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상한 할아버지가 계시다.
쓰레기장 옆에서 서성이는 할아버지를 몇 번 봤지만 무심코 스쳐 지나갔다.
'분리수거를 도와주는 어르신인가 보다' 하고.
그런데 옷차림은 일 할 차림새가 아니다.
긴 까만색 롱코트에 구두는 반짝반짝 윤은 안 났지만 깨끗하다.
햇볕이 따뜻한 날에는 까맣고 동그란 알 선글라스를 끼고 나오셨는데 영화 '레옹'에
나오는 장 르노를 보는 듯 해서 웃음이 나왔다.
장 르노 보다 광대뼈가 움푹 들어가긴 했지만......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키가 큰 할아버지는 처음 봤다.
요즘 젊은 남자들도 키가 크지만 아마 190센치 훨씬 넘을 것 같았다.
어느 날 시내버스를 타고 지나가는데 할아버지가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집어 놓고
잔뜩 웅크려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저 차가운 바닥에 앉으면 추우실텐데......스티로폼 박스 뚜껑이라도 주워다 앉으면
덜 할텐데...." 은근히 걱정이 됐다.
다음 날 지나가다 보니 의자의 둥그런 쿠션만 덩그러이 있었다.
'할아버지 머리 좋은데..... '조금 안심이 됐다.
할아버지는 남의 가게 입구에 우두커니 앉아 있기도 하고 신문을 읽기도 한다.
옆에는 밀감 두 알을 나란히 놓고 사이다나 생수병, 가끔은 비싼 카페 커피가 보이
기도 한다.
입구 이층을 보니 중국인들이 경영하던 가게였는지 코로나로 중국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낡은 건물이라 임대하는 사람도 없는 듯 했다.
하루는 운동을 끝내고 오는 길에 그 앞을 지나오는데 낯익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항상 이어폰으로 듣던데 그 날은 웬일로 크게 틀었는지 천천히 걸으며 우연한 노래에
나는 잠깐의 행복에 젖을 수 있었다.
Oh, l don't Know
Why she's leaving or
Where she's gonna go......... 스모키의 Living Next Door To Alice였다.
어느 날은 Temple Of The King 도 들었다.
오늘은 무슨 노래를 듣는지 궁금해 귀를 쫑긋 세워도 들리지 않는 날은 왠지 서운했다.
유식한 할아버지가 왜 추운데 나와 고생하는지 궁금했다.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아주머니께 "저 할으방 뭐 허시는 어른이꽝?"
"응... 빈병 주워 가는 할으방"
아! 그래서 옆에 스텐레스로 만든 캐리어가 있었구나.
빈 한라산 소주병이 대여섯개 들어있고 많아야 열 개 정도.
'저것 모아서 돈 될까?' 괜한 걱정을 해본다.
아마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이유는 외로워서 나왔다는 것.
하루종일 혼자 집에 있어봐야 고독만 씹을 것이고 나오면 구경거리가 많다.
신제주 번화가라 이것저것 볼거리가 있다.
지나가는 젊은 연인들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참, 좋을 때다' 할 수도 있고
'박복한 相이네'
'부자 될 相이구만'
나름의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상을 볼 수도 있다.
태풍에 위험하다고 야자수 짜르는 것도 구경하고
오래 된 하수관 교체하는 것도 보고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도 보고.
포장마차에서 오뎅(어묵)을 먹는 모습도 봤다.
워낙 키가 커서인지 포장마차 천막 안에서 꾸부정하게 서서 먹고 있었다.
오늘은 사우나 갔다오는 길에 봤더니 비가 내려서 안 나오신 것 같았다.
구석진 자리에 빈 화분통 하나 놓여있고 일회용 종이컵에 다육이 하나 심어져
있었다.
날씨 좋으면 할아버지는 다육이 궁금해서도 나오실거다.
우리 앞집 우즈베키스탄에서 오신 할머니가 정류장에 서 계셨다.
"이 추운데 왜 나오셨어요?" 물었더니
"그냥 심심해서리......"
손에 지팡이와 우산까지 챙겨 나오셨다.
"따님, 손주 어디 갔어요?"
"집에 있어"
모두 외로워서다.
첫댓글 우와😃
오랜만에 올리신 아우라님의 반가운 글입니다.컨디션은 좋아 지셨는지요?
워낙 시간을 알차게 꾸며가시는 아우라님 은 외로워할 시간도 없으실겁니다.만약 그런거같다면
제가 또 가만 않놔 두지요.ㅎㅎ
제주도에 가서 만난지 어제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지막 달력이 뜯겨갑니다.
올해 마지막 남은 시간까지 항상 알차고 즐거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많이 좋아져 1월부터 일 갑니다.
아들이 하던 일을 다른 업자가 하는데
마음에 안 드는지
번갈아 가며 전화 옵니다.
"빨리 일 나오라"고
"운반비도 올려 주겠다"고.
요즘은 도서관에 가서 책 빌려
보는 맛으로 삽니다.ㅎ
오래만에 아우라님 글을보니 정말 반갑습니다
컨디션이 좋아졌다니 더욱 기쁘네요
가끔씩 이라도 이런 소소한 일상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ㅎ
요즘은 밥도 잘 먹고
오늘은 오일장에 친구랑 가서
동지 팥죽을 먹고 왔지요.
제주에도 하얗게 눈 쌓였어요.
내일 한라산 1100도로에 눈구경 가자고 친구들이 유혹하는데
글쎄.....