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성공을 해부해보니
성공과 관련된 원칙을 알아내기 위해 대표적 사업 유행을 사례로 삼아 낱낱이 분석해 봅시다. 독자가 익히 알고 있고 접해 본 경험도 많은 업종 하나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제가 주장하려는 바를 독자가 바로 이해하면서 함께 이 실습을 아주 확실하게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저는 일부 식당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지만 다른 곳은 문 닫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주목해왔습니다. 새로 문을 연 가게의 실패율은 알다시피 50%입니다. 남은 50% 중에서도 살아 남으려고 분투하는 곳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 곳들은 버티고는 있지만 별로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식당이 열 집이면 그중 한군데도 안되는 곳만 최고 등급의 유명식당이 되어 손님들이 기어코 찾아오는 곳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분명 그런 식당의 주인은 어느 곳에서든 뜻대로 할 수 있고, 최고의 셰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최고의 셰프들은
일에 전적으로 완전하게 헌신합니다.
그들은
배우는 일과
배운 바를 타인과 공유하는 일에
지극히 열성적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에 의욕을 느낍니다.
음식을 차려주고 만족스럽게 먹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저녁시간이 성공적이었다고 느끼게 하는 일입니다.
성공적인 댄스 밴드(심지어 대중은 잘 알지 못하는) 정상급 밴드의 예로 레스터 레이닌이 이끈 밴드가 있습니다. 사교계 인명록에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중요한 행사라면 그곳에 반드시 레스터 레이닌의 음악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드레스 코드'처럼 필수적이었습니다. 모두가 그의 악단을 잡으려고 경쟁했습니다. 그의 밴드는 몇 년치 예약이 잡혀 있었습니다.
그가 놀랄 만한 성공을 거둔 비결의 하나는
듣는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음악,
그들에게서 최고의 흥을 이끌어 내는 음악을 연주한 것입니다.
그는 감명을 주거나
과시하려고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밴드나 악단이 하는 연주를 들어보면
그들이 쫄딱 망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것도 연주할 수 있다고
감명을 주려고 무대에 섭니다.
청중이 춤을 추거나 여흥을 즐기게 하는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한번 지켜보세요. 그들이 왈츠를 연주하면 갑자기 댄스 플로어가 붐빕니다. 왈츠를 추려고들 다를 일어나서 나옵니다. 그러면 정말 놀랍게도 남은 저녁 시간 동안에는 다시는 왈츠를 연주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안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준비한 레퍼토리를 연주하고 싶어 합니다. 자기들의 다재다능함을 과시하고 싶어합니다. 하고 싶은 대로 빠른 룸바를 연주합니다. 그러면 청중의 절반이 사라집니다. 하고 싶은 대로 프로그래시브 재즈를 연주합니다. 그려면 댄스 플로어가 완전히 빕니다. 그런 뒤에는 하고 싶은 대로 깜찍떠는 솔로 곡 몇개와 솔직히 남겨 두는 편이 나았을 기괴한 곡 몇개를 연주합니다. 이런 공연은 창조적일 수는 있어도, 사회적으로는 재앙입니다.
원칙이 잘못되었고
동기가 잘못되었습니다.
사리사욕과 애정없는 마음가짐을 보여줄 뿐,
청중의 환희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나타날 활기를
보태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스타가 되는데에만 관심있습니다.
바나나를 잡으려고 애쓰다가
바나나를 놓칩니다.
아는 사람중에 크게 성공한 연주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후에 자기 댄스 밴드를 만들어 대공황 기간 내내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자,
그는 사람들이 죄다 일어나
느린 왈츠를 듣고 싶어하면
느린 왈츠를 많이 연주했습니다.
제게 이 사람들은
왈츠 패거리네. 출동!이라고 하고는
모두가 행복해하고 만족해할때까지
왈츠 곡을 죄다 내놓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폴카를 좋아한다고 하면
머리가 빙빙 돌 정도로
밤새 폴카를 연주해줬습니다.
그는
꼭 보여 줘야 한다는 공식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공식이 있다는 것은 연달아 다른 종류의 음악을 연주해야 함을 의미할 뿐이었습니다. 룸바를 추고 싶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몇군데만. 가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례에서 나타나는 원칙은
'관찰과 즉각 대응의 원칙'입니다.
같은 식당에 가서 같은 것을 주문하고
그런 것은 없다는 말만 듣고 돌아서야 하는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식당은
어느 정도로 무신경하고 대응을 못할까요?
에스프레소 커피 있어요? 하고 물으면 없습니다.라고 하거나 에스프레소 기계가 고장이 났네요라는 뻔한 대답을 합니다. 대박나고 싶은 사람은 에스프레소 기계 수리업을 하면 될 정도입니다. 한번은 어떤 동네에 들렀더니 에스프로소가 있다고 써 붙여 놓고 정작 물어보면 기계가 고장났다고 하는 식당이 세군데 중 한군데 꼴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같은 식당에 가서 반복해서
'다이어트 콜라 있어요?'라고 묻는데,
직원들이 계속 없다고 말한다면
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실패의 열쇠가 있는 것입니다.
귀 기울이지 말고
즉각 대응하지 말고,
관찰력을 갖지 말라.
고객에게는
절대 기쁨을 주지 않은 것을 관행으로 삼고,
고객이 제안할 수 있는 어떤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허세와 자부심에 찬 저항을 하라.
전에 살던 동네에서 저는 거의 모든 식당에서 진저에일을 찾았습니다. 음료 서비스가 따로 있는 식당들이었습니다. 몇 곳에서서는 수십번을 찾았습니다. 절반 이상의 식당에서 거듭 진저에일은 없다고 했습니다. 자, 잘 구비된 바가 있는데, 진저에일은 없다는 것이 상상이 됩니까? 이들은 항상 세븐업은 있다고 합니다. 어쩌라고? 저는 세븐업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진저에일을 원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슬슬 열이 받습니다. 그렇죠?
분명 이들은
우리를 배려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저에일을 마실수 있든 말든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려는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자기만족에 빠져 있습니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기에 자기들은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이익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뭐가 되었든 더 알아야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관점에서 자기들은 이미 성공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는 사소한 일에서 원칙을 저버렸습니다. 이들이 1년에 1억을 번들 대수겠습니까? 성공한 사람들에게 1년에 1억은 쥐꼬리만 한 액수입니다. 전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아이디어가 수없이 많고 그 하나하나가 1억의 가치가 있습니다. 이게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저는 그들이 얼마를 벌든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식당은 실패작입니다. 그런 곳이 살아남는 것은 자리덕분입니다. 그런 곳이 동네에서 유일한 멕시코 식당이라면 멕시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물론 그곳에 갈 것입니다. 그들이 왜 그곳에 갈까요? 달리 갈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게 성공한 건가요? 흥!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그 식당에는 버터가 없다는 말을 듣는
충격적인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웨이트리스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지금 빵에 바르고 있는게 뭐죠? 맛이 끔찍하네요'. 웨이트리스가 말했습니다. '무염 버터인데요'. 저는 무염버터를 싫어합니다. 무염버터는 질색입니다. 맛이 윤활유같습니다. 저는 진짜 버터를 원합니다. 웨이트리스가 말했습니다. '저희는 무염버터밖에 없습니다'.
저는
대체 왜 그 집에
버터가 없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 사람들은
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무신경한 걸까요?
둔감한 걸까요?
교육을 못받은 걸까요?
이 질문들 전부에 답은
'그렇다'입니다.
그곳 주인 얼굴을 보니 바빠 보였습니다. 어쨌거나 관광버스가 그곳을 지나갔습니다. 관광버스 덕분에 보장되는 매출이 분명있었습니다. 행복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환희는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넘치는 생기와 삶의 열정에서 나오는 광채라고는 보지 못했습니다. 늘 뚱해 있는 사람만 보였습니다. 만성 궤양과 편두통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이 남자가 은행에 얼마를 갖고 있든 관심이 없습니다.
이 사람은
만족에 머물렀습니다.
만족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이미 성공의 법칙을 알고 있다.
행복은 행복이고
만족은 만족일 뿐
이 둘은 다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군가의 가슴에 단도를 찔러 넣고 비트는 것에서 만족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이건 만족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이 사람이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행복은
성공을 어떤 것으로 여기는지에
달려있습니다.
성공을 대하는 태도
전반에 달려있습니다.
성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아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학교에서 부정행위를 한 덕분에
'A' 학점을 받으면
행복했습니까?
성공했습니까?
환희가 있었습니까?
그럴 가치가 있었습니까?
어떤 관점에서 보면 물론 위기를 넘긴 것입니다.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자존감은 전혀 커지지 않았고 성공을 가져올 요소들도 전혀 커지지 않았습니다. 자신감, 열정, 통달의 환희 같은 것 말입니다.
반면에
시험공부를 해서 'A'를 받았다면
우리는 순수한 환희를 느꼈을 것입니다.
이 환희는
정당하게 시험에 임한 덕분입니다.
이 환희는 진짜입니다.
실제입니다.
이때 우리는
자신이 파워를 현현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세상에서 성공을 상징하는 것들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겉치레 수준으로 돌아가는 일을 흉내내서 받은 A는 성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돈이
우리에게 행복의 일부인지 아닌지가
중요합니다.
돈 때문에 사람이 비참해진다고 하면 대개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어떤 이들에게는 이것이 사실입니다. 돈때문에 그들은 공포, 허영심, 자부심, 편집증, 오만, 심술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경멸스럽게 여겨집니다. 그들 중 일부는 측은하기도 합니다.
이 점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 로또 1등 당첨자들에게 벌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당첨 이후 5년을 통계낸 결과는 처참합니다. 그들은 파산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일부는 자살합니다. 이혼율도 어마어마합니다. 빈곤, 고통, 불행이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들은 완전히 망하고 파멸했습니다. 명성이나 유명인의 지위에도 같은 일이 생깁니다.
어떤 이들에게 명성은
숨막히게 하는 것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환희의 원천입니다.
어떤 이들은
사인 수집관들을 피해 숨고,
어떤 이들은
그들을 사랑합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세상에는
사람들이 함께 누리는 성공을 하는 이들이 있고,
사람들이 경멸스럽게 여기는 성공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차이입니다.
어떤 이들이 진정한 성공을 하면
우리는 우리가 그들을 한 인간으로서
존경함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것은 그들의 소유물도 아니고 그들의 활동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흥미로울 수 있긴 합니다. 그보다는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가 우리에게 감명을 줍니다.
우리가 그들이라는 존재와 친해지길 바라는 것은
그들에게 '그것'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옮기를
희망합니다.
그들과 시간을 보내면
'그것'을 좀 얻게 될까요?
이것이 '돈을 옮는다'는 옛말의 근거입니다. 돈이 옮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현현하는 법에 대한 앎이 다른 이들에게 옮습니다.
이 원칙을 모르는 이들에게 돈을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마 그들은 또다시 무일푼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제2차 세계대전 중 해군에서 복무할 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급여받는 날이면 노름을 하곤 했습니다. 늘 같은 친구들이 잃고 같은 친구들이 땄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돈을 쏟아부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가난은
당신의 머릿속에 있습니다.
통장에 있지 않습니다.
성공은 많은 사람을 파멸시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오해입니다. 진짜 성공은 사람의 삶에 번영을 가져옵니다. 가짜 성공은 사람의 삶에 결국 파멸을 가져옵니다. 이 두가지 성공의 차이는 각각이 바탕하는 원칙에 있습니다. 문제의 답을 아는 덕분에 받는 A와 커닝 페이퍼 덕분에 받는 A의 차이가 세상에서 보이는 모든 차이를 대변합니다.
성공에 필요한 것이
우리 내면에 이미 있음을 알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세상 어디에 떨어뜨려 놓든 성공이 멀어집니다. 저를 낮선 동네에 돈도 소지품도 없이 떨어뜨려 놓아보세요. 저는 제가 1년 내로 성공적인 사업체를 소유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어째서냐고요? 저는 머릿속에 공식을 갖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성공 공식은
'저 밖'에 있지 않습니다.
'이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반복해서 주장하는 요점입니다. 이 책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은 나선형을 그리는 식입니다. 똑바른 일직선의 '여기서 시작하라'는 접근법이 아닙니다. 같은 영역주위를 끊임없이 맴돌면 순전히 익숙해진 덕분에 정보를 얻습니다.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다 읽었을 때면 정보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순전히 익숙해지는 덕분에 내 것이 됩니다. 너무나 잘 알게되어 '아니 이런, 늘 알고 있던 거네' 하게 될 것입니다.
이 방식으로 학습하다보면 그렇게 말하게 됩니다.
필요한 것은
다른 방향에서 보는 것 뿐입니다.
원숭이가 해야 할 일은 그 뿐입니다. 그렇죠? 바나나는 그만 보세요. 바나나 말고 열려 있는 문을 보세요. 손바닥 뒤집듯이 쉬운 일입니다. 180도 뒤집는 일입니다. 동전의 반대면을 보는 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입니다. 힘이 들지 않는 일입니다. 원숭이가 자유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숭이가 해야 할 일은 쓰러져서 보는 것 뿐입니다. 일부 운 좋은 원숭이들에게 이는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이 제게 처음 일어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저는 창살 사이로 팔을 뻗으려고 애쓰다가 포기하고 극도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탈진한 채 바닥에 쓰러져 전적으로 완전하게 항복했습니다. 담이 바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얼굴에 솟은 코처럼 너무나 두드러지게, 너무나 명백하게 그곳에 있었습니다.
친절하고 우호적인 태도가 성공을 이끈다
식당이야기로 돌아가서 모든 경험을 하나로 모아 봅시다. 그러면 제가 의도하는 바가 명확해질 것입니다.
먼저 실패하는 가게에는
독특한 이름이 있습니다.
주인의 허영심을 채워주는 이름일 것이
분명합니다.
예를들어 '라 롤라드 드 라 메 판타스틱'같은 길고 복잡한 프랑스 이름입니다. 이 이름이 주인에게는 감동적일 것이 확실합니다. 아무도 발음을 못할 뿐입니다. 저는 가게 이름이 괴상해서 망한, 특히 외국어 이름이어서 망한 가게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가게에 주문하는 일을 항상 쑥스러워 합니다. 틀림없이 가게 이름을 잘못 발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호가 첫번째 장애물입니다.
그 다음에 할 일은
주소도 알려주지 않고
건물에 절대 번지수도 붙여놓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찾기 힘들 것입니다.
이것이
실패를 위한 계책 2번입니다.
큰 회사들은 항상 그렇게 합니다. 예를들어 보겠습니다. 집안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 하나를 아무거나 집어들고 제조자 표시를 살펴보세요. 이를테면 이렇게 쓰여 있을 것입니다. '일리노아주 시카고시 윌슨' 연락처를 이렇게 짧게 하는 것으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시카고 윌슨'이 누군지 모를리 없다'는 그들의 자만심은 충족될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그들의 자만심이 먹히는 몇 안되는 팬들 말고는 '시카고 윌슨'이 누군지 저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도 모릅니다. 만약 제가 그들의 제품을 좋아해서 더 사고 싶다면 저는 이제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지 알아내야 하는 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에 문의해도 안내원은 저에게 주소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전화번호만 알려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제가 '시카고 윌슨'에 전화해 그들의 인간미없는 교환원을 거쳐 통화 중 대기에 들어가지만 아마도 연결이 안될 것임을 의미하고, 이는 제가 다시 전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저는 어느 업체에 고작해야 연락 한번 하려고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했습니다. 돈을 써서 이 업체를 부자로 만들어 주려고 안달이 난 참인데 말입니다. 이들은 장애물을 너무 많이 세웠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생존할지 궁금합니다. 제품이 이렇게 쓰여져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일리노이주 시카고시 3번가 2960번지 윌슨 금속(이러면 적어도 그들의 업종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화번호, 그들이 저에게 이 작은 편의를 제공하면 저는 그들의 이익과 매출에 쉽게 도움이 될 수가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직접 누군가가 그들에게 연락하는 과정을 조사해서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겪는다는 것이 어떤 일일지 상상해 보길 바랍니다.
밝히지 않은 주소 뒤에 숨어있는, 상호를 발음할 수 없는 식당을 끝까지 찾아낸 뒤에 우리는 종업원의 굳은 표정이나 거짓 미소로 이어진 형식적인 절차를 거칩니다. 그런 뒤에는 종업원이 우리 이름을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는 등의 다음 순서를 거칩니다. 일단 음료 바로 보낼 것이 뻔합니다. 거기서 그들은 마실 것을 권해 되도록 많은 돈을 받아 내길 희망할 것이고, 그런 뒤에야 마지못해 테이블에 앉힐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에 잠깐 화장실에 들른 다면 테이블이 아까부터 비어 있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 다음으로 알게 되는 것은
화장실이 아주 더럽다는
사실입니다.
냄새가 납니다.
역겹고 억망입니다.
옛말에 '뒷간을 보면 부엌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미 우리는 식욕이 떨어졌습니다. 요리사들이 비누도 수건도 없는 화장실을 다녀오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세균의 이미지가 떠오르거나 이 식당에서 설사병을 옳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화장실이 깨끗하더라도 전혀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화장실을 입에 담기도 민망한 것이나 기능 위주의 필수 설비로만 여기고 창조적 실내 디자인을 할 기회로는 보지 못하는 청교도적 마음가짐만 잔뜩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잊지 맙시다.
주인의 배려수준,
전문 기술수준, 창조성 수준은
고객의 화장실 체험을 통해 드러납니다.
화장실 실내장식에서 그 식당이나 가게의 등급이 의문의 여지없이 밝혀집니다. 엉망인 화장실은 가게 주인이 고객의 안락과 안녕, 안전에 대한 무심함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의 가게에서 겪은 체험 전반의 질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원칙하나를 얻습니다.
모든 거래는
'체험의 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성공하려면
고객이 하는 체험의 질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고객에게 파는 일이나
고객에게서 돈을 받는 일이나
거래를 성사하는 일이나
고객에게서 뜯어내는 일이 아니라,
고객이 하는 체험의 질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업체를 알게 되면 우리는 그 곳에 대해 열변을 토합니다. 진정한 성공은 공유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과 공유되지 않는 성공에서는 성공을 상징하는 것들만 눈에 띕니다. 우리는 체험을 통해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서
어떤 장소를 공유하는 것은
그곳에 있어 본 체험이 아주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 아주 좋은 체험이 어떤 것이었는지
사례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그 점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주 좋은 체험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들어 저는 항상 바샤스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회사 사장인 에디 바샤가 개인적으로 모든 고객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신문에 게재한 것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바샤는 편지에서 그의 마음 씀씀이를 보여줬습니다. 그는 장애인을 고용했습니다. 직원 이직률도 전혀 없는 듯했습니다. 그의 직원들은 말도 안되게 친절하고 우호적이었습니다.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매장에 하루종일 서 있을 수 있었을까요? 말 그대로 수백 수천의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틀림없이 피곤했을 텐데도 그들은 뚱해 있거나, 억울해 하거나, 비관적이거나, 무례하거나, 냉담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 모든 종업원들이 계속 그렇게 진심으로 친절하고 우호적이었을까요? 음, 제 짐작에 바샤스에는 '그것'이 있었습니다.
또 한가지, 바샤스는 점포앞에 고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앉아 친구와 이야기도 하고 신문도 읽을 수 있는 테이블이 여럿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들볶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들에게 뭐라도 팔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샤스는 이익보려는 동기없이 작은 마을 모임 공간을 그냥 제공했습니다. 한평도 빠짐없이 제품 진열대로 채우고 거기서 이익을 얻으려고 애썼습니다.
에디 바샤가 모임공간으로 할당한 평수만큼 손해를 봤을까요? 물론 안봤습니다. 나아가 그는 테라스를 통째로 제공해 거기서 사람들이 빵 매장이나 식품 매장에서 산 것을 가지고 앉아 시간에 상관없이 먹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도 하면서 그곳을 노천 카페처럼 활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빵 매장에는 심지어 '사랑으로 구운 빵'이라고 쓰여있었습니다.
물론
화장실도 바로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온갖 종류의 편의 시설도
제공되었습니다.
복사기나 휴지통, 기타 생활 편의시설들이
오로지 고객의 편의를 위해
제공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고객의 기쁨을 위해 제공되었습니다.
자,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어떤 것일 될까요?
바샤스가 제공한 것은
친절하고 우호적이며
따뜻하고 다정한 공동체 체험이었습니다.
다들 체험이 저와 비슷했고,
그 결과로 고객들은
충성심이 생겼습니다.
저는 동네에 바샤스와 경쟁이 될 수퍼마켓이 몇개가 더 생기든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몇푼을 더 아낄 수 있든 관심이 없었습니다. 에디 바샤가 제 마음을 사로 잡은 수단은 ... '호의(선한 의지, goodwill)'였습니다.
성공은
호의에 자동으로 따라오는
결과입니다.
누가 에디 바샤가 한 일을 모방하고서 자기도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을 기만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바샤의 성공은
그의 태도에서 비롯한 것이었습니다.
바샤는 무슨 일을 하든 성공했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바샤의 고객들은
바샤와 체험을 함께한다고 느꼈습니다.
같은 입장에서
체험을 공유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바샤와 더불어
체험을 한다고 느꼈습니다.
거의 바샤를
더 큰 가족의 일원인 것처럼 느꼈습니다.
바샤의 파워는
호의적인 마음가짐 속에 있었고
올바른 동기에서 비롯한 의도 속에 있었습니다.
이런 체험을 가까운 자동차 관리국 방문체험과 비교해 봅시다. 그곳에서는 분명 아무도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습니다. 가구는 차갑고 매력적이지 못한 회색빛 철제입니다. 사무원의 태도에는 귀찮음과 짜증, 심지어 경멸까지 묻어있었습니다. 우리는 지저분한. 환경에서 길게 줄을 서 기다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형편없는 체험입니다. 다들 자동차 관리국에 가기를 싫어합니다. 우리가 그곳에 가는 것은 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아무도 안가려고 할 것입니다. 끌어당김(attraction)의 파워가 전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원칙을 얻습니다.
포스로
사람들은 뭔가를 잡으로고 애쓰다가
탈진합니다.
끌어당김으로 우주는
사람을 일으켜
세웁니다.
파워는
자기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장은
우리를 밀어내고
어떤 사람들의 장은
우리를 끌어당깁니다.
어떤 자리에 가거나 파티에 참석할 때면
우리가 만나 보기를 고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마주치면
활기가 솟는 기분이 듭니다.
반면에 우리는
어떤 이들과는 마주치지 않으려고
그 길을 피합니다.
그들을 만나고 나면
진이 빠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문한 것은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게 하고 있을까? 긴 신청서를 작성하는 일,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 엉망인 화장실을 이용하는 일, 불편한 의자에 앉아 있는 일, 준비된 그늘이 없어 땡볕에 주차하는 일로는 사람들이 기분좋게 느낄 수 없습니다.
그늘 이야기가 나왔으니
식당 입구도 살펴봅시다.
입구에 차양이 있습니까?
입구가
미적으로 장식되어 있으면(제가 보장하는데)
그 장소의 에너지가 완전히 바뀌어
새로운 고객층을 끌어당기기도 합니다.
입구에 차양이 있으면
고객이 편합니다.
만찬 참석을 위해
한껏 차려 입었는데 차에서 내려
비를 맞고 싶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에 대비가 된 식당이라면 발레파킹이 가능해야 하되, 그 이용이 필수여서는 안됩니다. 저는 발레파킹 이용이 필수인 탓에 일부 디스코 클럽을 기피했던 이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클럽 주인은 자기가 고객에게서 몇달러 더 짜내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그는 고객을 무더기로 돌려보내고 있었습니다. 모든 고객은 어떤 직관적인 수준에서 주인의 동기를 눈치챕니다. 아무도 속일 수 없습니다.
똑같은 발레파킹 서비스가
고객을 편하게 해주려는 주인의 배려를 보여줄 수도 있고,
고객에게서 몇푼 더 짜내려는
주인의 탐욕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무의식 수준에서
그 차이를 압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실내 장식과 조명과 음악이
전체 분위기를 이루어 우리에게 들이닥칩니다.
이 이야기만 해도 책 몇권감입니다. 이 방면에 사람들이 얼마나 무감각한지를 살펴보면 놀라 자빠지게 됩니다. 예를들어 음악이 너무 시끄럽습니다. 프로그레시브 재즈거나 헤비메탈입니다. 게다가 절대로 멈추지도 않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음악소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점을 연구한 사람들은 레퍼토리를 짤 때 침묵의 주기를 넣습니다. 이 방면에 무감각한 사람들은 끔찍한 방송국의 음악채널을 고정해 놓거나 자기들이 좋아하는 테이프를 생각없이 틀어놓습니다. 업주라면 본인이 좋아하는 테이프는 제쳐놓고 고객이 좋아하는 음악을 골라야 합니다.
이탈리아 식당이 동네에 있었는데 그곳 주인은 초기 로큰롤과 그 시대 전체의 팬인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곳의 음악은 혐오스러웠습니다. 같이 있던 사람들이 음악이 정말로 끔찍했다고 평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다시는 그 식당에 가지 않았습니다. 주인 남자는 그 음악을 사랑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질색했습니다. 사람들은 이탈리아 식당에서 어떤 음악을 기대할까요? 베르디오의 오페라나 이탈리아 길거리 음악이 조용하고 은은하게 깔리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대화에 방해가 안되고 종업원들이 주문을 받는데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음향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대다수 식당의 주인들은
귀가 먹은 것이 확실합니다.
소리가 이리저리 튀고 울립니다.
벽이나 바닥의 표면이 딱딱해서 소리가 증폭됩니다. 계속되는 큰 소음도 주인이 창조한 것이라면 문제가 없습니다. 주인이 비즈니스 상 원하는 분위기가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강압적인 소음입니다 예를들어 비즈니스 상담이나 로맨틱한 대화를 하고 싶은데 음향이 끔찍합니다. 여기서 냉난방 장치가 진동하는 소리와 주방에서 고속으로 돌아가는 배기 팬 소리가 더해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소리는
우리의 주요 감각을
자극합니다.
냄새와 마찬가지로
말이죠.
가게 안에
좋은 냄새를 창조하는데
얼마나 들까요?
사실상 아무것도 들지 않습니다.
색상과 장식은
또 다른 중요한 주제입니다.
우리는
그 가게가 이 주제를 중시한다는 사실 자체에서 감명받지,
반드시 그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서
감명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를 위해 경험을 창조하려는 노력에 들어간
에너지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장소도 엄청나게 중요할 수 있습니다. 뉴욕시 맨해튼섬 동부에서 성공하는가 못하는 가는 식당이 도로 어느 편에 위치하는지에 달려있는데, 그 사실을 파산한 뒤에야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연 관람후에 제일 좋은 차들은 동쪽을 향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그 장소에서 영업하던 가게들이 파산하거나
실패한 적이 있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그 장소에서 파산하거나
실패한 가게가 한군데뿐이더라도,
그 자리에 세 가게를 열었다가 타격을 받을 확률이
50%는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장소에서
두 가게가 실패했다면
확률은 95%로 올리겠습니다.
그 장소에서
세 가게가 실패했다면
그곳을 고려하는 것조차 바보같은 일입니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 저는 가게 10여곳이 잇따라 파산한 건물이 어딘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장소에는 뭔가 매우 잘못된 것이 분명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작용하는 요인들이 있지만 이 책에서 더 살펴보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흔한 말로 하자면,
어떤 장소들은 에너지 안 좋아
아무리 페인트칠과 분칠을 해도
바로잡히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장의 주안점을 다 밝혔습니다.
고객이
호의를 체험하는 것이 중요함을 깊이 자각하고
즐거운 체험을 창조하기 위해 업주가 진심으로 노력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려깊고 세심하게 배려하면
이득도 되고 즐거울 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찬사가 쏟아질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매력에 매료됩니다.
본인에게 매력이 없으면
매력을 고용해야 합니다.
디즈니 월드의 성공은 고객과 접촉하는 종업원들 전체가 외향적이고 친절하고 우호적이며 정중하다는 점에 상당히 덕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안 사람들을 가족처럼 대합니다. 이처럼 고객이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유별날 것 없는 예의와 환대일 뿐인데, 오늘날의 따분한 기업체들에는 이것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따분한 환경은
따분한 종업원을 배출하고
둔하고 따분한 고객을 유치해서,
그로 인해 경험 전체가 따분해집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든 다 봐주지만
따분하게 하는 것만은 봐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제 식사를 하러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