책이나 몇장 읽을
까 합니다,,,, 그리고, 오후엔 인근 공주 산성 시장에 가서 팥죽이나 한그릇 하고 올려고요,,,ㅋㅋ
그 전엔 돌아 보지도 않던 팥죽이 당기네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모든걸 변하게 하고 마음 마져 변덕 스럽
게 변하나봅니다,
세상이 늘, 불타는 화택(火宅)집 같습니다, 온 나라가 원자경(최태민)부녀의 최면술에 걸려 횡설 수설,수리
수리 마수리로 가는 것 같습니다, ㅋㅋ 나이든 분들은 기억 하시죠,? 구한말 암울한 시대에 전국 여러곳 에
서 종교를 빙자한 요상스러운 집단 들이 비오는 날 돗아 나는 우후 숙순 처럼 횡행했죠, ? 황당한 이론으로
혹세무민 했지만 어렵고 암울한 시대에 민초들은 마음을 의지할 때가 없었고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절대
신에게 기대고 의지 하고픈 심정이 였으리라 생각 됩니다, 백백교, 오두미교,,이름만 들어좌도 요상스럽죠
온갖 못된 짓이란 짓은 골라서 하고 돈뺏고 몸 뺏고 말 안들으면 죽이고,, 수 십명을 죽여 암매장 하고 ,,,,
이런 황당한 일이 ,,, 결국 교주 전용해 라는 인물은 경기도 파주 어느 산속에서 자살로 막을 내렸지만 대명
천지에 있을 법한 일이 아니죠?오랫 동안 잊혀지지 않네요,,,워낙 악질적 이고 범죄수법 또한 전대 미문의
사건 이라서,,,,,그 교주 라는 자의 뇌 구조는 어떻게 생겨먹었는지,,훗날, 자료나 표본으로 쓸일이 있을것
같아서 인지? 일본 순사가 전용해의 목을 잘라 알콜 병에 보관 해서 두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 있습니다,
파주의 쉰,해병의 차를 타고 파주의 어느 곳을 지나 가는데 , 쉰해병 손으로 산을 가르키며 저곳이 전용해
가 자살한 곳이라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일인데 ,, 불현 듯 호기심이 동해서 가보고 싶었지만 운전대
잡은 사람이 엿장수 아닙니까,?! 어찌 내 마음대로 하겠습니까, 심술굿은 그가 운전대를 확 집어 돌려 엉
뚱한 곳에 내려 놓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았습니다, ㅋㅋ
최태민(崔泰敏)은 1912~1994)은 딸 최순실(崔順實1956생)대를이어 41년간 대통령 주변에 도사린 채
권력을 사유화 하고 국정을 농단 하고 많은 부(富)를 챙긴 사실이 하나 둘, 들어 나고 있죠,? 이글은 박
정희 대통령 당시 중앙정보부 국군 보안 사령부 에서 만든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고 월간 조선에 계재
된 내용을 인용 했습니다, 최태민의 프로필 입니다,
최태민은 원적(原籍)이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읍 서동34번지 , 월남 해서는 경남 양산군 웅상면 삼호리 532번지
를 본적 으로 삼았습니다, 최태민은 1912년 5월 5일 생으로 박정희 대통령 보다 다섯 살이 많았다,
최태민 아버지는 최윤성(崔崙成) 어머니김윤옥金崙玉)이 였고요,,,
최태민의 학력은 국졸(國卒)이다, 1927년 3월 황해도 재령 보통 학교를 졸업한 것이 유일하다,
당시 학적부에는 최태민의 이름을 최도원(崔道源)으로 되어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그의 어머니가 선녀(仙女)가 어린 아이를 자기 품에 맡기는 꿈을 꿨다는 것이다
최태민은 1942년 부터 황해도경 고등과장 서포 라는 인물의 추천으로 순사(巡査)가 되었고 일제 치하에서 순사
가 된다는 것은 재주가 비상 하다는 뜻이다, 그는 1945년 8월15일 해방이 될때 까지 순사를 하다가 1945년 9월 남쪽으로 내려와 이듬해인 1946년 3월 다시 강원도경(道警)취직했다, 이때 사용한 이름이 최상훈尙勳)이다, 194
7년 3월 에는 대전 경찰서로 옮겨 경사(警査)가 되었고 1947년 4월에는 인천 경찰서로 옮겨 경위(警衛)로 승진했다 그가 맡은 보직은 "사찰주임" 이였다 그는 2년 만에 경찰 생활을 끝냈다. 그가 자유당 시절 사찰 주임으로 모종의 사건에 연루됐기 때문이라 한다,
최태민은 1949년 군인으로변신한다, 육군 제1사단 헌병대 비공식 문관 으로 일하다 6,25가 터져 1950년 7월
에는 해병대 비공식 문관이 된다, 1년뒤 1951년 3월에 사단법인 대한 비누공업 협회장이 되는 데 이때의 이름
이 최태민의 이름이 최봉수(崔峰壽)라는 이름을 썼다, 최태민은 1953년 초 부산에 있던 대한 행정신문사 부사
장이 됬다가 휴전이되자 그해 9월 서울로 환도((還都)했다, 최태민은 1954년 초 김재복(金齋福)과 결혼했는데
여자 문제로 가정불화가 생기자 경상남도 동래군 금화사로 도피해 승려가 되었다, 그때 사용한 이름이 최태운
(崔退雲)으로 바뀐다, 1년후인 1955년 4월 최태민은 중(僧)생활을 끝내고 부산으로 돌아와 임선희(林先伊)와
결합 한다, 그해 양산군에 개운중학교 라는 비인가 학교를 만든뒤 교장이 되었으나 얼마 안가서 폐교됬다,
1952년 12월 대한 농민조사부 차장이 되었다가 1957년 2월에는 국민회 경남도 본부 사업 부장으로 취직
한다 , 1958년 2월 서울로 이사온 최태민은 1959년 승려 경력을 바탕으로 전국 불교회 부회장이 된 뒤 19
60년 5월 한국복지사회 건설회장에 취임한다, 1963년 5월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창당한 공화당 중앙 위원장을
을 지냈으며 1965년 7월에는 근민회 라는 조직을 만들어 스스로 회장이 된다, 1951년 1월 천일 창고 라는 회사
의 회장이 되었으나 그해 2월15일 서울 지검에서 유가증권 위조 혐으로 수사가 진행되자 도피 잠적했다,
이러한 최태민의 경력을 보면 ,경찰, 군인, 승려, 회사원, 학교장, 복지 단체장, 정계 (공화당)언론인, 기타,,
직함 또한 복잡했음이다, 인사이드 월드 라는매체가 1990년 대 보도한 바에 다르면 그 당시로는 쉽지 않은
개명(改名)을 자주한 이유는 이렇다 , 제보자의 근거로 아래와 같이 썼다,,,,
젊은 시절 부터 최태민을 알고있는 사람이 본사에 전화해 온 제보에 따르면 최태민이 월남하여 이름을 자주
바꾼 것은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 순사 노릇을 하면서 황해도 지역의 애국 독립운가 들과 가족들을 괴롭혔기
때문에 그런 사실이 들통 날 것이 두려워 이름을 바꾸었을지 모른 다고 주장 했다,,그가 독립 운동가를 도우려
경찰이 되었다는 정 반대 설(說)도 있으나 알수없다,, 아이러니한 일도 있죠, 최태민의 조부가 독립 운동 자금
전달 책으로 활동 했는 군요, 알수없는 것이 세상사 일이죠,? ㅋㅋ
최태민은 8개의 이름을 바꾸어 가면서 썼다,
1,최도원
2,최상훈
3,최수봉
4,최태운
5,공남해(천주고 종림동 성당에서 세례 받을 때 쓴 이름,
6,방 민
7,원자경
기 타, 태자 마마,
사연이 많네요! ,,, 이만 생략 하려고요,,,,, ㅋㅋ 다음 이야기는 러시아의 태자마마? 이야기인데요,,,
생전의 라스프틴 모습
제정 러시아 멸망을 앞 당긴 라스프틴(GRasputin)1869~1916)은 누구인가,,,
제정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는 꺼져가는 등불 같았다, 1차 세계 대전을 치르는 동안 경재가 파탄났다,
국민들의 황재 니콜라이 2세에 대한 불만이 고조 되었다, 국민들은 조국방위청의 성전(聖戰)이라며 자
신들을 전쟁터로 내몰며 이득을 챙긴 자본가와 정치가를 불신했다, 그들은 악(惡)의 쟁점을 황제라고 여
겼다, 라프스틴은 시베리아의 농민이 였다, 말(馬)을 훔치다 발각되어 마을 에서 쫒겨난 후 그는 수도원
을 전전 하는 떠돌이 수도사가 되었다, 그의 종파는 최면술을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이비 종교였
다 그는 1904년 페테르부르크로 가 귀부인을 신도(信徒)로 삼았다, 마침내 황후 알렉산드라 마저 그에게
사로 잡혔다, 니콜라이2세와 황후 사이에 알렉세이는 혈우병을 앓고 있었다, 모계 쪽으로 독일 왕가의 피
섞여 있었는 데 근친 결혼이 유행했던 유럽 황실은 유전적 으로 혈우병을 달고 살았다, 황제와 황후는 작
은 상처에도 고통받는 아들을 아타깝게 여겼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때 라스푸틴이 최면술로 알렉세이 병
을 치유했다, 과학적 으로 믿기 힘든 근 일이 지만 알렉세이는 이후 혈우병으로 고통 받지 않았다, 라스푸
틴이 황후에게 살아있는 성자(聖者)가 된 순간이 였다, 대가 쎈 황후는 심약한 황제가 고민 할때 마다 라
스프틴에게 "자문" 하라며 등을 떠밀었다, 이렇게 어울리 면서 황제 부부와 라스푸틴은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1910년 무렵 라스푸틴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국민들은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런 민심(民心)에도 황제 부부의 그에 대한 신뢰는 높아만 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궁정(宮廷)에서의
라스푸틴은 정중 하고 소박했다, 그런 라스푸틴은 궁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돌변했다 귀부인에게 육체의
속죄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교한 뒤 농락 하는 짓을 반복한 것이다, 수상 스톨리핀은 그를 시
베리아로 유배하려 했으나 오히려 자신이 암살 당하고 말았다, 모든 것이 라스푸틴을 철석 같이 믿은 황
후를 배경 삼았기 때문이다, 1915년 가을 니콜라이 2세가 총 사령관이 되어 전선(戰線)으로 나갔다 라스
푸틴은 임자없는 제국을 자기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자기 수하(手下)를 내무부 장관에 앉히고 마음에 안
드는 인물은 밀어 내기 위해 개각(改閣)을 반복했다, 장관들의 목숨과 정책 방향이 라푸스틴의 것이 된 것
이였다, 라프스틴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이용한 게 꿈을 통한 "계시"였다, 그것을 라프스틴은 항
후를 통해 전선의 니콜라이2세 에게 전했다, 그것은 조언이 아니라 사실상 명령이 였다, 상하 관계가 완전
히 뒤 바뀌었는 데도 황제와 황후만 알아 차리지 못했다, 황후가 남편에게 전한 것은 이런 내용이 였다,
친구(라프스틴)가 걱정 말랍니다, 다 잘 될거라는 군요, "우리 친구가 너무 고집 세게 진격하지 말라고 합
니다, 손해가 더 클거래요,,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죠,? 황후와 라프스틴의 기묘한 관계를 조롱하는 벽
보가 길거리에 나 붙었다, 두 사람이 성 관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횡행했다, 심지어 둘이 독일과 결탁해
강화(講和)를 추진 한다는 말도 나돌았다, 보다못한 니콜라이2세의 어머니가 전쟁터 까지 달려가 황제를
수도로 데려오려 하했다, 그때 마다 황제는 "신께서 보낸 성자의 말을 따르겠다"고 했다, 1916년 가을 국민
의 시위가 격해지고 군사들 마져 동요했다, 황실과 귀족 사회는 황제를 퇴위 시키고 니콜라이 대공(大公)
을 옹립 하려했다, 마침내 니콜라이 2세의 측근 들은 라스푸틴을 죽이지 않는 한 황제를 구할 수 없다는 결
론에 도달했다, 황제 조카 이리나 공주 남편으로 당시 러시아 최대 유산 상속자 였던 유스포프공(公)과 검은
100인조의 창설자 푸리슈비치는 라스푸틴이 평소 이리나 공주의 미모에 흑심을 품고 있는것을 이용해 1916
년 12월 말 라스푸틴을 공주의 자택으로 불렀다,공주를 다른 곳으로 빼돌린 다음이 였다, 저택1층 식탁에는
청산가리를 넣은 과자와 독이든 포도주가 놓여 있었다 유스포프 공은 공주가 2층에 손님을 접대 후 곧 내려
올 것이라며 라스푸틴을 안심 시킨 뒤 술과 과자를 권했다, 몸에 독이 퍼져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도 라스푸
틴은 기타를 잘 치는 유스코프에게 집시의 노래를 들려 달라고 청했다, 라스 푸틴이 죽지 않고 몇 시간이나
술을 마시며 기타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자 유스포프는 마침내 권총을 뽑아들고 라프스틴을 쐈다, 라스프
틴의 시신은 양손이 묶인체 얼음이 얼어있는 강물에 유기 되었다, 라프스틴의 시신은 사흘 뒤 발견됐는 데
암살자 들을 놀라게 만들기 충분했다, 손을 묶은 로프는 풀린채였고 폐에는 물이 가득했다 그는 독이든 술과
과자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고 권총에 의해 죽은 것도 아니었다, 그의 사인(死因)은 익사(溺死)였던 것이다,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은 라스푸틴이 자신의 죽음을 예견 했다는 것이다, 그는 죽기전 황제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나는 내년 1월1일이 되기 전에 죽을 것 같습니다, 내가 귀족에게 살해 된다면 그들의 손은 나이 피
의 젖어 25년 간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죽인 자가 폐하의 친척 이라 면 페하 자녀와 친척 누구도 2년
후 까지 살아 남지 못할 것입니다, "예언대로 황제는 라스푸틴 사후 두달 후 제위(帝位)에서 쫒겨났고 그로 부
터 1년 뒤 온 가족은 살해 되었다, 終,
첫댓글 탈, 오자가 많네요,,수시로 들락 거리며 고치지만 ,,오자가 넘, 많아 서 포기 했슴다, 무득이가 성정이 급하고 매사 생각이 단순 해서 늘,허물을 많이 남깁니다 허물은 묻어 주시길 희망 합니다, 총총,,
이름을 저렇게 많이 바꾼이유는 먼가 구린내가 나기 때문이겠요..
대현이 후배님, 무득이도 무뎃뽀, 무득이, 최근엔 여울 이란 닉을 쓰는데 ,,,구린내가 마이~마이,풍깁니다, ㅋㅋ조치원 장날 대추차나 한잔 주세요,,
태봉국 궁예가 시불러 대든 옴 마니 반메홈은 안 중얼거렸을까요?
자동화기 사수님 태봉국 궁예의 옴마니,,반메훔을 아직 기억 하시고 계는 것을 보니,,,치매 걱정은 없네요,ㅋㅋ 잘계시죠,? 홈 마니 반메훔은,,, 불교 경(經)에 신비 해서 말이나 글로 표현 할수없는 주문을 말하죠,? "신주 "라고들 하고요,, 궁예는 觀心法에 능해 상대의 마음을 읽었다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